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아

 

" 좋아하고 있습니다. "

 

 바들바들 떨면서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꽉 쥐고 있는 주먹이 내가 서 있는 거리에서도 선명할 정도로 창백하게 질린 채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의 첫번째 관절 위로 솟은 단단한 손가락의 힘줄들이 새빨갛게 질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긴장으로 찌푸려진 미간 위에 그어진 선과 닮아있는 듯한 형태.

 

 놀란 건지, 어쩐건지.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는 히지카타씨의 표정은 서류를 팔랑이던 조금전과는 전혀 다를 게 없었다. 하긴, 그러는 나도 아까부터 물고있던 아이스크림을 손을 바꿔들어 빨고 있으니 크게 감정의 변화는 없다 싶었지만.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새빨간 낙엽이 건조한 흙마당위로 쌓여가는 게 운치있다고 느낀 건지, 히지카타씨는 아까부터 자신의 방의 미닫이 문을 연 채 서류정리를 하고 있었다.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끔씩 고개를 들어,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를 듣는 가을남자 행세를 한 히지카타씨는 본채에서 떨어진 신센구미 정문쪽을 지나치는 내가 보기엔 진짜 끝장으로 쪽팔리고 깨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차가운 공기속으로 흐트러지는 담배연기에 하얀 질감이 느껴진다하더라도 깨는 건 깨는 거야. 시대가 어느땐데 하드보일드 흉내. 나는 핥고있던 하드의 찬공기에 새빨개진 손가락끝에 입김을 불면서, 히지카타씨에게 다가가 끝장나게 쪽팔리는 모습에 대해 무언가 놀려줄거라고 생각하며 히지카타씨에게 살콤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목격한 장면이 바로 그거다. 새빨간 노을이 내려오는 가을의 저녁, 새삼 놀랍지도 않은 고백.

 

 뒷모습이라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야마자키는 긴장에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한 채 두눈을 질끈 감고 있을 것이다. 바들바들 떨리고 허리가 구부러져, 고개를 숙이고 있는 뒷모습만 봐도 쉽게 연상이 되는 걸. 

 

 " ....... "

 

 " ...... "

 

 아무말도 해주지 않는 히지카타씨에게 난 이미 질려버리고 말았지만, 야마자키는 히지카타씨가 입을 열어줄때까지 그곳에 천년이고 만년이고 서 있을 듯했다. 무슨말이라도 좋으니 한마디, 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야마자키의 등이 조금 추워보였다. 나는 다시 하드를 입에 밀어넣었다. 마지막 남은 것 끝까지 전부.

 

 야마자키가 바라는 히지카타씨의 대답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히지카타씨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고.

 

 " ...... "

 

 히지카타씨가 무슨 말을 할지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는, 야마자키조차 뻔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한심한 것일 거다.

 

 히지카타씨의 입이 열리고, 그가 무언가 말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너무 조용조용해서 내가 서 있는 곳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야마자키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겠지. 나는 들고있던 막대를 던지며, 두사람을 등지고 걸었다. 막대가 먼 곳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도,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

 

 

 

 

 

 

 

 

 

 " 이런데에 있었네. "

 

 " ...... "

 

 어디있을까, 달을 등지고 어둠속에 몸을 가릴 수 있는 곳에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처마가 길게 늘어지는 신센구미 처소에는 의외로 그림자가 길게 지는 장소는 많았기 때문에, 어디 딱 한군데라고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어둠속에 숨어있는 야마자키를 찾는데까지 다섯장소 정도의 함정을 극복해야 했다. 야마자키는 긴 처마속에 몸을 감춘 채, 발끝이라도 달빛에 닿아 모습을 보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두다리를 양팔로 잡아 최대한 자신의 상체에 당긴 채, 머리를 무릎위에 파묻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어깨가 약간 움찔, 했지만 결국 고개는 들지 않았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야마자키씨. "

 

 " ...... "

 

 " 본체는 어둠에 다 녹아들었지만, 그림자가 비죽 튀어나와있는데요. 달빛사이에 뚜렷하게. "

