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긴x히지ts. 소재주의)

 

 




 히지카타야. 슬슬 임신 안할래?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셔츠 앞 단추를 풀면서 중얼거렸다. 히지카타는 자기의 셔츠 단추를 푸는 긴토키의 손가락을 집중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긴토키는 늘 놀랄만큼 손끝이 섬세했다.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그 기다랗고 일을 많이 해서 울퉁불퉁해진 손가락으로 작은 일을 조물조물 해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단추를 직접 풀어주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이순간은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수지가 맞아떨어졌다고 할 것이었다. 긴토키는 언제나 히지카타의 셔츠를 가장 위에서 것 부터 풀었고 그 순서를 꼭 지켜내는 것에 어떤 이유라도 있는건가 싶었지만, 히지카타는 그것에 대해 아직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히지카타는 가장 아래 단추를 열기 위해서 자신의 셔츠를 상당히 위로 잡아든 긴토키의 아래로 향한 시선을 더듬어 보고 싶어서 고개를 슬쩍 숙여보았지만, 그래도 긴토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긴토키가 대체 무슨 표정으로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건지가 궁금했는데. 히지카타는 대신에 은발사이로 비죽 튀어나와있는 새빨간 귓불을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했다. 히지카타는 손을 뻗어 긴토키의 왼쪽 귓불을 손가락으로 문질문질거렸다. 다시.


 히지카타가 말했고, 긴토키는 달달 떨리는 손가락으로 겨우 마지막 단추를 여는 데에 성공한다. 뭐라고, 요녀석아? 목소리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태연했다.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이며 긴토키의 귓불을 문지르는 데에 집중했다. 새빨간 귓불은 무척이나 말랑했고 만지는 촉감이 좋았다. 긴토키는 귀가 예민했다. 목덜미를 타고 소름이 오소소소 돋고 있는 것을 아마 간신히 참고 있는 것일 거였다.  히지카타는 다시 한 번 눈을 깜빡이고 또 그 냉정한 목소리로 그를 향해 말을 던졌다. '내 아를 낳아도' 류의 프러포즈가 세상에서 제일 최악인 거 모르냐? 다시하라고.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셔츠자락을 움켜쥔 채 번쩍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콧잔등을 잔뜩 찌푸린 채의,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거야 고추장통에라도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긴토키씨가 이틀밤이나 안자고 고른 섬세한 대사란 말이야!! 이 섬세라고는 1도 없는 여자야!!


 히지카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니 사정이고, 이 남자야.


 그, 그렇게 대단하면 니가 하라고! 나 역시 너의 프러포즈를 기다렸는데, 기다리다기다리다 망부석 되겠다 요녀석아! (망부석은 성별상 니가 쓰는 단어가 아니라 내가 써야되는...) 시꺼라, 먼저쓰는 사람이 임자지! 진짜 긴상 없는 머리 억지로 쥐어짜서 겨우 만든 프러포즈 문구였는데 그렇게 단호하고도 매몰차게 잘라내질 않나, 뭐? 다시? 다시하라고? 인마 내가 무슨 프러포즈 찍어내는 기계인 줄 알아! 다른 문구 생각해내려면 이번엔 삼일 밤낮을 새야 돼요!


 그래? 그럼 삼일 밤낮 새면 되겠네?


 여기서 삼일이나 더 밤을 새면 긴상은 발기부전이 될거야!


