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사무라이의 검은 자신의 영혼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죽음, 죽음, 죽음. 

 

 죽음이 눈 앞에 와 있다.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이렇게, 내 자신이 멀어져, 허공에 

 얼굴을 들이밀고 

 

 내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부서지는구나. 

 손끝부터.  

 

 

 " ..... " 

 

 히지카타는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겨우 제혀나 한 번 씹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으면 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누군가가 와준다면. 

  

 아니, 아무도 오지 않아도 좋으니 

 

 누군가가 지금,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면. 

 

 

 

 

 

 

 

 

 

 

  

 

 

 

 

 

 행방을 쫓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오키타는 사실앞에 조용히 절망했다.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데에서 오는 절망이었다. 오키타는 더 이상 아무 방도도 없음을 냉정하게 깨달았다.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그 순간, 오키타가 취한 것은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 패배를 짊어지고 추하게 등돌아, 도망치기. 단순한 도망치기도 말처럼 그렇게 수월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살아남아있는 모든 신센구미의 대원들은 전부 오키타의 책임이었다. 등을 보이며 달릴 망정 제가 짊어지기로 한 목숨까지 버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것은 배운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키타는, 그 어느때보다 살벌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제목숨을 내놓는 것과 다르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제목숨을 내놓는 것은 정말이지, 힘이 들었다. 버거웠다. 그러나 운좋게도, 오키타는 천재에 속했고, 천재 오키타 소우고는 그래서, 패배를 인정하고 도망을 선택한 그 시점에서 자신이 책임지기로 한 목숨 그 어느 목숨도 놓치지 않은 채 그들 모두를 구해냈다. 통솔하며 숲을 빠져나와, 그때부터 오키타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아무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숲을 무사히 빠져나와 피에 땀에 절어있는 오키타를 보자마자 숲밖에서 대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콘도의 무릎이 꺾였다. 안도의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콘도는 오키타의 휘청이는 두 다리에 매달렸다. 등을 필사적으로 껴안았다. 오키타는 자신이 살려낸 대원들의 목숨줄 하나, 하나를 살피다가 이내 긴장선을 끊어내고 그대로 콘도의 어깨위로 쏟아졌다. 오키타는 작았고, 가벼웠다. 콘도는 땀에 젖어 온통 축축해져 있었다. 그리고 따뜻했다. 

 

 " 콘도씨... " 

 

 " 잘 도망쳤어, 잘했어! 잘했다, 소우고! " 

 

 울먹이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선명했다. 오키타는 귓가를 스치는 숲속의 싸늘한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행방을 쫓았지만 찾지 못하고, 오키타는 그가 달음박질친 방향과 정반대로 모두를 이끌었고, 숲을 빠져나왔다.

 숲의 깊은 곳으로, 적들은 모두 유인해 달려나간 그의 발자국을, 오키타는 이제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다.

 

 콘도의 어깨를, 오키타가 눈물로 적시며, 오열하는 콘도의 목소리 사이사이로 자신의 목소리를 가느다랗게 밀어넣었다.

 

 " 그는 죽었어요.... "

 

 아아.

 오키타는 그래서, 사실앞에 냉정히 절망했다. 

 

 

 

 

 

 

 

 

 

 

 

 장례식은 조용히 치뤄졌다. 신센구미 내의 소동과 가부키쵸 전체의 소동과, 다양한 것들을 정리해야했기에 장례식은 아주 밤에서야 겨우 시작되었고, 그나마도 비가 왔다. 가을비였다. 이 비가 끝나면 보통, 쫓아오듯 겨울이 올 것이었다. 가을비는 아주 싸늘했다. 그래서 대부분 구두를 신은 신센구미들은 발끝이 젖어 양말이 축축해졌고, 그나마도 벗지못하고 계속 신고 있어야했기때문에 발가락 끝이 동상에 걸린듯이 얼얼하였다. 신센구미 처소의 장례식을 연 방에서부터 신센구미의 문밖까지, 긴 두줄로 이어져 상복을 입은 채 똑바로 서 있는 신센구미 대원들은 그러나 그 중 누구도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떠나고자 하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대원들의 발끝은 실제로 동상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게속 젖어가기만 하는 양말에 감싸인 채 꿈틀대기나 하고 있었다. 비에 젖은 땅은 냉정하게 질퍽였고, 구두밑창은 점차 진창으로 변하는 바닥으로 깊게 빠지고 있었다. 처소의 지붕아래로 내려온 상을 나타내는 천이 젖은 채 접혀있던 것을, 신파치는 두 손을 들어 곧게 펴주고 신센구미 처소의 문을 지났다. 신파치의 안경에 가을비의 물방울과 김이 서려 거의 상의 대부분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신파치는 힘겹게 눈가를 손으로 비벼대며 자신에게 인사하는 두 갈래의 신센구미대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필사적으로, 그들의 구두끝이 진창으로 빠지는 것을 바라보며, 울지 않으려고 두 눈에 힘을 주고 그 길을 지나쳤다. 신파치는 무의식적으로 자신보다 늘 앞서걸어가는 긴토키의 뒷모습을 찾았다. 긴토키는 벌써부터 우산을 접은 채 비에 젖어, 장례식이 한창인 방을 멀치감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눈가가 엉망이고 두뺨이 빨간 카구라가 종종걸음으로 뒤를 쫓아 긴토키의 머리위로 자신의 우산을 높히 들었다. 이미 늦었다. 긴토키는 대부분이 젖어 있었기에 우산 속에 있는 것이 이미 소용이 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긴토키는 긴 소매를 휘두르며 장례식의 방으로 젖은 부츠를 벗지않고 성큼 올라갔다. 그런 긴토키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례식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흙발인 상태였다. 방안을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게끔 오늘만 그렇게 한 것일거다. 신파치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긴토키의 뒤를 따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저, 기분이. 결국 참지못하고 눈물이 흘러내려 안경안에 김이 계속 서렸다. 흐릿해진 안경알이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추지 않을무렵, 긴토키의 목소리만이 간신히 가을비의 사이를 뚫고 들려왔다. 콘도씨의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울음소리도 계속. 

