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키우는 거예요 01화



 

 까마귀 히지카타 토시로가 숲 밖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여우요괴를 주워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덕분에 히지카타는 한동안 그 수를 알 수 없는 방문객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작은 여우를 구경하겠답시고 숲에 사는 모든 요괴와 정령과 동물에 영혼까지 죄 몰려왔다 돌아갔다를 반복했고 (식물들이 날뛰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하는 것일까! 뿌리만세!) 그럴때마다 히지카타는 아직 눈도 안떴다고 다 나을 때까지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된다고 때되면 어련히 볼까 다 나아서 숲을 뛰어노는 날이 올 때까지 좀 기다리라고 버럭대는 수밖에 없었다. 고함을 쳐서라도 모든 방문객을 문전박대하는데에는 물론 작은 여우요괴에게는 현재 절대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히지카타가 이 작은 여우를 발견했을 때 여우는 이미 만신창이인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자신이 흘린 피웅덩이 속에 있던 작은 털뭉치를 한 손에 들고 당장 요괴들의 의사를 찾아갔고 의사는 조금만 늦었어도 모든 게 끝났을 거라고 말했다. 하얀 붕대가 핏덩이에 금세 물드는 것을 보며 히지카타는 이 작은 여우에게 일어났을 모든 경우의 수를 상상했다. 여우에게 닥친 일은 그야말로 뭐든 가능했고 뭐라도 다 실제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했다. 다른 나쁜 요괴에게 걸렸을 수도 있고, 영역다툼을 하는 성체 여우요괴에게 당한 것일수도 있다. 어쩌면 인간에게 잘못 걸린 걸수도 있었다. 어린 게 천지앞도 모르고 마구 달리다가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쨌든 여우는 큰상처를 입고 사경을 헤맸고, 의사의 훌륭한 처치에도 한동안 의식이 없는 그대로였다. 히지카타는 긴 한숨을 내쉬며 피웅덩이속에 잠겨있는 그 작디작은 아이의 모습같은 건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다고 중얼거렸다. 의사는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히지카타가 그 말을 중얼거리는 것도 벌써 다섯번째였던 것이다.


 숲의 히지카타 토시로 집으로 데리고 오고 나서도 여우는 한동안 깨어나지 않았다. 히지카타도 만약의 일에 대비해 외출도 하지 않고 계속 여우의 옆에서 그의 병수발을 들었다. 여우는 열이 펄펄 끓다가 갑자기 너무 차가워지다가를 반복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것이 낫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히지카타는 여우의 몸에 열이 오를 때는 찬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몸이 너무 차가워질 땐 작은 여우의 몸을 꼬옥 끌어안고 자신의 날개로 등을 감싸주었다. 여우는 작았고 히지카타의 품속에 쏘옥 들어왔다. 보송보송한 솜털로 가득한 아홉개의 꼬리가 추욱 늘어진 채 움직이지 않는 게 퍽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은색의 곱슬머리는 온통 땀에 젖어 여우의 뺨에 달라붙었고 히지카타는 간간히 여우의 얼굴을 손등으로 훔쳐주었다. 마시는 물을 적신 수건을 짜서 의식없는 여우의 입가와 혀 주변을 적시고 그걸로 모자르다 싶을 때에는 의사가 가르쳐준 대로 주사를 놓았다. 처음엔 손끝이 서툴었는지라 주사자국이 붉게 부어올랐고 그럴 때마다 히지카타는 어쩔줄몰라 전전긍긍했다. 그랬던 주사도 놓는횟수가 더해갈수록 능숙해졌고 히지카타는 서서히 한참어린여우의 여린 피부에 적응해가는 스스로를 다행스럽게 여겼다. 그렇게 병간호를 하며, 더욱이 여우가 밤새 끙끙대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에 잠도 자는둥마는둥 하는 동안, 히지카타의 안색도 상당히 나빠졌는데, 수면부족으로 피부가 푸석해지고 까만색 날개에 윤기가 사라질 정도였다. 물론 히지카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하여간 그런 식으로 며칠낮 며칠밤이 흘렀고, 어느날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이 몽롱한 눈을 한 채 여우는 히지카타의 품안에서 속삭였다. "...따뜻해." 히지카타는 물기에 젖은 푸른 눈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뺨에서 굴러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손끝으로 살짝 훔쳐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괜찮아." 여우는 또르륵또르륵 눈물방울을 굴리며 금세 또 잠이 들었다. 히지카타는 자신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드는 여우를 순순히 더욱 끌어안아 주었고, 뺨에 닿는 간질간질한 솜털에 이끌리듯 스르르 눈을 감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것은 안도의 한숨이었다.


