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12~14

 

 

<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12>

 

히지카타는 우왕좌왕 옷도 갈아입지않고 방 안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걸어다녔어. 야마자키님은 무엇을 얼마만큼 알고있을까. 설마 모든 것을 알고있는 걸까. 아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약봉지 이 처방안. 야마자키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어. 히지카타는 눈물이 핑돌았어. 아무에게도 알리고싶지 않았는데.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그럼 대체 어쩌려고 했어, 히지카타 토시로? 아무에게도 알리지않고 아무에게도 들키지않고... 하지만 병이 깊어지면 병색이 드러나게 될테고, 어차피 마지막까지 숨기고 있을 순 없었을 거야. 넌 아무것도 하지않으려고 했고, 그저 어떻게든 숨기려고만 했어. 이렇게 대책이 없는 인간이었어? 이렇게나 대책이 없는 사람이었어... 그저 숨겨서 오랫동안 오랫동안 이 모든 것을 비밀로 하고, 가능한데까지 끝을 뒤로 미루려고 했어.

"한심해..." 히지카타는 소리를 내어 웃었어. 자기자신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병을 숨기려 했는가에 대한 막연한 사실을 깨닫고나자, 자기자신이 이렇게도 웃기고 작게 느껴질줄이야. 한심해. 히지카타 토시로. 정말 한심해.

그렇게 두려워하던 끝이, 바로 지금이야.
멍청아.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바로 지금, 그저 모든 것을 끝내자.





히지카타는 옷도 갈아입지않고 헐레벌떡 문으로 뛰어나갔어. 가는도중 하인들이 히지카타를 발견하고 그를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지.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로. 히지카타는 이를 악물고 사카타성의 정문을 열었어. 이대로 도망가버리고싶었지만, 그게 될 리가 없었어. 알고있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사라져버리고싶은 생각외엔 도저히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정문을 지키고 있던 사카타가의 장정 시종들은 당연히 히지카타의 외출을 막았고 히지카타는 그들의 앞에 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 히지카타는 그저 잠깐 바람만 좀 쐬고 오겠다고 떠듬떠듬 말했지. 히지카타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너무 수상한 거동이어서, 그들은 순순히 히지카타를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어. 히지카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 "그럼 너희들의 눈이 닿는 곳에 있을게. 바로 저기." 사카타성의 정문 밖 바로 코앞에 있는 작은 나무를 가리키며 히지카타는 말했어. 저기까지라면 괜찮겠지, 설마 히지카타가 갑자기 이상한 마음을 먹고 도망치더라도 금방 쫓아서 잡을 수 있는 거리야. 정문지킴이들은 약간 껄끄러워하면서도 그정도까지라면, 하면서 히지카타를 놓아주었어. 히지카타는 나무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지.

"히지카타님."
"......"

히지카타는 길을 따라 걸어오는 야마자키를 보면서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어. 사실은 왠지 그가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었거든. 히지카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키가 작은 나무에 등을 기대며 약간 휘청였어. 깜짝놀란 야마자키가 움찔하며 히지카타에게 달려오려 하는 것을, 히지카타는 한 손을 들어 저지해야만 했지. 히지카타는 자신을 바라보는 야마자키의 얼굴에 어린 자신을 향한 걱정과 연민, 어쩌면 깊은 사랑과, 또한 슬픔을 읽어냈어. 히지카타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어.

"...언제부터입니까? 야마자키님."

야마자키는 아랫입술을 꼬옥 깨물고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어. "언제부터 전부.. 알고있었던겁니까?"

"...얼마 안됐습니다. 죄송합니다, 히지카타님. 무례한 줄 알면서도, 당신의 뒤를 몰래 미행했었어요. 당신이 어딜 그렇게 몰래 가려고 하는지 궁금해서요. 죄송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뻔뻔하게... 좋아한단 말이 모든 행동을 포장하는 어떠한 핑계거리가 되어선 안됩니다."
"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좀 더 비난하셔도 괜찮아요."
"...하아, ..비난... ...뭐,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런 입바른 말,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인 것도 아니고."

"그동안 당신에게 받은 것들에(꽃들) 제법 마음의 위안도 받았었으니, 그걸로 상쇄하는 셈 쳐드리죠..." 후후, 히지카타는 소리를 내어 웃었어. 야마자키는 자기도모르게 또 한걸음, 히지카타에게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지. 히지카타의 창백한 얼굴, 기운이 빠진듯한 웃는 목소리, 열에 들뜬듯 촉촉한 눈동자... 그는 그 어느때보다도 아파보였어. 야마자키는 히지카타의 몸이 너무나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어. 야마자키는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주르륵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아 있는힘껏 주먹을 쥐어야만 했어. 그는, 의사에게 모든 것을 전해 들었어. 의사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꽝꽝 찧어대는 야마자키에게 멋대로 사람을 뒤쫓아 비밀을 캐내는 몹쓸짓에 대한 욕도 길게 하지 못하고 그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어. 야마자키는, 사랑했지. 히지카타를. 그 깊은 사랑으로 일렁이는 진실된 눈동자에는 어던 거짓도 존재하질 않았어. 그래서 의사는, 히지카타에 대한 모든 것을 야마자키에게 알려주고 만거야. 그 진실된 눈을 보며. 그건 그야말로 히지카타가 자신에 대해 알고있는 것만큼의 수준이었지. 어째서 그런 끔찍한 병에 걸리고 말았는지, 그 병이 깊어지면 히지카타가 어떤식으로 고통을 받고 괴로워지게 될지, 그리고 병은 그저 한없이 깊어지기만 할뿐 나을 수 조차 없다는 것도, 그래서 결국-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것까지.

