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10~11

 

 

<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10>

 


 한동안, 히지카타는 멍했어.

 

 피를 쏟아내어 몰려오는 빈혈과 속울럼증이 가시질 않아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 그렇게 고통속에서 기절도 채 하지 못하고 눈만을 깜빡이며, 히지카타는 고통이 서서히 물러나는 것에 가만히 기대고 있었어.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울렁증이 다시 밀려들 것 같아 최대한 눈도 움직이지 않았지. 반쯤 뜬 눈이 촛점을 잃은 채 피로 범벅이 된 이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히지카타는 눈물을 뚝뚝 떨구었어. 히지카타는 생각했어. 이렇게 울면 안 돼. 눈이 부으면 기껏 가꾼 외모도 엉망이 될텐데, 내일 아침 퉁퉁 부어버린 얼굴을 하고 긴토키를 어떻게 보게. 뭐라고 변명을 할건데. 하지만 눈물은 히지카타의 의지와는 상관없었지.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쏟아져내릴뿐. 새벽녘이 히지카타의 방 문앞에 들어설때쯔음에야 간신히 고통이 물러가 겨우 물을 조금 마실 수 있게 된 히지카타는, 마시고 남은 물에 얼굴과 손을 씻어냈어. 물은 빨간색 물감을 탄 것처럼 연한 붉은색을 띄었지. 히지카타는 가만히 물을 바라보다가, 다시 조금 눈물을 흘렸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히지카타는 사카타가의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병을 알릴 마음이 들지 않았어. 그들은 너무나 완벽하게도, 긴토키의 심복들이었으니까. 히지카타는 혼자힘으로 해내야했지. 피를 쏟아내 창백한 안색으로, 종잇장보다 더 하얗고 가늘어진 손목으로 피가 잔뜩인 이불과 베개와 천을 돌돌 말아 직접 밖으로 들고나와서는, 새벽이슬에 젖은 나뭇가지와 낙엽을 모아 전부 함께 태워버렸어. 젖은 낙엽을 태워 연기는 진한 색을 띄었고 뭉게뭉게 사카타가의 처마를 향해 날아갔지. 히지카타는 굵고 시커먼 연기가 사카타가의 지붕끝까지 닿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어.

 

 아침에,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자기 방 문 앞에 서서 망설이는 것을 보고 있었어.


 히지카타는 저도모르게 웃음이 나왔지. 뭐야, 이젠 방문 하나 여는 것도 제대로 못하게 됐어? 늘 멋대로 벌컥벌컥 열어왔으면서, 그동안. 뭔가, 세게 나가보 볼일이었네. 겨우 그정도 말 들은걸로 삐져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거였으면, 그동안 진작 큰소리 좀 쳐볼껄. 히지카타는 마른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지. 밤을 새고 피를 토해, 이 푸석푸석한 얼굴이라니. 수도 최고의 창남 이름이 울겠구나.


 
 그깟 이름, 울거나 말거나 상관없어. "성가시네." 히지카타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어. 문밖의 그림자가 화들짝 놀랐지. 히지카타는 키득대었어. 긴토키는 긴 한숨소리를 내쉬었지. 히지카타의 키득거리는 소리에 안심이라도 한걸까?

 

 "오늘은 입궐하는 날 아닙니까? 사카타님."

 

 히지카타의 말에, 긴토키는 아주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맞아. ...잘 기억하네." 머리를 긁적이는 그림자, 목이 잠긴 채 끝이 희미하다. 당신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일까. "...오늘 같이 궁으로 가줄거지?" 그러게, 왜 답지도 않은 짓을 했어. 왜 그 불쌍한, 아무것도 아닌 남자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어. 밤에 제대로 자지도 못할거면서, 어울리지 않은 짓을 왜 했느냐고. 고작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작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당신와 마차고삐를 잡고 대기하는 것만 할 수있다면요." 그것은, 연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했어. 마차의 고삐만을 붙잡고 그저 긴토키의 입궐이 끝나기만을 얌전히 기다리는 시종인척 하겠다는 뜻이었지. 긴토키는 그저 담담하게 긍정의 표시를 취했어. "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긴토키는 돌아갔지. 히지카타는 긴 한숨을 내쉬며, 긴토키의 멀어지는 발자국에 귀를 기울였어.