 여우는 자신을 사카타 긴토키라고 했다. 까마귀의 검은색 날개를 매만지며 나는 긴토키, 사카타 긴토키라고.

 한동안 굶어서 뱃속에선 쉴새없이 꾸르륵 소리가 들리는데에도 정작 본인은 아랑곳않고 계속 히지카타의 날개만을 만져댔다.


 히지카타는 어제 태어났다해도 믿을만큼(하하) 작은 여우가 까마귀요괴를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라 이렇게 날개에 푹 빠져있는 건가 생각했다. 애들은 원래 날개같은 걸 좋아하고 말이다. 사경을 헤매는동안 비몽사몽의 와중에도 눈을 뜨면 늘 자신을 품어주고 있는 까맣고 하얀 남자와 그 남자의 까만 날개를 이 작은 여우가 사랑하게 되었다는 생각은 사실 조금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아픈 내내 한번씩 의식을 돌아오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누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고독해진 채 그저 죽을날만을 기다리던, 제가 흘린 피웅덩이에 누워있던 어린 아이가 자신을 보듬어주며 따뜻한 품안을 기꺼이 내어준, 까만 날개로 등을 빈틈없이 끌어안아준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는 일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여우는 뭘 먹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려하는 히지카타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자기도모르게 두팔을 뻗었다 그대로 침대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도 그러니까 사카타 긴토키에겐 별로 특이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단지 히지카타만 깜짝 놀라며 바닥을 한바퀴 구른 후 아야 하며 뒤통수를 문지르는 아이에게 헐레벌떡 다가가 그를 번쩍 안아들었다.


 "야! 기껏 나아가는데 덧나면 어쩌려구그래! 침대에 가만히 좀 있어라 요녀석아."

 "...하아."