그 모든 사실을 알고있는 야마자키에게는, 히지카타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허무하게 들렸어. 그 창백한 옆얼굴이 마치 앞으로의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았어. 야마자키는 몹시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어. 사카타 긴토키, 그만 히지카타님의 인생에 없었더라면. 이렇게 끔찍한 병에 걸려 고통에 허덕이는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히지카타님, 저, 저와 함께 가주세요."
"...야마자키님."
"저, 저는, ...저는 도저히 더는 참을 수가 없어요. 당신이 사카타공 옆에 있는 걸 더는 참을 수가 없어요. 그는 당신을 지금까지처럼 그저 이용하기만 할거예요. 그 와중에 당신의 병이 깊어지고 당신이, ...주, ...죽, 어가고 있다는 걸 그는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어요!"
"...눈치채지 못하게끔, 내가 하고 있는거예요. 야마자키님."

긴토키. 그가 내 병에 대해 알게된다면, 아니, 난 그런 가정조차 하고싶지 않다.
그에게는 절대로 아무것도, 알리지 않을 거야.
그는 영원히 아무것도 몰라야만 해.

"긴토키에게 내 병을 들키고싶지않은거예요. 바로 내가. 야마자키님."
"......"
"왜냐면, ...왜냐하면, 그래....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가 슬퍼할테니까.
후회할테니까.
정말로, 그동안 그저 자신을 위해 나를 이용해왔었던 그 십년의 세월들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자괴에 빠질테니까.

내가 죽으면. 내가 이상한 병때문에 산산조각이 나버리면. "그래, 그게 싫어서..."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하며 가느다랗게 웃었어. 그래, 그게 싫어서,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필사적으로 병을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거였다. 이렇게 한심하고. 이렇게 대책없는 인간이었어. 난.

그가 내 병에 대해 알게되고 슬퍼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아.

그리고 긴토키에게 이 병을 결코 옮기고 싶지않다. 나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
그렇기에, 나는 영원히 긴토키에게 안기지 않아.
결코 안겨주지 않을 거야.

내 손으로 그를 죽이는 일을, 나는 결코 할 수가 없으니까.

"......" 야마자키는 아랫입술을 뻐끔대었어. 무슨 말을 내뱉으려다, 다시 삼키길 반복했지. 그리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 야마자키의 얼굴에는 서서히 체념의 미소가 피어올랐어. 야마자키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지. "...그렇군요, 히지카타님. 제가 몰랐었군요."

"...당신은, 사카타공을 사랑하고 있었군요...?"
"......"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이라.

"내가 그사람을 사랑하고 있느냐니..."

히지카타는 웃었어. 야마자키의 질문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바보처럼 느껴졌지. 그처럼 당연한 게 또 없는데, 그건 질문조차 될 수 없는건데.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뜨거운 공기는 위로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가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한건데.

그럼, 당연하잖아.
내가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

"...야마자키님. 긴토키는, 신이 나를 위해 준비해준 사신이에요."

그런 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

그렇게 말하고, 히지카타는 웃었어.
히지카타는 긴토키와 처음만났던 그 날의 일을 떠올렸어.

히지카타는 귀족이 장난으로 갖고 논 하녀의 아들로 태어나, 귀족의 장난감으로 온갖 괴롭힘을 당하다 어머니가 죽고나자 귀족의 저택을 도망쳐나왔더랬어. 그렇게 길에서 헤매이길 수개월, 그들은 거지꼴을 한 히지카타를 기꺼이 자신의 가족의 인원으로 받아주었었지. 그들의 소박하고 정겨운 삶에 히지카타는 자신이 녹아들어도 되는걸까 늘 그런 생각만을 했었어. 하지만 그들은 모두 상냥했고, 포근했고. 히지카타는 꼭 그들의 가족이 되고싶었지.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언제나 언제나 보석같은 빛을 품고 있었어. 그리고 히지카타는, 후회했지. 죽음처럼. 왜 상냥한 그들에게 붙어있었던걸까. 왜 그들에게서 떨어져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나. 나같은 녀석이 옆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들이었는데.

