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날,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너는 우산이 없었다

(히지카타 토시로 ts)

 

 사실 나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위로가, 나를 위해 기꺼이 상냥해질 수 있는 사람이 주는 아주 작은 위로가 필요했을뿐이었다. 그리고 여자의 몸에는 바로 그 기분전환, 바로 그 아주 작은 위로가 밀집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때때로 마음이 차가워 질때마다 여자를 찾게될 수 밖에. 여자의 몸은 아주 단호하지만 그럼에도 또한 부드러운 곳은 닿으면 그대로 같이 녹아버릴 것처럼 부드러워서, 또한 단호한 구역조차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부드러워지곤 하니 더욱 좋은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 여자는, 툭 까놓고 말해 단호한 곳이 거의 없기도 하였다. 거기에 플러스,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조금도 없었다. 아! 편한지고. 그래 나는 위로를 받고싶은거지 위로를 주기위해 애쓰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고, 그녀는 그런 나의 마음을 민감하게 읽어내 내가 원하는 대로 날 대해주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만나는 밤마다 늘 호텔 침대위에 죽은 동태처럼 두 팔을 벌린 채 가만히 누워만 있고, 내 배위에서 그녀만이 끝없이 농후한 춤을 춰주곤 한다. 그래, 흔들리며 녹아가는 그녀. 내 배위에서 춤추다 내 가랑이사이로 사라졌다 다시금 고개를 들며 머리카락을 뒤흔드는 그녀. 그녀의 달콤한 목덜미의 맛과 그녀의 둥그런 가슴의 둔덕. 그리고 부드러운 전신.

 

 아. 망할.

 피곤하다.

 지쳐.

 

 그녀가 지구상에서 가장 싫은 인간이 되어버렸다.

 

 

 

 

 

 

 

 

 밖에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 넣어둔 삼단 접이식 우산을 펼치고 머리위로 들었다.

 

 제멋대로라는 자각은 하고 있다. 오늘 그녀에게 만나자고 연락한 것은 바로 내쪽이기도 하였거니와. 그러니 날 위해 최선을 다한 그녀에게 이런 감상은 진짜 쓸게 못되는 못된 녀석의 발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녀에게 지쳐버렸다. 뭐가 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의 익숙한 자태가 이제 지겨워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익숙한 자태란 그녀가 '사카타 긴토키'에게 익숙한 자태인 것이 아니고 그저 '남자'에게 익숙한 자태란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점이 좋았다. 그 점이 매력이었다. 그런데 이제와 이 제멋대로의 생각은 대체 무엇인가. 그래. 맞다. 제멋대로이다. 제멋대로라고 자각하고 있다고 했잖아. 난 제멋대로다. 긴상은 이렇게 자기멋대로입니다. 그래도 그녀가 섹스 후에 샤워를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옷을 꿰입고 호텔문을 박차고 나오는 그런 짓은 역시 하지 말 걸 그랬다. 샤워하고 밖을 나오니 침대위에 아무도 없다니 그녀가 얼마나 황망하고 부끄러웠을까. 여자에게 못할짓을 너무한 것이 아닌가. 늦은 밤의 네온샤인의 불빛을 따라 걷는동안 전화기에 불이 날 것처럼 벨이 울렸는데, 확인 한 번 하지 않았지만 아마 그녀일 것이다. 불같이 타오르는 폰의 벨소리는 꼭 그녀의 성미를 닮았다. 나는 폰을 받지도 끄지도 않은 채 그렇게 울게 내버려두었다. 열번의 신호음, 끊김, 다시 걸려오는 신호음, 이번에는 일곱번, 그리고 다시 끊김. 횡단보도까지 걸어올 동안 그녀는 나에게 약 여섯번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미친 문자음소리. 어떤 기상천외한 욕이 적혀있을까. 나는 신호가 바뀌기를 멍하니 기다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는 괜찮을 것이다. 나라는 오점은 그녀의 인생에 정말 손톱만큼의 티끌, 가벼운 점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나를 향해 엄청난 욕을 쏟아붓고 폰에 내 이름을 삭제하고 다음날이면 그녀는 봐, 벌써 날 잊어버리고 그냥 끝이잖아. 그녀에게는 나말고 여러명의 남자가 존재한다. 그 남자들은 (물론 나를 포함해서) 서로가 서로를 모르지만 그래도 서로의 존재정도는 인식하고 있다. 그녀에게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고 그녀가 거절할 경우 우리들은 상대의 남자의 존재를 그때에 민감하게 인식하게 된다. 최근 나는 그녀가 나의 문자에 o.k라는 답을 할때마다 '아, 오늘은 다른 남자에게서 연락이 아직 없었나보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그러니까, 괜찮아. 그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아주 작은 위로를 바랬다.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 내려주는 정도의 위로를.

