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


 

 체온이 느껴질만큼 가까운 거리다. 갑자기 배아래에서부터 밀려오는 긴장감이 히지카타를 당황케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긴토키와의 빈공간을 만들고 싶다. 떨어지고 싶어. 하지만 이제와 몸을 움츠리거나 옆으로 당기거나 하는 것도 너무 어색하잖아, 의식하고 있다는 걸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데. 히지카타는 그런생각을 하며 거의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었는데, 한 번 의식하니 더욱 고개를 움직일 수가 없어서 목덜미 언저리가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래서 목줄기나 귓불같은데가 점점 화끈거리며 붉어졌는데 어쨌든 히지카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지속해나갔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긴토키의 체온을 의식하며 사실은 자기가 내심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긴토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대체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왜 오늘 갑자기 사카타 긴토키와 맨살이 부딪혀 스치고 있다는 사실로 이렇게 당황해야 하는 것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태연하게 서로가 서로를 놀리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히지카타가 긴토키의 어깨도 내려치고 긴토키한테 주먹도 날리고... 둘이 같이 팔씨름도 했었는데. 왜 오늘 이렇게, 갑자기.  


 두사람은 키가 크고 뼈가 단단한 남고생에게는 좀 작아보이는 책상을 딱 붙인 채 분단의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채였는데, 히지카타는 창가쪽이었고 긴토키는 교실쪽이었다. 수업중에 긴토키는 종종 하복 바지주머니 양쪽에 두 손을 집어넣고 있곤 하는 공부에는 별로 의욕이 없는 평범한 불량학생이었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 포즈를 취한 채 종종 하품을 하는 반건성의 태도로 칠판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아까부터 히지카타가 의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긴토키의 그 팔이었다. 긴토키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거겠지만, 지금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반동으로 팔의 관절이 구부러진 채 옆으로 벌려져서 그의 팔꿈치가 히지카타의 팔에 스치듯하며 닿고 있었던 것이었다. 긴토키의 피부가 닿아 그의 체온을 짧게 느낄때마다 히지카타는 내심 깜짝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리고 싶은 것을 당황하며 참아내야만 했다. 어쩌면 히지카타의 의식이 지나친 건지도 몰랐다. 단지 옷깃이 연거푸 스쳐지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씩 닿아오는 이 타인의 피부는? 내 것이 아닌 체온이 순간순간 느껴지는 이 미지근함은? 히지카타는 필사적으로 긴토키와 자신의 팔이 닿아있는 부위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자신의 목에 힘을 주고 또 주었다. 그럼에도 목은 금방이라도 팔을 내려다보기위해 움직일 것만 같았다. 히지카타의 의지를 배신하고.


 칠판은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칠판위의 깨알같은 필기들은 그래서 점점 히지카타에게서 멀어져갔다. 오른팔에 닿아있는 긴토키의 체온에 전신경이 집중되어 있어서 글씨가 글씨로 눈에 들어오지가 않는 것이었다. 어느샌가 선생의 수업진행마저 놓치고 만 히지카타는, 정말이지 슬슬 자기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이게 뭐야. 팔 좀 닿은 거 가지고. 그것도 그 사카타 긴토키와. 이놈이 대체 뭐기에. 히지카타는 자신의 책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공책바닥에 햇살이 쏟아져 줄이 그어져 있는 부분이 부옇게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였다. 눈동자 안쪽이 화끈거렸다. 사카타 긴토키의 체온은 미지근하게 낮았고, 그의 체온이 점점 평소보다 높아져있는 히지카타의 체온을 잠식해갔다. 히지카타의 심장이 두근두근 튀어올랐다. 대체 이게 뭐야. 이게 뭔데. 눈 안쪽이 너무 뜨거워.


 "히지카타군. 이거 먹을래?"