히지카타가 도망쳐나온 귀족은 수소문끝에 히지카타의 행방을 알아냈고 그 평민들의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어. 단순히 자신의 손을 떠난 '장난감'에 대한 보복이었지. 귀족은 히지카타의 눈앞에서 그 평민들을 모두 죽였고, 마지막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위해 일부러 히지카타만을 죽이지 않고 떠났어. 히지카타는 목과 몸통이 분리된 그들을 바라보며 눈물조차 말라버렸고, 그들을 위한 일곱개의 무덤을 만드는 동안 감정마저 사라지고 말았지. 이 모든 것이 내탓인데, 고작 간단한 나의 죽음만으로 보상할 수 조차 없는, 아아,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일곱개의 무덤앞에서 멍하니, 히지카타는 그저 그런 생각만을 반복하고 있었어. 죽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 간단한 죽음하나로 이 일곱개의 무덤의 보상을 어떻게 했다고 할 수 있겠어. 난 그저 간단히 죽어서는 결코 안 된다. 어떻게 해야할까. 팔을 잘라낼까. 다리를 잘라낼까. 눈을 파내버릴까. 여기서 무릎을 꿇은 채 죽을때까지, 그저 계속 굶고만 있을까. 아아, 어떻게 하면 보상을. 어떻게 해야.

그리고, 히지카타에게 그 해답을
갑자기 나타난 사카타 긴토키가 내려주었지.



"바로 여기야. 넌 앞으로 온갖 귀족남자들의 물건을 여기로 물게 될거야."
"...! ..!! ...."
"그냥 무는걸로 끝나선 안 되고, 엄청난 명기가 돼서 그들을 녹여야돼. 그들을 네 몸에 매달리게 해야해. 그래서 그들이 너에게 자기약점이 될만한 것들, 앞으로의 정치에 중요하게 다루어질 정보들 등등을 불게 만들어야하지. 그리고 난 너를 통해 그들의 약점과 세상의 중요한 정보를 이 손에 거머쥐게 될거야. 난 널 성상납하는 첩자로 만들거라는 거지. 어때, 이해가 돼?"
"......"



히지카타는 자신에게 그 말을 하는 긴토키를, 꼭 천사라고 생각했어.
또한 동시에 사신이라고도 생각했어.

어느쪽이든, 그는 신이 자신을 위해 내려준 존재라고 생각했지.

긴토키가 한 모든 말들, 긴토키가 십년의 세월동안 히지카타에게 한 모든 고통들은, 그러니까, 도리어 히지카타에게는 구원이었던 거야. 자기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그들에게 죗값을 치루기 위해서라도 편히 죽을 수 없었던 히지카타에게, 그간 십년동안은 죽음보다도 훨씬 끔찍한 고통이었고, 히지카타 자신에게 주어진 '기꺼이 감수해야 할 것'이었던 거야. 십년동안, 히지카타는 고통스러웠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어.

그리고 그런 고통이 자신에게 내려져서, 무엇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너무나 기뻤어.
모든 죗값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 같았어.



긴토키. 그래,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 나에게 살면서 죗값을 치룰 수 있게끔 해준 그를. 히지카타는 자신의 말을 들으며 어느새 눈물을 떨구고있는 야마자키를 씁쓸하게 바라보았어. "...날 위해 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는데."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했지, 야마자키는 눈물을 멈출 생각조차 하지않고, 그저 엉엉 목놓아 울기 시작했어. "...아니에요, 히지카타님. 당신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결코, 결코 그렇지않아..." "......" 그래, 결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 내가 십년동안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십년전으로 돌아가도, 히지카타는 결국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할 게 분명했어.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꼭 다시, 긴토키의 그 하얀 손을 잡을 게 분명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러니까 이런 나를 위해 울 필요 없는데. 정말 그럴 필요없는데.
아아, 울지말아요. 울지 말아. 야마자키님.

히지카타는 눈썹을 구부리며 어쩔 수 없네라고 중얼이며, 또 조금 웃음지었고.



<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13>

 

 

"뭐하는거야...?

히지카타가 소리에 뒤돌아보자, 그곳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긴토키가 서 있었지.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보고도 별로 당황하지 않았더랬어. 그가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히지카타는 야마자키와의 대화 도중에도 문을 지키고 있던 하인 중 하나가 저택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고 그가 사카타 긴토키에게 자신의 일을 보고하려고 저택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어. 저택의 문이 다시 열리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듯한 인기척에 보지않아도 그것이 긴토키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지. 긴토키에게 두사람의 대화가 들리기 전에 말을 끝낸 것은 그때문이었어. 야마자키는 눈물을 멈추지않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선 얼마든지 얼버무릴 수 있을 것 같았지. 긴토키는 화를 낼까? 화를 내겠지. 하지만 같은 수를 두번이나 쓸 순 없을거야, 그러니까 야마자키님을 또다시 같은 수로 괴롭힐순 없겠지.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바라보았어. 긴토키는 편한 복장에 어깨에 두른 하얀 기모노를 휘날리며 히지카타를 바라보고 있었지. 히지카타는 그의 하얗고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더랬어. 나의 천사. 나의 사신.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면 좋겠어. 영원히 아무것도 모르면 좋겠어.

