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k tea

 

 

 

 

 

울어버릴지도, 오늘밤 꿈에서 너를 만난다면

 

 

 

# prologue

 

 

 오랜만에 보는 눈이 흩날리는 모습이 너무예뻐서, 아마 길을 지나는 대부분들이 - 이대로 쌓이면 다음날에는 꽁꽁 얼어버린 길을 걷는 것은 좀 힘들테니 그렇게 된다면 화가 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만은 - 눈이 계속 내리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눈은 금새 그쳐버렸다. 한 십분 정도 내리고서는. 그래서 눈깜짝 할사이에 길 위의 흔적마저 모두 사라지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긁고 지나가는 타이어의 모래가 허공으로 흩어져 메마른 먼지만 휘날렸다.

 


 마른 눈으로 마지막 눈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눈이 뻑뻑해진 사카타 선생은 눈을 한차례 깜박였다. 말라있던 눈의 표면에 금방 수분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일렁여 눈을 적셨다. 다시 뜬 눈은 조금 충혈돼어 있었다. 선생은 짧게 한숨을 내쉰 후 비어있는 왼손의 살이 두툼한 바닥으로 오른쪽 눈을 비볐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검은색 잔속의 커피가 약간 출렁였다. 밖을 바라보고 있는 선생의 뒷켠으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선생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자신이 부른 이가 누군지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계속 바라보고 있던 창문위에 소년의 상이 서려 그 밝은 갈색의 머리칼이 일정한 방향으로 빗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띠었던 것이다. 눈을 비비던 손을 내리고, 김이 오르는 커피를 한모금 마신 뒤에 선생은 은발의 뒷통수를 감추듯 고개를 돌렸다. 이마를 감춘 앞머리가 조금 출렁였다.

 


 화가 나있는 것 같군. 중얼대듯 말하니, 소년은 피식- 웃으며 양손을 들어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 한다. 아니요 전혀, 호호호 전혀. 따위를 대충 중얼대며 소년은 성의없이 대답한 뒤에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듯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교무실의 자신의 담임인 눈앞의 사카타 긴파치선생의 의자에 양해도 구하지 않고 털썩소리를 내며 앉았다. 검은 손잡이부분도 푹신한 의자는 뼈마디가 가느다란 소년이 앉아도 엉덩이부분이 쑤욱하는 소리를 내며 푹하고 파였다. 선생은 피식 웃었다. 건방진 3-z의 일원중 또 가장 건방진 과에 속하는 오키타 소년이여, 커피를 마실테냐? 오키타는 의자턱걸이에 오른손을 올려 그대로 턱을 괴면서 눈썹을 구부려뜨렸다. 불쾌하다는 얼굴이었다. 그게 설탕물이 아닌 진짜 커피라면 기꺼이 마시죠. 이런, 이런. 학생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사카타선생은 마시고 있던 잔을 자기가 방금까지 바라보고 있던 창문의 틀에 내려놓았다. 그럼 못주겠네, 나한텐 이런 커피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그건 커피라고 하는 물건이 아니라니까요. 사사건건 귀찮게 말꼬리 잡지마라. 하지말라는 거 더하는 성격인데요. 선생은 오른손을 들어목을 감싸며 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거참, 절대 자랑할 수 있는 부분 아니거든요, 거기. 아 진짜 드럽게 말안듣는 놈들 뿐이라니깐 하여간에.

 

 그러게요. 그럼 반농담은 그만할까요.

 

 미안한데, 대체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진담인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만..

 

 히지카타씨 어딨습니까.

 

 ......아, 그건.

 

 그건, 정말로 조금의 농담도 섞여있지 않은 진심이로군. 그렇게 말하고 일순간 미소를 띠는 선생의 눈동자가 빛나는 것이 불쾌하게 보여서, 오키타는 더욱 의자의 깊게 허리를 눌러 파고앉은 채 선생을 노려보았다. 허리가 푹 들어가 오키타의 앉은키가 더 작게 보여졌고, 의자의 가장 위 머리부분 아래로 머리카락이 미끄러져 흐트러졌다.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내리까는 선생의 속눈썹 위로, 아니 혹은 그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속을 끄집어 내 볼 수 있다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마구 헤집어서 엉망으로라도 흐트러놓은 뒤에 그안의 히지카타부분만을 끌어내든가. 진심으로 일어난 충동이라 의자에서 금방이라도 박차고 일어나고 싶어진 오키타지만, 그냥 참아버리고 양손을 깍지끼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마무리지었다. 눈앞의 사카타 긴파치 선생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집에 있다.

 

 .....

