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네가, 이다지도

 

(양이지사 시절때의 긴토키x타카스기임. 하나하키병 au입니다... 제가 하나하키를 잘 몰라요 그거 감안하고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

 응? 방금 뭐였지?


 사카타 긴토키는 마악 몸을 돌리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나무 아래에 쌓여있는 오래된 낙엽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카타 긴토키는 전장의 백야차란 별명이 무색하게도 온통 오물과 흙투성이였다. 손가락 사이에 말라붙은 피가 본연의 색을 잃은 채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파죽지세의 외계인들에게서 빈약한 승리조차 거두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하여 시골까지 내려온 조각난 젊은 양이지사 무리들을 이끌고, 숲의 넓고 낡은 집 한 채를 겨우 구한 가츠라 고타로가 숲속을 살피고 오겠다며 비척비척 걸어가는 사카타 긴토키의 등을 향해 "그 몰골로 바로 가지 말고 좀 씻고 가라, 긴토키!" 하고 외쳤지만 긴토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숲을 향했다. 백색의 옷깃이 전부 이름도 모르는 적군-혹은 아군-의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것은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정작 긴토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 되어 있었다. 피냄새야, 어차피 이골이 날 정도였고. 당장 손조차 씻을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사카타 긴토키는 그저 혼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절실했던 것이다. 숲을 살펴보고 오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러니까, 핑계였다.


 젊은 양이지사들의 무리. 그들의 우두머리. 그저 전장 한가운데에서 그 하얀 머리를 휘날리는 것만으로 아군의 가슴에 이유없는 희망의 등불을 키웠던 작고 큰 소년. 사카타 긴토키. 하지만 그들은 졌다. 아직 정확히 졌다는 말은 아무도 쓰지 않았지만-왜냐하면 양이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므로-그것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몰아치는 외계인들의 화력을 피해 시골에까지 도망쳐 온 지금에와서는 대체 어째서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가질 수 있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사카타 긴토키는 눈앞에서 바스러지는 모든 아군들의 희망을 바라보며, 자기자신이 그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었다는 자각을 하고 나서부터, 검이 묘하게 무거웠다. 검에 묻은 피들을 제대로 닦아내지 않은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대로 녹이 슬어버렸으면 해서. 검도 마음도, 모든 헛된 희망까지. 긴토키는 숲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겨울공기에 젖어 색이 바랜 키가 큰 나무들을 바라보며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외로움. 쓸쓸함. 이 모든 인간의 감정에서 도망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째서 이렇게도.


 그리고 바로 그때, 나무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미어져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나무에게서 눈을 떼 고개를 돌리려고 하던 바로 그때, 사카타 긴토키의 눈에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 응? 방금 뭐였지? 그래서 사카타 긴토키는 마악 몸을 돌리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나무 아래에 쌓여있는 오래된 낙엽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이다. 겨울의 숲은 아주 조용했고 많은 화사한 색이 바래 있어서, 바닥에 융단처럼 쌓여있는 낙엽들은 손만 대면 바스라질 것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수북한 고독 사이로 어째서 이 겨울에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색이 남아있는 것일까? 긴토키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다리를 구부렸다.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잘못 본 걸꺼야. 긴가민가한 마음인 채로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긴토키는 오른손을 뻗어 낙엽들을 헤쳤다. 낙엽에는 겨울의 이슬이, 땅의 물기가, 오래된 숲이 몇백년을 들여 축척해놓은 습기가 가득 했다. 긴토키는 손안에서 바스라지는 낙엽이 동시에 젖은 채 달라붙는 감각을 견디며 낙엽을 마저 헤쳤다. 아, 놀랍게도, 긴토키는 더욱 커다래진 눈을 깜빡였다. 놀랍게도, 잘못본 것이 아니었다.


 그 분홍색 잎.

 보드라운.