"이런데서 당당히 밀회야? 히지카타, 너 정말 배짱이 늘었구나?" 히지카타는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하는 긴토키를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음소리를 냈어. "뭐라는건지... 당신, '밀회'란 단어뜻도 몰라?" 긴토키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실수를 비웃는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지. 밀회란 뜻을 모를리가 없잖아. 하지만 대체 이상황을 그 망할 단어가 아니면 무슨단어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이야. 게다가 너, 쓸데없이 기분이 좋아보이는데. 뭔데? 그 웃음. 대체 뭣땜에 그렇게 기분이 좋은건데? 저 망할 야마자키녀석을 만났기 때문이야, 그래? 그런데 저녀석은 대체 왜 울고있는거야 젠장! 기분더러운 건 나라고 알아?! 나야말로 울고싶은데, 왜 울고싶어지는 건지 모르겠어. 답답해. 괴롭다.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평생 자신 혼자 감춰두었던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함으로써 얻은 순간의 해방감에 아직 젖어있어 긴토키의 얼굴을 본순간 저도모르게 미소를 짓게된거라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눈치챌 수 있을리가 없겠지, 그저 그런 생각들에 휩싸여 울쩍해져 있었어. 울쩍한 마음은 표정을 험악하게 만들었지. 긴토키는 이대로 히지카타의 팔을 자기쪽으로 잡아끌고 집으로 들어가버릴까, 그런 생각을 했어.

그리고 바로 그때, 야마자키는 자신의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히지카타와 긴토키 사이에 끼어들어 히지카타앞을 가로막았지. 그것은 매우 긴토키의 마음에 들지않는 것이었고 긴토키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졌어. 야마자키는 무서워하지 않았지. 야마자키는 그저, 히지카타의 소원을 들어주고싶었어. 꼭.

'사카타 긴토키에겐 병을 비밀로 하고싶다. 사카타 긴토키에겐 절대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다. ...사카타 긴토키의 앞에선 죽고싶지 않아.'

"사카타님! 히지카타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 ...뭐?"

뭐? 뭐라구? 지금 뭐랬어?

"사카타님은 이제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위치에까지 오르지않았습니까! 더 이상 히지카타님을 나, 나.. 그, 그런 일에 이용할 필요도 없어졌을테니 그만 이분을 놓아주셔도 괜찮지 않습니까. 저는 히지카타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하고싶어요!"
"......"

살의, 라는 게 눈에 보이는 거라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 거라면
바로 지금
긴토키가 야마자키에게 보여주었을 거야.

살의라는 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거라면, 살의만으로 누군가를 찢어발길수 있는거라면, 바로 지금, 긴토키가 야마자키에게. 야마자키는 긴토키의 눈에 어린 그 감정에 처음으로 그에게 서늘한 기분을 느꼈지. 하지만 내뱉은 말은 도로 담을 수가 없잖아, 야마자키는 물론 담고싶지도 않았고. 야마자키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을 최대한 감추며 히지카타를 자신의 등뒤에 감추려 했지. 히지카타는 야마자키의 얼굴을 바라보았어. 긴토키가 무서워졌는지 조금 질렸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옆얼굴을. 히지카타는 야마자키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 나를 위해서야. 이대로 그의 옆에 있으면 난 말라죽어갈뿐이고, 하지만 내가 긴토키에겐 죽어가는 것을 들키고싶지 않아하니까, 날 사카타저택에서 빼내주려고 하는거야. ...꽃을 갖다준것도 약을 갖다준것도, 오늘까지도, 당신은 언제나 날 위해서 움직이는군요. 야마자키님...

"비켜." 긴토키는 으르렁댔어. 그의 새파랗게 피어오르는 분노어린 얼굴에 야마자키는 주춤했지만 히지카타의 앞에서 물러서지는 않았어. "시, 싫습니다. 히지카타님을 저에게..." "너에게, 달라고?" 긴토키는 손을 뻗어 야마자키의 멱살을 틀어쥐었어. 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히지카타도 야마자키도 대처하지 못했지. 뒤늦게 히지카타가 긴토키를 말리려고 손을 뻗었지만 이미 긴토키는 야마자키의 멱살을 있는힘껏 틀어쥔 채 그를 위로 집어든 상태였어. 야마자키의 발은 거의 허공에 떠있었고, 야마자키는 목이 졸려 버둥거렸지. 히지카타가 당황하며 긴토키의 팔에 매달렸어. "기, 긴토키! 내려줘! 그러다.." 그러다 죽겠어. 긴토키는 피식, 하고 소리를 내어 웃었어. "너에게 달라고?"

히지카타를? 이녀석을?
한갖 너같은 놈에게.

"이건 내거야."