 

 " ....그림자는 어둠에 녹일 수가 없어서요. "

 

 " 그게 되면 네가 천재게. "

 

 " ......부장님이 대장님보고 절 찾아보라고 하셨나요? "

 

 " ...그런 걸 기대했다면, 그래. 그렇게 말해줄 수도 있고. "

 

 " ...... "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오늘의 나는 이상하게 착한 사람이 되고싶은 기분이니까. 하지만, 야마자키는 가볍게 어깨를 흔들며 자조비슷한 웃음을 흘린다. 야마자키의 몸을 삼킨 처마의 어둠에 이어진 그의 그림자가, 달빛에 원래 크기보다 길어져 처마밖으로 비죽 튀어나와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내가 아는 사실을 네가 모를리가 없고, 그 히지카타씨가 그런 배려를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 둘은 결국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세스가 전혀 없는 남자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그리고 어쩌면 히지카타씨의 마음이 후자에 더 가깝다는 것을, 어둠속에 몸을 감춘 너도, 그런 너를 찾고자 한 나도 ─

 

 결국은 알고 있는 것이다.

 

 " ...어처구니 없는 희망이 있었어요. "

 

 " ...... "

 

 "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란 걸 알았으니까, 그러니까 더욱 ─ 꿈속의 나는 미칠 듯이 행복해 보였고, "

 

 " ...... "

 

 " 그래서, 매일아침마다 조금 슬펐지만, 그래도 역시 꿈보단 현실이 훨씬 진실된 행복이 있다고 타이르다가도, 밤이 되면 다시 꿈속의 나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 가장 행복해보여서... "

 

 " ...... "

 

 " ...... "

 

 네가, 너에게 묻고싶었던 것은.

 아니, 물론 묻지 못하겠지만.

 

 네가 히지카타씨에게 바란 대답이 무엇이었냐는 것이었다.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히지카타씨가 취할 수 있는 여러모습중에, 그가 선택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상냥하고 부드러운 거절. 혹은 단칼에 잘라내는 잔인한 미성. 어쩌면 고백자체를 부정하는 뻔뻔하고 무정한 모습. 

 

 그중에 네가 바란 대답은 어떤 것이었을까하고, 잠깐 궁금해했었다.

 

 눈을, 잠깐 깜박이는데에 아주 짧은, 시간을 소비하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등뒤에 펼쳐진 새카만 하늘위에, 처마의 그림자를 밝히는 동그란 달이 떠 있을까. 

 

 " 그래, 네말대로.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나. "

 

 " ...... "

 

 " ─설마, 눈꼽만치라도 기대가 남아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 그 남자가, 오케이같은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

 

 그 남자의 너의 마음을 허락할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다고, 꿈을 꾸고 있다니.

 

 " .....하하. "

 

 " 어느의미에선 용감한 널 칭찬해주고 싶지만. "

 

 야마자키가 바라는 히지카타씨의 대답은, 결국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부 달랐지만,

 그리고, 사실은 모든 고백은 당연히 그런 마음가짐으로 해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아마 너와 나는 이미 결국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할 것인지라는 것 정도는.

 나보다도 특히, 네가.

 

 

 

 그 남자를 사랑하는 불쌍한 네가. 

 

 

 

 

 

 

 

 

 

 게다가 내 캐릭터에 어째 고백이란 게 영 어울리지가 않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야마자키가 고개를 든다. 눈가가 붉었지만, 어차피 어둠속에 녹아있는 야마자키의 눈따위가 보일리가 없으니 전부 내 상상일 뿐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야마자키가 숨어있는 처마쪽으로 한걸음, 들어가보았다. 내 몸은 반쯤, 어둠에 잠식당하고, 그래도 반쯤은 달빛아래 빛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의 어떠한 위로라도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잠깐, 같이 있는 걸로도 무언가 의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

 

 

 

 

 

 " ...아침에 시킨일의 보고는 아직이냐. "

 

 " ...윽─.. "

 

 돌아온 대답은 처음부터 고백따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너무나 일상적인 말. 어제와 다름없는 말. 어제와 다름 없는 시선.

