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귀족 긴토키와 남창히지카타 이야기 15

 


그래서, 이제, 긴토키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어. 히지카타는 오랫동안 혼자서 병을 앓고 있었지. 결코 낫지도 않을 불치의 병을. 그 병은 또한 긴토키가 히지카타를 오랫동안 혹사시켜서 앓게되었다는 것도. 그리고 히지카타는 병이 깊어질수록 그저 죽음으로 향하는 병을 혼자만 품은 채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어, 다가오는 죽음에 두려워하며 누군가에게 매달리지도 않고 그저 모든 것을 스스로 받아들였지. 그리고 평생 그 모든 것을 긴토키에게 비밀로 할 생각이었던 거야.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병의 원인은 그러니까 긴토키라는 사실도, 그 모든 것을.

 

 왜냐하면, 히지카타는 사실은 긴토키를 사랑해왔으니까.
 사실은 처음부터,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사랑했으니까.

 

 그가 나를 사랑했다고? 그가 나를 사랑했다니... 긴토키는 머리를 쿵쿵 찧으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어. 히지카타가 죽는다. 그가 곧 죽어. 그가 죽는다고? 그가 죽는다니... 긴토키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 이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 하지만 그러던 어느순간, 긴토키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어. 그가 자신에게 품은 그 깊은 감정도, 동시에 또한 자신도 품고 있었던 그 마음까지. 나는 너를 사랑해. 사랑해왔어. 그 마음에 조금도 거짓도 없었던 거야... 하지만 내가 왜 몰랐을까. 왜 난 그동안 아무것도 몰랐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너를 죽음으로 내몰아버리고 말았어.

 너를 사랑해. 하지만 내마음엔 이제 아무 의미도 남아있질 않는다. 네가 죽는다. 곧 죽어. 네가 죽다니. 네가 어디에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다니.

 

 무리야. 가능하지 않아. 도와줘. 긴토키는 이마에 피가 멍울질때까지 쿵쿵 머리를 내려찧으며 오열했어. 누군가 그를 살려줘. 그를 살리고 대신해서 나를 죽여줘. 제발 부탁이니까 나를 죽여... 나를 죽여줘. 나를 어서 죽이고 그를 살려줘. 히지카타를 살려줘...

 

 하지만 그 누구도, 긴토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어. 그건 불가능한 것이었으니까.

 

 그래, 그래서... 그래서, 긴토키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고, 그래서, 히지카타는 조만간 죽을 것이었어. 긴토키는 몸을 둥글게 말고 히지카타를 떠올렸어. 하얗고 창백한 히지카타. 너는 이렇게 몸을 작게 말고, 혼자서 고통스러워하며 그렇게도 울어왔을까? 아아, 너의 그 눈물. 너의 그 눈물방울. "토시로." 긴토키는 그의 이름을 중얼였어. 그 모든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들.

 


 

 

-

 

 날이 밝자마자 긴토키는 하인들을 시켜 짐을 꾸리게 했어. 그리고 야마자키의 편지에 적혀있는 장소를 찾아가기로 했지. 긴토키는 가마를 준비시켰어. 사실은 말을 타고 아주 빨리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긴토키는 그에게 주고싶은 게 참 많았거든. 짐은 간추려도 끊임없이 늘기만 했어. 긴토키는 또 어떤 하인을 시켜 색종이를 사오라고 했어. 될 수 있으면 많이, 다양한 색으로. 빨강 노랑 파랑과 주황, 그리고 보라색과 주홍빛, 하얗고 빛나고 그리고 그 모든 색을 담고있는 색종이를 들고서 긴토키는 가마에 올랐어. 야마자키와 히지카타는 수도에서 무척이나 멀리 떨어진 시골의 산으로 올라가는 길 중턱, 공기좋고 경치좋은 곳에 지어진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지. 긴토키의 가마가 그곳에 가기까지는 무려 5일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어. 그 시간동안 가마에서, 긴토키는 내내 종이를 접었지.

