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 토시땅, 라면 끓여줘. "

 

 " ...... "

 

 또? 라고 대번에 생각했지만, 히지카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히지카타는 평소보다 두배정도 커진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긴토키의 아주 좁고 둥그런 어깨너머로 얇고 가느다래진 꼬맹이 그림자를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그림자는 겨울날의 쌀쌀하고 맑은날씨에 묘할정도로 선명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은색으로 몽실거리는 사카타 긴토키의 머리칼보다도 더. 히지카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긴토키의 서있는 키에 맞추기 위해 꼬마의 앞에 다리를 접고는 그대로 손을 뻗어 긴토키의 왼쪽뺨을 꼬집었다. " 아얏! " 꼬맹이의 소프라노 목소리. 아아 꼬맹이의 볼살은 찰떡처럼 쭉쭉 늘어나는구나. 히지카타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긴토키의 뺨을 꼬집은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었다. 히지카타는 자기가 평소보다 두배이상 눈을 크게 떠봤자 눈앞의 초딩꼬마만큼 눈매를 동그랗게 만들 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렇게나 자란 은발의 곱슬머리 사이사이로 슬그머니 감춰진 긴토키의 눈동자는 정말로 크고 환했다.

 

 " '히지카타씨, 라면 끓여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처먹을 테냐 요녀석아? 자, 다시 한 번. "

 

 " 아그그그 아그그그그극... (히지카타씨, 라면 끓여주세요 부탁이에요..) "

 

 " 좋아. 하면 되는 아이잖아. "

 

 그리고 히지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몽실거리는 긴토키의 머리위를 통통 두 어번 내리쳤다. " 신발벗고 들어와. " 퉁퉁 부운 왼쪽뺨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금방이라도 닭똥같은 눈물을 떨어뜨릴 기세였지만 기어코 울지 않으려고 콧잔등을 잔뜩 찡그리며, 긴토키는 훌쩍였다. " 무슨 여자 손이 이렇게 매워, 토시땅은 왜 적당히란걸 모르는거야... " 그리고는 운동화를 벗으며 눈가를 부벼댄다.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중얼이는 불만을 못들은척했다. 그리고 내심 피식하고 웃었다. 잔뜩 찡그린 콧잔등이 새빨갛게 물드는 것조차 귀여워보이는, 초등학생이란 어쨌든 실보다는 득이 많다. 아이가 질색인 나조차도 네가 이렇게 귀여워보이는데 오죽할까. 히지카타는 천천히 가디건의 소매를 걷었다.

 

 

 

 

 

 

 

 방학동안의 보충수업이 끝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거다. 원래부터 빌라의 옆옆옆 이웃사촌인 사카타 긴토키는 히지카타 토시로에게 자주 엉겨붙는 아이였지만 방학기간이 되자 그 빈도수가 지나칠정도로 심해졌다. 히지카타는 매일같이 긴토키의 수발을 들어주는 것에 대한 의아심을 감출길 없는 표정인 채로 라면봉지를 뜯었다. 학기중에야 아침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니 어린애와 놀아줄 시간이 거의 나질 않지만 방학기간에는 보충수업도 아침 4교시밖에 없고 히지카타는 학원에는 다니지 않으니까, 긴토키와 놀아주는 것이 꼭 필연적인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었다. 어쨌거나 긴토키가 늘 기다렸다는 듯이, 히지카타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집밖 문을 두드리곤 하니까. 초인종에까지는 아직 키가 닿지않아 늘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쥐고 현관의 문을 콩콩콩하고 두드린다. 빌라는 오래됐고 방도 아주 작아 문밖을 두드리는 것이 어쩌면 초인종을 누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지도. 그래서 히지카타는 늘 교복을 갈아입기도 전에 긴토키를 맞이하게 되었고,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점심메뉴를 외쳐댔다. 히지카타도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으로 긴토키의 머리를 쥐어박곤 하지. 히지카타는 별로 강도조절을 해주지도 않았다. 긴토키는

 

