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이름

 

「...생각하면 그건, 처음부터 피어있었던 거지.」

「......」

 

 멀리서, 곤도씨와 히지카타씨의 대화소리를 들었다. 어쩐지 조심스럽다는 생각을 멍청하게 해버리고 말아서,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무작정 아무렇게나 깽판을 치고 들어갈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냥 깽판을 쳐버리는 게 더 편했을 것을 생각했다. 어차피 가령 사막의 한복판이라도 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는 내가 들고있는 물까지 다 던져버릴 수 있을만한 나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순간만은 굳이 처소의 벽 너머에서 몸을 사린 채 두 사람의 말을 숨죽이고 듣고만 있었는지.

 

「앗, 하는 순간에- 활짝하고. ...그런 거, 아니냐 토시.」

「...아는척 마십쇼.」

 

 히지카타씨의 목소리가 조금 조금 쑥쓰럽게 들렸다는 것은 아마,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술에 젖은 목소리는 이상하게 바닥을 탐닉한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수염없는 곤도씨는 이제는 좀 어색하지만, 그때는 그런 모습도 괜찮았다. 주르륵, 차가운 벽에 오래전부터 스며들어져있던 음이온화된 공기를 등으로 그대로 흡수하며 온몸이 식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어린 나는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다시피했다. 몸을 접을 수 있을만큼 접었다. 벽에서부터 목소리가 타고 오르는 것처럼 숨죽이고 귀기울였다. 남자의 머리카락이 버석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곤도씨의 웃음소리가 희미해지고, 남자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변하고, 출렁이는 술소리가 바닥으로 줄줄줄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래서, 어쩔거지? 지금부터.」

「.....」

 

 남, 자의 목소리.

 더 이상 안 들려.

 

 들려오지 않았다. 숨죽이고 있었다. 찰랑이는 술소리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더 이상. 머리카락 흩날리는 소리만 이상하게 산산이 부서졌다. 허공너머 하늘은 푸르고 텁텁하다. 바람은 시원하고 잔인했다. 벽은 차갑고 축축했다. 바닥은 미지근하고 스며들어왔다. 옷은 쓸모없고 버석이고. 머리카락은 곧게 자라났지만 조금 거칠었고. 두 손은 너무나 작고 그래도 내 얼굴은 가려주었다.

 

 

 

 

 

 

 

-

 

 

 

 

 

 

 

「아, 생각나. 너 그때 펑펑 울었었지.」

「아~~~~~~~~~~~~~~~~~~~~~~~~, 꼬맹이가 우는 게 당연한 건데 뭐 그런 거 가지고 놀림감하나 잡은 것처럼 의기양양한 표정 좀 짓지 마세요, 니가 무슨 좋아하면 일부러 더 괴롭히는 열세살이니?」

「뭐야 그 한심하다는 아~~~~~~는, 늘리지 마!!!!!」

 

 바락바락 소리지르고 있는 기운 없는 기운 다 끌어모아 머리에 힘줄 하나 두어개 정도 터뜨린후에, 히지카타씨는 구시렁거리며 소매를 걷었다. 손에 쥐어져있는 목검을 가볍게 휘두르니 허공이 두어 개 조각난 것같은 환상이 일어났다. 눈을 깜박이니 조각난 것은 허공이 아니라 목검으로, 잔상과 실상이 나누어 진 것이었다. 그래, 빠르지. 무시하지 않는다. 단지 그 속도가 나보다 조금 덜할 뿐이야. 한 번 더 목검을 휘두른다. 땀방울이 솟아났다. 거칠고 아무렇게나 자라나는 무질서한 남자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하늘높이 뻗쳐오른다. 또 한번, 휘둘리는 목검, 그리고 땀.

 

「-히지카타 씨.」

「뭐냐. 구경만 하지말고 너도 얼른 와서 연습해.」

「.....」

 

 나는 개인적으로, 부드럽고 아래로 잘 떨어지지만 좀 쉽게 똑똑 끊어지는 내 머리칼보다는 굵고 거칠고 아무렇게나 뻗치지만 단단한 히지카타씨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부럽다. 물론, 손가락을 넣고 헤집기에는 부드러운 내 머리칼이 낫겠지만. 언젠가 그 도톰하고 보드라운 다리에 눕게 해주었던 유곽의 주인은 나의 머리카락속에 손가락을 헤집으며 호호 웃었었다.