 "...?" 그리고 사카타 긴토키는 낙엽 사이에 마치 숨겨져 있는 것처럼 가득한 분홍색 꽃잎을 양손 가득히 집어들었다. 이 보드랍고 부드러운 꽃잎이라니. 긴토키는 양 손 가득히 쥐어져 있는 꽃잎들을 멍하니 바라보느라, 땅에 대고 있는 무릎이 물에 젖어들어가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가츠라 고타로는 긴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명색이 리더라는 것들이 하나같이들 이 모양이다. 사카모토 타츠마는 이 낡은 시골집에서 많은 장정들을 먹일 수 있는 음식같은 것을 구해오기 위해 이미 진작 무리에서 이탈한 상태이고, 사카타 긴토키는 저 몰골을 한 채로 숲을 향해 마냥 뛰어나가서는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덕분에 가츠라 고타로 혼자 집에 남아 그들의 등만을 보며 따라온 많은 이들의 뒷수습을 해야만 했다. 가츠라는 비교적 상처가 적고 멀쩡한 이들에게 상처가 심하고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이들을 부축해 그들을 먼저 뉘여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순순히 가츠라가 시키는 대로 했다. 숲속의 집은 낡았지만 넓었고, 가장 넓은 방이 병동 대신이 되어 보살핌을 받아야 할 부상자들이 순식간에 방안에 가득 찼다. 가츠라는 병사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의학적 지식이 있는 이들에게 많은 부상자들을 돌보라고 말하고, 또 몇명의 건강한 이들에게 장작을 패오라고, 구멍이 뚫린 지붕 기와를 보수하라고, 물을 끓이라고 명했다. 몇명은 숲에 가득한 먹을 수 있는 풀을 골라내는 눈을 가지고 있었고, 가츠라는 그들의 존재를 퍽 다행으로 생각했다. 모두가 가츠라에게 물었고, 가츠라는 그때그때 나름의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가츠라가 내심 자기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불안해하는 마음은 그들 중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고, 가츠라는 무엇보다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스케는 언제 돌아올까. 빨랫감을 모으며 가츠라가 긴 한숨을 내쉰다. 그가 어서 돌아와야 하는데.


 다카스기 신스케는 가장 큰 병동에 누운 채 고통스러워 하는 많은 부상자와 마찬가지로, 크게 다친 상태였다. 가츠라는 그의 한쪽눈을 감은 붕대가 금세 붉게 물들때마다 덜컥 겁이 나곤 했었다. 그 눈이 아직 진정이 되지도 않았는데, 여전히 한쪽 눈을 잃게 만든 그 큰 부상으로 온몸에 열이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그럼에도 신스케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가츠라는 불안한 눈동자로 문득 고개를 들어 숲을 바라보았다. 사카타 긴토키가 뛰어가기도 전에, 이미 신스케가 먼저 숲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가츠라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병사들을 대강 수습하고 나서, 가츠라는 작은 방 하나를 서둘러 정리했다. 크게 다친 신스케를 눕히고 돌보기 위해서였다. 전장에서 백야차만큼이나 난폭하게 날아다녔던 신스케는 꼭 자신이 날아다닌 것만큼의 큰 부상을 입었고, 신스케는 분해하며 "이건 절대 나를 위해 준비 된 댓가가 아니야."라고 중얼거렸다. 눈에 피를 철철 흘리던 신스케의 몸을 번쩍 안아들고 그를 폭탄의 사이에서 구해온 것은 물론 사카타 긴토키였다. 가츠라는 피를 흩날리는 신스케를 번쩍 안아든 긴토키의 등을 바라보며 뒤에서 그들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신스케의 비통어린 목소리는 몇번이고, 몇번이고 가츠라의 가슴을 찢어놓곤 했다. "이거 놔! 백야차! 이건 절대 나를 위해 준비된 게 아니야! 난 다시 저곳으로 갈테다!" 긴토키는 무슨 말을 했던가? 긴토키, 신스케의 그 목소리 너머로, 너의 목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았어. 평생 사라지지 않을 상처를 지니게 된 신스케를 위한 방을 다 정리하고 나서 그를 찾아다녔던 가츠라에게, 몇몇의 병사가 "신스케님은 숲으로 가셨어요. 아직 안돌아오셨나요?" 라고 말하고서도 이미 몇 시간이 흘렀건만. 가츠라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긴토키도 신스케도 돌아오지 않는, 이 저녁이 견딜 수 없이 외로워서. 가츠라 고타로는 각자가 각자의 슬픔을 홀로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자각해야만 했다. 자기가 짙은 패색을 자각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바쁘게 움직이 듯, 긴토키도 신스케도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혼자가 되기로 한 거라고.