 

 기절한 뒤론 꿈쩍도 않기에 새벽에 내가 안고 집까지 갔지. 무거워 죽는 줄 알았어, 십년 쓸 체력을 하룻밤에 다 쓴 듯한 느낌이었어. 아-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그냥 깨우지 않고 내버려두고 왔지. 창백한 안색의 얼굴표면을 이 오른손으로 한 번 쓸어주고, 아랫도리는 입히지 못했지만 위 셔츠는 내 옷으로 입혀주고 왔어.

 


 그리고 이불도 제대로 덮어주고 왔다. -라고, 말을 끝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선생은 목에 있는대로 긴장을 했지만, 의외로 맹수라도 맨손으로 잡을 것 같은 소년은 그저 의자에 앉은 채 그저 묵묵하기만 했다. 선생은 한숨섞인 얼굴로 피식,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해. 몸이 실행하지 않았으면 단가. 마음은 이미 몇 번이나 자리에서 뛰쳐나와 사카타 긴파치의 명치를 백번은 그다리로 날려쳐버리고도 더 남은 게 있다는 듯한 표정의 눈동자가, 선생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사카타도 물론,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 next prologue

 

 당신은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사카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틀에 세워둔 커피잔을 다시 들었다. 창문은 분명 굳게 닫아두었지만 오래된 교정건물 벽에 결국 생긴 틈사이로 찬바람이 계속 스며들었는지 커피는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반쯤 식어있었다. 선생은 혀를 차며 커피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아, 아니- 커피가 아니라 설탕에 커피첨가 물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그러고 난 후에 빙글, 오키타쪽으로 몸을 돌려 뚜벅뚜벅 소리나게 걸은 후에- 방과 후, 창문의 밖까지 이제 어두워지고, 오래전 내렸지만 이미 그쳐버린 눈이 운동장위를 질척하게 만들어 버린 그 시간, 교무실 안에 오키타소년과 단 둘이 남아 심각한 얼굴을 하는 것이 지겨워진 선생은 오키타가 앉은 의자의 바로 옆 책상-즉 사카타 긴파치 자신의 책상-에 커피잔을 내려놓은 후에 자신의 가방을 집어들었다.

 

 궁금한 것은 다 물은 것 같은데.

 

 

 ...다물었습니다.

 

 그럼 난, 이만 집에 가보도록 하지.

 

 그가 깼을지도 모르니까요?

 

 -진작에 일어나서 어젯밤 일을 땅치고 괴로워 한 후에 집 문 열쇠도 잠그지 않고 박차고 나갔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녀석은 수업 내내 나타나지 않았고, 수업 내내 나타나지 않았던 네가 수업이 다 끝나고 난 후 방과후에 학교에 왔다는 건 그녀석이 그녀석 집이든 너의 집에든 나타나지 않았다라는 이야기일테니까, -그렇다면 아직 나의 집에 남아있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 지나친 추측인건가?

 


 .....

 

 솔직히 더 말하자면, 나는 그 추측이 맞기를 기대하고 있지. 그녀석이 그대로 내 집에 남아있는 것 말이야.

 

 ....하아.

 

 오키타는 오른손으로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의자가 조금 뒤로 빠지면서 바닥을 삐걱하고 울렸다. 허리가 곡선으로 꺾인 채 머리를 숙이자 그의 갈색의 머리칼이 앞으로 쏟아져 잘생긴 이마선을 가렸다. 선생은 허리를 들면서 머리를 쓸어넘겼다. 오키타의 가까이에서 조금씩 떨어지며, 선생은 천천히 교무실의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선생.

 

 말해라.

 

 뚜벅뚜벅, 허리를 굽히고 깍지낀 양손을 세운 무릎가까이에 끌고간 채로, 오키타는 멀어져가는 발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얌전히 당신 밑에 깔리던가요?

 

 시작은 얌전했지만 끝까지 얌전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지금 선생님 등은 손톱자국으로 좍좍좍좌..좌.... 어라, 근데 그거 성희롱? 성희롱입니까? 이런 걸 두고 역성희롱이라고 하는건가? 그럼 대답 안 해.

 


 오키타의 입모양이 조금씩 움직였다. 이미 대답했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소리가 되어 흐르지 않았고, 대신 그 다음에 흐르는 말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는 것 하나 없는 주제에.

 

 .....

 

 발걸음을 멈추고, 사카타 긴파치 선생은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책상위의 높게 쌓인 책들덕분에 사카타는 오키타의 몸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지 오키타가 앉아있는 자신의 의자가 조금씩,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고 있다고는 해도 끼익끼익, 바닥을 긁으며 반회전 정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사카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어깨에 매고 있던 긴 가방의 가방부분을 굵고 긴 손가락으로 집어들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이 작게 쿵, 하며 울리더니 약간의 먼지가 튀었다. 메마른 먼지가 날라다니는 건 이런 느낌인가- 아까, 날리던 눈이 사라지는 순간 아주 조금씩 날리던 눈송이들이 꼭 먼지같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처럼. 사카타는 새끼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파면서 옆의 아무 책상위에나 대충 앉았다. 책상에 엉덩이를 들이밀다가 그 위의 볼펜이 하나 데구르르 굴러 어딘지 모를 곳으로 사라져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래도 좋겠지, 이 자리 선생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사카타는 피식 웃었다.