긴토키는 나지막하게 말했고, 야마자키는 목이 졸려 새파랗게 질린채로 버둥거리면서도 "그렇지 않아...!" 하고 소리쳤어. 긴토키는 그대로 야마자키를 집어던졌어. 근육이 솟은 팔의 힘에 야마자키는 멀리까지 나동그라졌고 나무에 등을 부딪히기까지 했지. 긴토키는 자기가 집어던진 야마자키를 더 이상 신경쓰지 않고 히지카타를 오른손으로 번쩍 안아들었어. 그리고 히지카타를 자기 어깨에 매단 채 사카타저택안으로 향했지. "기, 긴토키! 내려줘, 내려줘!" "닥쳐." 긴토키는 버둥대는 히지카타의 다리를 꽈악 잡으며 중얼거렸어. 그리고 야마자키가 저택안으로 강제로 들어오려고하면 죽여버리라고 말했지. 야마자키는 등에서부터 밀려오는 엄청난 통증에 콜록대면서도 소리쳤어. "불법침입같은 건 안합니다! 하지만 히지카타님의 마음은 히지카타님의 것이니까, 히지카타님의 의지로 당신곁을 떠나고싶어할때까지, 나, 나는 이 나무에서 꼼짝도않고 기다리겠습니다!" 긴토키는 야마자키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방으로 걸어들어갔지. 히지카타를 들쳐맨 그대로.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자신의 이부자리 위에 내려놓았어. 난폭하게 집어던지거나 하지 않았어, 그저 살짝, 아주 살풋이 히지카타를 내려놓았지.

"저녀석은 뭘안다고 저렇게 지껄이는걸까? 응? 히지카타."
"......"

히지카타는 당황하며 긴토키를 바라보았어.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말갛게 바라보다 그의 다리를 손으로 잡았지. 히지카타가 깜짝놀라 발을 빼내려 했지만 히지카타의 얇은 발목을 움켜쥔 긴토키의 손엔 더욱 힘이 들어갈 뿐 그를 놓아줄 생각은 없어보였어.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발목을 움켜쥔 채 그의 다리를 더욱 자기쪽으로 끌어당겼어. "응? 말해봐, 히지카타야. 대체 저 야마자키란 놈한테 그동안 무슨 말을 해왔기에 저녀석이 저렇게 확신하는거냐고, 응?"

"네가 긴상의 것이 아니라니."
"긴토키..."
"이상하잖아."

"넌 내건데. 그치?" "......" 그리고 긴토키는 자신의 얼굴까지 잡아당긴 히지카타의 발가락을 핥았어. 히지카타는 흠칫놀라 어깨를 움츠렸지. "그렇다고 말해." 긴토키는 혀를 내밀어 히지카타의 발바닥을 아래에서 위로 핥아올렸어. "내거라고 말하라고." 히지카타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발가락을 핥아대는 긴토키를 바라보며, 또 웃음이 날 것만 같았어. 장난감을 빼앗기게 될까봐 떼를 쓰는 아이같아. 하지만 긴토키, 그 장난감은 곧 망가지고 말거야. 부서지고 말거라고. 그러니까, 나는 이제 장난감으로도 당신 옆에 있을 수가 없어.

사랑받고싶다고 생각한 적, 없어.
진짜야. 정말이야. 긴토키.
당신옆에 있는 게 힘들다고 생각한 적도 한 번도 없어. 날 사람으로 생각안해도. 그저 이용하기 좋은 이쁜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있어도 괜찮았어. 그런 건 날 조금도 힘들게 하지 않아.

매일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삶이잖아. 그걸로 충분했어.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너무나 사치로운 기분이 들었어.
나따위가 이렇게 사치로워도 될까, 매일 아침 눈을 뜰때마다 생각했어.

하지만 이젠 안 돼. 지금은 당신 옆에 있는 것만으로 힘들어. 더는 함께 있을 수가 없어.
장난감이나마 잃기 싫어하는 당신의 마음이, 이렇게도 기뻐.
하지만 이젠 함께 있을 수 없어...

"...야마자키님과 가고싶어. 긴토키."
"......"

히지카타는 꼭 웃음이 나올 것 같이 배가 간지러웠지만, 실제로 나온 것은 눈물이었어.
눈물은 그대로 일직선으로 떨어져, 히지카타의 턱아래에서 툭, 하는 소리를 냈어.
긴토키는 고개를 들었고, 히지카타의 눈물이 새겨진 얼굴을 바라보았어.

긴토키는 심장이 바스러진다는 것이
누군가의 손이 심장을 움켜쥐고 비튼다는 것이
꼭 이런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어.

울어?
우는거야? 히지카타.
너 울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내 앞에서 울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잖아.

심장이 멈출 것 같다. 심장이 부서질 것 같아. 히지카타, 우는거야? 이제 내곁에 있기조차 싫어서?

이제 내옆에 있는 것조차 견딜 수가 없어서...

"...긴토키. 남창으로써 내가 이제 더 이상 필요없다면, 정말로 그런거라면, 그럼 그만 날 놓아주면 안되겠어?"
"......"
"야마자키님과 가고싶어... 널 떠나고싶다. 이제 그만."

긴토키는 툭, 하고, 히지카타의 발목을 잡고있던 손을 바닥으로 떨구었지.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어. 그의 눈물을.

"...야먀자키를 사랑해? 토시로."
"......"
"그를 사랑하게 되었어?"

사랑해. 너를 사랑해.
우습지.

"응."

히지카타는 눈물을 떨구며, 희미하게 웃었어.
긴토키의 손이 자신의 뺨을 스칠만큼 다가오자, 히지카타는 저도모르게 눈을 감아버렸지. 그의 긴 속눈썹 위에 눈물이 가득 고여 금방 굴러떨어지길 반복하였고.

