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맵다. 매워서 눈물이 다 나네. 

 

 

 

 

 

 

 

 

 

 

 " 하지만, 나─ "

 

 " 좀 닥쳐! "

 

 " ...... "

 

 거칠게 소리를 지르는 통에 말문이 막혔다. 커다란 남자는 큰소리를 낼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영역의 소리이다. 그리고 집에 남자가 있어본 경험이 타인에 비해 극히 미미했던 히지카타에게 남자가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에 대한 경험은 전무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 큰 소리가 배로 먹먹하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그녀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문이 막힌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곧 사카타의 시선을 피하는 히지카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파르스름해진 눈가 주변에 지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열까지. 약간 무서워하기까지 하며 다물은 아랫입술의 파르스름한 기운도, 눈가주변에 내려앉은 얼은 공기도. 사카타는 왼쪽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인 히지카타의 턱을 억지로 붙잡고 고개를 치켜들게 했다. 자기보다 훨씬 높이 있는 머리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히지카타는 저도모르게 어깨를 움찔하며, 동그랗고 좁은 어깨끝을 더욱 움츠렸다. 사카타의 그림자는 너무 크고, 넓었다. 히지카타의 시야를 전부 그림자에 가둬놓을 정도였다. 

 

 " ...간다. "

 

 " ...... "

 

 역시나, 대답하지 못한채로, 히지카타는 사카타가 손목을 움켜쥐는 것을 거부할 새도 없이 팔을 이끌려 방안에서 끌려나오다시피 했다. 아랫입술을 잘근씹으며, 히지카타는 난장판이 된 호텔의 작은 방안을 마지막으로 흘끗, 쳐다보았다. 더러운 이불조각이 반쯤 걸쳐져있는 작은 침대위에 방금 사카타의 카운터 한 방에 나동그라져 턱에서부터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는 여전히 기절한 채 미동없이 널부러져 있었다. 히지카타는 한기를 느끼고 목언저리의 셔츠깃을 사카타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움켜쥐고 더욱 어깨를 움츠렸다. 남자는 히지카타의 하나밖에 없는 교복가디건을 아무렇게나 끌어내리고 성급하게 히지카타의 교복 셔츠를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단추가 그 반동으로 떨어지고, 히지카타의 목언저리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생채기가 남았다. 히지카타는 호텔의 복도를 달음질쳐나가면서 그 단추를 그 방에 두고 가는 것이 조금 싫다, 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선두에 서서 히지카타의 손목을 아플정도로 움켜쥔 채 빨리 이 곳에서 나가기를 종용하고 있는 사카타의 아무 말도 듣지않으려하는 등을 향해, 다시 한 번 저 방으로 가자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히지카타는 사카타의 등을 향해 입 한 번을 뻥끗하지 못하고, 단지 빠른걸음을 더욱 빠르게 달음질쳤다. 잡힌 손목이 점점 더 아파오고, 빠른속도에 숨이 짧게 끊겼다. 히지카타는 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호텔의 복도는 기나긴 동굴처럼 어둡고 먼지투성이로, 꼭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도.

 

 히지카타는 가만히, 찌푸린 미간속으로 눈동자를 감추었다. 몸이 싸늘해져서 한기가 드는데도, 양볼만 화끈거리고 가슴이

 뜨거웠다.

 

 

 

 

 

 

 

 

 

 

 

 

 

 " 쯧, "

 

 " ...... "

 

 히지카타의 손목을 바라보는 사카타의 미간이 더욱 사나워져서, 히지카타는 또 사카타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손목에 선명하게, 사카타의 큰 손가락자국들이 붉게 새겨져있었다. 소리없이 길게 한숨을 내쉬는 사카타의 숨결을 귀로 들으며, 히지카타는 팔뚝까지 쓸어올려진 소매를 내려 사카타의 자국이 남은 손목을 감추었다. 사카타는 손목을 놓아주는 대신 히지카타의 식은 손가락들을 자신의 손속에 가둔 채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아직 낮의 마른 태양빛이 깔린 아스팔트의 다리를 꾹꾹 걸으며, 히지카타는 구두의 굽에 바스락거리는 모래알갱이들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얇고 긴 히지카타의 손가락들을 전부 감춘 사카타의 손은 단단하고 컸다. 히지카타는 자신의 손이 차가운 것을 그제야 깨달았고, 사카타의 뜨겁고 촉촉한 손의 감촉에서, 조금은 안심했다. 그리고 다리위에 내리깔린 정오의 햇볕도, 밝아서 평온했고.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거리의 가로수들의 그림자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얼굴위로 쏟아진 나무의 그림자 사이사이로, 빛을 느꼈다. 사카타의 그림자도 바닥에 쏟아져 걸음걸이마다 한들거렸다.