 긴토키는 제법 아파보이지만, 그래도 엉엉 울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히지카타가 사납게 눈썹을 치켜뜨고 너 귀찮아 망할꼬마녀석아, 하는 표정을 지어도, 아니 어느날은 사실 그렇게 직접 내뱉었던적도 아마 있었으리라, 긴토키는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만 글썽글썽 할 뿐으로 한 번도 실제로 눈물을 흘렸던 적은 없었다. 엉엉 울면 엉덩이 마구 두드려 패고 그대로 내쫓으려고 했는데 닭똥같은 눈물을 맺기만하고 흘리지도 않은 채 글썽글썽, 단지 슬픈 눈으로 쳐다만 보고 있으면 나원참, 그거엔 이길 재간이 없다구. 히지카타는 그래서 매번 긴토키를 집안으로 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짧은 레퍼토리나마 돌려가면서 함께 점심을 먹고, 비교적 저녁이 오기전까지 둘이서 함께 지내는 나날. 겨울이 깊어져 추위가 시작된 뒤로는 밖에도 나가지 않고 늘 그렇게 둘이서 집안에 있다. 히지카타가 방청소를 하는동안 긴토키는 부엌식탁에 그대로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비교적 얌전하게 있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얌전하지 않은 듯한 눈매를 하고 있으면서, 태도나 말씨가 비교적 어른스럽다. 초딩 꼬마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갭이라고 히지카타는 늘 생각했다.

 

 " 야. 앉아있지 말고 수저통에서 젓가락 꺼내. "

 

 " 아, 응. "

 

 자기 키보다 높아서 다리가 닿지않아 두다리를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말을 듣자마자 의자위에 올라섰다. 처음에 의자위에 올라선 것을 보았을 때 위험하다며 히지카타는 심하게 긴토키를 혼냈지만 사실 제법 민첩한 긴토키가 의자위에서 굴러떨어지는 일은 그뒤에도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의자에 올라선 긴토키를 볼때마다 히지카타는 저도모르게 그의 머리에 주먹을 내리치게 된다. " 의자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 " 아야야야!!!! " 그리고 머리를 양손으로 문지르는 긴토키의 앞에까지 수저통을 가져다주면 긴토키는 머리를 문지르다 말고 의자에 앉은 채 수저통에서 두쌍의 수저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리는 것이다. 히지카타는 그새 끓어오르는 물 위에 반으로 쪼개놓은 라면 두 봉지를 전부 다 털어넣었다.

 

 " 토시땅. 오늘 머리끈 바뀌었네. "

 

 " 오, 잘도봤네. 꼬맹이가 이 누님 머리꼭대기를 어떻게 봤을꼬? 이게 보여? 응? 보이냐? "

 

 " 키갖고 놀리지 말아줄래?!! 어차피 십년만 기다리면 역전이거든!?! "

 

 " 십년지나면 못놀리니까 십년전에 미리 다 놀리려그러는건데 왜. "

 

 히지카타는 앞접시를 테이블위에 올려놓으면서 긴 머리채를 높게 묶은 포니테일의 머리뭉치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긴토키를 놀릴때마다 짓는 특유의 비웃는 미소그대로였다.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등을 흘겨보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토시땅은 아직 이렇게나 어린애를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나봐? 고등학생이면서. " 히지카타는 피식하고 웃었다. " 고등학생이니까 그렇지. 너도 고등학생 되면 알게될걸. " 그리고 히지카타는 아직 끓고있는 라면위에 계란을 풀어넣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라면을 휘휘 저었다. 히지카타는 계란넣은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긴토키는 라면국물에 계란이 없는 것을 의아해했었다.

 

 " 이전의 머리끈은 어떻게하구? "

 

 " 끊어졌어. 이건 학교에 두고다녔던 여벌. "

 

 " 빨간색이 예뻐. 토시땅. "

 

 " 너 빨강을 좋아했었어? "

 

 " 응? 음... 아마 그랬던가봐. "

 

 " 무슨 대답이 그럴까. "

 

 그리고 히지카타는 냄비를 테이블의 한가운데에 내렸다. " 뜨거우니까 고개빼지 마. " 대체 했던말을 몇번이나 반복하게 만들 생각인걸까. 이꼬마는. 그래도 무의식중에 김이 올라오는 냄비를 향해 또 고개를 빼기에 긴토키의 목이늘어난 티셔츠를 잡고 의자에 똑바로 앉게 뒤로 쭉 잡아당겨 주었다. 긴토키는 쳇, 하고 혀를 내밀며 이제야 얌전하게 의자에 앉는다. 히지카타는 후, 하고 짧게 한숨을 끊어쉬고 긴토키의 앞접시에다가 라면을 크게 집어 퍼주었다. 그리고 국자로 국물도 두번, 세번, 그리고 네번. " 그릇 뜨겁다. " 또 무의식중에 그렇게 말하고 긴토키에게 라면을 담은 그릇을 내주자, 긴토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젓가락을 들었다. " 잘먹겠습니다! " 또래에 비해 젓가락질이 능숙하다. 히지카타는 자리에 앉기전에 앞치마를 벗었다.