 긴토키의 목소리가 쿵, 하고 히지카타의 어깨에 무겁게 내리앉았다. 히지카타는 누군가가 심장아래를 주먹으로 내려친 것 같은 둔탁한 고통을 느끼면서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 자기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히지카타는 자신을 향해 막대사탕을 쥔 손을 뻗고있는 긴토키의 졸려보이는 눈을 한 옆모습을, 그리고 막대사탕을 번갈아가며 보기를 두어번 반복하였다. 한쪽 손은 여전히 주머니속으로, 한쪽손은 사탕을 두 개 쥔 채 히지카타쪽으로. 히지카타는 쿵쿵하고 눈안쪽을 울리는 심장소리에 일단 숨을 멈추었다가, 한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가렸다. 역시 자신이 없었다. 지금 대체 그의 옆모습을 앞에두고, 제대로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짓고있다는 자신따위가 어떻게 있을 수가


 아아

 대체 어떻게 된걸까.

 대체 내가 어떻게 된거지.


 내가 대체 왜 사카타 긴토키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울고싶어지는 거지.


 "...미친놈. 지금 수업중이다." 입을 가린채 간신히 떨지않고, 히지카타는 그렇게 내뱉었다. 긴토키의 소곤소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에이 뭐 어때. 수업방해도 아닌데. 히지카타군은 너무 빡빡해." 긴토키는 손가락을 움직여 사탕 하나를 히지카타의 교과서 위에 소리없이 던졌다. "그렇게 빡빡하면 여자들한테 인기없어요 오오쿠시군? 긴상처럼 여유를 가질 줄 아는 남자가 요즘 대세인거 아나 몰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두 어번 흔들어대며 쯧쯧하고 혀를 차는데, 그 모습. 그 졸려보이는 눈동자 깊은 곳의 여유로운 표정. 이렇게나 평소와 다름이 없는데. 어제와 다른점따윈 하나도 없는데, 왜 오늘 갑자기. 왜 오늘 갑자기 이렇게 히지카타의 눈동자를 먹먹하게 하는 거지. 히지카타는 긴토키에게서 곧 고개를 돌렸다. 긴토키의 얼굴을 계속 보고있기가 힘들었다. 눈 속에 불이 퍼지는 것 같았다.


 이런, 이래서야

 이건 마치.


 마치 내가.


 "......"


 아니아니. 아니야. 인정하면 끝장이야. 이따위는 착각에 불과하지. 긴토키의 체온도 뛰는 심장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눈속도 다 순간의 헛소동일 뿐이라구.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꽈악 다물었다. 그리고


 꽈악 다문 입 안쪽에서부터

 꽃냄새가 퍼졌다.


 "......"

 

 정말로?

 정말이야?

 이게 정말이란 말이야?


 아아

 최악이야.


 정말로 최악이라구.


 차라리 울고싶지만, 입을 열면 꽃이 쏟아질 것 같아서. 여기서 꽃이 쏟아진다면 그래서 긴토키가 모든 걸 알아버리고 만다면, 죽을테다. 차라리 죽을테니까. 히지카타는 필사적으로 목구멍에 힘을 주고 입을 힘껏 다물었다. 금방이라도 피어올라 목구멍 밖으로 튀어오를 것 같은 달콤한 향기를 가진 꽃들의 힘을 그렇게 하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히지카타는 최선을 다해서 목에 입을 주었다. 지금 이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 done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요새 유행하는 꽃토병으로 평범하게() 마무리하였어요... 어제까지 아무자각도 없었다가 오늘 갑자기 사카타 긴토키를 향한 짝사랑이라는 꽃을 피워버린 히지카타 토시로..!! 라는 내용입니다. 예전부터 짝사랑하는 사람한테 '꽃을 피웠다'라고 표현하길 좋아하던 사람이라 꽃토병도 같은 맥락에서 참 이쁘다고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평범하게나마 이렇게 한 번 써보네요. :>

 

여기까지 트위터 은혼전력 60분에 참가한 글 전문 :> 이것도 역시나 약 오분쯤 전에 올린 글이므로 어제날짜로 올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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