 

 5일하고도 낮, 긴토키는 그들의 집에 도착했어. 야마자키는 지쳐보이는 얼굴로 긴토키를 맞이했어. 히지카타의 병간호를 전부 직접하고 있을테니 그가 지치는 것도 당연하겠지. 긴토키는 어젯밤 제대로 자지 못해서 인가 아니면 내내 울어서인가, 어쩌면 그 둘다일까, 하여간 야마자키의 퉁퉁 부어있는 두 눈을 바라보며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입을 다물었어. "...방금 마악 낮잠이 들었습니다. 간밤에 거의 잠을 이루시지 못해서 될 수 있으면 깨우고 싶지 않아요." 야마자키는 무척이나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지. 긴토키는 야마자키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였어. 그리고 그의 뒤를 가만히 따랐어.

 

 이부자리에 누워있는 히지카타는
 그 어느때보다 고요해보였고
 평온해보였지.

 

 그가 정말 잠들어 있는 것일까. 이렇게  평온해보이는 히지카타는 일찍이 본적이 없는데. 긴토키는 하얗고 수척한 히지카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며 움직일 줄을 몰랐어. 야마자키는 하염없이 히지카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긴토키의 뒤에서서 그간의 일을 조곤조곤히 설명했지. 그의 머리가 짧아진 건, 긴 머리를 관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가 마른 건, 죽처럼 만들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고 그나마도 거의 입에 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긴토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지.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칼, 새하얀 얼굴. 창백한 입술. 그리고 뼈의 모양이 전부 드러나는 목선과, 거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숨소리와... 긴토키는 천천히 버선발로 그의 머리맡에 다가가 앉았어. 내가 그를 만져도 되는걸까. 내가 그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도 되는걸까. 아니, 난 아무것도 해선 안 돼. 긴토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어.

 

 야마자키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고요했어.

 

 "...제가 당신에게 우리들이 있는 곳을 가르쳐드렸다고 해서, 당신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는 건 사실 아닙니다. 긴토키님. 왜냐면 당신은 결국 또 늦고 말았거든요."

 

 긴토키는 손가락을 살며시 히지카타쪽으로 갖다대었지만 결국 그를 스치는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의 얼굴주변에 자신의 손가락을 맴돌게 했어. 내가 또 늦었다니, 긴토키는 소리없이 웃었지. 나는 그간 십년 내내 계속 뒤늦기만 했건만, 내가 또 늦었단 말인가. 내가 아직도 또 늦을 게 있단 말인가.

 

 야마자키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지. "약 일주일전부터 갑자기 시력마저 감소하더니.. 히지카타님은 이제 사물을 구분하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히지카타님은 지금 아무것도 보시지 못해요." 그리고 긴토키는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히지카타의 긴 속눈썹의 언저리 어딘가를 스치듯 만질 수가 있었어. 너의 그리운, 긴 속눈썹. 너의 촉감과 너의 향기. "그러니 당신은 결국 히지카타님께 아무말도 할 수가 없을거예요. 그는 당신이 이곳에 있는 것조차 모를테니까. 당신은 평생 히지카타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에게 말하지 못하고, ...당신은 평생 자신이 사실은 히지카타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할겁니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히지카타님에게 영영 알리지 못하는 거예요."
 "......"

 

 긴토키는 눈을 깜빡였어. 그리고 손가락 하나로 히지카타의 수척한 뺨을 쓰다듬었지. 하얀 뺨. 고요한 얼굴. 긴토키는 저도모르게 입을 열었어. 그의 목소리도 무척이나 나지막했지. "...그래. 다행이네." 그래, 다행이다. 나는 영원히 그에게 내 진심을 알리지 못한다. 그게 바로 나에게 주어진 벌이로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를 고통에 허덕이게 해주어서.

