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8~9

 

 

<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8>


 저녁시간이 지나고, 히지카타는 긴 머리를 풀어내렸어. 긴토키가 늘 말하는 정도의 길이, 풀어내리면 어깨아래로 내려오지만 등한가운데까지는 닿지않는, 히지카타는 언제나 그 길이로 머리를 유지하고 있었지. 머리를 틀어올려도 이상하지 않을 연령대가 되도록 여전히 그정도의 길이를 높게 묶고 목아래에 흔들며 다니는 히지카타는 더욱 성별이 모호해지는 별개의 생물체가 되어 남자들의 마음을 간지럽히는, 긴토키가 원하는 건 그런 상황이었고 히지카타는 언제나 그 상황을 훌륭하게 잘 유지하고 있었어. 히지카타는 거울을 보면서 피식 웃었어. 자기스스로 본 얼굴은 그냥 평범한, 좀 남자답지 못한 허연멀건한 남자인데, 그들은 왜 고작 이런게 갖고싶어 그렇게나 안달복달 못하는걸까. 히지카타는 자기 발 앞에 무릎꿇거나 자기앞에서 고삐가 망가지거나 하는 남자들의 얼굴을 십년동안 보아오면서도, 그것들을 지배하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어. 오히려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졌지.


 "야."
 "......"


 긴토키는 예고도 없이 히지카타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어. 히지카타는 고개를 돌려 긴토키를 바라보았지. 문틀한쪽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긴토키는 한손에 술병을 들고 있었어. 꽤 늘었네. 최근 긴토키의 주량이 이상하게 늘었다는 것을 히지카타도 알고 있었지만, 히지카타는 굳이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어. 자기가 그의 몸을 걱정하고 있단 오해라도 받으면 화날 거 같으니까. "야?" 대신에 히지카타는 일부러 삐딱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어. 긴토키는 선 채로 앉아있는 히지카타를 내려다보았지. 그 무례하고 뻔뻔한 하얀얼굴이라니. 주인님을 향해 짓는 그 퉁명스러운 목소리는 또 뭐야. 하지만 긴토키는 화를 내지 않았어. 오히려 웃으며 히지카타의 이부자리에 올라가 그 위에 벌렁 드러누웠지. "왜, 야라고 부르면 싫어? 아 알았다고~ 참 까칠한 녀석일세. 토시로, 토시로야!" "토시로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 니가 붙인 이름으로 불러.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하고 홱 고개를 돌렸어. 그리고 자기전에 하려고 했던 빗질을 다시 시작했지. "하이고야~. 말이 칼이라면 진작 내목을 찔렀을 목소리야." 거울너머로 자신의 등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드러누운 긴토키가 어른거리다 말다가를 반복했어.


 "히지카타야."
 "왜."
 "오늘 어디갔다왔어?"


 긴토키는 종종 그것을 물었어.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자신이 어디갔다왔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 초반에 히지카타가 혼자 외출한다 할때면,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순순히 보내놓고 그의 뒤를 밟는 자를 붙였더랬지. 히지카타가 이대로 도망이라도 칠 줄 알았던 걸까? 단순히 히지카타의 목적지가 궁금했던걸까? 초반에, 미행을 눈치챈 히지카타는 일부러 강가에 앉아 하릴없이 강을 바라보고 있었더랬어. 또 어느날은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남자가 가득 안겨준 돈으로 먹을 것을 잔뜩 사서 가난한 집이 이어지는 마을에 전부 뿌리기도 했어. 그리고 또 어느날은 종일 배를 탔고, 또 어느날은 ... 그런 식을 두어달 정도 반복하니, 어느순간부터 더 이상 미행이 붙지 않았어. 대신에, 긴토키는 히지카타에게 어디갔다왔느냐는 질문을 시작했지. 히지카타는 일부러 거짓말을 해봤어. 강을 한없이 보고 돌아왔던 날에는, 여자를 사봤다고 했어.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전부 다 쓰고 온 날엔, 연극을 보고 왔다고 했지. 긴토키는 거짓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그저 그뒤에 이어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문들을 했지. 그래? 재미있었어? 좋았어? 다음엔 같이 갈래? 혼자 자신의 몸상태를 돌봐줄 의사를 찾아다닐때쯔음엔, 히지카타도 긴토키의 미행이 붙을거란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 "여자 만나고 왔어."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했어.


 뒤에서 긴토키의 술을 마시는 소리가 들렸어.