 

 세 번이다.

 

 ....

 

 세번, 나는 보았어. 내가 아는 그녀석이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듯한 기행이었지, 그건. 그리고 네가 그것을 보았다면 어쩌면 너도, 이건 히지카타일리가 없어- 라고 생각할만한 일이었다고 자신하지.

 

 ....뭔데요?

 

 하아- 길게 숨을 내뱉으며 긴파치는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선은 정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그런건지 시선은 자연스럽게 천장의 어느 신발자국이 남아있는 부분에 닿았다.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턱에 손가락이 닿도록 움직였다. 숨이 궁금증처럼 엷고 길게 흘러나왔다.

 


 .......뭐가 제일 먼저였더라. -일단, 어제 있었던 일은 제일 마지막으로 미뤄두고...

 

 삐걱. 또 한 번, 오키타가 앉아있는 의자가 소음을 토해냈다. 신음소리같군, 삐걱소리를 삐걱소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카타의 마음가짐이 불행한 소리를 중얼였다.

 

 

 

 

# first

 

 감기?

 

 ....어쩌면.

 

 무뚝뚝하게 중얼이는 히지카타 토시로의 코끝이 붉어져 있었다. 학생은 한 번 훌쩍인 뒤에 오른손으로 코를 아무렇게나 훔치고 돌린 고개를 다시 원상태로 돌렸다. 긴파치는 왠지 불안하게 흔들리는 학생의 다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약간 서둘르며 품에 한아름 들고있던 봉지를 모양그대로 안아들고 옥상 난간 사이의 허공에 다리를 빼내고 앉아있는 학생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추운 날, 목도리는 커녕 코트도 없이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앉아, 감기 안걸리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카타는 손을 뻗어 난간을 잡고있는 히지카타의 손을 건드렸다. 히지카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빠르게 빼내었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사카타는 다시 그 손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단지, 손끝이 시뻘겋게 변해서 조금 구부려져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뭔가, 내기라도 한거냐?

 

 하아?

 

 벌칙게임말이야, 너네들 잘하는 거. 그래서 그렇게 앉아있는 거 아냐? 이렇게 추운 날에, 아무런 깔개도 덮는 것도 없이 옥상 난간에 죽을 동 살 동 앉아있는 채 차가운 바람에 머리는 퍼석퍼석- 무슨 광명찾을 일 눈꼽만큼도 없어보이는구만.

 


 ..중얼중얼 시끄럽군. 내가 뭘하든 선생이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없다면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상관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잖아, 아무래도 난 이학교 3-z반의 담임이고, 넌 이학교 3-z반의 학생이니까.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3-z반의 학생은 대꾸혹은 고개의 움직임조차 보이지않고 그냥 자신의 옆의 담임의 존재를 무시하는 듯 시선을 난간사이로 던져넣고만 있었다. 사카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히지카타와 똑같이 자리에 앉았다. 엉덩이가 금새 차가워져서, 바람과 함께 펄럭이던 가운을 수습하여 엉덩이아래로 밀어넣었다.

 


 히지카타의 입에서부터 흐르는 담배의 연기가 난간에 부딪혀 여러갈래로 흩어졌다. 사카타는 짧게 기침을 하며 연기를 향해 얼굴을 파묻었다. 아니, 연기가 사카타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죽으려고, 죽으려고..

 

 중얼대며 일부러라도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자, 히지카타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나보단 당뇨기미의 당신이 더 빨리 죽을 걸.

 

 난 당뇨론 안죽어, 아무리 그래도 난 절대 당뇨로는 안죽는단 말이다 요녀석아.

 

 당뇨로 죽든 바보라서 죽든 뭐든 당신이 나보다는 더 빨리 죽을거야. 늙었으니까.

 

 ...늙은 건 맞지만 바보라서 죽는 건 뭐냐? 뭔데? 너무 바보라서 죽는거냐? 바보면 다 죽는거냐?

 

 아, 시끄러워.

 

 너야말로 그담배 어떻게 안하면 선생의 권한을 행사하겠다.

 

 바보버려, 죽어.

 

 -혹시 지금 죽어버려 바보, 한 거냐? 어? 그런거야?