 

 나는 그에게 평생 사랑한단 말을 하지 못할 거야. 사랑한단 말은 커녕 미안하단 말조차 하지 못하겠지. 네가 죽어 없어진 세상에 홀로남아, 나는 영원히 고독속에 잠긴 채 살아가게 될 거야.

 다행이다.
 바로 그 고통이 내가 살아갈 유일한 이유가 되어줄거야.
 바로 그 고독이야말로 내 앞으로의 삶이야.

 

 내가 오랫동안 영원히, 그저 후회하며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긴토키는 눈을 깜빡였어.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선 꽤 큰 의지가 필요했지. "...야마자키. 넌 어떻게 이 모든 걸 알았어? 어떻게 나와 히지카타의 마음을 그렇게 금방 눈치챈거야?" 야마자키는 씁쓸한 웃음을 흘렸어. "...두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두사람 뿐일거예요." 긴토키는 희미한 소리를 내며 웃었어. 긴토키의 웃음소리는, 산중턱에 걸려있는 봄의 따스한 공기에 실려 천천히 흩어져갔고.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히지카타는 천천히 눈을 떴어. "...야마자키님?" 눈을 뜨자마자 히지카타는 야마자키의 이름을 불렀지. 늘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야마자키가 앉아있었기 때문에 습관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던 거야. 히지카타는 이제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지. 그는 촉각으로 느껴지는 인기척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어렴풋한 사람의 형상은 뿌옇게 흩어져 거의 보이는 것이 없었지. "...물을 좀..." 히지카타는 속삭였어. 남자는 서둘러 주전자을 들어 잔에 물을 담았어. 그 너무나도 서툰기색과, 요란한 주전자의 소리와, 당황하는 남자의 그림자. 히지카타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어. 남자는 한 손으로 히지카타의 등을 받히고 다른 한손에 들려있는 잔을 히지카타의 입술에 갖다대었지. 히지카타는 물을 천천히 마셨어. 다 마시고 난 뒤 히지카타는 흐릿한 남자의 그림자를 바라보았지.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물에 젖은 입술을 자신의 소매로 닦아냈어.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자신을 야마자키라고 착각하는 것에 이제는 화를 내지도 않았지. 긴토키는 그저 자신이 히지카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길 바랬어. 그를 위해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기를 바랐어. 히지카타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고, 긴토키는 순간 히지카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 하지만 히지카타의 두 눈동자는 뿌연 막이 씌워져 있어 그 눈동자 위엔 아무것도 어리지 않았더랬어. 긴토키는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어.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눈물이 쏟아져버릴 것 같았어.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올려다 본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어.

 

 "...야마자키님. 오늘은 물맛이 썩 좋지 못하네요. 별로 시원하지도 않고. 늘 약숫물을 떠오셨으면서 오늘은 다른 건가봐요?"

 "......" 긴토키는 대답하지 못하고 뻘줌해했어.
 히지카타는 곧 의아하다는 듯이 긴토키를 바라보았어.
 "어라,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언제나 바로 약차를 끓이셨으면서. 오늘은 약차를 끓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네요, 야마자키님?"

 

 히지카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긴토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그리고 마당으로 뛰어나갔지. 마당에서 둘을 지켜보고 있던 야마자키의 소리없는 지시에 따라 긴토키는 정신없이 약차를 끓였어. 하지만 평소에 긴토키가 그런 것을 할리가 없잖아, 어떻게 능숙할 수가 있었겠어. 덕분에 마당에서는 서툰 긴토키가 내는 온갖 잡소리가 다 울려퍼졌더랬지. 긴토키의 한차례의 고군분투가 끝나고 곧 긴토키는 약차를 들고 다시 방으로 뛰어들었어. 히지카타는 약차를 천천히 한모금을 마셨지. 그는 곧 미간을 찌푸렸어. "이것도 맛없네. 약차끓이는 솜씨가 예전보다 못하네요. 야마자키님."