 

 라면 하나를 끓이는 것뿐인데 거창하게 앞치마를 했던 것은, 라면 끓이는 것을 보는 상대가 사카타 긴토키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긴토키가,

 히지카타네 집의 문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쭈그려 앉아있었던 것은, 아직 여름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을의 어느쯔음이었다.

 

 긴토키는 지금보다도 조금 더 작고 머리가 아주 약간 짧았는데, 반팔의 빨간색 줄무늬가 들어간 티셔츠를 입은채로 무릎을 껴안고 고개를 묻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 집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 작은 꼬맹이를 계단위에 서서 몇초간 바라보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그날 아직 반팔의 하복을 입고 있었는데 얇은 교복안쪽으로 속옷이 언뜻언뜻 비치는 것에 발정한 사내애들이 방과후까지 계속 달라붙어 매우 귀찮게 했기 때문에 심사가 편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다 자기 집앞에 못보던 꼬맹이가 쭈그려 앉아있는 것에는 화가 거의 폭발할 지경까지 되어서 눈앞이 순간 빈혈이 난듯 아찔해지기까지 했다. 히지카타는 버럭 소리를 지를까 말보다 행동을 먼저 앞세워 꼬맹이의 머리를 내려칠까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빨간색 줄무늬가 들어간 티셔츠에 퍼진 붉은 얼룩을 순간 잘못본 것인가, 했지만,

 

 아니, 역시

 잘못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력에는 자신있었던 히지카타였기 때문에. 히지카타는 자기가 가방을 놓친 것도 잊고 계단을 마저 올라가 꼬마의 팔을 움켜잡았다. 꼬마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사람에 놀라서 고개를 순간 쳐들었는데, 히지카타는 그순간 본 왼쪽 눈아래에 파랗게 멍이든 꼬마의 얼굴을 아마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후로도 종종 꿈을 꾸었다. 눈아래가  파랗게 멍이들고, 왼팔의 어딘가에 피가 계속 흘러 자신의 티셔츠를 붉게 물들이던 작은 꼬맹이를. 그 꿈을 꾸고나면 그날은 히지카타는 더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이 어둠처럼 빠르게 달려나가 사라질때까지,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의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밤을 지새었다.

 

 자기 집안으로 데려와 상처를 대강 치료하고 히지카타는 어디서 본 민간요법으로 긴토키에게 계란하나를 주었다. 아직 작은 손안에 계란 한알이 가득 담겨 그 쥐고있는 폼새가 좀 불안했다. 사카타 긴토키라고 또박또박 자기이름을 말한 긴토키는 그 계란과 히지카타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 라면? " 이라고 말했다. 그타이밍에 맞춰 긴토키의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소리. 히지카타는 긴토키에게 멍이 든 부분을 이렇게 문지르라고 시범을 보이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라면을 끓였다. 도저히 작은 손안의 계란을 제대로 동글동글하며 뺨을 문지를수가 없어서 긴토키는 계란을 가만히 두고 고개를 움직여 계란과 뺨을 부벼대기 시작했다.

 

 " 누나. 누나는 앞치마 안해? "

 

 " 하? 무슨 라면 하나를 끓이는데 앞치마를 하냐 요녀석아. "

 

 " 그래도 우리 엄마는 했었는데. 부엌에 설때면 언제나. "

 

 " 난 니엄마 아니거든. 앞치마는 니엄마보고 해달라고 해. "

 

 " 응. 근데 인제, 아마 엄마를 볼 날은 없을 것 같아. "

 

 " ...... "

 

 " 엄마가 떠나가버려서 잘된일이라고 생각해. 날 두고간 건 좀 슬프지만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거고... "

 

 " ...... "

 

 그리고 히지카타는 그 다음날 바로 앞치마를 샀는데,

 왜 그랬는지는 정말 아직도 모르겠다.

