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소년의 손에 들린 잔인한 검. 달 아래에서 희한하게 번뜩이는 그 색은 그 어떤 사람의 손에도 들려본 적 없는 검빛을 띄고 있다. 그 특별할 것 없는 검이라도 소년의 손에 쥐어졌기 때문에 저런 색을 하고 있는 거겠지. 

 살인자의 눈동자를 하고 있는 것은 전부 마찬가지지만 그 소년의 눈은 좀 더 특별하다. 정신이상자와도 닮은 눈동자는 의외로 그냥 지독한 정상인의 빛을 하고 있다. 이렇게 비슷한 건가, 이런게 다른 건가. 대체 그는 혼자서 어디까지 간건가. 피에 절은 검을 들고 시체위에 앉아 소년의 눈이 남자의 뇌골을 파고 들어온 순간 남자는 그의 표정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해야만...? 

 

 

 어떻게 해야 네가 다시 돌아오지?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이곳에는 없던 거였나? 

 

 

「..히지카타 씨.」 

 

 

 내 이름을 부르는 너의 목소리가 지독하게 침체되어있어. 아니 평소와는 다름없는 목소리라 놀랬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고, 단지 피 떨어지는 너의 검 끝에만 온통 신경이 쏠려, 너도 살인자고 나도 살인자지만 네가 발담은 그 경계선 너머로 내가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너를 구해주러 가야하는 건 알겠는데, 네가 구원을 바라는 것도 알겠는데. 

 

 갈 수가 없는 히지카타는 그저 질려버렸다. 익숙한 피웅덩이 위에 앉아있는 오키타의 피떨어지는 옷, 피떨어지는 검날은 빛바래지 않았고, 하여튼 그런식으로 핏방울이 감겨져 떨어졌다. 

 

「...히지카타씨...」

「....」

 

 목소리가 피웅덩이속으로 빠진다. 몸의 체중으로 짓누르고 있는 겹쳐진 시체에서 쾌쾌한 냄새와 함께 검은 핏물이 주르륵 미끄러져 나왔다. 소년의 다리앞을 채우는 시커먼 피웅덩이를 지켜보면서, 히지카타는 무겁게 눈을 감았다. 한숨도 흐르지 않았다. 단지 손에 들려있는 새파랗게 날이 선 검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만 느껴졌다. 하얀빛이 분산되는 것과 동시에 밤이 내려온 이 도시에서. 히지카타는 고개를 숙인채 피에 절은 머리카락을 아래로 떨구고 있는 소년, 오키타의 시선을 쫓았다. 발이 모여져 있는 그곳에 누군가의 눈물인 것처럼 흩어진 모래덩어리 속으로, 오키타의 시선이 빨려들어갔다. 사라지듯 점점이.

 

「...히지카타씨..」

「.....」

 

 죽일 필요 없는 거였다.

 죽일 필요 없는 존재들이었다. 한낱 하루살이와도 비슷한 목숨이기는 했으나 하루살이이기는 신센구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목조차 볼품없다.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세번째 부르는 오키타의 목소리를 또 잘라먹었다. 목구멍이 말랐는지 오키타의 목소리는 메마른 채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키타의 어깨가 미동이 없더니 순간 왼손을 들어 눈가를 닦는다. 새하얀 손톱끝으로 핏물이 떨어졌다. 히지카타는 성큼, 바로 눈앞의 웅덩이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오키타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피묻은 검이 히지카타를 향했다. 히지카타는 눈썹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키타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히지카타씨,」

「......」

 

 그만. 부르지 마. 그대로 고개 들어. 검 내려. 아무것도 말이 되어 나오지않고 단지 헛되게 히지카타의 심장 가까운 곳에서 분산되었다. 히지카타의 짓눌린 입술이 끝에서부터 새파래졌다. 눈가에서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그대로 옆으로 쏠리는 가 싶더니 오키타의 큰 눈망울이 보였다. 서글서글하게 뜨고 있는 가싶더니 이내 반쯤 감으며 생긋 웃는다. 웃는다. 입술양끝이 귓가를 향했다. 평소와 다름없다. 눈부신 소년의 미소다.

 

「화났어요?」

「.....」

 

 히지카타가 다시 한 번, 오키타를 향했다. 반듯했던 히지카타의 버선이 끝에서부터 피에 물들더니 흰색의 모습은 사라졌다. 신센구미중에서도 가장 히지카타와 가까이 서있던 야마자키가 소리치듯 부장님을 내뱉었다. 히지카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웃고있는 오키타도 검은 든 채 그대로였다. 바람이 불어서 그곳의 사람들, 그리고 시체들을 덮쳤다. 먼지와 모래가 날아올라 허공을 떠돌았다. 피냄새도 떠돌았다. 