긴토키는 눈감은 히지카타의 입술위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어.
히지카타의 뜨겁고, 부드러운, 입술위에, 자신의 입술을 겹치고, 긴토키는 중얼거렸어. "그래.."

"그래, 그를... 그를 사랑한다고."
"응. 응... 긴토키."
"그래..."

긴토키는 두 팔을 뻗어 히지카타를 끌어안았어.
히지카타는 보드라웠지.

긴토키는 히지카타와 입술을 겹친 채, 희미하게 웃었어.

"그래... 그렇구나."

그렇구나....



 

<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14>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야마자키는 알지 못했어. 그는 나무 아래에서 별 미동도 없이 똑바로 선 채 하염없이 사카타공의 굳게 닫힌 저택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지. 야마자키는 히지카타를 기다리며 서 있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어.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다리도 어디도 아프지 않았지. 야마자키는 그저 당연히 문은 열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히지카타가 저 문에서 홀로 걸어나올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마치 야마자키의 생각이 그대로 현실이 된 듯이, 사카타가의 문은 열렸지. 문지기들은 동시에 허리를 깊이 숙여 저택밖으로 걸어나온 자신들의 주인에게 깊은 인사를 했어. 야마자키의 예상으로는 히지카타가 홀로 걸어나오는 것이었지만, 저택에서 나오는 건 히지카타가 아닌 사카타 긴토키였지. 하지만 야마자키는 그 사실에 실망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그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긴토키를 향해 또한 깊게 고개를 숙였어. 고개를 들고 바라본 긴토키는 여전히 무표정했지. 야마자키는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 난 너의 보물을 데려가려고 하니까. 너의 것을 훔쳐가려고 하니까. 야마자키는 그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또한 그 못지않게, 야마자키도 긴토키를 싫어하고 있었고.

"...히지카타가 너를 따라가겠대."
"......"

하지만 그는, 저 히지카타님이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는 남자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히지카타님이 싫어할 짓을 할 리가 없지.

야마자키는 그렇게 믿고 있었어. 그러니까 야마자키는, 히지카타가 긴토키의 곁을 떠나고싶다고 말하리란것도, 긴토키가 결국은 히지카타의 말을 들어주리란 것도 믿어의심치 않았던 거지. 야마자키는 더욱 고개를 아래로 깔았어. "네." 야마자키는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그렇게 말했어. 긴토키의 앞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실제로, 야마자키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 히지카타가 자신과 떠나겠다고 서둘러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이유는, 그저 하나밖에는 없었으니까.

히지카타님은 곧 죽는다.
곧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러니 나와 함께 가려는 거야. 긴토키의 앞에서 죽지 않으려고. 마치 자신의 무덤을 찾아가는 죽기 직전의 들고양이처럼. 야마자키는 아랫입술을 꾸욱 눌렀어. 야마자키는 이제 절대로 울어선 안됐어. 두 번 다시 히지카타님 앞에서 내가 먼저 눈물을 보이는 일이 없어야만 해. 야마자키는 거의 입술이 터질 것처럼 세게 짓누르며 눈물을 삼켰지.

"그가 너를 사랑한대."
"......"

긴토키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허탈하게 느껴졌어. 그는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감정을 동시에 느긴 나머지 오히려 가슴이 텅빈것같은 허전함을 새기고 있었지. "야마자키 사가루. 토시로가 너를 사랑한대. 너는 알고 있었어?" 야마자키는 고개를 들어 긴토키의 눈을 바라보았어. 긴토키의 작은 눈 속 깊은 곳에 있는, 그의 진짜 감정을. 아아, 히지카타님. 당신은 저 눈 깊은 곳의 그의 진짜 감정을 정녕 모르고 있었습니까? 어떻게 저걸 모른 채 십년을 지냈단 말인가. 사카타님, 당신은 스스로의 감정조차 눈치채지 못할정도로 둔한 바보같은 사람이었군요. 히지카타님도 그에 못지않은 바보이고. 어째서 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당신들 서로가 아닌 단지 제삼자인 나뿐인걸까? 야마자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모진 역할에 가슴이 다 메어졌어. 그야말로 정말 간신히 입을 열었더랬지.

"...히지카타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응."
"...그럼 저는 히지카타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긴토키는 애매한 야마자키의 말에 아주 잠깐 의문을 가졌지만, 곧 의미없다고 생각하고 그 의문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 "히지카타는 자기 짐을 꾸리고 있어... 곧 나올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네." 야마자키는 순순히 대답했어. 긴토키는 품에서 묵직한 꾸러미 하나를 꺼내어 야마자키에게 건네었지. 야마자키는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지만, 아무말도 하지않고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였어.

"이걸로 그에게 사는데에 아무 불편함이 없게 해야해. 그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널 죽일거다."
"......" 양손으로 가득 잡아야지만 겨우 들 수 있을만큼 묵직한 꾸러미. 야마자키는 살짝 버러진 꾸러미의 틈에서 빛나는 금색의 빛깔을 볼 수 있었어. 야마자키는 숨을 들이마셨지.