 그녀에게 바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피곤하다. 머리가 전혀 돌지 않는다. 나는 주차장에 서서 멍하니, 비어있는 오른손으로 지친 눈꺼풀을 꾸욱 누르며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말았다. 다시 눈을 뜨면, 바로 내집.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타서 삼십분, 도보로 십오분을 더 걸어야만 집으로 도착할테니까. 그래도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나도 모르게 그 환상을 진심으로 빌면서.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환했다.

 

 

 

 

 그래 맞아, 내가 바라는 위로란 바로 저런 거였다.

 

 파란 밤하늘에 어둠이 아주 조금씩 녹아와 감색으로 물드는, 바로 그 순간과 같다.

 바로 그 순간에 하늘 위에 구름이 아주 얇게 퍼져서 이어져 있는데, 밤이 밀려와 구름이 반쯤 하얗고 반쯤 파랗고 반쯤 감색으로 물드는데

 그 촘촘한 구름 사이로 아직 남은 노을빛이 쏟아지는 바로

 그 순간과도 같은

 

 그런 위로가 필요했었다.

 

 바로 너와 같은.

 

 

 

 

 

 비오는날,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너는 우산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비를 만났던건지 정류장 아래에 몸을 피한 채 너는 볼품없이 젖어 뺨이나 목덜미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있었다. 전부 젖어서 아래로 축 처져 있는 검은색 머리칼은 비단처럼 물기가 반짝였다. 너는 머리채를 전부 손으로 움켜쥐고 두 손으로 머리를 꽈악 짰다. 물기가 후두두두 떨어졌다. 바닥을 차고 다시 튀어오르는 물방울들. 그리고 어깨에 맺혀있는 물기를, 세라복의 리본도 전부 풀어버리고, 너는 스커트 위에 고여져 스커트 색이 달라진 온통 달라진 한쪽면도 꽉 쥐고 물기를 꾸욱 짜냈다. 그 반동에 스커트가 말아올라와 허벅지가 보이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 채.

 

 안 돼.

 그 다리를 보이지 말아줘.

 다른 사람에게.

 

 그 젖어서 진해진 감색 스커트 아래의 투명할만치 하얗고 앙상한 다리 위 얇은 핏줄이 꿈질대는 조막만한 허벅지를 남에게 보여주지 말아줘. 젖은채라 싫겠지만 그래도 어서 그 스커트를 다시 내려. 내려서 완전히 펴. 머리카락도 그렇게 한쪽으로만 전부 쓸어내리지 말아. 물에 젖어 더욱 새카매진 머리칼때문에, 아주 살짝 보이는 목덜미가 더욱 하얗다. 안 돼. 세라복 단추를 빨리 다 잠궈. 그리고 그 망할 리본을 다시 단단히 묶으란 말이야. 안 돼. 미쳤구나.

 

 진짜 미쳤구나.

 사카타 긴토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아이의 어깨위에 내 트렌치 코트를 덮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밤이라 다행이지, 분명 그녀의 비에 젖은 등에 그녀의 어깨가 움츠러들면 들수록 더욱 등위로 상의가 달라붙어 그녀의 속옷이 비쳤을 것이다. 그건 절대 두고 못본다. 그래서 나는 완벽하게 오늘 처음 본 십대의 소녀의 등위에 내 트렌치 코트를 덮어준 것이다. 이 코트가 세일없이 초정가로 주고 산 6개월 할부의 주인공이라던가, 사실은 젖은 옷 위에 마른 옷을 입어봤자 몸에 달라붙는 찝찝함만 배가 될뿐 하나도 감사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따위는 순간에 전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새까맣고 작은 눈으로 젖은 앞머리칼 사이로

 날 노려보았다.

 

 조막만한 입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 변태새끼. "

 

 " ...... "

 

 좋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하하하고 웃고마는

 

 정류장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 처량한 가을밤이여.

 

 나는 어느덧 미친 듯이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 done

 

+ 0ㅅ0... 나는 대체 ts를 얼마나 좋아하는 건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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