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끈을 풀고

 

 그를 사랑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미치자마자, 하라다는 좀 더 차분해지기 위해 자신의 왼쪽가슴 위에 오른손을 올렸다. 왼쪽가슴위에 올린 오른손바닥이 굳은살배긴 피부를 뚫고 뜨끈뜨끈해져감을 느끼면서, 하라다는 되새김질하듯하였다. 자신의 감정을. 그리고는 아, 차라리 이 생각에 마음이 닿지 못하게 할 것을. 생각을 멈추거나 마음을 멈추거나 둘 중의 하나는 무조건 할 것을. 그렇게 후회하였다. 마음이 나무가 되기전에 싹을 잘라버렸어야했다. 이 마음이 가지를 쳐서 하라다는 지금, 무척이나 번거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 가지들 낱낱이 열려있는 이파리때문에. 이파리는 바람이 아주 조금만 불어도 무척이나 흔들려서. 특히나 높은 곳에 달려있는 이파리는 중력에 상관없는 곳에 있는 것처럼, 거의 허리가 꺾일듯이 울먹이듯이 하여서. 하라다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언젠가 끊어버렸던 그 언젠가의 담배맛을 더듬으며 혀로 잇몸 어딘가를 핥았다. 그러고보면, 그동안 무수히, 많은 싹을 잘라냈었다. 그는. 그러고보면 하라다는 그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내의 모든 싹을 몇번이고 잘라냈었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입이 큰 가위끝에서 산산조각 나던 수많은 이파리들과 가지들, 그리고 싹들. 그것들은 잘라낼때마다 두 번 다시 소생할 수 없을 것처럼 풀이 죽곤 했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나무란

 

 이렇게나 뿌리가 깊은 것이었던가.

 

 이렇게나 뿌리 깊은 것이었다.

 

 이렇게나 뿌리 깊은 것인줄을, 미처 모르고.

 

 

 

 

 

 성가시다. 그래서 기어코 심장을 한바퀴 돌아 모든 육신의 모든 뼈마디사이사이로 스며든 이 마음이, 무척이나 성가시다. 그의 옆에 있기 위해서는 이런 성가시고 심지어 무겁기까지 한 짐을 들고있어서는 안 됐는데. 그래도 이미 품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하라다는 부정할 수 없는 마음을 짊어지고 먼 산 그 어딘가까지를 전부 등반해보이겠다고 다짐하였다. 이 마음을 두 손에, 그리고 영원히 당신의 뒤에서.

 

 히지카타 토시로가 하라다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인다.

 

 그 언젠가의 흩날리는 빛의 방울같은 속눈썹.

 

 역시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쿵쾅거리는 심장따위는, 진작에 떼내버려

 

 진작에 그에게 주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라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끝없는 기다림. 패트롤카 속에 숨죽이고 몸을 동그랗게 만 채로, 히지카타 토시로와 하라다 우노스케는 기다림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잠복근무에 여념이 없었다. 감시하는 아파트로 아파트 속에 숨어있는 잔당의 패거리들이 걸어들어와 한꺼번에 다 잡아버릴 수 있는 순간의 짜릿함을 위해 일부러 아파트에 숨어있는 놈도 잡지않고 이렇게 패트롤카 속에 몸을 동그랗게 만 채로 기다리고 있건만, 도통 아무 움직임도 보이질 않았다. 아파트에 숨어있는 깡패도 방 한 칸 작은 아파트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고 있고, 그런 그에게 접촉을 시도하려고 하는 듯한 그의 패거리의 머리카락 한올도 보이지 않고 있고, 신센구미의 두 사람은 잠복의 티를 내지않기 위해 민간에서 징수해 온 일반 승용차 속에서 거의 기절하기 일보직전의 시퍼렇게 충혈된 눈을 간신히 뜨고 있었다.

 

 "오늘도 별다른 기미가 안보이네요." 차의 핸들에 두 손을 얹고 그 위에 얼굴을 얹은 채로 하라다는 아파트쪽에서 눈을 떼지않고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밤의 어둠이 가득 내려 거의 서로의 얼굴이 구분이 되지않은 상태에서도, 그 상태가 길어지니 눈이 적응을 했는지 의외로 시야가 넓어져 있었다. 그래서 하라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묵묵히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있는 부장의 불쾌하다는 듯 찌푸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히지카타는 별다른 대꾸없이 단지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담배연기는 그의 한숨소리나 다름없었다. 그 소리에 편승하여 하라다도 한숨을 내쉬고 싶었다. 상사옆이 아니었다면 이미 내뱉었으리라. 하라다는 정말이지 자신의 편안한 침소에서 온몸을 쭉 뻗고 제대로 누워 한숨만 푹 자고 일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공중목욕탕에 가서 개운하게 사우나도 늘어지게 하고싶었고, 속옷도 빳빳한 새것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하라다는 무거운 눈두덩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저기 부장님."

 

 "...왜."