 다카스기 신스케는 아주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감감무소식일 줄 알았던 사카모토 타츠마가 몇 명의 사람들과 말을 타고 돌아와 한가득한 식량을 보여주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여전히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 새빨갛게 된 붕대를 한 채, 창백한 신스케를 바라보며 가츠라는 "이게 무슨 미친짓이야. 신스케."라고 말했다. 신스케는 아무 말 없이 연하게 웃다가, 아주 조금 입술을 달싹였다. "그렇게 해야만 했어."


 "꼭 혼자서 할 일이 있었어. 가츠라."


 그날 밤, 사카타 긴토키는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 동이 터올 때 쯔음 긴토키가 어설프게 보수한 지붕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때까지 가츠라가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밤이 되자 더욱 열이 높아져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헐떡이던 신스케가 아주 잠깐 "그녀석은?" 하고 물었고, 가츠라는 결국 아무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그녀석 답군." 달뜬 열 속에서도 희미하게 웃던 신스케.







 다카스기 신스케의 상태는 점점 심해져 갔다. 처음에 눈에 큰 상처를 입었을 때 바로 치료하지 않은 탓에 곪아버리고 만 것이다. 의사가 뒤늦게 기절한 신스케의 얼굴에 대고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해보았지만 신스케의 시력을 원래대로 돌리기는 커녕 상처를 제대로 꿰매는 것조차 어려워 했다. 오랫동안 신스케의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스케는 뜨거운 숨을 토하며 힘겨워 했고, 늘 이불마저 젖을만큼 땀을 흠뻑 흘렸다.


 긴토키는 괴로운 숨을 반복하다가 께무룩 기절해버리고 마는 신스케를 묵묵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검을 한쪽 어깨에 올려놓고서 말이다. 검집에 넣은 검은 피를 닦아내지 않아 녹이 슬어 더 이상 검집에서 나오지도 못할 지경이었고, 딱딱하게 굳은 피는 어느덧 냄새조차 나지 않고 있었다. 긴토키는 신스케가 뜨거운 숨을 토해낼 때마다 눈을 한 번씩 깜빡였다. 신스케. 네 얼굴이 그렇게 빨간 건 처음보는 걸. 너도 빨간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니 긴상 너무 놀래버려서... 그리고 긴토키는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긴토키는 신스케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왠지 신스케는 죽지 않을거란 묘한 확신에 차서, 아파하는 신스케를 바라보면서도 긴토키는 별다른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확신에 가득 차 있는지에 대해서는 긴토키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생도 사도, 전부 자기에게는 너무 멀어져버렸다고 생각한 걸까.


 어느날, 긴토키는 가츠라를 데리고 자신이 발견한 숲의 깊은 곳으로 향하였다. 그날은 긴토키가 겨울의 바스라지는 낙엽들 속에 숨겨져 있는 보드란 꽃잎을 숲에서 네번째로 발견한 날이었다. 꽃이 필리도 없는 이 시린 겨울에 이런 꽃잎이 계속 보이니 너무 의아하고 이상한데, 긴토키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츠라에게도 알려주기로 한 것이었다. 가츠라라면 무언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갈빛 낙엽들 사이에 숨겨놓은 듯 있었던 분홍색의 보드라운 꽃잎을 보자 가츠라도 과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긴토키는 원래도 큰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연한 분홍색 꽃잎을 바라보는 가츠라의 옆얼굴이 꼭 여자애처럼 보여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가츠라는 분홍의 꽃잎을 몇 장 들어올려 자신의 손바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벚꽃잎이구나..." 곧 가츠라가 그렇게 속삭였다. 긴토키는 그제야 자신이 그동안 벚꽃이라고 하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맞아. 이건 벚꽃이었어. 벚꽃이라고 불리는 거였어. 긴토키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 아름다운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란 나머지, 긴토키는 도리어 점점 표정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이 놀라움을 얼굴 위에 드러낼 여유조차 잊어버리고.


 가츠라의 옆얼굴이 더욱 쓸쓸해 보여서 긴토키는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쓸쓸해 보이는 가츠라의 얼굴에는 연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어째서 저렇게 외로운 미소가 다 있을까. "긴토키. 이게 뭔지 알아?"


 "...? 벚꽃이라며?"


 질문의 의미를 알 수 없어 더욱 미간을 찌푸리니, 어느덧 긴토키를 바라보고 있는 가츠라의 웃는 얼굴이 아까보다 더 쓸쓸해보였다.