 "너, 아직도 여자를 안을 수 있어? (이게 뭔 개소리야. 히지카타의 이마가 씰룩거렸지.) 그럼 우리 슬슬 거래상대를 여자까지 늘려볼까?"


 슬슬은 얼어죽을. 히지카타는 한숨을 내쉬었어. 그럴거면 히지카타 토시로를 열 명으로 늘리라고, 이 한심한 놈아.


 "여자는 당신이 직접 안으면 되잖아."
 "거래로 안는 여자가 무슨 재미야."
 "왜 재미없어. 평소 안는 여자와 색다른 맛이 나서 더 즐거울 수도 있지."
 "도전? 같은 의미에서? 모험? 같은 느낌의!"
 "그래, 뭐 그런거."
 "노 관심..."
 "그러셔."
 

 히지카타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긴토키를 바라보았어. 긴토키는 어느새 상체를 일으키고 똑바로 앉은 채 히지카타를 보고 있었지. 실없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기로 한 건가.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실없는 소리를 잔뜩 해댄 후에야 자신이 진짜 하고싶었던 말을 하는 습관이 있단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또 무슨 얘기가 하고싶은데? 긴토키."


 긴토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지막히 말했어.


 "대문밖에 있었다는 남자. 걘 뭐냐?"
 "뭐겠어?"
 "모르니까 묻잖아."
 "그저 당신이 아는만큼의 남자야."
 "야마자키 사가루. 관직에 들어온지 육개월도 채 안 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둘째아들?"
 "잘 아네."
 "너에게 반했있지?"
 "긴토키. 나에게 반해있는 남자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


 "...그녀석이랑 잤어?" 긴토키의 눈동자는 차가웠고, 히지카타는 언젠가 죽어버린 하인의 싸늘한 얼굴을 떠올렸어. "당신의 명령이 없는 한 나에게 있어 남자와의 하룻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야."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차가운 논동자와 마찬가지의 힘을 자신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말했어. 긴토키는 싱긋 웃으며 손을 뻗어 히지카타의 뺨위에 흐트러진 그의 까만 머리칼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 그의 귀뒤로 쓸어올려주었어. 그 과정에서 긴토키의 손끝은 히지카타의 뺨을 조금도 스치지 않았지. "아무것도 안해줬는데, 그가 왜 너에게 반했을까?" "당신이 날 아름다워 보이게 키운 탓이겠지." 히지카타는 여전히 자신의 귀언저리에서 맴도는 긴토키의 손이 언제 닿을까 아니면 이대로 닿지 않을까 긴장하면서도, 긴토키를 똑바로 바라보았어.


 "...그는 너에게 무엇을 해줬어?"
 "......"


 꽃을,
 추운 겨울에.
 붉은 꽃을.


 발치에 두고 가주었지. 꽁꽁 언 대지위에 무릎을 꿇고 그 여린 겨울꽃의 작은 꽃잎위에 짧게 입맞추고 도망쳐버리기까지 했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펑펑울어 엉망이 된 얼굴을 태연히 나에게 보여주며, 언제고 편지를 써주겠다고 했었지. 편지. 그가 써주는 편지에는 꼭 그 날의 붉은꽃 같은 것들이 써져 있을까. 그가 쓴 편지를 볼 수 있다면.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눈을 피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어. "아무것도. 하지만 나에게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어." 긴토키는 웃으며 손을 거두었어. "좋네. 그거. 그녀석한테서 편지가 오는 날이 최대한 빨리 오면 좋겠는걸."


 "하지만 거절했다."
 "......"
 "네가 그의 편지를 조롱하는 걸 보기가 싫어서."
 "...그래서 거절했어?"
 "그래."
 "......"


 한동안 말이 없이 히지카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긴토키는, 갑자기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긁적였어. "...미치겠군." 그리고 긴토키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히지카타는 가만히 눈을 감았고...