 그렇게 외치고,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끌어안았다. 얇은 허리는 처음 그녀를 안았을 때보다 더 얇아져 완전 한줌거리가 되어 있었다. 긴토키는 여린 피부, 얇아져 더욱 핏줄의 길마저 선명하게 보이는 그녀의 어깨위에 입술을 누르며 그녀의 셔츠를 들어올려 안쪽의 그녀의 등을 더듬었다. 땀이 맺혀 촉촉한 피부위로 척추의 모양이 만져졌다. 첫번째, 두번째. 손가락을 타고 그녀의 척추를 더듬어 올라가, 긴토키는 한손으로 능숙하게 그녀의 브라끈을 풀었다. 브라는 툭,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녀의 작은 가슴을 가리고도 브라는 한참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히지카타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보이는 그녀의 갈비뼈모양은 꼭 긴토키가 웃을 때의 입모양을 닮아 있었고, 긴토키는 그것이 내심 자랑스러웠다. 히지카타는 자신의 등줄기를 더듬는 긴토키의 손가락이 간지러운 듯 가느다란 웃음소리를 흘렸다. 네가 발기부전이면 그건 좀 나한테 손해이긴 하네. 히지카타는 눈을 구부리며 그렇게 말했고, 긴토키는 그녀의 톡 튀어나와 있는 쇄골을 핥았다. 쇄골에 고인 땀방울은 거의 아무맛이 나지않았고, 아주 조금 찝질하였다. 그래. 아쉽지? 암만, 아쉬울 거다. 긴토키는 그녀의 얇은 목덜미에서 입술을 떼어내고 그녀의 작은 입술을 위를 더듬었다. 보물처럼 상냥하고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훑는데, 아, 왜 그녀의 혀는 이렇게 작아 조각같을까. 어째서 매번 안을 때마다 점점 더 한줌같아질까. 이러지 마. 히지카타야. 긴토키는 두려움에 떨었다. 긴토키는 지갑안에 있는 남은 지폐, 집 안 여기저기에 숨겨놓은 비상금을 전부 털어 체중계를 사왔다. 그 체중계에 올라갈때마다 히지카타가 토해내는 숫자는 늘 끝자리가 조금씩 줄어들어 갔다. 57, 51, 49, 44. 세상 가득히 히지카타 토시로가 있기를 원하는 긴토키에게 있어, 히지카타가 토해내는 몸무게숫자들은 마치 청천벽력처럼만 느껴졌다. 히지카타 토시로가 점점 줄어가는 것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긴토키는 결국 프러포즈의 문구를 고민했다. 정말, 이틀밤낮을 자질 못하였다. 졸려하는 신파치와 카구라를 흔들어 깨우면서 같이 고민해주길 부탁하기도 했다. 카구라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왔던가? 신파치의 입에서는 대체? 놀랍게도 신파치는 '내가 히지카타씨였다면 듣고싶은 프러포즈' 를 상상하였고 카구라는 '내가 긴토키였다면 히지카타에게 하고싶은 말'을 상상해주었다. 긴토키는 둘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자기에게 듣고싶은 게 무엇인지 상상할 생각도 못했고, 또한 자기가 히지카타에게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상상하지조차 못했다.


 그저 히지카타 토시로가 조금씩 줄어드는 이 상황만이 너무 무서워서, 긴토키는 한껏 현재를 끌어안았다.

 고작 그것밖에는 못하는 놈이었다.

 

  히지카타는 숨에 부친 듯 목줄기를 떨었다. 긴토키의 긴 키스를 그녀는 언제나 감당하지 못했다. 긴토키가 강제로 넘긴 그의 타액을 꿀꺽 삼키면서 히지카타는 주먹 쥔 손으로 긴토키의 어깨를 통통 내리쳤다. 그녀의 손은 마치 솜털같았다. 긴토키는 그녀의 뒷통수를 감싼 채 겨우 그녀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어냈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히지카타는 콜록거렸고 콜록거릴 때마다 목덜미가 붉게 부풀었다. 긴토키는 마치 사과를 배여먹듯 그녀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리고 흐르는 그녀의 타액을 핥으며, 젖은 아랫입술을 쭉쭉 빨았다. 그만... 히지카타의 거절하는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긴토키는 두손으로 그녀의 등을 끌어안았다. 가득 끌어안았다.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아, 긴토키는 이부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히지카타를 자신의 무릎위에 앉혔다.


  프러포즈 해줘. 히지카타야.


 히지카타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안은 남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의 무릎위에 앉은 덕분에, 그보다 앉은 키가 높아진 히지카타는, 왠지 퍽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긴토키를 이렇게 내려다볼 수 있다니, 좋은 기분이었다. 히지카타는 작은 입술을 모아 후후, 하고 소리를 내어 웃으며 긴토키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그의 미간, 그의 눈썹, 그의 콧날. 그의 인중. 긴토키는 그녀의 덜렁거리는 브라컵을 위로 올리고 그녀의 한쪽 젖가슴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가슴이 작아 긴토키의 큰 손에 여유가 상당히 남아 있었다. 긴토키는 손바닥 전체로 그녀의 한쪽 가슴을 감싸고 조금 조물거렸다. 얇고 여린 살가죽 안쪽으로, 뼈가 만져졌다. 히지카타는 눈을 더욱 가느다랗게 하고서 긴토키의 어깨위에 두 손을 올려 그를 안았다. 긴토키의 눈꼬리가 촉촉히 젖어가는 것이 참 싫어서, 히지카타는 슬쩍 긴토키의 눈을 핥았다.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눈을 핥을 때마다 한쪽 눈을 깜빡였고, 그것은 꼭 윙크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싫은데.