 

 '넌 부드럽구나, 그 사람과는 딴판이야.'

 

「...누구랑 비교하는 거야? 빌어먹을 계집애.」

 

「뭐랬냐?」

「아무말도요.」

「인상찌푸리고 있는데?」

「당신 검술이 너무 재미없어서 그래요.」

「아- 꺼져, 신경질 나. 너 꺼져 돌아가.」

「히지카타 씨.」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차고있는 진검과 내옆에 두고 마루에서 내려간 히지카타씨의 검을 들고. 검집은 잘그락거리며 잘도 화려한 검신을 보여주었다. 검집을 대충 버리고 히지카타씨에게 검을 던졌다. 히지카타는 목검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검을 받았다. 검집에서 검을 빼내는 내 모습을 보고 눈썹하나를 휘다가 곧 입을 다문다. 바람, 하늘, 나무. 그 모든 것이 섞이는 듯한 색으로 빛나고 있는 눈동자는 좀 작지만 깊고 푸르다. 나는 천천히 그 눈동자를 주시하며 신센구미의 스카프를 풀러내렸다. 그리고, 눈. 좀 더 선명하게 뜨면, 당신의 검신이 전부 보인다.

 

「갑니다.」

「...와라.」

 

 소용없어.

 당신 칼날은 절대 안 박혀. 나에게 절대 다가오지도 않아. 눈하나도 깜짝 안 해. 소용없어. 당신의 검이 당신의 검집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내 몸은 당신을 향해 뛴다. 땅을 세 번 박차는 것과 동시에 당신을 향해 몸을 날릴 거야. 당신은 긴장하고 있어, 눈매가 사나워져서는. 날카로운 내 눈동자에 기가 죽는 다기 보다는 곧 다가올 검신의 끝을 피부끝으로 느끼고 있는 거겠지. 아마 당신은 민감하게 내 휘두르는 검에 반응해. 당신의 검은 당신의 뇌에서부터 내려오는 당신의 명령을 받고 내앞을 가로막겠지.

 

 그렇지만 소용없는 거 알고 있지?

 당신의 힘으로 무리야. 당신의 뻗치는 머리카락보다 더 잔인하게 멀리 퍼지지, 내 검은. 일말의 잔상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허공과 동시에 당신을 벨거야. 살의, 이건 살의다. 미치광이처럼 일어나는 이것은 살의다. 당신을 향한 살의다. 당신을 죽이면 없어질 살의다. 내 두눈에 가득 담긴 당신을 햔한 살인의 충동이다. 이것을 정면으로 받을 자신이 당신은 있는가? 내가 진심으로 당신을 향해 당신을 죽이고 싶다는 심정을 당신의 몸으로 던지는 것을 당신은 진정 마음으로 받아들여줄 수 있느냐고? 눈동자가 날카롭다, 당신의 검끝만큼. 피부가 긴장하는 것이 공기를 타고 느껴진다. 내 몸은 빠르다. 공간을 허공처럼 넘는다. 당신의 검은 내 검끝에 부딪힌다. 검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내머리카락도 내 눈가 가까이에서. 당신의 눈동자가 당황한다, 나의 눈동자에 어린 살기를 앞에두고. 당신의 발은 허술하고 당신의 몸뚱아리는 느려. 나는 쉽게 당신을 벨 거야.

 

「윽-!!!」

「....」

 

 이것 봐. 언제나의 꿈처럼. 결국 내가 당신을 베잖아.

 마치 나뭇가지의 꽃한송이를 따버리는 것 같이.

 

「큭,」

 

 당신의 몸이 흘러내린다. 당신의 몸속에서 붉은피가 샘솟는다. 내 손가락 사이로 당신의 피가 엉겨붙었다. 눈앞에서 꽃 한송이의 꽃잎들이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쏟아지는, 당신의 육체.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손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흙은 피를 머금어가고 당신의 몸은 점차 늘어진다. 아아, 이런.

 

 피투성이의 내검. 꽃잎이 떨어진 당신은 꽃.