<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9>




 긴토키의 명령으로, 히지카타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 지 3일째가 되는 날, 또 밤에. 히지카타는 사카타가에 놀러운 귀족의 시중을 들다가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그자리에, 긴토키는 일부러 히지카타를 불렀고, 그러니까 히지카타는 그 귀족으로 하여금 그 이야기를 히지카타가 듣게끔 긴토키가 일부러 자리를 만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지. 귀족은 야마자키 사가루라고 하는 하급관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들을 이야기했어. 그가 담당하던 어떤 문서가, 사라져서, 야마자키 사가루는 관리소홀의 책임을 물게 되었어. 그래서 곤장 34대를 맞아야했는데, 그과정에서 혹시 일부러 서류를 없앴거나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의도적으로 서류를 소멸시킨 것은 아니냐하는 심문을 받게 되었지. 심문은 고문이 동반되어 있어서 정식심문이 들어가면 거의 죽을 지경에 달해 심문실에서 나서게 될 것이었는데, 그것을 바로 여기의 사카타 긴토키가 막아주었고, 그래서 야마자키라고 하는 하급 관리는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더랬지. 하지만 아직 곤장 34가 남아있었고, 긴토키도 그것을 막아주지는 못했어. 그래서 야마자키가 그 곤장을 전부 맞아버리고 말았는가? 그렇지 않았지. 어젯밤 우연히 복도를 지나다 사라진 문서가 나타났고 그 문서가 발견된 장소는 야마자키의 신분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성안 깊은곳이었거든. 그래서 야마자키 사가루는 하루아침에 누명을 뒤집어쓴 불쌍한 관리가 되었고,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행이도 모든 혐의가 풀려 사지 멀쩡하게 성을 나왔다는 그런 이야기였지. 그리고 귀족은 덧붙였어. 그래서 말이야, 우연히 야마자키 아무개가 퇴근하는 길을 나와 사카타공이 지나가다가 서로 맞부딪힌 것 아니겠어?


 "아무래도 야마자키 아무개가 살아난 덕이란게 사카타공에게 충분히 있는 것 같아 내가 나서서 야마자키 아무개에게 감사의 말을 하라고 말했지. 그래더니 야마자키 아무개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


 귀족은 히지카타의 운을 기대하고 그렇게 말을 끌었지. 히지카타는 웃었더랬어. "뭐라 그랬는데요?"


 "눈을 이렇게 뜨고 사카타공을 노려보더니, 인사를 드릴 게 없네요, 라고 하지 뭐야! 인사를 드릴 게 없네요, 라니! 아니 그 괘씸한 놈, 은혜입은줄도 모르고. 사카타공도 공이야 그걸 그냥 가게 두고 말이야!"


 그리고 이어지는 귀족의 한탄과,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있는 긴토키의 술을 마시는 소리와, 히지카타가 눈을 깜빡이는 소리.






 귀족은 밤이 되자 자기집으로 돌아갔어. 사실은 히지카타와 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지만, 긴토키가 단호하게 거절하는 바람에 입맛만 다시며 돌아설 수 밖에 없었지. 귀족은 이제 긴토키에게 거역해선 안 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거야.


 귀족이 돌아가고, 긴토키는 귀족을 함께 배웅하러 나온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지. 그가 무슨 말을 할까? 히지카타. 너에게 알려줬어. 내가 야마자키에게 한짓을. 야마자키도 알고있지. 내가 한짓을. 자, 이제 이런 나에게 넌 무슨 말을 할 거지? 무슨말이든 해. 나에게 무슨 말이든 하란 말야. 하지만 히지카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긴토키를 외면했어. 그리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지.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등을 노려보았어.


 "무슨 말이든 해."
 "......"
 "무슨 말이든 하라고, 요녀석아!"


 "히지카타야!" 무슨 말을 하라고. 나보고 뭐 어쩌라고. 히지카타는 그저 방안으로 들어갔어. 빠르게 달려와 그의 뒤를 따라온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팔을 요란하게 낚아챘지. 혼란스러워. 긴토키는 요새 너무나,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어.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어. 자기가 무엇을 하고싶은건지도 알 수가 없었고. 단지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자신을 외면하는 꼴은 절대로 볼 수가 없었어. 그꼴만은 절대로 못 봐.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움켜쥔 팔을 자기쪽으로 잡아당기고 히지카타의 허리를 감싸 안았어. "싫엇..!" 히지카타가 이를 뿌득 갈며 긴토키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긴토키의 힘이 훨씬 셌지.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품에서 휘청였어. 순간,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팔이 전보다 마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힘도 하나도 없이, 마치 종잇장처럼 자기가 휘두르는데로 팔랑이고. 감싸안은 허리도 한줌이고... 긴토키는 순식간에 밀려오는 분노에 눈앞이 아찔해졌어. 뭐야, 그자식이야? 그자식 못만나게 했다고 며칠새에 이렇게 마른거냐고? 짜증난다. 열받는다. 마음같아선 그자식 목을 콱 베어버리고 싶은데 이게 대체 뭐지. 이게 대체뭘까, 응 히지카타야?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손목을 부서질세라 움켜쥐며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어.