 

 밤새도록 시달리느라 얼굴이 엉망인 히지카타는 결국 두꺼운 화장을 하고 난뒤에도 멀쩡한 얼굴로 돌아갈 수가 없었어. 그래서 얼굴전체를 가리는 얇은 천으로 얼굴을 덮었지. 그리고 소매가 긴 옷을 꺼내어 얇아진 손목을 감추었어. 앞으론 이런 것들을 더 신경써야하는구나. 대체 언제까지 얼버무릴 수 있는걸까?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히지카타는 담담한 얼굴을 하고 마차에 올랐지만 속으로는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지. 마차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긴토키는 턱을 괸 채 히지카타를 보고 있었어.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시선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저 그에게서 외면한 채 마차의 작은 창문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오늘 유독 꾸몄다?" 긴토키는 또 그렇게 시비조로 이야기를 꺼냈어. 히지카타는 피식 웃었지. 나쁜 안색을 감추려고 짙은 화장을,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선물받은 천을 뒤집어쓰고, 긴 소매를 입기위해 새옷을 꺼내입은 게 타인의 눈엔 꾸민걸로 보이는 모순이 퍽이나 재미있었던 거야. "그래보여?" "누구한테 잘 보일려고?" 긴토키는 딱히 기분나쁜 기색도 없이 그렇게 말했어. 히지카타는 슬쩍 눈을 돌려 긴토키의 표정을 살폈지. 야마자키 사가루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걸까? 그래서 은근히 화를 내고 있는 거면, 나중에 또 그에게 이상한짓이라도 할 생각인거면 어쩌지. 하지만 긴토키의 얼굴을 아무리 살펴도 그런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어. 하지만 모르는 거야. 히지카타는 생각했어. 긴토키는 정말로 포커페이스가 뛰어난 사람이니까. 내가 그의 표정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 리가 없지. 히지카타는 들리지않는 얇은 한숨을 내쉬었어.

 

 "당신이라고 치자. 그럼 어때?"
 "......"

 

 긴토키는 왠지 놀란 듯한 눈으로 히지카타를 쳐다보았어.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의외라는 듯한 표정에 괜한 어색함을 느꼈지.

 

 "뭐? 왜?"
 "...아니."

 

 긴토키는 무뚝뚝하게 입을 다물어 버렸어. 뭐야 저 태도는? 히지카타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긴토키를 노려보았지만, 긴토키는 곧 히지카타를 외면하고 턱을 괴고야 말았지. 히지카타도 흥, 하고 긴토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어.

 

 "...정말 나야?" 한침뒤에, 긴토키가 그렇게 중얼거렸지. 히지카타는 또 잠시, 긴토키를 바라보았고.

 

 

 

 


 마차의 고삐를 쥐고 있는 동안, 히지카타는 여러명이 자신에게 던지는 추파를 그저 웃으며 흘려보냈어. 그들은 전부 한동안 히지카타를 안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대체 지금 누가 히지카타와 자고 있을까가 최대의 관심사 중 하나가 되어 있었지. 하지만 긴토키는 아무리 닦달해도 그들에게 히지카타를 내어주기는 커녕, 지금 히지카타와 함께 이부자리에 눕는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가르쳐주지 않았어. 은근한 힌트조차도 없었지. 귀족들은 그동안 긴토키가 살살 흘려준 정보에 얼마나 놀아나며 그것을 제일로 즐겨왔었는지에 대해 새삼 깨닫고 있었어. 하지만 최근 긴토키는, 묘하게 강경했지. 웃음조차 흘리지 않고 모든 귀족들의 유희거리를 잘라냈어. 심지어 히지카타 토시로가 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오늘로 거의 5,6일만이고. 이렇게 감질날수가, 이렇게 그리울수가. 일이 이렇게되고나니 이제 귀족들 사이에서 현재 히지카타의 상대는 다름아닌 왕족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었지.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히지카타는 마차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에게 단지 흘리는 미소만을 보여줄 뿐이었어. 얼굴을 가린 천에 오랜만에 얼굴이 보고싶었던 귀족들은 더욱 애가 타들어갔지.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히지카타의 이야기를 주고받았어. 오늘 봤어? 여전히 이쁘더군.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얇은 천 밖으로도 선명한 그 붉은 입술이라니. 비단같은 긴머리는 어떻고. 역시 왕족인걸까? 서쪽궁의 주인인 전선왕의 조카님인 것은 아닐까? 오른쪽궁을 함께쓰고있는 전하의 숙부와 그 아들인 것은 아닐까? 긴토키는? 사카타 긴토키는 오늘 무엇을 하고 있지? 긴토키는 어전에 나가 그저 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있을 따름이었어. 그 아래로 살짝 내리깐 눈동자에는 아무도 말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지.