 "겨울에 벚꽃이 보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는 뜻이지, 바보같긴. 긴토키. 이건 하나하키병이야."

 "...? 그게 뭔데?"

 "사랑에 빠지면 걸리는 병이라네."


 가츠라는 다시 긴토키에게서 눈을 떼고 자기 손 위에 올려져 있는 꽃잎을 바라보았다. 꽃잎은 너무나도 보드라워서, 꼭 언젠가 만져보았던 갓난아기의 뺨과 같았다. 사랑이란 것이 이렇게도 갓 태어난 것 마냥 부드러운 것이었다니. 눈에 보이는 형태로 빚어진 사랑이란 왠지 모르게 안타깝구나. 가츠라는 꽃잎을 쥔 손으로 꼬옥 주먹을 쥐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꽃잎을 토하게 되는 병이지. 이 벚꽃잎은 그러니까 하나하키병에 걸린 사람이 가까이에 있단 뜻이야."

 "......"

 "그러니까 이 꽃은 꽃자체로 '이루어지지 않은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는거지만, ...난 왠지 조금도 슬프지 않군. 긴토키. 전장에서 패하고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 마음에도 꽃은 피는건가봐... 왠지 모를 위로를 느껴."

 "......"


 그 보드랍고 여린 것에 왠지 모를 위로를 느끼고 있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가츠라, 적어도 너의 옆얼굴이 이렇게 쓸쓸해 보이면 안 되는 거지.


 너의 미소가 그렇게 외로워 보이면 안 되는 거고.


 긴토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짧은 한숨을 내쉬며, 긴토키는 이미 씻어 말끔해졌지만 꼭 여전히 피가 묻은 것 같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목덜미를 꽈악 눌렀다.


 "글쎄. 나는, 그냥 무진장 한가한 병인 것 같단 생각밖엔 안드는데."

 "...긴토키. 그렇게 말하지 마."


 가츠라는 짧게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희미하게 격앙되어, 가츠라가 진심으로 긴토키의 말을 부정하고 있음을 긴토키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말하지 마. 너무 못된 말투야." 가츠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자신이 쥔 주먹을 긴토키에게 내밀었다. "퍽 낭만적이잖나." 긴토키는 진심으로 경직된 가츠라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 짧게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내 보였다. 가츠라는 살며시 긴토키의 손바닥 위에 자신이 쥐고 있던 꽃잎 몇 장을 떨어뜨려주었다. 긴토키는 가츠라가 꼬옥 쥐여 끝이 조금 주름진 벚꽃잎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 짧게 한숨을 내쉬며 낙엽 사이에 퍼져 있는 꽃잎들을 하나씩 주워들었다. 긴토키는 꼭 가츠라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가츠라. 이 보드랍고 여린 꽃잎들은 절대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겨울이 서린 낙엽들 아래에 숨겨져 있었어. 그러니까 파헤치지 않으면 도저히 볼 수가 없는건데, 그러니까 꽃잎들은 분홍빛으로 춤추면서도 한편으로는 날 파헤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었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하나하키병에 걸렸다는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인간을 사랑하게 된 그 사람은, 혼자 몰래 이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여기에서 꽃잎들을 토하고 이 꽃잎들을 전부 낙엽아래로 숨겨버린 거야. 아무도 파헤쳐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그래서 가츠라, 나는 이 꽃잎들에선 도저히 위로를 느낄 수가 없어. 나는 오히려 이것들을 차가운 겨울의 낙엽 아래로 숨겨버린 그 마음이 더 절절하게 이해가 돼. 그는 슬퍼하며 이 꽃잎들을 숨겼을 거야. 입밖으로 토해져 나오는 자신의 보드랍고 여린 마음을 숨겨버렸을 거야.


 그는 아마 눈물 범벅이 되어 있을 거야.

 꼭 내가 피범벅이 되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긴토키는 그 모든 말들을 가츠라에게 하지 않았다. 긴토키는 많은 말들을 목구멍 아래로 삼키기 위하여 몇 번이고 아랫입술을 꼭꼭 씹었다. 입안으로 비릿한 피맛이 퍼질 때 쯔음 긴토키의 양손에는 분홍 꽃잎이 가득 담겨졌다. 그 여리고 보드라운, 막 태어난 아기의 뺨과도 같은.