 

 정말 그런 거라면 너 썰렁해, 너무 썰렁해, 그렇게 썰렁해가지고 어디 젊은개그맨 십초개그방송 연말특집편에 명함이라도 내밀수 있겠어? 등의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노라니 어느새 눈을 내리깔은 히지카타 토시로는 이미 상대도 해주지 않고 있다. 그 먼 시선과 바람이 내리앉는 속눈썹을 바라보며 사카타는 하늘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귓바퀴가 떨어질만큼 춥지만, 어쨌거나 하늘은 파랗고 예쁘구나. 또 높고. 원래 겨울이 그런거지. 하아- 근데 요놈의 속썩이는 제자놈이 왜이러지, 제자주제에 저렇게 길고 예쁜 속눈썹과 하얀 옆얼굴로 사람 유혹이나 해대는 요놈의 에로성인 십대놈을 어떻게 하면 돼지. 사카타는 품속에서 바스락대는 봉지에 오른손을 깊게 넣고는 무언가 하나를 쥔 채로 손을 끄집어 내 올렸다. 호빵이었다. 봉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아직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오르고 있었다. 사카타는 손을 뻗어 그 호빵을 히지카타의 왼손에 쥐어주었고, 곧 호빵을 감싸는 종이부분으로 그것을 받은 히지카타의 왼쪽눈썹이 이상하게 휘었다. 사카타는 히지카타의 의문섞인 시선을 받아주지도 않은 채, 자기도 봉지안에서 호빵을 하나 꺼내어 우물, 한입을 금새 입안으로 삼켜넣었다. 단팥이었다, 이가 녹을만큼 뜨겁고 달달한.

 


 따뜻하지?

 

 .....

 

 갑자기 따뜻해져서 이미 새빨갛게 질려있던 손가락 끝이 저릿저릿해진 찰나였다, 선생이 그렇게 말한 것은. 히지카타는 마지막까지 인상을 풀지는 못했지만 아까까지 짓고 있었던 눈앞의 선생이 너무 '귀찮다'고 한 표정은 진작에 자신의 얼굴에서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다시 그 표정으로 돌아가는 노력은 해보았지만 역시 무리였다. 그래서 히지카타는 그냥 사카타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떼내고 고개를 돌려 다시 눈앞의 난간, 그 너머의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육안으로도 확인되는 김이 제대로 히지카타의 시선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따뜻해. 말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입모양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사카타는 짧게 흘러나올 듯한 한숨과 함께 또 호빵을 한 입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앞머리가 사라락 흩어지면서 호빵 끝에 닿을 듯했지만 결국 닿지는 않았고, 그대로 호빵은 그의 입안으로 그 끄트머리가 삼켜졌다. 침묵을 삼키듯 호빵을 밀어넣는다. 천천히 먹어, 입안이 댈라. 걱정되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흐트러진 눈동자속에, 해결되지 않는 혼란을 향한 분노가 읽힌다. 검은뿔테의 안경너머로 학생을 바라보면서, 사카타는 시야에 잡히는 머리카락을 잡아 이마너머로 쓸어넘겼다. 걱정은 되는데, 대체 이 걱정은 학생을 향한 선생의 마음을 넘은 것 같아 곤란하다. 대충의 선도 잡을 수가 없어져, 때때로. 그러니까 그렇게 흔들리는 듯한 눈동자를 하면, 난 서슴없이 이미 흐트러지고 있는 선을 넘어가버릴 거란 말이야. 그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그러니까 이제 제발, 아니 차라리 전부다 나에게.


 

 보여주지 않을거면, 드러내지도 말라구. 아무것도 모르는 사카타 긴파치였지만, 지금 손을 뻗으면 꼭 사카타의 가슴쪽으로 쓰러질 것 같은 지금 현재의 히지카타 토시로는, 사카타에게는 치명적인 맹독인 상태였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어쨌거나.

 

 

 

 


# second

 

