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물든 날

 

목이 따가워. 아침부터 그렇게 말하시더니 역시나 목감기인 듯. 이제 아무 말도 하지않고 한쪽 눈썹을 찌푸린 채 목을 감싸고 있는 부장님을 뒤에서부터 지켜보니 그냥 안쓰럽기까지하다. 목이 따가워, 따가워 말씀하셔봤자 그 목 걱정해 줄 사람 당신 주위에는 없고 오히려 아픈부위 박박 더 긁으려는 대장님만 계속 옆에있어서.... (눈물) 그런 대장님이 무서워 대장님을 차마 말리지는 못하고 사태의 사태를 거듭해서 아예 아무 말도 못할정도로 목이 막히신 부장님이 괜히 가슴아파서 부장님이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일단 둔영을 빠져나와 약국을 향했다. 목이 아픈거니까 절대로 감기인 거겠지. 최근의 날씨를 보면 감기에 걸리기에 딱 좋은 날씨이긴 하다. 저벅저벅 차가운 거리를 발로 꾹꾹 밟으며 걸어나왔지만 목언저리를 스치는 추위에 나도 스카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목을 꼭 여민다. 약국에 거의 다 와서 할 말은 아니지만, 목감기 약 사러 나오기 전에 대장님 몰래 부장님께 꿀 물 한 잔 드리고 나왔으면 좋았을 뻔했다.

 

 - 어라?

 

 - 아...

 

 약국 문을 여니 구면의 얼굴이 보인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자주 얼굴을 마주치며, 그러나 제대로 이름 한 번 불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 어슴프레한 기억이 자꾸 뒷통수를 내리치면서.. 어쨌든 그 인생 그까이거 대충 살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는 삼십 줄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연의 놀라움에 어색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 형씨, 의외의 장소에서 다 만나네요.

 

 - 내가 할 소리야 - 그, 너- 그, 음.... 

 

 - ...

 

 이름을 불러줄 거란 기대는 안 했다.

 

 - 오쿠지군 사촌!

 

 - ...딱히 기억 못하셔도 상관없지만 우리 부장님 이름은 좀 제대로 불러주시지 않으실래요?

 

 우리 부장님. 그러고보니 난 이 형씨와 실랭이를 하러 한산한 거리에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 부장님이 말도 못할정도로 목을 붓게 만든 바이러스를 완전 박멸시키기 위해 이 약국을 찾은 것이다. 픽픽하고 대충 웃어제끼는 은발 형씨를 제껴두고 나는 약국의 주인장에게 다가갔다.

 

 - 주인장, 약 좀 주시오.

 

- 무슨약이 필요하시더라?

 

 - 감기인 것 같은데, 목이 심하게 부었는지 아침부터 목소리가 엉망이었다가 이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할정도가 되었는데요.

 

 - 어이구, 환절기 감기에 걸렸나보네요. 그쪽이?

 

 - 아니, 나말고. 우리 상사쪽이.

 

 - 아- 그 담배물고 다니시는 인상 험악한 귀신부장나리 말씀이시구만. 귀신이 잡아가도 멀쩡할 정도로 강한 양반인 줄 알았더니 감기같은 것도 걸리시는가보구려?

 

 - 우리 부장님 건강 나빠진 걸 안 불량배들이 이때다하고 활기부리면 곤란한 일 되는 거니까 비밀로 부탁해요, 주인장.

 

 내 말에 너털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약을 제조하러 안채로 들어가는 주인장의 뒷꽁무니를 바라보며, 잠시 그렇게 카운터에 기댄 채 멍하니 있다가 은발 형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은발형씨는 멍하니 문밖을 바라보며 언제부터인가 물고있던 병을 입에 물고 그 속의 액체를 꿀떡꿀덕 마시고 있었다.

 

 - ..그러고보니 형씨는 약국엔 왠일이오?

 

 좀 새삼스러운 가 싶었지만 일단 말 운을 떼기위해 이렇게 물었다. 형씨의 작은 눈알이 조금 움직여 나를 주시한다.

 

 - 그냥 어젯밤 술이 아직 위에 좀 남아있어서 자꾸 흔들리길래 말이야.

 

 - 거참- 애들 보호자주제에 그렇게 너무 외박 즐겨하는 거 아니오, 형씨.

 

 - 시끄럽네.

 

 - 그리고-

 

 - .....

 

 얼굴을 완전히 돌려 나를 바라본다.