 

「일어나.」

「....」

「일어서.」

「....어라, 정말 화났나.」

 

 피식 웃으며, 오키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체들이 오키타의 반대편으로 쏟아졌다. 싸늘한 눈으로 응시하던 오키타가 다시금 웃었다. 검끝이 히지카타를 향하다가 바닥을 향했다. 힘없는 걸음이 천천히 히지카타에게로 다가왔다. 질퍽이는 버선아래에서 오키타의 검이 뚝, 뚝, 핏물을 떨구었다. 소리가 없다. 마음도 없다. 오키타는 히지카타를 향해 미소지었다. 뺨에 떨어지는 핏물을 무시하며. 히지카타의 새하얀 안면을 본다. 화가난 것 같지 않은, 평소와도 다름없는. 알 수 없는 공기를 만들고 있는. 

 

「...히지카타씨,」

「.....」

「...히지카타씨..」

 

 제기랄. 제발 대답해.

 대답해. 내 말에 대답해. 내 목소리에 대답해. 이름을 부르고 있잖아, 어서 대답해줘. 몇번이고 몇번이고 불렀는데, 어째서 절대 대답해주지 않아. 나 지금 힘들단 말이야. 빌어먹을 검이 무겁단 말이다. 오키타는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흐려졌다. 입꼬리가 흔들린다. 어깨가 아프다. 아까부터 계속, 검이 무거웠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피가 떨어졌다. 머리카락에서 입술을 타고. 시체들 한가운데에서 냄새가 지독했다. 오키타의 몸에서도 냄새가 지독하게 났다. 오키타의 어깨가 반듯이 서있는 것을 히지카타는 보았다. 검끝도 반듯이 땅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히지카타의 시선이 미동도 없이 오키타의 이마 언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턱이 앞을 향할 정도로 고개를 든 오키타도 히지카타의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히지카타씨..」

「.....」

 

 대답해줘.

 잘못했다면 잘못했다고 소리쳐 외쳐줘. 뭐하는 거야 멍청아, 정도는 내뱉어줘. 손이 움직이는 것을 기억한다. 멈추지 않고 따버린 목선사이로 뿜어낸 핏줄기가 얼굴에 사납게 와닿았던 것도. 그 와중에 느꼈던 환희속에서 춤추며 자신의 광적인 호흡사이로 내뱉어지던 웃음소리도 기억한다. 돌아오지 못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어서 그저 피분수 사이에서 호흡했다. 쉽게 끊어지고 억지로 마지막 호흡을 주워삼키는 쓰레기들 사이에서 호탕하게 웃음지으며, 두려움에 손가락이 떨리는 데에도 도저히 마지막 걸음을 멈출수가 없어서 오키타는 남자의 복부에 검을 찔러넣었다.

 

 그렇다. 멈출수가 없었다. 그길로 가면 다시는 당신옆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이 멈추지 않았다. 환희에 휩싸여 오키타의 영혼이 행복을 부르짖었음으로.

 

「.....」

「.....」

 

 미쳐가고 있는 걸까.

 손이 멈추지 않아.

 검이 무겁다. 그러나 마치 한몸 같아.

 

 너무나 아름다운 히지카타의 손. 그 손끝에 쥐어져있는 가늘게 끝을 달리는 검빛.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흰색의 파열.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차라리 부러운 그 검끝에, 맺힌 빛줄기를 따라 오키타의 시선이 떨구어졌다. 시커멓게 죽은 피가 묻은 검은 부끄러웠음에도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다. 오키타는 피식 웃었다.

 

 대답해줘.

 무서우니까.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돌아갈 수 없어. 길은 막히고 완전히 사라졌다.

 

「.....」

 

 히지카타의 오른손이 오키타의 왼뺨을 쳤다. 짝- 하고, 길게 이어지던 허공속의 파열은 크게 공기를 울렸다. 소리는 모든 신센구미의 고막을 흔들정도로 거대해서, 저모도르게 야마자키가 히지카타 가까이로 달려갈 정도였다. 새파랗게 질려있던 오키타의 왼쪽뺨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 퍼졌다. 고개가 조금 옆으로 돌아간 오키타의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뺨에 닿였다. 

 

「.....」

 

 아프다.

 아픔이 단숨에 굉장한 속도로 밀려왔다. 뺨을 타고 뇌를 자극하여 심장에까지 아픔이 떨어졌다. 그제야 손가락이 펴져서 바닥으로 검이 떨구어졌다. 첨벙- 하며 피웅덩이로 떨어진 검은 땅을 조금 파면서 깊게 떨어졌다. 

 

「......」

 

 그대로 돌아서는 히지카타의 새하얀 검이, 눈앞의 땅에 박혀있는 것을 보면서, 오키타는 조금 울었다.

 

 남자는 조금도 도와주지 않는다. 벗어나게 해주지 않는다. 차라리 영원히 그곳에서 즐겁게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곳에 가주지않겠다, 라고 말했다. 그 등으로.

 

「...히지카타씨....」

 

 눈물이 피범벅이 되어 떨어진다. 대답해주지 않는다. 대답을 바랄 자신도 없다. 등이 점점 멀어진다. 절대 함께 허우적 되어주지 않는 곧은 등이, 말한다.

 

「....」

 

 뿌리쳐 나오라고.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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