 "신스케. 나 들어간다." 긴토키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신스케가 있는 작은 방의 문을 열었다. 양 손 가득히 쥐고 있는 게 있었으므로 긴토키는 방문을 발로 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을 눈치 챈 신스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방으로 들어오는 긴토키를 노려보다 결국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동안 고열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도달했던 다카스기 신스케였지만,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다. 아직 미열이 남아있어 팔다리가 때로 저려왔지만 신스케는 이제 혼자 힘으로 상체를 일으킬 수도 있을만큼 나은 것이다. 긴토키가 방안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신스케는 누워있느라 헝클어진 자신의 검은 머리칼을 손끝으로 쓱쓱 빗어내리는 여유마저도 보였고, 그것은 긴토키를 희미하게 미소짓게 했다. 긴토키는 신스케가 때때로 보이는 그 허세에 가까운 몸가짐을 사실은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다. 신스케는 머리칼이 하나 뻗치는 것도 싫어했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는 것도 싫어했다. 긴토키가 신스케의 무릎위에 덮여져 있는 이불에 가까운 곳에 앉는 동안 신스케는 자신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고, 긴토키는 신스케가 매무새를 정리하는 것을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 신스케, 네가 너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신경쓰지도 않을 만큼 변한다면,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나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기대되는 한편으로, 그런 미래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 모든 것이 이렇게나 두려운 것일까. 앞으로의 사카타 긴토키가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다는 이 한마디가 언제나, 사카타 긴토키의 마음을 캄캄하게 덧칠했다. 신스케, 너는 이 마음을 이해해줄까.


 "또 숲에 갔다온거냐?"

 "어? 어떻게 알았어?"

 "주먹 쥔 손에 흙이 잔뜩 묻어있으니까. 어린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잔뜩 묻히고 다니는건데?"

 "아하, 하하. 눈썰미도 좋지."

 "쥐고 있는 건 또 뭐고?"


 "아, 이거." 그래, 이걸 너에게 주려고 가지고 왔지. 그리고 긴토키는 신스케의 이불이 덮힌 무릎 위로 주먹을 펼쳤고, 그래서 사카타 긴토키의 양 손에 쥐어져 있던 그 분홍색의 벚꽃잎들은 한꺼번에 우수수 신스케의 무릎위로 쏟아진 것이다. 그 분홍색의 꽃잎은 한들한들함을 잊지않고 천천히 흔들리며 신스케의 무릎위로 전부 쏟아졌고, 신스케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은 더욱 커다래졌다. (이제는 피가 배어나오지 않아 여전히 하얀 붕대 너머로, 눈의 기능을 잃어버린 눈의 흔적기관은 단숨에 촉촉히 젖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지만, 사카타 긴토키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였고.)


 "......"

 "벚꽃잎이라는 건데."


 경직된 채, 자신의 무릎위에 가득한 벚꽃잎들을 그저 바라만 볼 뿐 미동도 없는 신스케를 바라보며, 긴토키는 혹시나 그도 자기처럼 벚꽃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것을 그동안 잊고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혹시 그동안의 비참함이 우리 모두를 잠식했던 것처럼 그 캄캄한 전장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것들은 전부 잠겨버린 거처럼 느껴진 게 아닌가 해서. 그래서 긴토키는 새끼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며 태연히 그렇게 말했다. "기억해?" 라고 말이다.


 신스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미동도 없었다.

 긴토키는 마치 숨이 멎은 것 같은 고요함은 다카스기 신스케에게서 느꼈다.


 자신의 하체 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연한 벚꽃잎을 한동안 그저 바라볼 뿐인 신스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언제나 긴토키가 볼 수 있었던 바로 그 다카스기 신스케였다. 그 조용한 미소에는 아무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긴토키는 자신이 느낀 의아함을 내색하지 않았다. 신스케가 가만히 미소짓으며 "이게 뭔데?"라고 그렇게 물었으므로.


 "나도 몰랐는데, 하나하키병이란 게 있대. 가츠라가 그런 게 있다더라. 너는 알고 있었어?"

 "모르는 게 이상하네, 그렇게 유명한 병을."

 "하하,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나는 다방면으로 무식한 사람이니까."

 

 긴토키는 어깨를 으쓱해보인 후 손을 뻗어 가만히 그 꽃잎의 하나를 집어들었다. 순간 신스케의 손가락이 움찔거렸지만, 긴토키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만약 긴토키가 신스케의 손가락이 움찔하는 것을 보았더라면 꼭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꽃잎을 긴토키가 만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움직임이였다고.