 

 히지카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잠기어 있다. 말을 그다지 하지 않고 있어서일 것이다. 하라다는 눈두덩을 비벼서 일시적으로 생긴 쌍꺼풀을 손가락으로 꼬집어댔다.

 

 "신발... 좀 벗어도 되겠습니까?"

 

 "신발?"

 

 "예. 발이라도 편하고 싶어서." 잠복하는 내내 신발을 벗은 적이 없었다. 신센구미에서 지급된 신발은 단단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대신에, 무거웠다. 게다가 장기간 앉아있었더니 다리에 피가몰려 퉁퉁부었고 신발안의 발도 부풀어올라 신발이 터질 지경이었다. 히지카타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으로 앞머리칼을 옆으로 휘휘 넘겨댔다. 히지카타도 며칠동안 머리를 감지 못해 검은색 머리칼이 떡져서 여러군데가 뭉쳐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차에서 뛰쳐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때 신발끈 도로묶을 시간이 너에게 있을 줄 아냐?" 하라다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신의 거칠해진 턱을 손가락으로 쓸어댔다. 정론이다. 정론이긴 하지만, 신발안에서 탱탱부운 이 발을 지금 풀어주지 않으면 오히려 여차할 때 뛰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맨발로 뛰겠습니다. 돌에 채여 피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부장님보다 빨리 달릴 거구요."

 

 "그리고 저놈들을 일망타진 할 테니 걱정마십쇼."

 

 "흥."

 

 "다리에 쥐내리면 오히려 진짜 필요할 때 못달리는 수가 있다구요."

 

 히지카타는 눈을 가늘게하고 자기 옆자리에 앉아있는 하라다를 흘겨보았다. "결국 니맘대로 할거면서 왜 내 의견을 물어?" 히지카타의 목소리에 피식하고 웃으면서 하라다는 아파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허리만을 조금 굽혀 오른쪽과 왼쪽의 신발끈을 차례대로 풀었다. "며칠동안 양말 못갈아신었잖아요. 냄새가 장난아닐테니 좁은 공간에 같이 있는 사람에게 양해 좀 구한겁니다." "창문 열어라." "어, 안 됩니다. 들켜버리고 만다구요." "창문을 열거나 신발을 벗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해." "그럼 부장님도 담배끄세요." "할복할래?"

 

 "할복할땐 하더라도 신발은 좀 벗을랍니다."

 

 "이렇게 말안듣는 놈한테 내가 타고있는 차의 운전을 하게하다니. 나도 참 무르군."

 

 신발의 끈만을 풀어도 조임이 사라져서, 하라다는 아까보다 훨씬 편해졌다. 꼼질꼼질 신발을 벗고 발가락을 양말안에서 꿈틀대니 아, 지상천국이 따로없군. 며칠 갈아신지 못한 양말을 매만진 오른손가락 끝의 냄새를 킁킁대면서 하라다는 고개를 들었다.

 

 "아, 맞다. 부장님 에일리언vs야쿠자4 보셨어요? 거기에 이런씬 나오거든요. 야쿠자가 에일리언과 최종시합(?)을 하러나가는 아침에 몸을 정갈히 하고 집을 나서는데, 구두를 신기 직전에 양말을 흰색양말에서 검은색양말로 갈아신는거예요. 흰양말을 에일리언의 피로 물들이고 싶지 않았던거죠. (??) 아 진짜 그 씬 너무 감동적이어서 목이 다 메였었는데. (???) 저는 그뒤로 흰색양말은 절대 안신어요. (????)"

 

 히지카타는 길게 담배연기를 차 지붕을 향해 내뱉었다. 히지카타의 바로 머리위에 고여서 담배연기는 차천장에 부딪혀 두갈래로 갈라져 흩어져갔다. "멍청이. 그거 4아니고 3거든." 하라다는 저도모르게 고개를 돌려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엑, 4아니에요 그거?" "야쿠자가 최종적으로 구두속에 숨겨놓은 단칼로 에일리언 목을 따고 끝나는 편이잖아. 그거 3이야 임마." "헐..."

 

 "그 시리즈는 1편이 제일 재미있지만."

 

 4편도 제법 볼만했지만, 그래도 걸작 1편에 비교하면... 이라고 중얼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히지카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하라다는 피식하고 웃었다.

 

 "1편이 눈물콧물 도둑이었죠."

 

 "...이번일 끝나면 재탕이라도 할까 처음부터..."

 

 "아, 안그래도 디렉터스컷으로 dvd가 조만간 나올 것 같던데. 예약주문해놨으니 있다 택배오면 같이보세요."

 

 "아, 과연. 내가 이래서 너에게 내가 타는 차의 운전석을 맡겼었구만. 기억났어."

 

 "하하."