 그리고 긴토키는 커다랗고 땡그란 눈으로 자신을 번쩍 들어올린 히지카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구른 자기보다 더 아파하는 표정, 넘치는 염려에 굳은 하얀 얼굴은 믿을 수 없을정도로 아름다웠고, 사카타 긴토키의 아름다운 것을 보면 웃는 버릇은 그때쯔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긴토키는 자신의 옆구리에 각각 손을 밀어넣고 자신을 번쩍 들어올린 히지카타를 천천히 훑은 후 재빨리 두 손을 양옆으로 들어올린 후 파닥거렸다. "같이 갈래. 같이 갈 거야." 지금 사카타 긴토키가 할 수있는 최대치의 어리광이었다. 긴토키는 양손과 더불어 아홉개의 꼬리도 쉴새없이 흔들어주었다. "토시로랑 같이 갈 거야. 나 두고 가지 마." 두고가다니, 내가 언제 두고간다 했어. 히지카타는 혀를 찼다. "야, 니 밥 만들어주려는 거거든. 거기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1층에 내려가는건데." "나도 같이가~." 그리고 히지카타는 어이가 없었다. 이러는와중에도 이 작은 여우의 배에서 마치 천둥이 치는 듯 엄청난 꼬르륵 꾸르륵 꼬르르르르륵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게 제일 어이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사람은 결국 웃게 된다. 피식. 그래서 히지카타도 어쩔 수 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참내, 귀엽네. 이렇게 귀여운 게 다있네.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건가? 아니, 원래 애들이란 게 귀여움의 덩어리이긴 하지만.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긴토키를 안아들어 목에 매달리게 했다. 아직은 절대안정이지만, 오랫동안 침대서 누워만 있었으니 지겹기도 하겠다싶었다.(히지카타는 물론 긴토키가 자기한테서 한시도 떨어지고싶지 않아하고 있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꽉 잡고 있을 수 있지?" 긴토키는 양손으로 히지카타의 목을 꽈악 끌어안으며 쉴새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팔을 있는힘껏 뻗어 작은 손으로 목을 꼬옥 끌어안는 게 귀여워서 히지카타는 또 웃고말았다.  "인마 목조이지 마라. 참나." 그대로 흘러내리면 히지카타의 날개죽지에 닿을지도 몰라서, 긴토키는 더욱 신중히 다리를 배에까지 끌어당기며 히지카타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꼬리가 살랑대며 히지카타의 날개를 통통 내려치는 감각에 히지카타는 왠지모르게 가슴언저리가 간질거렸다. 작은여우는 전혀 무겁지 않았다. 입고있는 옷보다도 더 가볍게 느껴졌다. 얼른 나아라. 다 나으면 또 많이 먹고. 할 일이 많다. 숲밖에서 힘차게 뛰어놀게 하고 광합성도 잔뜩 하게 하고, 그리고 또 많이많이 먹게 해야지. 잔뜩 건강해지고 어서어서 자라게 해야지. 튼튼해지게 해줘야지. "토시로는 따뜻해." 히지카타는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또 웃음지었다. "너도 그래." 긴토키의 체온이 등에 스며들었고, 히지카타는 포근함을 느꼈다. 긴토키도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그리고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서툴게 만들어 낸 그릇 하나 가득한 죽비슷한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어치웠다. 히지카타는 못먹을정도는 아니지만 그다지 맛있는 맛은 나지 않는 음식이 민구스러웠고 아이가 그런 음식조차 너무나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에 오히려 죄책감을 느꼈다. "다음엔 더 괜찮게 만들게." 노력할게. 히지카타의 목소리는 괜한 쑥쓰러움에 작아져갔고 긴토키는 그 커다랗고 파란 눈동자를 땡그랗게 뜬 채 또 까르륵 웃었다. "너무 맛있어." 작은 여우는 자신의 말에 거짓말이 하나도 없다는 듯이 꼬리를 신나게 흔들었고, 히지카타는 뺨을 붉히며 아, 그래라고 대답했다. 여우가 거짓말을 하지않고 있단 걸 알지만 그래서 더 미안했던 것이다. 진짜 요리 좀 배워야지...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긴토키를 바라보았고, 밥을 먹는동안 쉴새없이 움찔거리는 그 귀여운 여우귀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책상너머로 손을 뻗어 긴토키의 귀를 매만지고 말았다. 물론 긴토키는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다. 히지카타의 손에 스칠 때마다 귀를 움찔거리며 흔들었을 뿐.   


 여우가 깨어났다는 소식은 히지카타가 숲밖에서 다친 여우를 데리고 왔다는 소문때만큼이나 빠르게 퍼졌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이번방문객은 히지카타도 문전박대를 할 수 없었다. 의사의 방문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야마자키씨. 내가 데리고가려고 했는데." 야마자키 사가루는 숲뿐만 아니라 이 주변의 요괴들이 전부 기대고 있는 이 근방 유일의 요괴의사인지라 늘 바빠서 왕진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야마자키가 먼저 집으로 찾아온 것은 히지카타로써는 마냥 고마운 일이었고 말이다. "내가 오는 게 여러모로 일이 수월할테니까요. 좀 신경쓰이던 것이 있는데 그것도 다시 확인하고 싶고. 들어가도 될까요?" 그리고 히지카타의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 간 의사는 조금 혈색이 좋아진 어린여우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안색이 많이 좋아졌네." "밥도 곧잘 먹어요." 히지카타는 풀어진 얼굴로 뺨을 붉히며 그렇게 말했고, 야마자키는 이 까마귀요괴님은 이런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일이 거의 없는데 역시 어린애는 굉장해 하고 생각했다.


  


 

 


 






- 계속...?


계속될까요 과연...??? ㅋㅋㅋㅋㅋㅋ


역키잡입니다. 전에 급역키잡이 보고싶어서 끄적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저것 쓸 게 많아서 당분간 이거 뒤를 못쓸 거 같아요. 그래서 묵혀두려구 했는데... 묵혀서 뭐에쓰냐... 싶어진지라ㅋㅋㅋㅋ 걍 올립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


긴토키 얼른 커서 까마귀 아저씨 잡아먹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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