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광과 발버둥

 

「대등하지 못한 관계는 딱 질색이에요.」

「......」

 

 그런 눈을 하고 나에게 그런 거 요구하지 마. 히지카타의 눈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오키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정좌하고 있는 히지카타의 앞에 앉았다. 히지카타는 한숨을 내쉬며 분노에 찬 눈동자를 하고 있는 오키타의 오른손을 잡아들었다. 작고 지저분한 손에 상처가 잔뜩 나있다. 긴 머리채를 휘두르며 히지카타가 물고있는 담배의 끝을 씹었다.

 

「주먹다짐을 했구만. 누구랑했냐?」

「옆동네 보스.」

「이겼어?」

「머리를 한움큼 쥐어뜯느라고 난 상처에요, 이거.」

「이런, 이런.」

 

 쥐고 있는 머리카락이야 두번째 문제로 치더라도, 오른손에 잔뜩 난 생채기에 줄줄 흐르는 새빨간 피는 어쩌면 좋나. 쯧쯧. 히지카타는 혀를 차면서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손수건을 꺼내어 오키타의 손을 닦았다. 아플 거 뻔히 알면서 일부러 배려없는 손끝으로 사납게 상처주위를 닦는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도 꼴불견인 것 같아서 오키타는 더욱 인상을 찌푸리며 고통을 참았다. 이런 쯧쯧쯧. 이럴때 아프다고 외치지 못하는 것도 병신인 거야, 짧게 한마디하고 히지카타는 피에 절은 흰색 손수건을 아무렇게나 던졌다.

 

「대등하지 못한 관계는 딱 질색이에요.」

「그래.」

「그녀석은 나보다 세살이나 많았어요.」

「그래?」

「하지만 이겼단 말이다, 히지카타 요자식아.」

「그래그래.」

「-성의없이 답변할꺼면 입닥치고 내가 하는 말 듣고만 있어요.」

「알았다.」

 

 정말 성의없이 한 답변이었다. 오키타는 눈에서 불을 뿜을 듯이 눈앞의 검은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그저 눈을 내리깔고 오키타의 오른손만을 잡고 있었다. 어느새 가져온 약을 솜에 적셔서 상처에 발라주고 있다. 상당히 찌르는듯한 따끔한 고통이 피부를 타고 신경을 울렸다. 그 고통은 충분히 거슬리는 것인데도 오키타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정좌한 남자의 유카타 사이로 남자의 육체의 향이 피어오른다. 남자의 가마가 가깝다. 무릎을 꿇고 있는 오키타의 작은 왼손이 오키타의 무릎을 감싸쥐고 있다. 이런 병신. 이건 뭐야.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어 눈가가 새빨개진 오키타가 입을 다문다.

 

「아프겠구만.」

「......」

「안 참아도 된다.」

「...안참고 있어요.」

 

 그래, 그래. 중얼거리면서 슬쩍 입술꼬리를  비틀며 웃는 남자는 자신이 웃는다는 것에도 자각없는 사람일테지. 아무래도 상관없어. 남자의 마음은 여전히 쿨하고 침착하고 무덤덤 할 뿐이니까. 검은색 유카타너머로 쏟아진 긴 머리채는 하릴없이 흔들리고 주인따윈  필요없다. 이남자는 그런 남자야. 약이 발려진 상처위로 능숙하게 붕대를 휘감는 히지카타의 손끝에서, 또 한 번 밀려오는 남자의 냄새에 코를 박고, 오키타는 눈물을 한방울 떨구었다. 그래, 알아보지 못해도 좋아. 영원히 눈치채지 못해라, 이 못된 남자야. 

 

「...대등하지 못해..」

「하아?」

 

 떨군 눈물때문에 목이 잠긴다. 고개를 들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방울방울 진 오키타의 커다란 눈속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히지카타는 보지 못했다. 단지 상처에 열중하는 그 모습이 고맙고 짜증나고 열받고 기분나빴다. 그렇지만 떨어지는 눈물, 눈치채이는 것도 짜증나고 열받고 기분나쁜 일이니까 그냥 그렇게 계속 코박고 보지 말란 말이야. 또 한줄기 떨어지는 눈물사이로 오키타가 말을 던졌다.