 그리고 히지카타는 희미하게 어깨를 떨며 말했어. "근데, 오늘은 좀 춥네요. 어깨에 걸칠 기모노 한 장만 주시지 않겠어요 야마자키님?" 그리고 긴토키는 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마당에서 야마자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의 서랍을 열어 긴토키는 기모노 하나를 잽싸게 꺼내어 히지카타의 어깨위에 걸쳐주었어.

 

 히지카타의 부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어.

 

 "아, 역시 기모노보다는 이불 한장을 더 덮는 게 낫겠어요. 이불 좀 갖다주세요 야마자키님."
 "이건 너무 무거운데. 더 가벼운걸로 가져다주시지 않을래요?"
 "이건 감촉이 좀. 그냥 담요쪽이 더 나을 거 같아요."
 "야마자키님. 얼굴을 한 번 훔치게 수건에 물을 좀 적셔서 갖다주세요."
 "이건 너무 차갑네요."
 "와.. .이건... 화상입는 줄 알았네;;"
 "약차 한모금만 더 마셔도 될까요?"
 "음. 역시 너무 맛없다."

 

 "야마자키님." 그리고 히지카타는 또 긴토키를 불렀어. 긴토키는 소리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또 부르네. 아직 내가 너에게 뭔가 더 해줄 수 있는거구나. 네가 더 부탁할 게 남은거구나. 기뻐. 뭐야, 히지카타? 내가 또 무엇을 해줄까. 네가 웃어준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거야. 그 웃는 얼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히지카타는 희미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위로하고 새끼손가락을 맞붙인 채 손을 오므려 긴토키가 있는 쪽으로 뻗었어. "오늘은 뭐 없나요?"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했어. 긴토키는 눈을 동그랗게 떠서 무언가를 바라는 듯 뻗어오는 히지카타의 손과 히지카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지. 히지카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어. 긴토키는 당황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고.

 

 그리고 곧, 히지카타의 입술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지.

 

 "긴토키. 뭐 가지고 온 거 없어?"
 "......"

 

 긴토키는 숨을 삼켰어.
 토시로.
 토시로.
 토시로, 알고있었어?

 내가 누구인지, 사실은 알고 있었던 거야?

 

 당연히 처음부터 알고 있으셨겠지. 히지카타님이 당신과 나를 착각할리가 없잖아. 마당에서 조용히 둘을 지켜보고 있던 야마자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어. 긴토키는 아랫입술을 부들부들 떨었어. 눈물이 핑 돌아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궈버릴 것 같았어. 긴토키는 그것을 참으려고 얼굴에 힘을 주며 콧잔등을 잔뜩 찌푸렸고 곧 코끝이 새빨갛게 물들었지. 긴토키는 아랫입술을 덜덜 떨며 소매안에 넣어둔 것들을 꺼냈어. "저기, ...음," 입술이 떨리고, 또한 마찬가지로 목소리도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긴토키는 헛기침 한 번으로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지.

 

 "저기.. 음, 히지카타야. 그게, 긴상은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잖아."
 "응."
 "그래서 나는 전에 야마자키에게 물었던 것 그대로 가지고 왔거든. 근데 나 또 실패했어."

 

 "너는 이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데." 그리고 긴토키는 소매에 넣어왔던 것을 히지카타의 동그란 손바닥 위에 내려놓았어. 그 가볍고 많은 것들은 우수수 쏟아져 히지카타의 손바닥위에서 넘쳐 아래로 아래로 굴러떨어졌지. 그것은 마치 공기처럼 가벼웠고 무척이나 바스락 댔어. "...? 이게 뭘까." 눈이 보이지 않는 히지카타는 오로지 감촉만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고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지. 긴토키의 목소리는 결국 떨린 채 흘러나왔고. "향기가 하나도 없어서, 또 이렇게나 아무 소용도 없는..."

 

 "긴토키. 이게 뭔데."
 "조, 종이꽃..."