 

 

 

 

 

 

 

-

 

 

 

 

 

「들어가지 마라.」

「...싫은데요.」

 

 곤도씨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평소와는 다른 위엄이다. 그래봤자 소용없어서,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이제 수염이 없는 것이 더 어색한 곤도씨이긴 하지만, 가끔 아침마다 면도할때의 곤도씨를 볼때마다 그날의 곤도씨가 떠오른다. 그, 씁쓸하고 씁쓸한 호탕한 웃음에도, 이상하게 남자의 진심은 단념이라기보다는 인정과 이해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좋아하고,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여기까지 따라왔을까.

 

 남자의 목소리. 더 이상 안들려.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덜컥 겁이났다. 아직 봉오리조차 맺히지 못한 나는 이미 펼쳐진 꽃한송이였던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리가 만무했음에도. 나는 어린애의 무기를 이용했다. 목놓아 울었다. 큰소리로 우니까 차가운 벽너머로 나를 향해 걸어오는 남자의 발걸음을 들을 수 있었다. 기나긴 소매속으로 두손을 넣고 긴 머리카락을 아래로 떨구며 남자는 쯔쯔, 혀를 차며 나를 지켜보았다. 주저앉아 목놓고 울고있는 나를 달래주지는 않고 그저 바라본 채 쯔쯔대고만 있었다. 또 남자의 뒤에서 곤도씨가 다시금 웃으며 찰랑, 술잔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하지도 않는 자리였지만 나로 인해 어색하게 끝나 결국 그때의 화제가 다시 두 사람사이에서 거론된 적은 없다.

 

「넌, 연습중에 토시를 다치게 했어.」

「고작 그런 거 가지고 히지카타씨 방 출입금지를 시킵니까? 어린애도 아니고, 연무장에서 연무하다 좀 베인 거 가지고 드러누운 히지카타씨도 웃기지만.」

「소우고! ...히지카타는 24바늘을 꿰매고 지금 발열중이다.」

「......」

 

 얇은, 창호지 문 너머로 남자의 허덕이는 숨결, 억제된 신음. 캄캄하고 어두운 방, 흐트러진 몸새.

 

「...죽이지만 않으면 된거잖아.」

「너는, 최근 좀 정도라는 걸 모르게 된 것 같은데. ..그런 게 너니까 딱히 큰 참견은 하고싶지 않아. 하지만, 네가 정말 토시를 죽이고 싶어하는 감정이 있는거라면 지금부터 이야기는 틀려진다.」

「......」

「토시를 잃고싶지 않아, 소우고.」

「......」

「너도, 잃고싶지 않아. ...소우고.」

 

 먼, 먼.

 

 먼곳에서, 사락거리며 천리향 냄새가 퍼졌다. 어두운 밤, 금가루처럼 뿌려진 꽃냄새에 가슴이 쿵쾅쿵쾅, 요란하게 뛰어서. 그렇다면 아무렇게나 달을 두쪽낼까 싶었다. 그래서 한쪽을 내가 가지면, 이 별 거 아닌 세상에 뿌려진 금싸락같은 것도 좀 볼 수 있게 될까 싶어서.

 

 뭐, 이런. 바보같을 정도로 전혀 안어울리는 낭만적인 생각도 좀 해봤는데. 가령 달을 쪼개어 한쪽을 내가 가지면, 그것을 정말 내가 가지면, ....혹시나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가, 선물로. 하고.

 

「-내 꽃도 피어있어. 곤도씨.」

「...뭐?」

 

 이미 예전에, 내 꽃도 피어있었다. 나조차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

 

 

 

 

 

 

-

 

 

 

 

 

 

 

 

 죽으면 도망치는 거다. 신센구미에서. 당신은.

 

「......」

 

 당신의 숨결이 흐트러질때마다 당신에게 다가가 당신의 목을 졸랐다. 가볍게 살짝 짓누르자 더욱 급해진다, 어우러지는 숨결. 내 입속으로 토해내는 당신의 토기를 그대로 받아먹고만 있지는 않아. 손가락에 힘을 빼면 또 급격하게 정리되는 숨결, 인간의 목숨이란 제법 바보같아서 살아가기 위해 집착수준을 보이는데, 그래도 아마 당신은 영원히 잊지 않을거야. 공기는 많이 있다는 걸. 나는 가끔 까먹는다. 그 사실을. 오로지 나를 위해서.