 

「대등하지 못하다고, 나이때문에 나이같은거 운운하면서! 좋아서 어리게 태어난 것도 아니야, 그다지 많은 나이차도 아니잖아!」

「이-봐.」

「겨우 그런 거 때문에 봐주지 않다니, 웃기지도 않아 너무하잖아! 나이때문에 처음부터 대등하게 봐주지 않는다니 딱 질색이야, 어린애 대하듯하지 마, 이런 관계 싫단 말이다! 어정쩡하고 기분나쁘고 열받고, 어린애 취급하지마, 아니 이런말하는 게 이미 어린건가?! 그래도 할 수 없어, 난 어리니까! 그래서?! 그래서 안 된단 말이야, 애초에 어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수비범위밖으로 밀어버린다 이거지?! 빌어먹을, 빌어먹을! 늦게 태어난 게 내탓인 것도 아니잖아?! 그런 걸로 밀어두지 말란 말이야!」

「.....」

 

 급격하게 쏟아지는 말의 소용돌이에 히지카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결국 외쳐버렸던 오키타의 마음은 사납게 주위에 뿌려졌다. 눈물이 떨어지고 흘러서 여러갈래로 갈라졌다. 갑자기 목을 심하게 써서 목이 아프다. 오키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새카맣고, 깊어서 오히려 녹색으로 보이는. 

 

「..이봐, 오키타야.」

「....」

 

 어느새 붕대를 다감고 오른손이 아프지 않게 제 소매로 감싸고 있던 히지카타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일렁였다. 히지카타의 머리위까지 떨어지는 굵은 눈물방울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남자는 손을 들어 오키타의 뒤통수를 잡아 쓸어내렸다. 머리카락 사이로 남자의 긴 손가락의 뼈대가 느껴졌다. 가까이에 다가온 남자의 눈망울은 보통사람보다 훨씬 작은데에도 불구하고, 훨씬 예쁘게 보여졌다.

 

「어쨌든 이기고 돌아왔으니까 된거잖냐.」

「......」

 

 하, 뭐라고? 이 바보 눈치꽝 머저리 골초가 뭐라는 거야. 오키타는 떨어지는 눈물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연한 미소가 담배연기에 휩싸여 훨씬 멀리서 보이는 것을 자각했다. 쌓이던 눈물이 또 톡하고 떨어졌다. 머릿속을 헤매던 손가락은 쉽게 더  깊은 곳을 파고들어와 연신 부벼댔다.

 

「그 옆동네의 보스란 녀석은 이제 더 이상 너에게 얼쩡대지도 못할거라구. 그럼 네가 이긴거잖냐? 그러니까 이렇게 목놓아서 울지 마, 목 상한다.」

「...하, 진짜 이 눈치없는 자식이 진짜...」

 

 기가 차서 더 눈물이 떨어진다. 오키타는 짜증이 치밀어올라서 결국 히지카타의 앞에서 훨씬 더 목놓아 울어버렸다. 깜짝놀란 히지카타의 표정에 점점 당황함이 서린다. 어라, 눈물 멈추게 해주려고 했는데? 그 얼빠진 표정에 더욱 열받아서 아예 엉엉 흐어엉엉 집떠나가라 우니까 마당에 있던 곤도까지 방안으로 들어오고, 무지 어렸을 때에도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딸랑이까지 쥐고 흔든다. 이런 빌어먹을. 필요없어 다 필요없어. 히지카타는 여전히 오키타의 상처입은 오른손이 아프지 않게 제 소매로 감싸주고 있었고, 그것을 눈치챈 오키타도 소매속 남자의 체온을 놓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든 눈앞의 멍청한 얼굴의 남자를 실컷 더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앞으로 계속 울고있을 자신이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깟 옆동네의 이름도 까먹은 머시기때문에 내가 목놓아 우는 줄 아나.

 당신때문이란 말이다, 빌어먹을 눈치도 없는 주제에 둔하기까지한 히지카타 토시로야.

 

 

 그래서, 자신에게 내뱉는 말인지도 모르고 단지 옆동네 누구누구에게 그렇게 억울한 마음을 품었는줄 알고 나름대로 오키타를 위로해주려했던 히지카타였으나, 그 방향이 완전히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자신의 잘못도 깨닫지 못한채로 그는 오늘 밤 내내 지독하게 울어제낄 오키타를 달래기 위해 애써야만 할 것이다.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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