 

 아니야, 내가 듣고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그런 말 따위가 아니야.

 

 희미한 상냥의 빛도 읽을 수 없이 싸늘하게 식어있는 눈앞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코끝이 시큰했다. 어떻게든 어떤식으로든 좋으니까 뻥하고 터져버리고 싶었던 나는, 나쁜 것은 알고있지만 어쨌거나 그가 나를 터뜨려주길 바랬다. 그런 책임을 떠맡기는 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난 이미 누군간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을정도의 여유따윈 없었고, 자신의 감정만으로도 벅찼고, 그 벅찬 감정도 이미 흘러내려 더 이상 내 손으로는 안을 수 조차 없는 상태였으니까. 내 손가락이 새하얗게 질려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나는 어쨌든 자리를 박차 신을 신은채 그의 방안으로 들어가 타다미 한쪽 위에 평자세를 하고 앉아있는 그의 어깨를 아래로 짓눌렀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 두장이 팔랑이며 그의 흐트러진 새카만 머리칼 옆에 안착했고, 나는 그의 턱을 움켜쥐며 그의 피곤에 질린듯한 입술에 난폭한 키스를 했다. 그의 입술은 조금도 촉촉하지 않았고 오히려 건조하게 메말라 있었고, 살이 갈라져 피맛이 느껴졌다. 눈을 질근 감으니, 이마에 닿아있는 그의 머리칼이 살랑이는 것이 느껴져, 그와중에도 나는 가슴이 뛰었고, 입술 안쪽의 살들은 물컹하고 부드러웠다. 거칠게 입술을 탐하고 입을 떼니, 그의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의 이마위에 흐트러진 앞머리칼에 가리어진 그의, 눈동자가, 찌푸려진 눈썹 아래의 짧은 속눈썹에 보호받고있는 검은 눈동자가, 나의 그림자 속에 갇힌 그의 얼굴위의 새카만 두 개의 눈동자가, 바라보는

 

 그 표정.

 

 " ...... "

 

 

 

 

 그런 표정으로, 보길 원하지 않아.

 듣고싶은 말도 그런 게 아니고.

 내가 듣고싶은 건, 정말로, 듣고싶은 건,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 ................히지카타씨............................. "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싶어.

 사실은 당신도 나를 사랑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이 나를 사랑해준다면 좋겠어.

 사랑해.

 

 사랑해줘.

 사랑해. 

 

 ................나를 사랑해줘...............

 

 

 

 

 " 야마자키...... "

 

 " 윽........ "

 

 

 

 그 말도 안 되는 억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부장님으로 하여금 이런 표정을 짓게 한 나는 죄책감은 커녕, 그저 계속 무작정 남자를 내 품에 가둬둔 채 이대로 마음껏 안아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만 계속 든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어처구니 없게도 그의 얼굴에 눈물을 떨군 채로, 간신히 그에게서 떨어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쳤다. 그의 방을 흙신으로 더럽히고, 그의 입술을 나의 입술로 상처를 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의 한마디도 없이 사라지는 나의 등을 보며,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야마자키 ─ "

 

 그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

 아침에 시킨 일의 보고를 하러오라고 나의 등을 향해 말했다.

 

 " ...흑, ........ "

 

 그렇게까지 말해주는, 너무나 상냥한, 나의, 우리들의,

 우리들의 부장님에게, 상처를 주고서도, 나는, 

 

 나 스스로의 감정 하나에 복받쳐 엉엉 울면서, 뒤 한 번 돌아보는 일조차 하지 못하고, 단지 주먹을 꽈악 쥔 채 있는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잠깐동안 닿았을 뿐인 육체가 너무나 달콤하다.

 뒤돌아 다시 한 번 그를 본다면, 난 그가 무슨 상처를 입든 그를 안아버리고 말겠지.

 

 도망쳐 달리면서,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한심했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잠깐 닿은 그의 육체의 향을 잊을 수가 없어, 그저 고통스러웠다.

 

 

 

 

 

 

 

 

 

 - done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