 

 히지카타는 동정을 싫어했다. 긴토키도 자기가 동정을 받고있다는 걸 알게되면 짜증이 나리라. 타인이 멋대로 강요하는 감정중의 가장 최악의 형태라고, 히지카타는 생각했기 때문에, 긴토키를 불쌍하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앞치마는 대체 뭘까. 히지카타는 앞치마를 선반에 걸어놓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 이 앞치마는 내심 긴토키를 동정하는 자신의 마음이 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귀찮아 귀찮아하면서도 점심에서 저녁사이 긴토키와 함께 놀아주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지카타는 여전히 동정이라는 것이 싫었다. 타인을 멋대로 연민하는 것이 싫었다. 만약 자기가 지금 긴토키를 동정하고 있는 거라면, 그런것따윈 깨닫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면, 여전히

 사카타 긴토키의 또래보다 얇은 팔은

 상처투성이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전혀 아무것도 해줄 수 잇는 게 없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주제에,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주제에, 동정이라니

 그건 너무 뻔뻔하잖아.

 

 " 맛있다! 라면. "

 

 " 그러냐. "

 

 " 히힛. 국물 따뜻해서 넘 좋아. 고마워 토시땅. "

 

 " ...... "

 

 히지카타도 곧 자리에 앉아 냄비를 끌어당겼다. 긴토키에게 충분한 양을 덜어주고 남은 냄비의 라면을 내려보다가 히지카타는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라면의 김이 눈앞의 시야를 흐려서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였다. 얼굴에 닿은 라면의 수증기가 곧 축축하고 더운 물방울처럼 바뀌어갔다. 숨이 뜨거워졌다.

 

 

 

 

 

 

 

 

 첫번째의 라면을 끓여주었을 때,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그 라면을 한젓가락 먹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뜨거운 입김을 후후 불어대며 라면을 빠르게 먹는 작은 아이의 오물거리는 입모양에 저도모르게 웃음지었던 그 어느 여름의, 단순해보이는 나. 집의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림과 동시에 철문이 부서질 것같은 소리를 내는 그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웃음이 그자리에서 그대로 깨진 것 같은 표정을 보이는 긴토키의 얼굴을 본순간, 히지카타는 자신의 웃음이 얼마나 의미없는 것이었던가를, 무심코란 얼마나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를 깨달았다. 안색이 창백해진 긴토키의 얼굴을 보며 서둘러 문을 열자, 긴토키의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제일먼저 히지카타를 아무렇게나 밀쳤다. 술에 취한 남자의 입이나 전신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게다가 취기를 이기지 못했는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큰 몸을 아무렇게나 흔들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히지카타는 그가 밀친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신발장에 등을 부딪히고 그대로 엎어지고 말았다. 남자의 순간의 힘이 여자의 몸에 쏟아진 그때 히지카타의 몸이 남자의 파워를 감당하지 못하고 순간 숨까지 멎는 듯하였다. 신발장 위에 쌓여있던 신발이나 우산꽂이 같은것이 히지카타와 부딪혀 요란하게 쏟아졌는데, 히지카타는 그사이 시야를 잃고 휘청였다. 숨이 돌아오고 나서야 0.5초정도 날아간 의식이 겨우 돌아와 시선도 그제야 제대로 잡혀서,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올리고 고개를 들었을때는 그러나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남자가 긴토키의 뺨에 주먹을 날리고 난 뒤였던 것이다. 히지카타는 자신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전신에 힘이 팽팽하게 들어가서 자신의 팔다리임에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부자유스럽게 느껴졌다. 어서 걷고 어서 뻗고 어서 달려서, 저 남자를, 저 남자를 떼어내. 누구든 좋으니까 어서 저남자를 긴토키에게서 떼어내줘. 하지만 지금 여기에는 자기자신밖에 없었다. 히지카타 토시로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무서워서.

 

 긴토키의 작은 몸이 남자의 손안에 붙들려서 아무렇게나 흔들리는데, 멱살이 잡힌채로 아무렇게나 흔들리고 있는데

 

 무서워서, 몸이

 몸이 움직이지 않아.