 전화다. 전화를 받고있는 게 분명했다. 복도의 코너에 서서 사카타 선생은 그렇게 생각했고, 굳이 저건 전화를 받고있는게 분명하다 등의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히지카타 토시로는 한쪽 벽에 기대어 폰을 귓가에 댄 채 무어라고 중얼대고 있었다. 사카타는 손에 들고있던 교재를 목부분에 갖다대며 그곳으로 조금 고개를 기울이면서, 남자의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하지만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입모양이 자근자근 움직이고 있었지만, 선생은 학생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화가 나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는 화가날때 지금처럼 웃는 것이다, 비스듬히 왼쪽 입술을 당기면서. 그러니까, 조곤조곤 이야기 하고는 있지만 말하는 내용은 틀림없이 무지하게 난폭한 종류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선생은 저도모르게 앞으로 한발, 을 더 내딛었다. 들릴까, 싶었다. 듣고싶다는 솔직한 기분에 타있는 채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사카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몰래 듣고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들켜버렸다. 화가난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결국 무척이나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던 사카타 긴파치와 부딪혀 버린 것이다. 그 눈동자에 가벼운 동요의 빛이 일어났으나 곧 그빛은 사라지고, 금새 사나운 냉정함을 띠었다. 사카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벽 뒤쪽으로 반쯤 숨겨두었던 몸을 마저 끌어냈다. 히지카타는 눈썹과 눈썹사이를 좁히며 길게 선이 그어진 자리에 왼손을 짚으면서,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사카타가 들을 수 있었던 히지카타의 전화내용이었다. 끊겠습니다. 나지막하게, 짤막하게. 실제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히지카타는 손에 들려있던 폰을 닫으며 다시 쥐는 듯 손가락을 그러모았다. 히지카타의 손안에서 금속의 작은 물체가 부딪혀 마찰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고 빠득- 하는 것 같은 소리는 꼭 히지카타의 손안에서 부서질 것만 같이 들렸다.

 

 ...사과하지. 그가 말하기 전에 먼저 양손을 펼쳐 손바닥을 드러내보이며 사카타가 긴장했다. 숨을 바닥으로 내리뱉으며눈썹을 아래로 내리깔아, 사과하는 표정을 지었다. 히지카타 토시로는 찌푸린 눈썹 그대로 그등을 방금까지 한쪽 어깨로 기대고 있던 벽에 부딪혔다. 선생, 엿듣는 취미도 있었던가? 낮은 목소리는 복도의 아래로 넓게 퍼졌다. 사카타는 짧게 고개를 저었고, 그 반동에 곱슬한 머리칼 끝이 조금 펴졌다가 다시 감겨올랐다. 최악이군. 한숨을 끊어내쉬며 히지카타는 벽에 기댄 채 그대로 머리칼을 쓸어올렸고, 그 얼굴에 아까의 전화내용을 전부 들켜버린 게 아닌가 하는 초조함이 있는 것 같아 사카타는 머리를 저은 그대로 고개를 원상태로 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아무 것도 못들었다. 정말이야, 역앞 카페의 쵸코파르페를 걸고 맹세하는데, 끊겠습니다- 하는 소리밖에 안들렸어. 하하, 헛바람을 흘리는 웃음을 내뱉으며 히지카타는 사납게 사카타 긴파치를 노려보았다. 초코파르페따위에 거는 맹세를 믿을 수가 있겠어? 선생은. 나라면 믿을텐데, 백만번이고 믿을텐데. 하지만 그 말은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사카타는, 조금 슬픈 눈동자로 눈앞의 학생을 바라보았다. 믿지 않아주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저렇게나 무시무시하게 싫다는 표정을 짓고, 최악이다라는 눈동자로 나를 비추고.

 

 

 -제기랄.

 

 그런 눈동자로 나에게 욕지꺼리를 내뱉고.

 

 히지카타는 양손으로 아래로 쏟아진 머리카락을 전부 뒤로 쓸어넘겼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검은 머리칼이 흘러내렸지만, 히지카타의 잘생긴 이마가 그래도 대부분이 그대로 드러났다. 피식, 웃는 입술 사이로 공기가 흘러나오다 다시 스며들었다.

 

 선생, -죽이고 싶은 사람, 있어?

 

 ...오쿠지군, 난 정말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 -듣지 못했어.

 

 ......

 

 몰래 들은 것에는 사과할테니, 그러니까-

 

 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

 

 ......

 

 하지만 죽일 수가 없지.

 

 ...어째서?

 

 ....A를 죽이면, B가 개죽음을 한 게 되거든.

 

 .....?

 

 C는 그냥 A에 의해 약간 불행해진 제삼자로 남아있어야 해. C는 그냥 살아남은 채 B가 남긴 행동에 감탄하며 살아갈 길밖에 없지. 그래서- 나는 얌전히- 그 길을 선택하려고 하고 있어.

 

 .....오쿠지군?

 

 하지만, 그 얌전히 라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에서야. 그렇지?

 

 .....