 

 히지카타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따름이었어. 그 곧은 자세에, 주변의 다른 마차의 시종들은 차마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했지.

 

 야마자키는 아침 궁궐로 모이는 귀족들의 마차와 커다란 말들, 시종들과 몇몇의 짐사이에서, 히지카타를 발견하고 그를 그저 가만히 보고 있었어. 한쪽 기둥에 기댄 채 히지카타만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아무도 야마자키를 눈치채지 않았지. 화려한 흰색 기모노자락을 펄럭이며 궐내로 들어가는 긴토키도, 그 뒤를 따르는 다른 관리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어. 잔뜩 모인 시종들도 아무도 야마자키를 눈치채지 못했지. 히지카타는, 히지카타도 마찬가지였어. 히지카타는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야마자키는 히지카타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지. 야마자키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를 향한 사랑을 자각했을 때부터, 이렇게 때로 시간이 날때마다 궁에서 그를 발견하면 하염없이 그를 지켜보곤 했었어. 마치 변태같군. 야마자키도 자각하고 있었지. 야마자키의 미소는 스스로를 향한 자조에 가까웠어.

 

 하지만 그래도, 히지카타를 보면, ...보고있지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거든.

 

 야마자키가 앓고있는 사랑이란 결국 그런거였기 때문에. 하지만 오늘은 그저 보고 있을수는 없는 날이었어. 야마자키는 귀족들이 전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특히 긴토키가. 가능하면 주변의 시종들도, 전부. 야마자키는 정말로 히지카타가 다시 궁에 나타나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었어. 그가 하루라도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이것'을 전해줄 수가 없단 말이야. 계속 궁으로 오지않기에, 야마자키는 직접 사카타가에 찾아가는 수도 생각하고 있었어. 비록 문지기에게 면전에서 쫓겨날 것이 분명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거든. 하지만 그동안 긴토키가 수를 쓴 게 분명한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되었고... 아니, 그 일은 생각하지 말자. 멍청하고 바보같은 일이야. 야마자키는 머리를 흔들었어. 저 사카타 긴토키공도, 자신이 저지른짓을 어마어마하게 후회하고 있을터다. 청렴한 사람이라고는 말못하겠지만, 바보짓은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귀족들은 모두 사라지고, 운좋게도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삼삼오오 모여 농땡이를 시작한 마차의 시종들도 점차 그 수가 줄어가기 시작했어. 히지카타만이 변함없이 곧은 자세로 앞을 보고 서 있었지. 좋아, 지금이다. 야마자키는 발걸음을 최대한 낮추며 히지카타에게로 다가갔어.

 

 아주 가까이 다가가니, 그제야 히지카타도 야마자키를 눈치챘지. 히지카타는 눈짓으로 놀랐다는 시늉을 하며 야마자키를 바라보았어. "히지..." 히지카타님, 그렇게 말하며 히지카타에게 다가가려는 야마자키는 순간 걸음을 멈춰야했어. 깜짝놀란 히지카타가 잠시 놀란 듯 하더니 곧 오른손을 들어 양쪽으로 젓기 시작한 거야. 야마자키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알게 되었어. 야마자키는 순간 입을 다물었어. 다가오지 말라는 거다. 가까이 오지 말란 뜻이야. 야마자키가 걸음을 멈추자 히지카타가 그것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는 다시 손을 들어 야마자키보고 뒤로 물러나라는 손짓을 반복했어. 야마자키는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어. 아마도, 저건, 긴토키님이 자신에게 무슨짓을 했는지 히지카타님도 이미 알고있다는 거겠지. 그러니 어디서 누군가가 보고있을지도 모르니 가능하면 나에게 다가오지말라는, 그런 뜻이겠지. 그러니까 상처받은 얼굴을 보여선 안 돼. 야마자키는 씁쓸하게 웃었어. 하지만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다가오지 말라고 하면, ...역시나 상처받는 걸. 야마자키는 힘없이 아래로 떨구어진 자신의 눈썹을 매만졌지.