 

「......」

 

 위험, 인물로 찍힌걸까나? 나를 바라보는 곤도씨의 시선은 무서워서 오금이 다 저린다. 킥킥, 웃고나니 또 남자의 숨결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번에는 남자가 누워있는 방향과 똑같이 누워봤다. 저 눈, 저 코, 저 입. 저 머리카락. 손을 뻗어서 쓸어내려주고 싶은데, 그럼 언젠가 엉겨붙었던 여인의 기분나쁘게 감겨들어오는 머리칼이 생각날 것 같아서 관두었다. 그냥 이렇게, 저 눈, 저 코, 저 입. 핏기어린 입술과 창백해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차갑고 맨 바닥에 누워.

 

「....히지카타 씨.」

 

 이렇게 피어있는데.

 

「있잖아요, 히지카타씨.」

 

 이렇게나 피어있었다. 언젠가, 어느순간 천천히. 

 

「나는 말이에요. ...크면서, 내가 생각했던 이성적인 감성들이- 자라면서 점점, 이성이 아닌 것들로 묻혀져버리길 바랬어요.」

 

 당신이 피워버렸던 당신속의 꽃잎들과 같이, 결코 같은 향기는 내지 못할테지만 적어도 꺾이지는 않을만한 나의 꽃송이가. 전부 피워버리면 내가 생각한 모든 어리석은 이성들은 그 감성들에 묻히고, 그렇다면 나는 결국 처음부터 발끝까지.

 

「그냥 그렇게 흐르듯이- 좋아하던 장난감 잊어버리듯이.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꽃을 조금 더 가꾸면, 적어도  썩지않고 피어나면, ...그럼 틀림없이. 꽃향기에 취해 황홀해질 수 있을 거라고요.」

 

 아무생각않고 당신만 좋아했을거야. 당신 마음속의 꽃송이따윈 무참하게 밟아죽이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소리냐면..내 의지따윈 무시하고 감정이 완전히 변화를 해버리던가.. 아니면 완전히 성숙되어버리던가..」

 

 송두리 째 뽑혀서 모습을 변화시켜버리던가. 그게 아니라면 세상 그 어느것보다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랬어.

 

「..생각은 그렇게 했더랬어요. 노력은 하나도 안했지만, ..진짜 생각은 ...」

 

 

 

 

 

 아, 눈물.

 

 

 그때처럼 목놓아 울지는 못 해.

 

 그때는 아마,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목구멍을 막는 불쾌한 기운을 어떻게든 막기를 원했던 거다. 당신의 꽃잎따윈 내가 전부 떨구어버릴거야, 하는 욕심쟁이의 심정으로 엉엉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서툰손은 끝끝내 나에게 어떤 위로도 하지 못하고 어색한 포기의 곡선을 이루고 말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때 당신의 신경은 나를 향했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어, 그것만으로도 좋았어. 당신의 꽃이 가지를 쳐, 당신의 꽃향이 더욱 깊어져서, 내가 만든 가짜 결계보다 훨씬 깊고 깊어져서 내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수준까지 가버린다면, ..그래서 내 손이 시도도 못해볼정도로 넓고 깊어졌다면 나는.

 

「...나는 죽었을거야.」

 

 나는 죽었을 거야. 내 꽃은 비정상적이지만, 그래도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어.

 

 눈물이 바닥을 적셔서, 당신 얼굴을 보기가 좀 힘들다. 바닥은 여전히 차갑고 축축하다. 당신은 좀 멀리있다. 눈물이 한쪽으로  쏠려 흐른다. 불투명한 막은 당신을 차단해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한다.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려있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소리내어 울고싶지만 그때처럼 목놓아 울지는 또 못 한다. 당신의 감겨있는 눈이 무자비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내가 본 꽃중에 가장 예뻤다. 사실은 하늘을 향해 흩날리는 숨결들도, 약간 거칠고 질감이 느껴지는 머리카락도, 무신경한 말을 내뱉는 입술도, 혀도, 조금 체온이 높은 육체와 그 육신을 이루어내는 영혼까지,

 

 전부 좋아해.

