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버드나무

 

 

오늘 남자가 한가지 꺾어온 것은 가늘게 흩날리는 버드나무.

그 푸른색은 너무나 높은 곳에서 흔들려서 손을 뻗을래야 뻗을수가 없었다.

 

 

 

 

 

 

 

 

 

 

 

「토시.」

 

남자는 침묵하면서,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그가 부르면 느긋한 걸음을 서둔다. 안절부절하면서 자신이 벌여논 일을 수습하기 힘들때마다 '토시'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불쾌해하면서도 언제나 그의 짐을 대신 자신의 어깨에 얹는다. 그 행동들은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매우 간단하게 진행된다. 오른팔이라기보다는 뒷수습 처리반. 그런 자신의 포지션에 불만갖지않고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묵묵하게, 해야할일들을 한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런 '토시'에게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남자는 무표정하면서도 기쁜 듯이 비틀리며 웃지만, 그 얼굴은 심술로 굳는다.

 

남자의 얼굴이 멀리 있다. 손바닥을 뻗어보았지만 아직 닿지 않는다. 남자의 삐죽 선 앞머리채는 하늘과 너무 가까워서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래서 하나로 잡아 묶어 길게 길은 검은색 머리칼을 콱 하고 움켜잡고 싶었다. 머리의 반정도쯤에서 묶어서 그대로 목아래로 흐르고, 어깨밑으로도 흘러내린 숱많은 검은색 머리는 손을 뻗으면 쉽게 닿을 것 같아서였다.

 

「.....」

「.....」

「..매달리지 마라, 오키타.」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허공에서 흔들리는 머리칼은 고양이가 실뭉치에 빠지는 것처럼 나를 유혹한다. 남자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어김없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 마치 나에게 다가오라고 손을 흔드는 것과 같아 보였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위치라서 나는 손을 뻗는다. 그렇지만 두 발로 서봤자 먼 그곳의 머리칼은 손을 뻗어봤자 역시 잡히지 않는 것이라서, 나도 모르게 그의 옷을 움켜쥐고 한 손을 뻗는다. 검은색 유카타가 마치 그의 몸에 스며든 듯이 다리부분에서 흩날리고, 움켜쥔 부분에 가 있는 주름은 더욱 깊은 검은색을 냈다. 마치 내 손위로 그 옷의 실 고유의 색인 검은색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그는 가볍게 내려본다. 날카롭고 작은 동공. 태양에 반사되어 눈을 찔러 아프다. 뻗은 앞머리가 어지럽다. 남자의 습관처럼 휘어져있는 눈썹은 익숙하게 곡선을 그린다. 냄새나는 담배의 끝을 잘근 씹는 입술은 본능처럼 움직인다. 그안의 고른 치아는 담배의 끝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단지 연기만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남자는 아기를 싫어한다. 나는 아기는 아니지만 어린아이고, 내 키가 그의 반정도도 아직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안다. 남자의 크고 긴손가락은 가볍게 내 머리를 누른다. 남자의 손가락은 가죽밖으로 뼈마디가 튀어나와있다. 내 손은 가늘지만 남자보다는 훨씬 작고 조금 부드럽다. 남자와는 딴판이다. 

남자의 뻗어온 손이 머리를 꾹 누르면 앞머리가 눌러져서 눈썹을 지나 눈가를 조금 찌른다. 아프지는 않지만 그 감각은 불쾌하다. 남자의 커다란 손은 얼굴을 거의 덥친다. 남자의 손바닥 그림자가 얼굴가에 지면 중점같은 태양조차 가려진다. 남자는 힘조절을 하지 않고, 그저 뼈가 튀어나온 손을 꾸욱 누른다. 나는 아프다. 남자의 손가락이 튕겨지 듯 머리통을 때리며 손을 땐다. 그 손가락끝이 허공에서 빛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튕겨진 반동에 뒤로 휘청인다. 발끝이 제대로 땅을 밟지 않는다. 그대로 지면위를 미끄러진다. 쉽게 엉덩방아를 찧는다.

 

「풋,」

「.....」

 

땅의 연한 모래를 제대로 밟지 못하고 미끄러져 주저앉은 나를 보고 그는 웃는다.