 


 히지카타는 먼 곳에서, 야마자키를 보고 있었어.
 그가 어딘가 상처받아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히지카타도 희미하게 눈치채고 있었지.

 

 하지만 별 도리가 없다. 히지카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히지카타는 섣불리 야마자키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았던 거야. 장난감에도 (히지카타.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존재의 의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이용할 수 있는 장난감.) 소유욕을 보이며 최근 묘한 감정을 보이는 긴토키이니까, 다시 히지카타에게 미행을 붙였다해도 이상할 건 없으니까 말이야. 히지카타는 고개를 떨구는 야마자키를 보았어. 미안합니다. 하지만 히지카타는 미안하단 말 조차 입술에 담을 수가 없었어. 그때였어. 다시 고개를 든 야마자키가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어. 알았다는 뜻일까? 어딘가 어색하게나마 웃어보이는 야마자키가 꼭 히지카타를 달래주려고 하는 것 같았어. 착한 사람이야... 히지카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야마자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어. 무언가 붉은 보자기에 쌓여있는 네모난 짐... 히지카타가 눈을 깜빡이자, 야마자키가 그것을 옆에 있는 정원의 돌담위에 내려다놓았어. 그리고는 몇번이고 반복해거 그것을 들고 품에 넣는 시늉을 반복하는 거였어. "...나보고 가져가라고." 히지카타는 나지막히 속삭였어. 나에게 주겠다는 거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야마자키는 안심이 되지않는지 몇번이나 같은 행동을 더 반복하고 난뒤에, 다시 웃으며 히지카타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어.

 

 그리고, 돌아서는데, 가기직전에
 정원에 핀 키가 조금 크고 얇은 나뭇가지를 가진 매화나무의 매화가지를 하나 꺾어
 매화가지 끝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자신이 돌담 위에 내려놓은 봇짐 위에다가
 내려놓았지.

 

 "......" 히지카타는 희미하게 웃었어.


 야마자키 사가루는 히지카타 토시로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지.
 다행이다. 당신에게 의미없는 희망을 주고싶지 않아.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어.

 

 

 

 


<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11>

 

 

 히지카타는 천천히 걸어갔어. 주변에 거의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나서야 그는 움직였지. 몇발자국 가지않아 정원의 돌담에 금방 도착해, 히지카타는 야마자키가 돌담위에 올려놓고 간 봇짐과 그 위의 매화가지를 바로 집어들 수 있었어. 히지카타는 살풋웃으며, 잠시 고개를 저었어. 그리고 야마자키가 건넨 매화가지를 그저 다시 정원의 흙위에 꾸욱 눌러 다시 심었지. 그리고 봇짐만을 품에 넣었어.

 

 

 


 저녁무렵, 해가 서서히 구름속으로 사라지고. 긴토키는 다시 걸어와 마차에 올라탔지. 그리고 히지카타의 팔을 잡아끌었어. 오늘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건가? 어딘가의 연회석으로 가는 게 아니라? 히지카타는 그렇게 묻고싶었지만, 왠지 긴토키의 심기를 거스르고싶지 않아 입을 다물고 얌전히 마차에 올라탔어. 하지만 마차가 집으로 가는 도중, 도저히 묻지않고는 참을 수가 없어서 히지카타는 결국 입을 열고야 말았어. "...오늘밤 상대는 당신의 저택으로 오는건가?" 긴토키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마치 마악 목구멍이 열렸다는 태도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지. "아니. 오늘도 너 혼자자는거야." "...그렇군." 히지카타는 짧게 대답했어.

 

 "...목상처, 어떻게 됐어?"
 "......"