 

 - 그리고.. 형씨에게도 부탁하지. 우리 부장님 감기 걸린 건, 밖에는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이오.

 

 - .....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캐릭터들이 많아서, 언제나 걱정이긴 하지만. 신센구미의 중추란 사실 히지카타 토시로, 우리들의 부장님이다. 곤도 아사미 국장님의 이름아래 발발 된 신센구미의 총체는 마츠다이라 장군님으로, 그 명을 받드는 것은 곤도 국장님이시지만 실제적인 신센구미 조직의 짜임과 균형은 전부 히지카타 부장님이 맡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가지.

 

 세상의 적들의 표적을 스스로의 한몸으로 안고 있다는 거다. 

 히지카타 토시로, 부장님은.

 

 - .....

 

 - .....

 

 그런 히지카타 부장님의 약점이 외부에 드러나게 되면 가뜩이나 적의 표적의 중심이 되어있는 히지카타 부장님에게로 순식간의 적들의 시선이 가게된다.

 약해진 그 사람은, 그러나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죽는다.

 죽게 된다.

 

 그 사람이 죽는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단순한- 감기, 아니었던가? 오쿠지군.

 

 - 단순한 감기라도 내가 걸리면 아무 것도 아닌 질병이지만 부장님이 걸리시면 세상의 둘도 없는 악병입니다.

 

 - 흐음.

 

 - 그 정도로 중요한 분이십니다. ...눈치채고 있으실테지만, 형씨도.

 

 - .....

 

 

 

 어느 밝은 날. 그 아침. 오후로 달려가는 햇빛의 아래. 파란 지붕 위에서 흩날리는 은발이 스스럼없이 검은색의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벤다.

 만약 그 검에 날이 서 있었다면 신센구미에서,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던 그 사람의 가슴은 두쪽이 났을 것이다.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그는 자신이 굴복했다고 인정할 수 있을만큼 넓은 사람이다. 그러나 지켜보는 내쪽에 그런 아량을 가지지 못하여, 그건 히지카타 부장님의 어쩔 수 없는 복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니고 있는 부하가 이렇게 속이 좁다니.)

 

 신센구미 이하에 가장 먼저 표적이 되는 히지카타 토시로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죽음에 가까이에 있어, 이미 내 열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을만큼의 암살로 인한 죽음의 길을 가까스로 비켜나며 살아왔다.

 자신이 전면으로 드러나 오히려 국장님보다 더 많은 죽음에 직면한 것은 자신이 총대를 매고 이날 이때껏 살아왔기 때문이다.

 오키타 소우고 대장님은 그런 히지카타 토시로 부장님의 노고를 알고 있음에도 아직 그 노고를 인정하고 존경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아량을 나만큼이나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으로 그는 아직은 히지카타 부장에게 있어서 등을 맡길 수 있는 부하이기는 하나 마음을 헤아려주는 친우로서는 모자르다.

 

 - .....

 

 - .....

 

 그럼 당신은?

 

 그럼 너는 뭐냐.

 무슨 존재냐, 사카타 긴토키.

 

 그의 검을 베고 그의 가슴을 스스럼없이 베어버린 과거의 양이지사야. 그러나 히지카타 토시로 부장님은 더이상 너를 죽일 생각따윈 가지고 있지않고, 너 또한 내가 그분의 감기를 입다물어 달라고 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그러한 사실을 말하지 않겠지.

 

 너는 뭐냐.

 너는 우리에게 있어서 무슨 존재지?

 

 너는 그사람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냐.

 

 

 나는 그것을 알아야해.

 

 나는 그 사람의 부하이니까.

 

 

 

 

 

 

 

 

 주인장이 약을 들고 나온다. 나는 형씨에게서 시선을 뗐다. 형씨도 자리에서 일어나 병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약국의 문을 나선다. 

 

 분명히 이야기해서, 부장님의 목숨은 내 목숨보다 중하기에, 너를 죽여야한다면 난 너를 향해검을 겨눌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둘째로 치고.

 

 - ....

 

 당신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신센구미에.

 ....나의 가장 소중한 그분에게 해가 된다면, 너를 죽이겠다.

 

 사카타 긴토키.

 

 

 

 

 

 

 

 

 

 

 

- done

 

+ 오랜만에 다시보니 참 맘에 든다 ㅍvㅍ 야마히지 몇 개 안썼는데 제법 분위기가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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