 히지카타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상냥한 얼굴이었다. 긴토키는 볼이 홀쭉이 패인 히지카타의 얼굴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싫은데?


 아이 낳기가 싫어서.


 그래?


 응. 잘 키울 자신도 없고, 잘 돌볼 자신도 없고.


 ...뱃속에 10개월을 잘 간직하고 있을 자신도 없고. 긴토키는 눈을 깜빡였다. 히지카타는 웃었고, 그 얼굴은 태연했지만, 어쩌면 조금 슬퍼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프러포즈 문구는 그러니까 정말로, 완전히 실패였다. 긴토키의 태어나서 처음 한 프러포즈는 그러니까 개박살이 났다. 긴토키는 어리석은 자신을 저주했다. 그 말은 그러니까, 그냥, 긴토키의 소원만이 담겨져 있을 뿐이었다. 네가 아이를 배면 적어도, 네가 10개월은 살아있을 거라고 안심할 수 있는 사카타 긴토키. 사카타 긴토키는 그런 자기자신의 미래를 바란 것이었다.


 미안해.


 긴토키는 눈썹을 여덟팔자로 내리고 중얼거렸다. 히지카타는 다시 웃었다. 긴토키는 모르겠지만, 그는 종종 예전에는 하지 않던 '미안해'를 입에 올리곤 했다. 그럴때마다 히지카타는 4개월전에 의사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끊었던 담배의 맛을 다시 떠올리곤 했다. 긴토키 못지않게 히지카타도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남자와 여자같은 건 상관없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던 그 때로. 히지카타의 얼굴에 태연히 주먹으로 만든 상처를 남기고, 히지카타의 검은 태연히 긴토키의 어깨를 베던 그 때로 말이다. 히지카타는 여덟팔자로 구부러진 긴토키의 눈썹을 양손으로 꾸욱 누르며 후후 웃었다. 귀엽네. 강아지같아. 아, 강아지치곤 너무 나이가 많나?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젖가슴에 입술을 묻었다. 긴상 아직 이팔청춘이야 요녀석아. 자신의 유두를 깨무는 긴토키의 머리를 양손으로 끌어안으며, 히지카타는 킥킥댔다. 아무리 그래도 이팔청춘은 너무 양심이 없네.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가슴과 가슴사이에 붉은 키스마크를 남겼다.

 그 자국이 영원히 그곳에 있으면 했다.


 그녀의 얇은 몸을 꽈악 끌어안고, 긴토키는 중얼거렸다.


 히지카타. 결혼해줘.


 ......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였다.


 긴토키의 머리칼이 맨살에 닿아 간지럽다고 잠깐 생각했다.


 히지카타는 문득, 눈 딱 감고 모른 척, 이 남자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여버릴까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 전부 편해지고 싶었다.


 앞으로 있을 모든 힘든일을 이 남자에게 떠넘겨버리고 나는 편해져버리고 말자. 긴토키는 분명 잘해낼 것이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강하고, 그는 놀라울 정도로 상냥하니까. 분명 모든 상황을 묵묵히 견뎌내겠지. 모든 힘든 상황에서도 나에게 잘해주겠지. 혼자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겠지. 그리고


 그리고 죽은 내 무덤 앞에서야 겨우 눈물을 떨구겠지.


 ......


 그리고, 히지카타는 웃었다.


 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편해지자 생각하는 바로 그순간에, 히지카타는 히지카타 토시로의 무덤앞에 서 있는 사카타 긴토키를 떠올려버리고 만다. 그럼 도저히, 도저히 긴토키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히지카타는 오늘도 긴토키의 목을 끌어안는다. ...다시. 다시 생각해와. 처음부터 다시.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귀에 대고 그렇게 속삭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늘 하루도 겨우 넘긴 것이다. 그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고, 어떻게 간신히.




 

 

 

 

 

 

 

- done

 

...그냥 프러포즈 받아줘라 히지카타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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