 "그러게 안기라고 할 때 안기면 좋았잖아."
 "....뭐? 뭐라고? 뭐라구요 사카타님?"
 

 분노에 거의 떨리기까지 하며 흘러나온 긴토키의 목소리가 너무나 어이없는 소리를 해대고 있어서, 히지카타는 저도모르게 하, 하고 웃음을 흘렸어. "무슨 개소리 한거야 지금?" 히지카타의 무례에도 눈썹하나 까딱않고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몸을 더욱 자기쪽으로 잡아당겼지.

 

 "널 안고싶다고 했을 때. 그때 네가 나한테 순순히 안기기만 했어도 너한테 반한 순진한 남자한테 손대는 헛짓꺼리따위 안했을거야."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 내 스스로 내꼴이 얼마나 웃겼는지.


 십년 전, 히지카타를 이용하는 계획을 짰을 때, 긴토키는 절대로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로 그들을 이용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어.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데에만 사용하고 그 비밀을 그저 보험으로써 가슴에 묻기로. 하지만 긴토키는 야마자키를 우롱하기 위해 그가 다루는 서류 하나를 빼돌리기 위해서 자신이 쥐고있던 비밀 중 하나를 이용해야만 했어. (즉 자신이 히지카타를 이용해 얻은 정보로 어떤 관리를 협박해 그 관리로 하여금 야마자키가 다루던 서류 하나를 빼돌리게 한 것임..) 그것이 긴토키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타격이었는지, 그것이 지금 긴토키에게 어떤 수치심을 주고 있는지. 하지만 히지카타는 그런 긴토키에게 조금도 연민을 느낄 수 없었어. 그저 그의 말에 심한 모멸감만을 느끼고 있었지.


 "...미친놈."
 "미쳤는지 안미쳤는지는 모르겠고! 젠장할, 진짜 알 수가 없네. 그 개나소나 다 안아본적 있는 몸뚱아리, 나도 한 번 만져보겠다는데 대체 왜 이렇게 비싸게 구는데? 심지어 내가 주인인데. 내가 그 몸의 주인인데, 왜 주인인 내가 안을 수가 없냐고? 너와의 약속따위가 다 뭐라고!"
 
 히지카타는 부들부들 떨었어. 오히려 히지카타가 더 알고싶었어, 그러는 당신은 대체 왜 이렇게 날 안고싶어 난리인건데? 진짜웃긴다.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니면 많은 사람들과 정사를 나누는 날 지켜보고 있었더니 괜히 근질근질해지기라도 한 거야? 나쁜놈. 넌 나쁜놈이야. 히지카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어. 긴토키앞에선 절대 울지 않아. 히지카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다짐들을 해왔었지. "이미 만져본적 있잖아. 사카타 긴토키님."


 "그건 십년전이고! 제기랄,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히지카타 토시로도 어마어마하게 변했을 거 아냐!"
 "난 변한 거 없는데."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남자에게 안기는 게 싫거든." "...!" 그리고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뿌리쳤어.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지. 히지카타는 이를 뿌득 갈며 뒤를 돌아 긴토키가 물어뜯은 목덜미를 긴토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옷깃을 내렸어. 사실은 그에게, 아직 전혀 낫지않은 상처를 보여주는 일은 하고싶지 않았어. 하지만 자신과의 약속(두번다시 자기를 안지않겠다는)이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된 상황에서 무엇이든 그를 막을 핑계가 되어준다면, 히지카타로써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이거 다 나을때까진 아무도 날 못건드리게 할거라며?"


 "그거 당신도 포함되는 거 맞지, 응?"
 "......"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보여준 목덜미를 바라보았어. 자기가 깨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부분이 붉게 짓물려 있었지. 주변의 살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어 상처는 마치 어제 만들어진 것처럼 묘하게 생생했어. 뭐야, 저거 왜저렇게 안 나아? 그렇게 세게 문 것도 아니고, 지금쯤은 치아자국 위에 딱지가 앉을터인데, 그러기는 커녕 저 여전히 흐물해져 있는 건 대체 어째서지. 순간 긴토키는 상처가 제대로 낫지않은 것에 당황했고, 그 당황을 빌어 히지카타는 완전히 긴토키에게서 떨어져나왔어. 그리고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더욱 노려보았지. 긴토키는 당황에 뻣뻣하게 굳었고, 그리고 히지카타는 뻣뻣하게 굳은 긴토키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어.