 

 흰옷을, 입고 

 장례식장에 와, 그의 영정 사진으로 

 손을 뻗는 

 긴토키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역시, 없었다. 

 

 영정사진은, 그곳에 있었는데, 그 뒤에 관은 비어 있었다. 그의 시체는 아무도 찾지 못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긴토키는, 조금 웃었다. 한쪽 구석의 벽에 기댄 채 초췌해진 오키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는 오키타가 아주 미세하게 웃음을 흘렸다. 긴토키는 다시 한 번 대응하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긴토키의 미소와 함께 자신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이는 긴토키를 말갛게 바라보다가, 오키타는 등에 기대고 있었던 제 몸을 똑바로 곧추세워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흐트러진 블라우스의 카라도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걸쳐두었던 스카프도 말끔하게 다시 잡아묶었다. 그리고 전부 열어두었던 조끼의 단추도 잘 잠그고, 자켓을 걸쳤다. 소매끝부분이 접힌 부분도 제대로 펴서 주름을 없애기까지 하였다. 긴토키는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부터 물방울이 자꾸 떨어지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손으로 머리칼을 전부 쓸어넘겼다. 물에 젖어 스트레이트가 된 채로 긴토키의 머리칼이 전부 귀뒤로 넘어가다, 몇가닥의 곱슬이 다시 흐트러지며 이마 위로 쏟아졌다. 긴토키는 영정 사진 위로 고개를 숙였다. 숙인 채로 오래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드는 것에, 힘겨워했다. 

 

 비어있는 관위에, 놓여있는  

 히지카타 토시로의, 검의 집 속에는 

 검이 없었다. 

 

 관이 비어있는 것처럼, 그의 검집 속도 비어 있었다. 

 

 " 이런데에, 너의 검이 있을 리가 없지. 히지카타. " 

 

 고요한 장례식 위로, 쏟아지는 가을비 위로, 긴토키의 목소리가  

 

" 너의 검은, 너의 영혼안에 있어. 너의 영혼은, 우리모두의 안에 있어.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다. " 

 

 그 또한 고요하게 울려퍼지고, 신파치의 훌쩍대는 소리와 카구라의 엉엉하는 소리와, 그 외 또 다양한 울음소리에 뒤섞여, 콘도의 충혈된 눈이 영정 사진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 이곳의, 모두가 알고 있어. " 

 

 긴토키의 굴러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붙잡으며, 오키타는 기어코 눈을 감았다. 아주 오래전에 했던 생각들을 생각해냈다. 히지카타는 단순히 히지카타 토시로가 아니었음을. 히지카타 토시로는 단지 히지카타 토시로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음을. 그는 길가의 꽃이거나, 절벽위의 꽃이거나 하였다. 길가의 꽃이었을 때에도 절벽위의 꽃이었을 때에도 모두, 변함없는 히지카타 토시로이곤 하였다. 그리고 히지카타 토시로는 

 

 그 어떤 말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단지 히지카타 토시로였다.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하던 

 

 단 하나였다. 

 

 

 

 

 

 

 

 

 

 

 

 긴토키가 영정 사진 위로 흘려보내는 술 잔의 술이 길게 두줄 

 사진을 적시고 

 

 그 자리의 모두는 결국, 생각하였다. 무너지는 마음으로 생각하였다. 

 

 이 모든 게 거짓말이어라 라고.  

 

 제발, 살아돌아오라고. 

 살아돌아오라고. 

 

 

 

 

 

 그렇게 계속 빌었다. 그저 계속.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장례식은 깊은 밤을 지나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 이어졌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처럼. 

 

 가을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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