 "...그래서, 누가 이 병에 걸린건데?"

 "글쎄. 그건 모르겠고. 난 그냥 숲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져 있는 이 꽃잎들을 우연하게 발견한 것 뿐이야."

 "......"


 순간 길어지는 침묵 속에서, 긴토키는 물론 아무 것도 읽어내지 못했다. 만약 긴토키가 신스케의 침묵을 읽어낼 수 있었다면, 그렇게 꼭꼭 숨겨져 있었다면 파헤치지 말지 그랬어라는 그 짧은 말을 읽어낼 수 있었다면.


 "그럼 이걸 왜 나한테 가져온거야?"

 "아? 아... 글쎄. 색이 이뻐서?"

 "...뭐?"

 "아니, 예쁘잖아. 이 겨울에는 잘 볼 수 없는 색이고. 또 위로가 된다고 하니까."


 가츠라가 그렇게 말했지. 위로가 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긴토키는 천천히 뺨을 긁적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너에게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

 "오래 병상에 누워있는 너에게 위로가 될까하고."

 "......"


 그만.

 그만해.


 그리고 다카스기 신스케의 마음이 천갈래로 찢어지고 있는 소리를

 물론 사카타 긴토키는 조금도 듣지 못했다.


 "...그래." 신스케는 그래서 자신의 천갈래로 찢어지고 있는 소리를 긴토키에게 굳이 들려주는 대신에 그저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언제나 늘 신스케가 짓는 바로 그 미소 말이다. 신스케는 다 나아가는 영원히 얼굴위에 남아있을 상처의 미미한 욱신거림에 집중하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픔에 집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놓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기분은 신스케를 충분히 비참하게 만들었다. 신스케는 자신의 발아래 있는 꽃잎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것들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사실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그 모든 것들을.


 "긴토키."

 "응."

 "넌 어떻게 생각해? 이 병에 대해서."

 "음..."


 긴토키는 눈을 깜빡였다. 무척이나 한가한 병이라고 생각한다. 긴토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면 또 가츠라 때처럼 혼나려나. 긴토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글쎄. 뭐, 낭만적인 거 아닌가?"


 "하하." 신스케는 짧게 웃었다. "아니, 이건 한가한 거지." 그리고 신스케는 꽃잎들을 전부 움켜쥐었다. "이건 너무나 한가한 거야. 이런 비참함의 한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태연하게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낼 정도의 그 한가함과 안일함을 난 용납할 수가 없어." 신스케가 움켜쥔 꽃들은 전부 허리가 구겨져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했다. 신스케는 꽃잎들을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아귀의 힘이 더욱 강해져갔고, 꽃잎들은 점점 바래졌다. 꼭 그 꽃잎들을 가리고 있던 그 겨울의 낙엽들처럼. "우린 지옥을 넘어왔어. 긴토키. 우린 아수라장을, 피의 강을, 동료들의 시체를 전부 이 두 발로 밟고 여기까지 왔다구! 긴토키! 그리고 이곳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피냄새와 지친 동료와, 이 얼굴에 영원히 남아있을 지독한 아픔뿐이야. 그 모든 것을 겪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니 그보다 더 한가한 게 어디있겠나? 응? 긴토키!" 신스케는 그리고 손안에 잔뜩 구겨낸 꽃잎들을 전부 다시 아래로 떨구었다. 분홍의 빛을 잃어버린 여린 꽃잎은 아무렇게나 뭉쳐져 신스케의 이불 위로 떨어졌다. "태연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때문에 이런 꽃잎들을 토해낼 정도로 자기자신을 향한 연민에 젖어 있다니. 자신의 고통에 취해 대의를 잊어버리고, 이런 꽃잎들이 수북히 쌓일 정도로 토해내기를 반복하고나 있다니." 그리고 신스케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그리고 신스케의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이런 한가한 놈은 감히 양이지사의 깃발을 내걸고 벼린 검을 치켜들다니 나는 용서할 수가 없어. 긴토키. 마음이 새까맣게 물든 와중에도 이렇게 보드랍고 여린 꽃잎을 품고 있었다니 역겨울 지경이야!"


 "......"

 "역겨워. 용납할 수 없어."