 

 ...아, 그게 여전히 신경쓰여서...?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거리며 긴토키를 쳐다봤어. 그게 여태 신경쓰여서 다른 남자를 안부르는건가. 갑자기 그렇게 나오면 당황스러운데... 히지카타는 여전히 눈을 깜빡거리며 저도모르게 말을 더듬었어. "어, 어 그게, 아직 좀..." "아직도? 대체 뭐야. 뭐가 문제야, 좋은 거 먹이고 좋은 거 입히고, 긴토키씨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를 부리게 해주고있는데에 왜 그따위 상처가 낫질 않느냐고." 히지카타는 피식하고 웃어버리고 말았어. 지가 물어뜯은 상처라고 마음에 걸리긴 퍽이나 걸리나보지? "내가 알아. 물어뜯은 사람이 알지."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말해봤더니, 긴토키가 정곡을 찔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뺨을 붉힌 채 히지카타를 노려보는 게 아니겠어. 뭐야, 저표정은.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 십년동안 처음보는 당황하는 얼굴이다.

 

 "너, 이쪽으로 와." "....." "뜸들이지 말고 빨랑." 긴토키는 손가락을 들어 마차의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고 히지카타는 어물쩍거리다 긴토키의 닦달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긴토키의 옆에 가 앉았어. "뒤로 돌아. 어서어서."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이며 긴토키를 바라보다가, 곧 그가 시키는 대로 몸을 돌렸지. "대체 뭔데?" 긴토키에게 등을 보이면서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했어. "허리숙여." 긴토키는 단지 퉁명스럽게 그렇게 말하고서, 히지카타의 긴 머리채를 손가락으로 쓸어올렸지. 히지카타는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어.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옷의 목깃을 잡고 아래로 끌어내렸고, 순간 히지카타는 앞섬에 감춘 야마자키에게서 받은 봇짐이 들통날까봐 두손으로 가슴을 꽈악 잡아야만 했어. 긴토키는 망설이지 않고 히지카타의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끔 옷을 벗기고 그의 목덜미에 난 자신이 만든 상처를 바라보았지. 그 위에는 히지카타가 어설프게 붙여놓은 붕대가 있었고, 긴토키는 조심스럽게 붕대를 떼어냈어. 상처는, 여전했어. 살은 여전히 붉었고, 가장 진한 상처부위는 노란 진물이 고여 있었지. "이게 뭐야. 왜이렇게 곪았어?!" 긴토키는 진짜로 화가난 듯 버럭 소리쳤어. 히지카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 "내가 알아." "이, ....하아..." 히지카타의 포기하는 듯한 목소리에 울컥 화가 난 긴토키는 무언가 말하려했지만 곧 말을 삼키고 말았고, 그저 긴 한숨만을 내쉬었어. 뭐야, 이상하네. 이사람, 오늘따라 정말 이상해. 이런식의 반응을 보였던 적, 그동안 정말로 없었는데. 히지카타는 의아해하면서 손을 들어 목덜미위를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을 반대편으로 쓸어넘기길 반복했어.

 

 긴토키는 소매에서 냄새한 연한 연고를 꺼내었어. 그리고 뚜껑을 열어 연고를 손가락에 묻히고는 히지카타의 목의 상처주변에 살살 펴바르기 시작했지. "뭐, 뭐야." 히지카타가 당황하며 몸을 틀려고 하자 긴토키는 혀를 차며 쯧,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그렇게 말하며 히지카타의 팔을 다른 빈손으로 꽈악 잡았어.

 

 "그냥 연고야. 궁의 공주님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잘낫고 흉도 안지는 좋은 연고를 가지고 있다고 하셔서 조금 나눠받아오는길이야. 앞으론 이거 꾸준히 발라서 빨리 나으라고."

 

 "목 뒤라서 잘 안보이면 다음부턴 시녀들 시키던가." 그리고 긴토키는 더욱 세심하게 상처에 연고를 덮은 후에 히지카타의 옷깃을 다시 올려주었어. 히지카타는 천천히 옷매무새를 정리했어. "자." 히지카타가 옷정리를 끝내는 것을 기다렸다가 곧 긴토키는 손바닥 위에 올려둔 연고를 히지카타에게 건네었지. "...고마워." 히지카타는 순순히 감사의 인사를 하며 그에게서 연고를 받아들였어. "그만 원래 자리로 돌아가." 그리고 긴토키는 곧 홱하고 히지카타를 외면하고선 퉁명스럽게 눈을 감았어. "......" 히지카타는 어색한 표정으로 원래의 맞은편 자기자리에 돌아갔지. 긴토키는 어느새 팔을 괴고 좋지 못한 자세로 허리를 한쪽으로 하고선 마치 잠이라도 든 것같은 모습이었어. 미간에 진한 주름은 여전했지만.