 

 그, 사나운 눈이, 비스듬하게 웃고 있는 순간, 사카타는 처음으로 그의 어깨를 움켜쥐고 싶었다. 말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우습다, 누가 누굴 말리는 건가- 라고 생각해봤지만, 그래도 언제나와는 다른 눈동자 속에는 무모함이 스며있었다. 이상해, 평소의 히지카타 토시로라면 무모함과는 거리가 먼 곳에 서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 지금부터가 아니야, 대체 언제부터?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의 언젠가 부터, 히지카타 토시로는 마치, 저벽의 가장 끄트머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놈의 절벽이란 것도 원체 얇아서, 이쪽으로 오고자하는 제대로된 마음이 없으면 여기서든 저기서든 옴싹달싹을 못해. 사카타는 한쪽 눈썹을 굽히며, 폰을 내려다보다 급기야 하하하, 나지막하게 웃기 시작하는 히지카타 토시로를 바라보았다. 꺾여질 것 같이 위태위태한 것에 금인 간 것 같은 기분이다. 목구멍너머로 꺼끌한 혓바늘을 느끼며, 사카타는 히지카타에게로 한걸음 다가갔다. 동그랗게 창문너머의 햇빛이 떨어지는 곳에 서 있던 히지카타는 사카타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에서부터 이미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벽을 통해 옆으로 비켜나며, 벽의 모서리에 등을 대고있다가, 오른손을 들어 사카타가 더 이상 경계를 넘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사카타는 오른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시선으로 고개를 숙여 가마부분을 보여주는 히지카타 토시로를 훑었다.

 

 -히지카타 토시로, ..널 대체 내가, 어쩌면 좋은거지?

 

 ...선생이 뭔데 날 어째?

 

 말려주길 바라는 거냐, 내버려두길 바라는 거냐.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으니까- 정확하게 말해. 원하는 것을.

 

 ......

 

 너,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알고싶어?

 

 흩어진 검은 머리칼 사이로, 비죽하고 비웃는 입술이 보였다.

 

 그렇게 알고싶으면, 그럼 선생이 나와.

 

 ...어디로?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숨이 공기사이로 흩어진다. 히지카타가 고개를 든다, 쏟아진 머리카락을 쓸어내며.

 

 내일, 밤. 열시나 열한시나, 열두시나 한시- 역에있는 x'D-c라는 가게의 앞에.

 

 .....?

 

 사실, 오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온다면, 그렇지, 갈색 코트에 빨간 머플러를 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 그사람은 언제나

 

 빨간 목도리를 하고 있지.

 

 ......

 

 내가 선물한 거지. 그거.

 

 ...토시로.

 

 B가 죽을 때, 하고있었던 거다.

 

 그렇게 말하고, 하하하, 또 웃고- 히지카타는 사카타의 어깨에 공기로도 닿지 않는 채 그를 스치고 지나쳤다. 마음은 이미 뒤를 쫓아 히지카타의 뒷통수까지 따라갔지만 몸은 그대로 벽을 바라보는 채 앞을 향해, 사카타는 쫓아가지 못하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책을 들지 않고 있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사카타는 멀어지는 그의 발소리를 듣고 있었다. 뚜벅뚜벅, 뚜벅뚜벅. 복도에 자취도 남지않는 발자국의 흔적. 사카타의 숨이 공기를 갈랐다. 말려주길 바라는 거? 아니면 내버려두길 바라는 거? 그저 방관하는 목격자가 혹시 필요한건가? 아무래도 상관없어, 중요한건 사카타 긴토키, 네녀석이 뭘- 어쩌겠냐는거야. 저녀석을 대체.

 

 마지막 말이 말이 되어 흘러나왔다. 사카타의 혼잣말은 벽에 반사되어 다시 사카타에게로 돌아왔다. 네가 그녀석에게 뭘 어떻게 하려는 거냐는 거야. 뭘 이렇게 그녀석의 혼란에 크게 반응하며 당황하여 그녀석을 도와주려고 하는건지 왜 그러는 건지 스스로 잘 알고있는 있냐는, 거다. 벽을 바라보며, 선생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초코 파르페를 걸고, 맹세하지.

 

 다음날, 밤 열시부터 사카타 긴토키는 역 광장의 x'D-c라는 네온사인이 보이는 차가운 의자에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검은 머리칼의 히지카타 토시로, 혹은 빨간 머플러를 한 갈색 코트의 남자를.

 

 

 

 

 


# next next prologue

 

 .....

 

 침묵하는 오키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다가, 사카타 긴파치 선생은 이쯤에서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랫니의 잇몸에 혀의 뒷부분에 난 혓바늘이 스쳐 그 존재를 알렸다. 사카타는 혀를 반쯤 내밀어 아랫입술에 혀의 뒷부분이 닿게 했고, 그래서 아랫입술 부분에 닿는 혓바늘의 존재가 더욱 확연해졌다. 사카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일 전 난 혓바늘이 아
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열시부터.. 기다렸지. 갈색코트의 빨간머플러를 하고 있는- 아마 추정이긴 하지만, A일 듯한 사람, A이지만 B의 붉은 머플러를 하고있는 사람을 말이야. C의 등장도 기다리긴 했지만, C의 언행으로 보건대 절대로 A보단 늦게 나올 것 같아서 말이야.

 

 ......

