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나는 신센구미를 지키는 검, 곤도 이사오를 지키는 최후의 방패, 히지카타 토시로 귀신부장이다

 

 

 


 히지카타는 눅눅해진 공기 속에서 아무렇게나 헤매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다시 전부 쓸어올렸다. 신센구미의 제복은 십여년전부터 변함없었다. 단지 긴 세월동안, 좀 낡았다. 히지카타는 그러나 그 낡은 제복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별로 어색하지도 않았다. 머리칼이 귀밖으로 흘러나오면 단지 무미건조하게 움직이는 오른손으로 쓸어올리면 그뿐이다. 히지카타는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도 별로 낯설지가 않았다. 가령 거울에 비춰도, 자기 자신밖에 없는. ...옆에 누구도 없는. 그것이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익숙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히지카타는 또,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머리칼을 다시 쓸어올렸다.

 

 오키타는 죽기 전에 해놓은 말들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그의 유언이거나 한 것은 아니므로 그 말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들이 딱히 오키타가 죽기직전에 한 말들이냐고 하면 그러한 것도 아니었다. 히지카타가 그가 죽기 일주일쯔음 전부터 국장 콘도를 대신해 그의 베갯머리를 지켜주면서 둘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러한 시덥잖은 대화로 흘러보냈고, 그러므로 그 날의 말들은 그 긴긴 대화 중의 일부에 불과했다. 긴 대화를 나누며 한 번도 싸움이 돼지 않았던 시간들은 그들의 함께한 긴 세월에 그때 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키타에게는 우선, 더 이상 힘이 없었다. 스물의 초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손모가지에 더 이상 힘이 들지 않아 검을 놓친 어느 날 쓰러진 이후부터, 계속 그러하였다. 상대방이 화를 내도록 살살 긁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는데, 그 뒷감당을 이제 할 수 없었다. 타인이 화를 내면 그 화를 받아칠만한 기력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살아있다, 삶이란, 너무 힘들어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력을 소진해서. 히지카타도 마찬가지였다. 마흔을 넘기는 새벽녘의 일출을 보고 난 후부터 히지카타는 거의 발끈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대체적으로 평온했다. 그는 일본왕족의 과반수 이상이 에일리언에게 넘어가면서 신센구미의 입지와 규모가 동시에 구멍가게보다 더 작아진 날부터 대체적으로 그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서른 다섯을 넘기면서 히지카타는 머리칼을 전부 귀뒤로 쓸어넘기고 침착하고 나이보다 오히려 더 나이들어보이는 모습을 하며, 조용한 카리스마로 남은 신센구미 열댓명을 이끌었다. 그리고 오키타가 피를 토한 그 날부터, 히지카타는 오키타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긴긴 대화를 하였다. 밤의 파란 어둠과 낮의 환한 레몬빛은 그래서 영구적으로 뒤섞여가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히지카타는 오키타가 피를 토해도,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오키타는 히지카타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단지 조금 웃었다. 히지카타는 기절한 듯 잠이든 오키타의 홀쭉해진 뺨을 한 번 쓸을뿐,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오키타는 열에 달떠 꿈인지 생시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어느 밤 자신이 토한 핏덩이를 치우는 히지카타를 보면서, 단 한 번 울지도 않았다. 히지카타에게 손을 뻗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시, 눈을 뜨면, 물론

 

 눈을 뜰 수 있다면,

 

 다시, 눈을 떠서, 당신이 옆에 있다면.

 

 또 대화를.

 긴긴대화를.

 밤의 파란 어둠과 낮의 환한 레몬빛이 그렇게 영구적으로 뒤석여갈만큼 밤낮이 구분되지 않고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그런 말들을 주절주절 끊임없이.

 

 오키타는 그렇게 기대감에 빠져 서서히 다시 잠이 들곤했다. 히지카타는 그런 오키타의 옆에서 까무륵 선잠을 청하곤 했다.

 

 그리고,

 

 오키타는 죽기 전에 해놓은 말들이 있었다. 눈물을 너무 흘려서 몸살이 나 쓰러져버린 콘도씨 이야기. 이번에야 말로 정말로 먼저 죽은 야마자키 이야기. 히지카타의 늙어 진해진 주름과 더욱 깊게 파인 찌푸려진 미간에 관한 이야기. 하늘에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된 누나이야기. 히지카타도 오키타의 죽기 전에 해놓은 말 드문드문 자신의 말을 뒤섞었다. 겨우 명맥만을 간신히 이어오는 신센구미 이야기. 예전의 부흥기는 찾아볼 수 없는 가부키쵸의 다 부서진 아스팔트와, 그 부서진 아스팔트를 여전히 걸으며 살아가고 있는 얼굴들이 뻔한 가부키쵸의 늙은 사람들 이야기. 신센구미의 부러진 검이야기. 그리고 오키타는 마지막으로, 히지카타에게 그렇게 말했다.

 

 " 이렇게 꿈과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인데, 히지카타씨. 어느날 갑자기 당신 가슴에 사랑이, 사랑이. "

 

 " 뭐? 뭐라구? 소우고. "

 

 말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히지카타는 고개를 오키타에게 숙였고, 오키타의 연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 이제와 갑자기 당신 가슴에 사랑이 솟는다면, 어쩌겠어요? "

 

 " ...만약, 갑자기. 사랑이 솟는다면, "

 

 난 구걸하지 않겠어. 구걸할 수 없어.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마지막 말에 띄엄띄엄 대답했다. 오키타는 희미하게 웃었다. 히지카타가 그 웃음에 이끌리듯 웃으며, 나지막히 오키타의 웃음위에 말을 섞었다. ...그래도, 그렇다면. 난 그자리에서, 죽고 싶지 않아 지겠지. 모든 게 없어지는 이 순간조차 전부 견뎌내서, 간신히 죽을 수 있는 그 날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 죽고싶지 않아질거다. 소우고. "

 

 맞아요. 오키타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맞아요.

 

 " 맞아요. 히지카타씨. 그래서, 그래서... 히지카타씨. 바로 그래서... 나는 당신이 있어서, 그래서... "

 

 그래서, 이렇게 조용하게.

 불안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고.

 

 혼자 죽는 게 너무 쓸쓸한데,

 남은 것들을 아쉬워하지는 않으면서. 

 

 당신이 지켜줄테니까.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당신이 지켜줄줄, 잘 알고 있으니까.  

 너무나도. 

 

 

 

 

 

 그리고 오키타가 죽은 날은 겨울에 드물게, 아주 조용한 날이었다. 바람도 침묵하는 그런 날이었다. 오후부터는 아주 가늘게 비가 내렸다. 콘도의 울음소리가 드문드문, 젖은 땅을 울렸다. 안개가 깊이 깔려 한치의 발앞도 잘 보이지 않아, 히지카타는 손을 뻗어 허공을 몇 번 더듬은 후에야 간신히 콘도의 팔을 잡을 수 있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육중한 공기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내뱉자, 히지카타는 간신히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어느날 갑자기, 사랑이, 사랑이

 솟아난다면

 

 그렇다면, 난 오늘같은 날, 모든 것을

 

 후회할수도 있을테지.

 

 " 네가 먼저 가는 날, 이렇게 미어질 것 같은 마음으로 네앞에 서서. " 

 

 그래도 울지 않고 단지 지키려고 서 있는 나를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는 게 맞는 것일테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히지카타 토시로인 것이다. 

 네가 그렇게 맞다, 맞다고, 해준. 

 

 히지카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조용히 눈안쪽으로부터 어둠이 내려왔다.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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