 

 물론 히지카타도
 아무말도 못했지.

 

 긴토키의 손길이 닿은 상처부위는 묘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며 욱신거렸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정도였어.

 

 

 

 


 대체 뭘까. "......" 히지카타는 방으로 돌아와 혼자 멍하니 앉아 한참을 생각했어. 발치에는 내려놓은 긴토키에게서 받은 연고가 있었지. 대체 긴토키가 왜이렇게, 잘해주는거지? 지난 십년과는 또 다른 긴토키의 모습이 어색해... 적응하기가 힘들어. 무슨일이라도 있나? 무슨 새로운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건가? 히지카타는 연고를 손가락으로 툭하고 매만졌어. "...겨우 이거 하나 받은 거 가지고 나란녀석은 참..." 피식, 히지카타는 자조했지. 겨우 이거 하나 받은 거 가지고 나란 녀석은 참, 뭘 이렇게 온갖 생각들을 하고 앉았어. 그 퉁명스런 얼굴을 바라보며 고맙다, 라고 말하고싶어졌던 건 또 왜고.

 

 관둬. 몰라. 그만 생각해.
 사카타 긴토키가 대체 무슨생각인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빨리 낫게해서 또 안겨달라고 징징대려나 보지" 히지카타는 혀를 차며 그렇게 혼잣말을 했어. 그래봤자 절대 안안겨줄거거든. 무슨일이 있어도 사카타 긴토키는 히지카타 토시로를 안을 수 없어. 히지카타는 자신의 속에서 그 말을 내던지듯 그렇게 빠르게 중얼거리고 나서, 품속에 잘 갈무리해두었던 야마자키에게서 받은 봇짐을 꺼내었어. 이사람한테서 온 이 물건은 또 무엇일까. 그는 무엇을 그렇게도 나에게 주고싶었던걸까? 봇짐은 아주 조금 무게가 있었고,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어.

 

 붉은 색의 천의 매듭을 풀어보니, 제일 먼저 하얀 봉투가 눈에 띄었지. 봉투위에는 야마자키 사가루란 한자가 씌여있었어.
 히지카타는 피식, 하고 웃으며 그의 편지를 집어들었어.

 

 그리고 곧, 눈을 크게 뜬 채, 히지카타는 굳어버리고 말아.

 

 봇짐안에 있던 나머지 내용물들은 하얀 종이에 감싸여있는 약봉지였어. 그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지. 그것들이 히지카타에게 익숙한 것은 그리고 당연한 것이었어, 그 약봉지들은 히지카타가 그동안 비밀리에 장님의사에게서 받은 약봉지와 똑같은 것들이었던 거야. "......" 이게 뭐야. 이게 뭐지? 순간 굳어 사고가 정지한 채였던 히지카타는, 곧 퍼뜩 정신을 되찾고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어. 이게 뭐야! 그남자가 왜 이걸 나에게 준거지? 히지카타는 덜덜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부여잡고 야마자키로부터 온 편지의 봉투를 뜯었어. 그리고 서둘러 접혀있던 편지를 꺼내었지.

 

 편지에는 깔끔한 글씨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어.

 

 

 

 '장님의사님에게 부탁받아, 당신에게 약을 전달해드립니다. 더이상 그몸에 이 약도 들지 않을거라고 경고는 했으나, 그럼에도 역시 안 먹는것보다는 먹는 것이 고통을 완화시키는데에 나을 것 같아 몇 봉 더 지으셨다는군요. 그리고 이번에는 약을 지을 때 진통이 되는 약초들은 좀 더 넣으셨다고 합니다. 복용법은 전에 때와 같습니다. 야마자키 사가루.'

 

 

 


 "...!!!!"

 

 

 히지카타는 입을 다물었어.
 충격에 말이 나오지 않았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들켰다. 이남자에게 들켰어.

 

 야마자키 사가루는 내 병에 대해 알고 있어.

 

 히지카타는 그대로 눈을 감았어.

 

 

 

 

 

 

 

 

 

 

 

- 투 비 컨티뉴..

 

느리게 느리게 이어져가고 있슴다 ㅎㅎㅎㅎ 이야기 진도가 안나가네.

야마자기 주인공 아님다... 넌 서브야...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