 "그리고 단언컨데, 사카타 긴토키님.


 나, 히지카타 토시로는 개한테도 소한테도 기꺼이 안기겠지만
 결코, 결코 결코 결코.
 결코


 결코 사카타 긴토키에게는 안겨주지 않을 거다."


 "너와는 절대로 안 자.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설사 네가 날 죽인다 하더라도."


 "네가 다른 누구를 죽여도, 위협해도, 절대로다."


 쏘아보는 눈동자가 단검이 될 수 있다면.
 내뱉는 말이 그자체로 오로지 진실의 모습만을 띈다면.


 그리고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어떤 반응을 보이기 전에 재빨리 뒤를 돌아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갔어. 그리고 문을 세게 닫고, 걸쇠를 잠구어버렸지. 자신의 방문을 잠그는 그런 행동을 하면 긴토키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었지만, 히지카타는 문을 잠그지 않을 수가 없었어.



 
 "...절대로?" 긴토키는 굳은 그대로 우뚝 서서 히지카타의 방을 바라보았어. 세게 닫히는 문, 걸쇠를 잠그는 소리, 그리고 그림자마저 너머로 사라져버린 히지카타 토시로. 긴토키는 눈을 깜빡였어. 심장에 콱하고 박힌 것은, 분명 못처럼 두껍고 긴 어떤 섬광같은 것이었지. 그리고 긴토키는 그것을 빼낼 수가 없었어. 긴토키는 힘없이 눈을 깜빡이며 다시 히지카타의 방을 쳐다보았지. 넌 날 싫어해. 넌 날 미워해. 십년동안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새삼 곱씹으면서, 긴토키는 하하, 하고 너털웃음을 흘렸어. 아니, 아니야. 넌 날 싫어하지 않아. 넌 날 미워하지 않아. ...넌 날 증오하는 거였군. 넌 날 증오하는 거였어. 파도가 절벽을 내려치듯, 비가 나무의 구멍을 파듯, 그렇게 날 증오하는 거였어. ...그래서? 그게 뭐? 이용하려고 주워온 녀석이 날 증오하는 게 당연한건데, 이제와서 그게 왜? 긴토키는 질끈 눈을 감았어. 아니야, 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 후회가 아니어야만 해. 이제와 후회할거였다면 이제와 이렇게 괴로운 생각이 들거였다면, 왜 나는 그 긴 십년동안을 그저 비탈을 구르는 돌마냥 그를 대해온 건데. 왜 중간에 멈추지 않았느냐고. "...흐흐흐." 긴토키의 웃음소리는, 그리고 허공을 울리며 오직 긴토키에게만 들려왔지. 그의 발치에 깔려있는 이 차가운 봄이라니.





 서둘러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와, 서둘러 문을 잠그고, 히지카타는 자신의 이부자리에 얼굴을 파묻은 채 덜덜 떨고 있었어. 그리고 빌고 있었지, 긴토키가 방으로 들어오지 않기를. 미친듯이 성을 내며 방으로 뛰어들어 오는 일만은 없기를. 그에게 들킬 순 없어. 그에게 이걸 들킬 순 없어. 이불위에 얼굴 전부를 묻고 히지카타는 자신의 콜록거리는 소리를 최대한 억제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어. 문밖으로 자신의 고통이 새어나가는 것만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되었지. 히지카타는 피를 뿜었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콜록거림이 반복될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피가 쏟아져나와 이불을 적셨지. 조금만 늦었어도 긴토키앞에서 각혈해버렸을 거야... 히지카타는 눈물을 떨구었어. 너무 아파. 고통스러워. 누가 살려주세요. 죽음은 조용히 와줘, 아무 고통도 없이 그저 조용히 와서 내 목을 뜨끔하게 베어버릴 뿐이라고 그렇게나 그렇게나 빌었었는데...... 히지카타는 이불을 잔뜩 잡아당겨 말아쥐고선 으흐흐흑, 하고 흐느꼈어. 그리고 우는 와중에도, 아무도 듣지않기를. 긴토키가 내 울음을 듣지않기를, 이대로 각혈이 끝난뒤에도 내가 기절하지 않을 수 있기를, 히지카타는 그저 그런 것들만을 반복하며 빌어야만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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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노 끝... 일단 졸려서 여기까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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