 "...신스케."

 "용서할 수 없어."

 "......"


 그 분노가 가득한, 고통이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며, 긴토키는 왠지 가슴 언저리가 뜨끔했다. 가츠라의 웃음에서 외로움을 읽어낼 때도 느꼈던 꼭 그 슬픔이었다. 긴토키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누군가의 희망이었던 순간도, 그 가짜 희망의 상징이 되어 그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도, 동료들의 시체를 밟으며 뒤를 향해 도망쳤을 때에도, 느꼈던 그 모든 비슷한 감정들에, 긴토키는 문득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도망치면 안 되는 걸까?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어째서 이곳에 남아있어야만 하는 걸까. 괴롭다. 괴로워. 슬퍼. 긴토키는 자신이 해온 모든 일이 다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생각해 온 그 모든 의미들이, 사실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긴토키는 너무나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니, 이 외로움. 이 쓸쓸함.


 이 모든 인간의 감정에서 도망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어째서 이렇게도.


 신스케. 네가 말한, 양이지사의 깃발이란 건 이제 없어. 이제 없다.

 벼린 검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다구.


 그리고 물론 긴토키는 신스케에게 그 말들을 하지 않았다. 가츠라 앞에서 그랬던 것만큼, 긴토키는 신스케 앞에서도 너무 많은 말들을 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그것이 문제였을지도 몰랐다. 자신의 말들을 삼키는 것에만, 그 말들을 결코 하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에만 너무 의식들이 몰려서- 그래서 긴토키는 정말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의 다카스기 신스케가 쓰고 있는 가면을, 그 조금만 손대면 금방이라도 균열이 일어나 양쪽으로 쪼개지고 말 것 같이 연약한 가짜표정을.


 차가운 미소 너머로, 신스케는 꼭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색이 바랜 눈동자 위로 투명한 막이 흔들렸다.


 긴토키는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로 그렇게도,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긴토키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긴토키의 그 말에 신스케의 얼굴이 더욱 딱딱해졌다. "어쨌든 그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말이야." 긴토키는 천천히 신스케의 무릎위에 흩어져 있는 꽃잎들을 그러모았다. (그리고 신스케의 마음이 또 한 번 비명을 질렀다. 싫어. 긴토키. 손대지 마. 건들지 마.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그것들을.) 신스케는 긴토키가 그러모은 꽃잎들을 자신의 손위에 하나씩 올리는 것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짐작가는 녀석도 없어?" 긴토키는 신스케의 목소리가 조금 먹먹해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전혀. ...수색같은 것도 안할거니까, 그녀석을 어떻게 하고 싶다면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거다, 요녀석아." "...하하." 신스케는 짧게 웃었고, 긴토키는 빠르게 꽃잎들을 양손에 다시 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픈애를 괜히 괴롭히는 꼴만 됐네. 이만 나가볼테니까 쉬어."

 "...왠일로 멀쩡한 사람같은 말을 다 하냐. 놀랍게."


 문을 향해 걸어가는 긴토키에게 오른손을 가만히 흔들면서, 긴토키가 하는 마지막 말에 대답하는 신스케의 목소리도 다시 담담해져 있었다. 방금까지 주고받은 격앙된 대화는 꼭 처음부터 없었던 것만 같았다. 긴토키는 마지막으로 신스케의 얼굴을 돌아다보며, 많이 나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녀석을 괜히 자기가 악화시킨 게 아닌가 싶어 뒤늦게 미안해졌다. 그의 방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다시 닦으면서, 긴토키는 괜히 가츠라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녀석이 위로가 된다는 실없는 소리만 하지 않았던들, 내가 이걸 들고 신스케의 방엘 찾아왔을까 싶어서. "이래서 답지 않은 짓은 하는 게 아닌데. 쩝." 긴토키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복도를 걸어갔다. 신스케에게 봉변을 당하고 난 뒤의 꽃잎들은 완전히 빛깔이 죽어있었다. 아아, 이것들은 어쩐다. 처음부터 발견하는 게 아니었는데. 긴토키는 긴 한숨을 내쉬며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모두를 다시 땅에 묻어 놓기로 결심했다. 물은 물로, 산은 산으로. 모든 것은 다시 땅으로 돌려줘야지. 그리고 나의 피묻어 녹이 슨 검도, 나의 이름도, ...나도 곧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카타 긴토키는 놀랍게도, 그것이 씁쓸하지조차 않았다.