 

 

「.....」

 

 

 제발. 

 제발.

 부탁이야. 

 

 부탁이야, 제발.

 

 너무 멀리가지 마. 못따라가겠어. 

 

 공기가 좀 모자라. 난 좀 덜컸어. 공기는 잔뜩있다는 것을 알고있는 당신이 필요해.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당신이 필요해. 내 검앞에 서 있는 당신이 필요해. 내 살의에 겁에 질리는 당신이 필요해. 내 우스개소리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당신이 필요해. 울고있는 나를 서툰 손길로라도 위로못하고 결국 체념의 한숨을 내뱉는 당신이 필요해.

 

「....윽,」

 

 꽃처럼,

 

 꽃처럼,

 

 꽃처럼.

 

「흐윽.. ..윽..」

 

 ....꽃처럼, 피어나는 미소를, 짓는 당신이, 나에게는 아직 필요해.

 ...미안해. 미안해. 나도 미안하다는 말은 할 줄 알 정도로는 컸어. 용서해줘. 사죄도 할게. 눈을 뜨면 상처줘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깎아줄게. 그러니까 부탁이야, 조금 더.

 

 웃어줘. 옆에서 울게 해줘. 좀 더 웃어줘. 손 좀 잡아줘. 가지 말아줘. 밀어내지 말아줘, 제발. 사라지지 마. 없어지지 마. 가지 마.

 

 ..가지마. ...좀 더, 좋아하게 해줘.

 

 웃어줘. 꽃처럼.

 

 

 

-

 

 

 

 

 그때처럼 목놓아울지는 못해서, 어쨌든 몸을 동그랗게 접고 입을 최대한 막고 울었다. 봇물처럼 터질 것 같던 울음소리는 막은 대신에, 터진 수독꼭지같은 두 눈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남자의 호흡소리가 내 울음소리에 잠겨 잘 안들린다. 남자의 상처가 아팠을 것 같아서 새삼 미안하다. 얇은 창호지문밖으로 한숨을 내뱉는 곤도씨의 인기척이 피부로 느껴진다. 여전히 차가운 타다미방 너머로, 체온이 조금 높은 히지카타씨의 살냄새가 느껴졌다.

 

 

 

 

 

 

 

-

 

 

 

 

 

 

 

 

 

「토시야.」

「아, 곤도씨. 오키타 요놈이 안보이는 데 어딨는줄 알아요?」

「....」

「건방진놈, 사람을 무썰듯 썰어놓고는 어딜간거야. 나한테 입힌 상처만큼은 못돌려주더라도 관절꺾기 한 번은 해주고싶다. 요자식, 그래봤자 내가 또 당하겠지만. 아 짜증나, 영원히 못이기려나 빌어먹을 꼬맹이놈.」

「...토시야.」

「네, 곤도씨.」

 

 곤도씨의 목소리가 퍼졌다. 허공으로 어디로든. 

 

「...너, 죽을 땐 꽃에 좀 파묻혀서 죽어라.」

「...? 머리 다쳤어요?」

「하하.」

 

 꽃에 파묻혀버려. 내가 꺾어다 줄게. 가시는 떼어내버리고, 흰꽃과 붉은꽃과 보라색 꽃을 섞어서. 온몸을 장식하는 꽃냄새에 질식해가는 나, 그리고 세상모르듯 눈감고 있는 당신. 당신을 쫓아 눈물흘릴 거야. 당신의 피처럼 꽃들을 갉아낼거야. 아름다워. 아름다울 거야.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 꽃속에서 조금씩, 침잠되어가는 그 얼굴.

 

 「....」

 

 ...눈이, 너무 꺼끌해서, 지금은 좀 히지카타씨 앞에 나가는 게 민망해서. 그냥 멍하니 퉁퉁 부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공, 어디선가 천리향의 꽃가루가 날아온 듯 향이 솟는다. 빈하늘을, 무언가가 가득채우는 것 같았다.

 

 

 

 

 

 

 

 

 

 

 

 

 

 

 - done

 

+ 이제는 쓰지않는< 오키히지 작품중에 제일 인기 있었던 작품. 확실히 이때가 절정이었던 것 같긴해... 06년도 글이로구나 후으... 그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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