 

 긴토키는 간신히 말을 내뱉었어. 그것들은 가마에 있는 내내 긴토키가 접었던 종이꽃들이었어. 그야말로 겨울의 봄의, 여름의, 가을의 꽃들이었지. 형형색색의 빛깔을 한.

 

 그리고 히지카타는 환하게
 마치 꽃이 피는 것처럼
 웃었어.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웃었어.

 

 "좋다." 그리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히지카타를 바라보며, 결국 긴토키는 눈물을 떨구었어. 사랑해. 사랑한다. 토시로, 사실은 처음부터 너를 사랑했어. 가장 너를 처음 본 그순간부터 나는 너를 사랑했던 거야. 하지만 긴토키는 그 속으로 외치는 말들을 결코 밖으로 토해낼 수가 없었어. 그래선 안 됐어.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허락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긴토키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거야.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미안하단 말도 할 수 없어. 긴토키는 눈물을 연거푸 흘렸어, 히지카타는 자신의 손바닥위의 종이꽃들 위에 뺨을 갖다대며 종이꽃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 히지카타에게 자신이 울고있단 사실을 긴토키는 들키고싶지 않았어. 결국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다리가 있을 어딘가에 이마를 대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야 말았어. 긴토키의 흐느끼는 소리는 숨소리 아래로 가라앉고, 그의 등만이 희미하게 떨렸지.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머리를 바닥으로 낮췄다는 것을 그가 움직이는 소리로 눈치챘어. 히지카타는 손에 들고있던 종이꽃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뻗어 긴토키의 머리가 있음직한 곳을 더듬었지. 히지카타의 손끝에 금세 긴토키의 곱슬거리는 머리의 감촉이 닿았어. 히지카타는 천천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긴토키. 내가 전에 이런 말 했었던가?" 긴토키는 울음을 삼키며 간신히 떨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뱉었지.

 

 "응? 어떤 거?"
 "내가 사실은 당신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썩 좋아했다는 거."
 "...아니. 너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응? 한 적없어?"
 "응. 한 적 없어."
 "와... 그 십년세월동안 나 대체 뭐한거야. 그런 말도 한 번 안하고."
 "나야말로. 나야말로 대체 그 십년세월동안 뭘한걸까."
 "헛짓했지 뭐."
 "그러게. 삽질했네 진짜."

 
 히지카타는 키득거렸어. 긴토키는 그의 키득거리는 소리를 영원히 듣고 있고싶었어.

 

 "히지카타. ...토시로."
 "응."
 "좋다. 좀 더 쓰다듬어줘."
 "저런저런. 환자를 혹사시키는 게 어딨나..."
 "뭐 어때. 내가 널 혹사시킨 게 어디 한 번 두 번인가."
 "것도 그러네."
 "토시로야."
 "왜 자꾸 부르실까."
 "역시 너, 한번만 더 안겨주면 안될까."

 

 역시 한 번만 더 안아보면 안 될까. 토시로, 한번만 더 안겨줘. 딱 한 번만. 제발, 한번만 더 널 품에 안게 해줘. 제발.

 

 그리고 히지카타는 희미하게 웃었어. 손가락 사이에서 출렁이는 긴토키의 머리칼은 꼭 바람이 스치는 부드러움과 닮아 있었어. 이 모든 것을 가지고 가자.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였지. "응. 안 돼." 응. 안 돼. 절대로. 그리고 히지카타의 대답에, 긴토키는 또 눈물을 한방울 흘렸어. 그의 곧은 콧날 끝으로 굴러떨어진 눈물방울이 맺혔지. "그래. 역시 안되나..." 그래. 역시 안되나. 응. 안되는 거구나. 그래. 알았어. 긴토키는 눈을 감았지.

 

 둘을 지켜보고 있던 야마자키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어.
 그리고 고개를 들었지.
 파랗고 높은 하늘. 고요하고 청명한.
 ...아름다워. 야마자키는 그렇게 중얼거렸어. 그의 발치로, 또한 봄의 햇살이 쌓여갔고....