 

 역 앞의 초코파르페 신에게 빌었더니 다행히 나는 감기는 걸리지 않았고- 그리고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어. 세시간 정도쯔음.

 

 ....아~아-... 당신에게 알려줬단 말이군.. 그남자와 만나기로 한 장소를.

 

 숨처럼, 한숨처럼, 혹은 체념과 같이. 오키타의 말이 오키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오키타의 두손이 깍지를 낀 채 위쪽으로 올려졌다. 마치 기지개를 펴는 것처럼 보였다.

 

 

 오키타야. 뭡니까. 그놈의 A가 대체 누군지 가르쳐주면 파르페 나도 일년에 한 번 밖에 못먹는 생크림얹은 파르페 사줄게. 그놈의 파르페 얘기는 이제 그만 안해도 되지않나? 오키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를 빙글, 돌렸다. 책상과 그위의 책들과 엉켜있는 의자들을 넘어 사카타는 오키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왜요, 역시 어제의 그자리에서 뭔가 실수라도 하셨어요? 사카타는 고개를 갸웃하며 책상 모서리를 잡고있는 손가락으로 손가락 안에 갇혀있는 책상 모서리를 조금 긁었다. 실수랄지, 미친짓이랄지. 뻔하지 뻔해. 오키타가 피식, 웃었다.

 


 내가 한 게 아니고, 히지카타 토시로가 해버렸긴 하지만.

 

 ....

 

 B의 정체는 말이야, 의외로 알 것 같단 말이야. 별로 난 긴다이치 코우스케의 손자인 것도 갈릴레오 선생인 것도 아니지만 말이지. 어쨌거나.. 히지카타 토시로의 주변인이 죽은 건 그밖에 없으니까.

 

 .....

 

 아버지지? 히지카타의. 그가 중학생일 때 죽은.

 

 아-아... ...정말 당신에게는, 알려줬구나.

 

 의자를 빙글, 돌린 채로. 사카타를 바라보고 있던 오키타는 일순 고개를 숙였으나 그대로 몸을 일으켜 의자에서 일어났다.

 

 

 선생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오른손으로 왼손을 툭툭, 털더니 곧 왼쪽 가슴위도 툭툭 털어내고, 먼지가 아니라 마음을 털어내는 것 마냥 앞 머리칼을 툭툭 털어내는 자신의 학생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아.. 허리춤에 양손을 올린 채 또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드는 오키타의 반동에 의해 그의 앞머리칼이 크게 하늘을 선회했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꺾은 채라 그의 머리칼의 결은 흐트러져 버렸다. 오년만에 만나는 그 빌어먹을 놈과. 툭하고 뱉어내는 목소리를 들으며, 사카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떨구어두었던 가방을 다시 들어 어깨에 맸다. 오키타는 두 손을, 바지의 양쪽 주머니에다 밀어넣고 몸을 움츠렸다.

 

 사카타 선생님. 당신은 죽이고 싶은 사람, 있나요?

 

 ...교육방법이 잘못됐나, 내학생들은 하나같이들 사람을 잡으려드니, 원.

 

 그렇게 뛰어난 교육자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잘못외에는 안했던 것 같은데. 교육자의 길을 한탄하며 사카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오키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난 있어. 사카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단숨에 이야기한다. 당신을 죽여버리고 싶어. 사카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말에 채인다고 하는건가, 질투의 칼날에 죽임을 당한다는 건가? 그, 뭐냐 경국지색? 바보놈, 완전바보, 글렀어. 중얼이는 오키타의 목소리를 못들은 척 하면서 사카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위도 아래도 오른쪽도 왼쪽도 없는 놈, 예의는 커녕 상식도 없는 놈.

 

 밀크티 처마시게 해요.

 

 .....

 

 그 인간 그거 안좋아하지만, 그래도 그인간 화났을 때 그거 따뜻하게 해서 처먹이는 게 제일 좋거든.

 

 ..아아.

 

 그게 마요네즈랑 색도 비슷하고.

 

 ..혹시 그게 이유의 전부야? 혹시, 흰거라면 모두 괜찮은 거 아니고?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면 안 되겠니. -라고 중얼대면서 사카타는 교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여전히 양손을 바지의 호주머니에 밀어넣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오키타를 향해 말을 건넸다. 교무실 문잠글거야. 교무실 키가 어느새 사카타의 왼손 안에서 잘그락, 소리를 냈다. 저건 내 신음소리인가, 삐걱소리를 삐걱소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키타의 마음가짐이 불행한 소리를 중얼였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그남자는 저쪽으로 가는거로군. 은발의 머리칼이 어둠에 죽은 채 흔들리는 것을 끝으로, 오키타는 눈을 감아버렸다.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다. 오키타는, 자신이 어서 문을 건너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카타 긴파치 선생에게로 다가갔다. 자신이 직접, 히지카타 토시로에게 건네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아마, 이젠 무리겠지. 그 역할이 자신이 아님을 자조하면서, 오키타는 선생에게 가방안에 들어있던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선생의 눈이 커졌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그리 긴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 Middle of first and second