 

 히지카타는 신발장에 주저앉아 덜덜 떨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눈이 감기지 않아 그뒤에도 남자에게 계속 두들겨맞고있는 긴토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남자의 몸이 크게 휘청여 테이블 주변의 의자가 우당탕소리를 내었고, 그때 자기가 끓였던 라면냄비가 뒤집어져 긴토키의 오른손위로 라면의 내용물이 쏟아졌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할때까지 맞고 또 맞아도 울지도 소리지르지도 않던 긴토키가 그 뜨거움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제 목소리에 제귀가 멎을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있던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비명에 꼭 정신을 놓은 것처럼 울기 시작했다. 긴토키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커다란 눈동자가 보고 있었다. 뜨거운 라면이 닿은 오른손을 마구 휘저으며 비명처럼, 누나라고 외쳤다.

 

 달려가 안아주기를 바랐을까.

 손을 잡아주기를 바랐을까.

 

 아마 그랬을텐데.

 히지카타는 단지 소리지르며 울기만 했다.

 

 그뒤의 일은 잘 생각이 안났다.

 이웃의 다른 어른들이 십수명 달려온 것 같았다.

 누군가는 히지카타의 어깨를 감싸안고, 누군가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또 누군가는 긴토키를 껴안아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고함소리, 웅성대는 군중들의 소리, 멀리서부터의 경찰차 소리.

 

 미안해. 미안해 누나.

 그리고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자기에게 사과하는 소리를 들었다. 들은 것 같았다.

 

 오, 세상에.

 어째서.

 어째서 네가 나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히지카타는 문득 테이블 너머로, 긴토키의 오른쪽 손을 향해 자신의 손을 뻗었다. 긴 소매의 티셔츠를 걷으니 손등과 손목에 넓게, 화상자국이 남아 피부가 빨갛게 변해 있었다. 긴토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이다가, 곧 눈을 구부리고 웃었다. 설마 사과하는거야? 네가 나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을 리가 없잖아. 제발. 먼저 나에게 사과하지 마. 내가 너에게 사과할 기회를 줘야될거아냐. 망할 꼬마녀석아. 히지카타는 그렇게 얌전하지 않은 듯한 눈매를 하고 있으면서, 태도나 말씨가 비교적 어른스러운 눈앞의 꼬마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너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갭이라고 히지카타는 늘 생각했다. 아니, 아니었다. 히지카타는 눈앞의 꼬마를 동정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나같은 겁쟁이는 무리야. 그러니까 내가 너를 연민하는 날은, 널 도와줄 수 있을만큼의 강한 힘을 가지게 된 히지카타 토시로가 된, 바로 그 날부터.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야. 아직은 아무 힘도 가지고 있지않아. 그러니까, 네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그야말로 정말 십년 정도만 기다려준다면,

 

 그땐 정말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될테니까.

 나를 밀치고 너를 괴롭히려고 달려드는 나쁜 사람앞을 가로막아, 그 손을 물어뜯을만한 기력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될테니까.

 

 그러니까

 기다려줘 응?

 긴쨩.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웃는 얼굴에 마주해 아주 조금 웃으면서, 긴토키의 머리를 손으로 아무렇게나 헤집었다. 긴토키의 기분좋은 듯한 까르륵 소리가 들렸다. 그래. 어린애는 바로 그렇게 웃어야지. 맘에 든다. 히지카타도 연신 웃었다. 계란이 곱게 풀린 라면국물은 적당히 부드러워져서, 그다지 맵지 않은 스프의 향기만이 가득하였더랬다.

 

 

 

 

 

 

 

 

 

 

 

- done

 

+ 주제:라면. ....나새끼 제목 너무 성의없는 거 아니냐... 제목에 생각을 전혀 안했...0ㅅa0 에라이.

 

십년후. 자신의 한심함을 자각하고 존나 열심히 산 히지카타 토시로는 십년뒤에 검사가 됩니다. 가정폭력관련 담당 검사가 됨. 그리고 십년 뒤 사카타 긴토키는 여전히 이웃집 미녀의 뒷꽁무늬를 쫓아다니며 건들거리는 근처에서는 소문난 미소년(??) 고등학생이 됨. 십년이 지나도 라면의 화상은 그대로 남아있음. 바빠죽겠는 히지카타에게 여전히 토시땅토시땅하며 라면 끓여들라고 찝쩍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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