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부르지 않으니까

 

...과로요. 목소리가 황당하다는 듯이 들려서 나는 좀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뚝뚝하게, 닥치고 시키는 대로 과로에 먹는 알약과 피로회복제 드링크를 사오라고 그를 채근했다. 나는 말단이지만, 원래 말단아래엔 또 말단이 있는 법이고, 그래서 가장 말단인 그녀석은 나의 무뚝뚝한 말투에 조금 긴장했는지 어딘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대문으로 달음질쳐 나갔다. 갑자기 기분이 나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내가 사실은 나빴겠지만,그래도 어색한 두려움에 서둘러 뛰쳐나간 그녀석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황당하긴 뭐가 황당해. 그 사람은 뭐 사람 아닌가. 사실은 우리중에 가장, 과로라는 말을 달고사는 사람인데.

 

 그의 방문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흐트러지는 숨소리가 연하게 문밖으로 새어나오다가, 일순 나의 인기척을 느끼고 그가 숨을 멈추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곧, 연하게 흐르는 고른 호흡에, 나는 괜히 입맛이 썼다. 부하직원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그의 일정한 호흡이, 그 뒤에 격하게 쏟아지는 기침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는 노력이. 

 

 누구냐.

 

 조금도 떨리지 않아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접니다, 야마자키. 짧게 말하고, 그가 안도의 한숨조차 내뱉지 않고 빠르게 용건이 뭐냐, 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가만히 귀을 기울였다. 바람이 짧게 불어 긴 나뭇가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렸다. 차가운 바람이 얇은 창호지를 넘지 않기를 바라며, 저도모르게 조금, 그의 방문앞에서 뒷걸음질을 친다. 흐트러진 숨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앞에서, 사실은 더 다가가고 싶지만 더 다가가면 그는 화를 낼테니.

 

 방금 약을 사오라고 한 명에게 시켰습니다. -방안에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쯧, 약은 필요없다니까. ..들어오지 마라, 시킬 일도 없다.

 

 혀를 구르며 숨을 목구멍 안으로 찬다. 바보같은 사람이다.

 

 시킬 일 없어도 옆에, 사람이 있는 게 낫지않겠습니까.

 

 ...바보같은 소리. 귀찮고 불편하다. 신경끄고, 볼일봐. 

 

 ......그럼,

 

 ......

 

 그럼, 많이 아프시면 절 불러주세요.

 

 ...그런 일 없을 거다.

 

 ......

 

 

 

 

 

 

 바보같은 사람. 

 

 

 

 

 

 

 차마 그의 방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멋대로 문을 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를 저 차가운 바람이 노골적인 방문앞으로 그저 혼자 남겨두고 가버리질 못하겠어서, 나는 그냥 그의 문에 등을 기대고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파란 하늘위로 겨울바람에 옆으로 쓸려가는 하얀 구름도 보았다. 등에 닿인 창호지는 아주 얇았고, 복도바닥은 싸늘하게 식어 온몸의 뼈를 울려왔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한 번 꾸욱 누르니, 마치 겨울바람이 손끝에 잡힌 듯 차가웠다.

 

 ......야마자키?

 

 ...당신은 부르지 않으니까요.

 

 

 당신은, 아무도 부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그저, 옆에 있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

 

 

 

 

 숨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린다. 체념한 그의 한숨소리에 나는 저도 모르게 웃었고, 슬그머니 비져나온 그 웃음에 배속이 따뜻해져 차가웠던 몸이 식는 것 같았다. 등에 닿아있는 그의 방문안쪽으로, 이미 그의 몸의 일부가 된 듯한 담배냄새가 배어나왔다. 거칠한 이파리가 타는 향. 꼭 그의, 웃음소리같다.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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