 

「몇살인데 아직도 걸음마를 제대로 못하냐?」

「.....」

「곤도씨가 잘못 키웠군. 다시 배워야겠다, 너.」

 

게다 아래로 연한 모래가 흩어지듯 떨어진다. 바닥에 닿은 엉덩이에 지면의 싸늘함이 올라온다. 뼈와 지면이 잘못 맞았는지 한쪽만 욱씬거린다. 자갈이 박힌 두 손바닥이 조금 아프다. 남자의 담배연기가 눈을 맵게 한다. 이마를 친 남자의 근육솟아있는 손바닥위로 그림자가 진다. 이마가 화끈거린다. 남자는 웃으면 작은 눈이 이상하게 휘어버린다, 활처럼. 눈꼬리는 약간 치켜세워진다. 속눈썹은 부드럽게 아래로 뻗는다. 중점같은 태양을 등에지고 그 눈동자위로 속눈썹의 그림자가 서린다. 연기는 아래로 떨어지다가 곧 분해된다. 웃는 입꼬리는 빈정대는 것처럼 뺨가까이로 뻗는다.

 

자갈이 박힌 내 날씬하지만 부드러운 손바닥을 털어주는 그의 두 손은 가죽위로 뼈가 솟아있었고,

근육이 튀어나와 있었고, 강한 힘줄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고,

 

또 너무나 크다. 내 두 손을 한 손으로 다 감싸쥘 정도로. 한손으로 감싸쥔 내 다섯개의 손가락은 그의 손에 폭 안기고도 그의 손가락은 여유가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마를 칠때와는 다르게 손들은 움직였다. 섬세하게 움직이는 다섯개의 손가락은 내 손바닥 위로 박힌 자갈들을 가만가만 털어내었다.

 

「...너,」

「.....」

「이 손으로- 검을, 잡을 수 있겠냐.」

「......」

「빨리 커라.」

「.......」

 

그 남자의 목소리는 그 남자가 고개를 숙이면 앞으로 쏟아지는 뒷머리채와 비슷하다. 손대면 내 손위로 물들 것 같은 검은색 유카타와도 비슷하다. 어딘가의 노랫소리처럼 울리지는 않고, 배아래로 쿵쾅쿵쾅 울리는 것처럼 요란한 목소리도 아니다. 지면을 나지막하게 까는 울림도 없고, 남자의 가느다랗게 동공이 열린 눈동자와 비슷하다.

 

요란하지 않게 조금 벌려지는 입, 혀가 밀어내는 말. 전혀 아름답지 않지만 그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를 좋아한다. 좋아하기 시작했다.

 

 

 

 

 

 

 

 

 

 

 

오늘 남자가 한가지 꺾어온 것은 가늘게 흩날리는 버드나무.

끝이 중력을 받아 아래로 더욱 휘어있었다. 축 늘어진 푸른 잎들때문에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는 얇은 나뭇가지는 결국 부러질 듯 했지만 끝까지 부러지지 않았다. 서로의 몸을 포개고 있던 잎들은 더욱 진한 푸르름으로 다시 탄생되고, 그 사이사이 빈공간으로 태양이 넘나들었다. 바람에 잎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흔들렸다. 남자가 잡고있는 부분너머로 나뭇가지도 휘청였다.

 

남자를 '토시'라고 부르는 그는 그 나뭇가지를 보고 좋아했다. 풍취가 느껴진다는 어려운 말을 썼다. 남자의 머리채는 여전히 남자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가벼운 출렁임을 보이며 남자의 리드미컬한 몸을 보여주었다. 그가 남자의 어깨에 팔꿈치를 올려서 체중을 싫어도 남자는 싫지 않은듯 그자세로 한참 대화했다. 그 사이에 끼고는 싶었지만 나는 아직 그의 다리부분의 유카타를 움켜쥐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오키타.」

「......」

「자.」

「......」

 

마음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는 것이 느껴진다.

남자는 한손으로 잡을 수 있었던 나뭇가지인데도 나는 두 손으로 전부 쥐어야했다. 아래로 끝이 축 늘어진다. 푸름이 겹친다. 솜털같지는 않았지만 무겁지도 않다. 내 손에 쥐어주는 남자의 입꼬리가 웃고 있는 것이 마음속으로 느껴진다.

 

「예쁘게 흔들리더군, 바람에.」

「.....」

「마음에 들었어.」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활처럼 휘어진 모습이, 남자의 웃음과 비슷하다고.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그의 자리가 탐났다기 보다, 단지 그 자리까지 갈 수 있기를 바랬다. 그 작은 공간이 동경이었다.

그래서 그 푸른 버드나무를 손에 쥔순간, 나는 깨달았던 것이다.

 

남자의 머리채, 남자의 어깨. 남자의 하얀얼굴과 식은 입술. 남자의 목덜미와 남자의 상체와 남자의 손과 손가락. 그리고 팔. 남자의 다리와 남자의 모든 것과, 남자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을 콱, 움켜잡고 싶어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아직 나는, 그 푸른색은 너무나 높은 곳에서 흔들려서 손을 뻗을래야 뻗을수가 없었다.

마음에서부터, 빨리 크고 싶어졌다.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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