 외롭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긴토키는 그냥 잠시, 신스케의 방을 다시 돌아다 봤을 뿐이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안타까움이라." 그 격렬한 신스케의 미움, 신스케의 분노를 한순간에 전부 받게 된 그는 대체 누구일까. 긴토키는 문득, 그저 이 꽃잎들을 토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잠깐 궁금해졌을 뿐으로...










 "...콜록..." 그리고 사카타 긴토키가 완전히 사라져 혼자 남은 방안, 그래도 여전히 사카타 긴토키의 향기가 녹아있는 공기에 둘러쌓인 채로, 다카스기 신스케는 짧은 기침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짧은 기침과 함께 신스케는 목구멍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그 고통은 꼭 눈동자에까지 전염되어 주르륵하고 흘러내리는 눈물방울과 함께, 새빨갛게 물든 신스케의 입술 사이에서 하나씩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는 꽃잎들은, 꼭 분홍색의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 보드랍고 여린 분홍빛 말이다. 긴토키가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아름다움 말이다. 가츠라에게 사소한 위로가 되어주었던 그 낭만말이다. ...신스케가 영원히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할, 그 한가함말이다.


 그리고 또 한 번, 신스케의 콜록하는 기침과 함께 더욱 입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꽃잎들, 그리고 신스케가 또 한 번 콜록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또 쏟아지는 꽃잎들, 이렇게 세 번 네 번을 반복하니, 어느새 신스케의 무릎위로 벚꽃잎들이 수북해졌다. 신스케는 자신이 토해 낸 벚꽃잎들을 바라보며 모두가 살아있을 때를 문득 떠올렸다. 모두와 함께 했었던 봄의 꽃구경은 바람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시작되었다. 그 아름다운 날에 사카타 긴토키의 은색 머리칼은 또 어째서 그렇게도 반짝였는지. 신스케는 이 고통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이제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고통이 왜 지금에와 날카로운 꽃잎이 되어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자꾸 신스케에게 되새김질을 시키는지는 도저히,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이 모든 것이 밉고 고통스러웠다.

 그저 괴로웠다.

 

(그리고, 신스케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왜 꽃잎을 토하기 시작했는지도. 깊이깊이 숨겨두었던 자신의 마음이, 날카로운 검이 자신의 얼굴을 스친 그 순간 느낀 캄캄한 죽음 속에서 갑자기 절실해졌다는 것을. 그랬다, 신스케는 꼭 그때 살고 싶었다. 죽고싶지 않았다. 긴토키를 향한 마음이 꽃을 피웠던 것은 그래서였다. 사카타 긴토키가 그순간 다카스기 신스케의 죽고싶지 않은 이유였던 것이다.)


 

 "...하하."


 그래서, 다카스기 신스케는 자기가 토해낸 꽃잎들 사이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아아, 이 달콤한 부드러움이라니. 이 사랑스러운 감촉이라니.


 어째서 사랑이란 것은 형태로 만들어놓으면 이 지경이 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끔찍하다.


 그냥 계속 어둠속에 있는 게 차라리 좋았을텐데. "...하하하." 그래서 신스케는, 조금 울었다. 그가 흘린 눈물방울들이 분홍색 꽃잎들을 적셨고, 그것들은 그래서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그 아름다움을 말이다.



 


 


 

- done

 

트위터에서 받은 신년기념 rt이벤트 당첨자분의 리퀘로 쓴 긴타카입니다. 하나하키병! 어렵다!; 꽃을 토하라니까 왜 꽃잎을 토하고 난리이냐! < 컨셉이라.. 죄송..

 

위에 하나하키병을 잘 모른다고 써놨는데요.. 사실은 제가... 긴타카도 잘 모릅니다 ㅇ<-<

긴타카 머리털나고 처음 써보구요... 으아아 어렵네요!!!!!! 어렵다 어려워!

미래에 다시 재회한 다카스기는 꽤 흐트러진 기모노 매무새를 하고 있지요. 그런 거 의식하면서 썼어요. 과거얘기는 이런 점이 재미있죠.

 

그치만 전반적으로 넘 어려워서 헝; 이상해도 그냥 감안하고 봐주십셔 ㅠㅠㅠㅠㅠ 으흐흐흐 리퀘 감사드려요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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