 

 사카타의 이마에서부터 미끄러지는 땀방울을 바라보고나서야, 히지카타는 그제야 사카타가 몸에서 희미하게 뿜어내는 땀냄새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젖어 등에 달라붙은 교복셔츠의 지나친 주름도, 손안이 축축한 것도, 전부. ─자기를 찾기 위해 마을의 여기저기를 수없이 뛰어다녔기 때문임을, 그제야.

 

 " ...미안해. "

 

 할말이 없어서, 사과를 했다.

 사카타는 대답없이, 움켜쥔 손에 아플정도로 힘을 주었다. 

 

 평소 시끄러울정도로 말이 많았던 사카타가 아무말도 하지 않아, 히지카타는 너무나 낯선 기분이 들었다.

 

 

 

 

 

 

 

 

 

 

 

 

 

 " 벗어봐. "

 

 " ...... "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히지카타는 사카타의 시선을 피했다. 좁은 사카타의 집안의 그나마 좁은통로의 한쪽벽에 몰려서, 히지카타는 더 피할장소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었다. 거기다 양쪽으로 사카타의 양손이 버티고 있었고, 히지카타가 서 있는 바닥은 사카타의 그림자가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아랫입술을 또 깨물었다. 입술만 우물거리고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사카타의 눈이 지나치게 채근을 했다. 언제나 가느다랗게 뜨면서 한 번도 눈과 눈썹사이를 가깝게 붙여본 적 없는 주제에. 히지카타는 우물우물, 셔츠의 단추를 열었다. 얇은 손가락이 톡, 톡 소리를 내며 단추를 튕겼다. 목아래가 부들부들떨려서, 히지카타는 지금 사카타가 말을 시켜도 절대 입을 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무슨말을 하든, 성대가 떨려 스스로도 꼴불견이다 싶을정도로 떨리는 목소리를 들어버릴테니까. 히지카타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꽈악 다물었다. 

 

 " 쯧, "

 

 " ...! "

 

 또, 고요히 혀만을 찬다. 히지카타는 풀썩, 하고 큰소리를 내며 복도바닥으로 떨어지는 셔츠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브라끈이 어깨밑으로 흘러내려 팔뚝 어딘가를 간지럽혔다. 셔츠를 따라가듯 사카타도 복도에 주저앉았다. 히지카타는 두 팔로 제 배를 필사적으로 가렸다. 배꼽위에서부터 갈비뼈언저리까지 시퍼렇게 들어있는 멍을, 그러나 히지카타가 가리기도 전에 사카타는 이미 본 상태였다. 그리고, 히지카타도 깨닫지 못한 여기저기에 일어난 생채기들이 히지카타에게 어제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사카타도 알게 해주었다. 사카타는 히지카타의 집에 있는 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주저앉은 그대로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척 얼굴을 감추었다. 지금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히지카타에게 보여주기가 싫어서 그런거였다. 사카타는 지금 사람을 죽이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여자를 죽이면 히지카타는 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기를 히지카타가 눈치채게 하기는 싫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두 손으로 배를 가린 히지카타의 작은 가슴 위로, 고정되지 못하고 흘러내린 브라끈이 덧없이 보였다. 앙상한 팔과 다리. 홀쭉하게 들어간 배꼽. 그리고

 

 그리고, 무척이나 새하얀

 하얀 속살과 둔덕.

 

 " ...멍청아. "

 

 " ...... "

 

 하도 짓눌러서 시뻘개진 아랫입술에 눈을 흘기며, 사카타는 히지카타의 두 다리를 안았다. 히지카타의 놀란 허벅지가 서로 맞부딪혀 꺾여질뻔하였지만 사카타가 단단히 잡아 히지카타는 그대로 넘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카타는 겉촉감이 버석거리는 치마속의, 히지카타의 따뜻한 체온을 뺨으로 느끼고 있었다. 작고, 앙상하고, 하얗고. 그대로 꺾여져버릴것 같은데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렇게 따뜻한걸까. 

 

 " 때릴수도 없고 진짜. "

 

 " ...때려봐 어디. "

 

 " ...말같은 소릴해야 받아주지. "

 

 " ...... "

 

 머리위로, 솜털처럼

 내려앉는

 눈물방울.

 

 사카타는 눈을 감았다. 껴안은 히지카타가 부드럽고, 또 달콤하고 따뜻하고.

 

 히지카타의 상체가 무너지듯, 사카타의 머리위를 덮었다. 사카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 

 

 

 

 

 

 

 

 

 

 

 

 

 

- done

 

+ 이것은 이리에님의 군청학사에 실려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를 모티프로 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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