 

 

 

 

 

 

 


-

 

 

 

 몇년이 흘렀을까. 사카타 긴토키가 수도에서 사라지고 몇년후, 야마자키 사가루가 돌아왔더랬지. 하지만 수도의 귀족들은 사카타 긴토키와 야마자키 사가루 사이에 접점을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긴토키의 실종과 야마자키의 귀환을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았어. 그들은 그저 사카타가 어디에 있을까를 끊임없이 궁금해했지. 더 정확히 말하면 사카타 긴토키와, 히자카타 토시로의 출저를. 야마자키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어느날이련가. 야마자키가 홀로 술을 마시다 취해, 옆자리의 사람을 붙들고 이런 넋두리를 하였던 것은.

 

 눈을 감고 누워있는 히지카타의 얼굴은 그 어느때처럼 너무나 고요하고 평온하여, 마치 내일이면 다시 눈을 뜰 것처럼 보였다고. 하지만 긴토키와 야마자키는 그가 다시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지. 긴토키가 그를 위해 만든 무덤은 너무나 조촐하고 특징이 없어, 마치 언젠가 히지카타님이 만든 무덤 일곱개와 너무나 닮아있었더랬다. 그리고 그 시골의 산중턱, 공기좋고 물좋고 풍경좋은 어느 곳에 세워진 작은 집에서, 사카타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무덤으로

 

 겨울에는 겨울의 꽃가지를, 봄에는 벚꽃가지, 여름에는 장미. 가을에는 국화를 가지고 가겠지. 매일매일 변함없이.
 

 그의 앞으로의 삶에 주어질 단하나의 은총인, 죽음이 찾아올때까지.

 

 히지카타에게 달려가 그를 안으며 평생 그를 사랑해왔다고 외치는 그 날이, 그것이 허락되는 그 날이 꼭 찾아올 때까지.

 

 

 그리고 야마자키의 넋두리를 듣는 것에 지친 옆자리의 사람이 가버리고 텅 비어버린 의자를 향해, 야마자키는 또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어.

 

 

 동백, 수선화.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개나리와 민들레. 진달래, 유채꽃.
 목련, 모란, 패랭이꽃. 금낭화.
 그리고
 메꽃과 나팔꽃, 또 장미와, 또 벚꽃, 그리고 또, 또...

 

 

 

 

 

 

 

 


- done

 

드디어 끝났습니다! ㅠ 길었네요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아 이걸 트윗롱거란 트위터시스템에서 쓰다가 날려먹어가지고..ㅋ.. 내가 전에도 트윗롱거에서 장썰풀다가 한 번 날린적이 있었는데 그걸 또 까먹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아 어리석은 인간이여..ㅋㅋㅋㅋ 그래서 헐레벌떡 같은 내용 처음부터 한번 더 씀 ㅋㅋㅋ 또 날릴까봐 무서워서 메모장에다가..ㅋ..ㅋㅋ.. 아 이게 무슨 노가다란 말인가. 마음껏 날 바보라고 욕해도 됩니다 여러분..ㅇ<-< 그래서 두번째 쓰는 거라 넘 힘들고 지쳐서..ㅋ 첫번째로 썼던 거보다 여러모로 생략을 해벌임..ㅋㅋ 그래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하여간 재밌게 봐주시면 기쁘겠네요. 
 

 걍 후회공 긴토키를 풀고싶었던 거람.

 기본적으로 강경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후회공은 초반에 강경하게 수를 휘두르는 부분이 나와야하잖아. 그래서 후회공 좋아하긴 하는데 강경하게 나오고 막 심하게 대하고 이런 부분을 쓸 자신이 없어서 후회공을 써본적이 거의 없는 거 같다.

 

ㅎㅎ 쓰다보니 또 재밌더라? ㅎㅎㅎㅎ 역시 긴히지is뭔들인걸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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