"...내가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도 좋으니까,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먹이는 삶을 유지하도록 해야해."
"......"
"모자르면 언제든 편지 하나만 보내면 네 손안에 있는 것의 배를 쥐어줄테니까."

긴토키는 그렇게 말하고 야마자키에게서 고개를 돌렸어. 야마자키는, 긴토키가 주는 돈을 순순히 받았어. 필요없다고 말하지도, 황송하단 기색도 보이지 않았지. 긴토키는 야마자키의 그러한 태도에 오히려 자신을 배려해주는 기분을 느꼈어. 긴토키는 야마자키에게서 등을 보인 채로, 자신의 정문을 바라보았어. 곧 문은 천천히 열리더니, 외출복 차림새의 히지카타가 나왔지. 멀리서도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었어.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알 수 있었지. 히지카타는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입술은 연한 색을 바른 채 얼굴을 감추는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어. 그는 자신의 최소한으로 싼 짐을 들고나오는 하인들을 바라보다가, 곧 자신을 바라보는 긴토키를 마찬가지로 바라보았지.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자신을 말갛게 바라보는 것을 또한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하, 하고 혀를 찼어. 긴토키는, 긴토키는, 긴토키는 지금 이순간,

대체 무슨 생각을 가장 먼저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어. 후회를 가장 먼저 느껴야 할지 분노를 가장 먼저 느껴야할지, 아니면 이 미어지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어떻게든 해야할지. 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지. 긴토키는 그저, 히지카타의 눈물을 떠올리고 있었어. 히지카타의 눈물은 반짝반짝 빛이났고 무척이나 아름다웠지. 긴토키는 웃었어. 그는 정말로 보물이었어. 소중한. 그리고 히지카타를 지금의 히지카타로 소중히 닦아내고 빛낸 건 바로 나야. 긴토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 웃었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 입술위에 남은
너의 입술의 체온.

너의 입술의 감촉. 긴토키는 눈을 감았어.

"...너는 대체 그에게 무엇을 해주었기에?"

거의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긴토키의 말을, 야마자키는 놓치지 않고 들었더랬지.



"잘가." 히지카타의 옆을 스치며, 긴토키는 그렇게 중얼거렸어. 히지카타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그에게 인사를 했지. 긴토키는 문안으로 들어가고, 그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을 끝으로, 문은 닫히었어. 히지카타는 잠깐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지만, 곧 가마에 올랐지. 야마자키는 뛰다시피하여 가마의 문을 열고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어. 히지카타는 희미하게 웃었어. 야마자키는 자신의 신변정리를 위해 우선 자신의 집으로 향하기를 가마지기에게 부탁하고는, 자신도 가마에 올라탔어.

그리고 그렇게, 가마는 떠나고
아아, 그래

그리고, 오늘이란 날이 끝나고, 히지카타 토시로란 창남의 이야기도 이것으로 끝이 났더랬지. 영원히.
모든 것이, 이렇게도 영영.





-

히지카타를 보내고, 3개월이 넘게 긴토키는 입궐하지 않았어. 건강상태가 나빠진 것이 그의 핑계였지. 실제로 긴토키는 거의 먹지않고 마시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3개월을 보내고 있었고 그에 따라 체력이 다소 약해지기도 하였기 때문에 그 입궐거부의 핑계가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지. 소문은 발없이 천리를 가는지라 하인들의 입방정에 의해 긴토키가 히지카타를 웬 남자와 함께 놓아준 것에 대한 소문이 성안에 금세 퍼졌고,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알고싶어 몸이 달은 귀족들의 병문안을 핑계삼은 방문은 끝이지않고 이어졌지만, 긴토키는 그 중 누구도 자신의 저택 안에 들여주지 않았어. 하지만 그들은 소정의 목적은 이루고 돌아갔더랬지. 문지기 하인들은 똑똑히 '히지카타는 수도를 떠났음'을 목격한 하인들이었으니까. 귀족들은 히지카타가 더 이상 수도에 없고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두가지 이야기만을 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했어. 그들은 모두 허탈해했지. 너무나 아쉬워했고, 어떤 이는 히지카타의 행방으로 진심으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마치 꿈과같은 사람이었어... 라고 아련한 추억에 젖기도 했지.

긴토키, 긴토키는
긴토키는,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결국 그와 만났던 첫번째의 날부터 완전히 다시 쓰고싶단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어. 가여운 아이.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던 불쌍한 아이. 별 것도 아닌 것에 이용하지 말고 그냥 소중히 보듬고 연민으로 끌어안아, 다정하게 키워줄 것을. 그랬다면 그는 나에게도 그렇게 웃어줬을까? 그렇다면 그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상대는 야마자키 사가루가 아닌 사카타 긴토키가 되지 않았을까.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가장 처음 품었던 날을 자신이 십년동안 잊지도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던 거야.