 

 하라다의 힘없는 웃음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문득 히지카타도 고개를 돌려 하라다쪽을 바라보았다. 하라다는 눈이 마주친 히지카타의 긴 속눈썹 속 진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하." 짧게 웃음을 끊어내고, 히지카타는 다시 아파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동차 유리에 비친 상이 바뀌어져 있는 히지카타 토시로의 옆모습. 하라다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히지카타 토시로의 옆얼굴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을때에 그를 위에서부터 그의 뒷통수너머로 내려다보는 옆얼굴에도 무척이나 익숙하고. 하라다는 해방된 양말안쪽에서 발가락을 꼼질대면서 아주 잠시 대체 언제 자신이 그를 향한 싹을 방치하고 나무로 키워버렸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았다. 이래서 마음을 키워선 안 된다고 했던건데. 일중에 일에만 집중을 하지못하고 일 속에 히지카타 토시로가 자꾸 퍼져서. 조만간 그가 내쳐버리면 어떡하지. 이렇게 일 중에 딴생각을 하는 부하는 그의 앞길에는 필요가 없을텐데. 하라다는 저도모르게 쓰게 웃었다. 이 미친싹들이

 

 이 미친싹들이, 하나같이

 심장에 너무 깊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의 옆모습에, 그의 콧날에. 그의 숨소리에. 그의 담배연기에, 아까부터

 일일이 반응하며 어깨를 흠칫해대는

 

 하라다 우노스케는 정말이지 꼴불견이었다.

 

 역시나 이런 심장따위는 쓸모없이, 진작에 그에게 전부 바쳐버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빨리 어딘가의 난폭한 테러리스트가 히지카타 토시로의 머리라도 노려서 등뒤에서부터 칼로 덮치면 이렇게 두 팔벌리고 그 뒤를 막아서 그를 대신해 죽어버리기라도 했으면. 어서 빨리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적어도 당당하게 그의 부하로써 죽고싶건만. 하라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등을 둥그렇게 하고 몸을 적당히 움츠린 채, 다시 자신이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아파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장님."

 

 "왜."

 

 "부장님도 신발 잠깐 벗고 있으세요. 편한데."

 

 "싫어."

 

 "왜요?"

 

 "맨발로 뜀박질하는 거 딱 질색이니까."

 

 "이런."

 

 "그러다 여차할 때 갑자기 일어나면 다리에 쥐가 내려서 분명 제시간에 뛰지 못할 게 분명해요." 건방진 하라다의 소리에도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고 히지카타는 파하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담배연기의 뭉치를 내뿜었다. "그것보다 니 발냄새에 코가 떨어질 것 같은게 더 문제거든 지금은." 하라다는 불룩 튀어나와 있는 뒷통수에 손을 대고 긁적이며 최대한 죄송하다는 제스츄어를 작게작게 하여 히지카타에게 보여주었다. "이거야 정말이지 죄송하게 됐습니다." 히지카타는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지긋하게 감았다. 그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은 사실은 피로함의 경도였다. 눈아래가 붉게 상기된 히지카타 토시로 부장님은, 아마 무척이나 졸린 것이리라. 하라다는 히지카타가 정말로 졸릴 때의 표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런 표정을 지을때의 히지카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부장님.

 정말 좋아합니다.

 

 영원히, 아무말도 하지 않을테니까 제발 이 마음을 봐주십쇼.

 용서해주세요.

 

 속으로 그렇게 중얼이며 하라다는 다시 아파트의 감시하는 층을 바라보았다. 도통 아무 움직임도 보이질 않는, 아파트에 숨어있는 깡패도 방 한 칸 작은 아파트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고 있는, 그런 그에게 접촉을 시도하려고 하는 듯한 그의 패거리의 머리카락 한올도 보이지 않고 있는, 신센구미의 두 사람은 잠복의 티를 내지않기 위해 민간에서 징수해 온 일반 승용차 속에서 거의 기절하기 일보직전의 시퍼렇게 충혈된 눈을 간신히 뜨고 있는. 그리고 하라다는 생각을 잡아먹은 마음이 차안에서 두둥실 떠서 히지카타의 몸속으로 스며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생의 유일한 바람처럼 간절히.

 

 

 

 

 

 

 

 

 

 

 

 

 

 

 

 

 

- done

 

 하라히지 또 썼다~ 헤헤헤헤. -v- 누군가가 히지카타를 짝사랑하는 게 보고싶었는데, 좀 다른 인물이 히지카타를 짝사랑하게끔 하고싶었어요. 그래서 최근 붐(...)인 하라다를 붙였죠!ㅋㅋㅋㅋ 새로운 인물을 붙이니까 과연 새로운 패턴의 짝사랑글이 나왔습니다. 하라다 재밌다. 하라다 시적이다! 하라다가 비쥬얼적으로 조금만 더 미남이었으면 더 좋았을걸! 대머리인 건 좋지만 말이야 하라다!

 

 하지만 하라다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하다 캬하하하하하 =v= 이건 거의 뭐 내가 만들어낸 창작캐릭터x히지카타스럽기까지 하단 느낌임. 뭐 그래도 대충 맘에 듭니다! :> 퇴고는 그게 뭐임 먹는거임 오케이 내가 먹겠음 우걱우걱 =_=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