왜 긴토키가 그 날을 잊지 못했었는지.
왜 내가 그의 첫남자인 것에 이렇게 간절한 기분이 들었던 것인지.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아래에서 내내 부들부들 떨며, 희미하게 흐느꼈더랬어.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를 품안에 가득 안고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인양 그를 보듬었었지. 난 바보야. 정말 바보다. 그가 그렇게 떨고 있는 걸 알았으면서 그가 그렇게 우는 것을 보았으면서, 왜 이 모든일을 결국 감행해버리고 말았던 것일까. 그에게 창남이란 단어를 짊어지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만둘걸. 그만두고 그 작은 손을 양손으로 말아쥐고, 그를 내 품에 안고 그냥 놓아주지 않을 걸. 이렇게 이렇게 안고 영원히 내품에서 아무 풍파도 겪지않고 조용히 행복하게 이쁘게 살게 할 것을.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고, 그래서 긴토키는 살면서 평생 후회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이 마음만은, 정말로 어쩔 수도 없는 거였지.

긴토키는 연거푸 마셔대는 술과 술 사이에서, 그저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히지카타만을 한없이 떠올렸어. 다른 건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지. 그의 웃음외엔 아무것도 갖고싶지도 보고싶지도 않았어.

이 모든 물에 잠긴듯한 후회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긴토키는 알 수 없었어.
그저 헛된 후회만을 끝없이 반복하고 끝없이 반복하고 끝없이 반복하며, 그것에 영원히 잠겨있고만 싶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이다지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건만.

"토시로." 긴토키는 눈을 감았어. 눈물은 고요하게 떨어졌지.






-

히지카타가 가고 4개월째, 방의 문밖에서 누군가가 긴토키를 불렀고, 긴토키는 그를 무시했어. 하인은 야마자키에게서 온 편지가 도착했다고 방문밖에서 외쳤지. 긴토키는 벌떡 일어났어. 갑자기 숨이 턱하고 막혔지. 긴토키는 창백해진 안색 그대로 방문을 열었고, 하인의 손에 들려있는 야마자키의 편지를 집어드는 손은 부들부들 떨렸지. 긴토키는 편지를 들고 방문을 닫고서는, 그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편지만을 뜯어 열어보았어.

< 겨울에는 겨울의 꽃가지를, 봄에는 벚꽃가지, 여름에는 장미. 가을에는 국화>

야마자키 사가루의 글씨는 아주 반듯하고 정갈했어. 긴토키는 쉬지않고 단숨에, 야마자키가 쓴 짧은 편지를 읽어내려갔지. 겨울에는 겨울의 꽃가지를 , 봄에는 벚꽃가지, 여름에는 장미. 가을에는 국화. 언젠가의 자신이 헛되게 내뱉은 질문을, 야마자키가 드디어 대답한거였어.

그리고 말단에 적혀있는 것은, 다름아닌 히지카타 토시로의 죽음.
죽음.
죽음.

"...토시로가 죽는다라..."

긴토키는 눈을 깜빡였어. 야마자키의 편지는 무척이나 담담해보였어. 글씨도 조금도 떨리지않은 채, 야마자키는 곧 히지카타가 죽을거란 소식을 전하고 있었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을거란걸, 긴토키는 어렴풋하게 그런 생각들을 했어. 사실은 엉엉 울면서 이 편지를 쓰지않았을까? 그녀석은 남앞에서도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녀석인 거 같았으니까. 펑펑 울면서 몇번을 고쳐쓰고 또 고쳐쓰다보니, 이런 비교적 짧고 담담한 편지가 완성된걸꺼야. 그녀석 얼굴은 퉁퉁 부어 엉망이겠지. 긴토키는 다시 처음부터 편지를 읽었어. 겨울에는 겨울의 꽃가지를 , 봄에는 벚꽃가지, 여름에는 장미. 가을에는 국화. 그리고 히지카타는 약 2개월 전부터 더 이상 자기 다리로 걸을 수가 없어 늘 방에만 누워있기 시작했고, 이주전에 다녀간 의사는 히지카타의 임종을 각오하고 있으란 날카로운 경고를 남기고 돌아갔더라고. 야마자키는 그리고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사실과, 영원히 당신에게만은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말했던 히지카타의 말의 무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알리는 편지를 쓰게 된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말했어. 그리고, 또 그리고

히지카타가, 언제부터 아팠는지
히지카타가, 언제부터 당신을 사랑했는지
히지카타가 언제부터 당신에게 모든 것을 숨기려 했는지

히지카타가 왜 긴토키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하하하." 긴토키는 웃었지. 모든 것이 적혀있는 편지를 움켜쥔 채, 웃었어. 그리고 다리에 힘이 완전히 빠진 것처럼 주르륵 미끄러져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을 때, 긴토키는 이미 울고 있었지. 눈물은 가득가득 흘러 가득가득 넘쳤고 긴토키는 결국 참지못하고 바닥에 머리를 찧어댔어. "...허어엉... 허어어엉... 엉..." 꺽꺽대는 거위의 목소리를 반복하며 긴토키는 이마가 붉게 물들어 피멍이 들때까지 땅을 내리치며 오열하였어. 토시로. 토시로. 아무리 긴토키가 불러도, 아무소용없게 된 그의 이름을, 또 반복해 부르면서.




-
다음챕터로 끝...

다음챕터는 또 내일 :)

 

 

케헤헤 무참히 후회하도록 하여라 긴토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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