 

 인간아, 어디서 만나기로 했냐니까!! 오키타에게서 온 전화에 대답하지 않은 채, 히지카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자켓을 집어들어 오른쪽부터 팔을 꿰었다. 아까부터 되풀이하여 온 물음에 답해주지 않자 기어코 화가 난 오키타는 어설프나마 계속 사용했던 존칭도 잊은 채 소리를 질렀다. 옷을 입느라 폰을 귀에 가까이에 댄 탓에 귓가가 조금 얼얼해졌지만 히지카타는 내색하지 않은 채, 자켓의 앞섬을 잡아당기며 나지막하게 중얼댔다. 안가르쳐줘. 그딴 걸 듣기 위해 전화한 게 아니야. 오키타의 아랫입술을 깨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렇겠지. 전화너머의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히지카타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아- 정말.. 하면서 마지막 말을 삼켜들어가는 듯이 이야기하는 오키타가, 죽어버려,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정말 그래. 꼭 죽으러 가는 듯한 느낌이야. 바보같은 짓을 한다는 건 이런거겠지, 그게 바보같은 짓이라는 걸 알고 하는 짓이라는 것도 꼭, 이런 거겠지.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귀찮아 져서, 폰도 그대로 침대위에 던졌다. 그리고, 그대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차가웠다.

 

 

 

 

 

 


# Third


 

 빨간색의 머플러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사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먼저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신이 끼고있는 검은테의 안경과 디자인은 닮았지만 훨씬 두꺼운 안경테를 한 남자는, 아주 약간 침울해보였다. 언제나 저런 표정을 짓고있는 것처럼 생겼다. 눈썹끝이 조금 아래로 떨어져 있다. 약간 호흡을 고르면서, 남자는 쇼윈도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머플러를 오른손 끝으로 쥐고는- 다시 놓는다. 무거운건가, 괴로운 건가. 그것이 그렇게 너의 목을 죄이는건가? 하지만 곧 사카타는 고개를 저었다. 심약해보이지만, 아마 아닐 것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내팽겨칠 정도로 작은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저 사람을 찾을 수 있는 표지가 될정도로, 저 머플러를 하고 다닐 수 있는 거겠지.

 

 

 이미 죽은 B의 머플러. 언젠가 자습시간 때- 한시간 동안 소일거리처럼 잡담하는 도중에 지나치는 수많은 화제중의 하나로 불쑥, 히지카타 토시로의 입에서 밖으로 비져나온 그의 아버지라는 사람. 엄청나게 바보라 프라이팬에 마요네즈를 짜서 그위에 계란후라이를 했다는 사람이었다. 히지카타는 기뻐보였지만, 모두 질색을 했고, 그와중에 오키타만이 턱을 괸 채로 히지카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카타로서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리까는 히지카타도 이상했지만- 침묵하며 왠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나, 라는 표정을 지으며 히지카타를 바라보는 오키타도 이상했다. 교무실에 가서 물으니, 하긴 사카타선생은 이 지방에 온 지 이제 약 일년쯔음 됐으니 모르실만도 하군요- 라고 말하면서, 히지카타의 중학교에서 같이 고등학교로 올라온 수학 담당 선생이 말해주었다. 그는 이 마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죠. 그의 기이한 행동도, 그의 기이한 입맛도.. 또 성품까지. 그러니까- 그의 죽음도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꼭, 정말 그다운 죽음이로군.. 라고 말해질만한 죽음이었답니다.

 

 ......

 

 사카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x'D-c의 쇼윈도우를 향해 다가갔다. x'D-c의 네온사인 불빛이 바닥을 점령하고 있는 부분으로 다가가, 사카타의 발자국 소리가 그안으로 먹혀들어갔다. 구두끝이 말끔한 사람이군, 사카타가 한 마지막 생각은 그정도였다.

 

 -? 저기..

 

 어깨를 붙잡혔어도 당황하거나 하지않고, 그 심약한 표정 그대로 물었다. 사카타는 생긋 웃으며, 어깨를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양손을 어깨 옆으로 들어 두 어번 흔든뒤에, 남자 A의 안경위에 자신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이 비춰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손을 내려- 다시 웃었다. 저는 사카타 긴파치라고 하는데요. 아.. 네. 라고 떨떠름하게 인사하는 남자를 향해, 사카타는 다시 인사했다. 그리고 히지카타 토시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랍니다.

 

 ...네?

 

 동요의 빛이 뜨이는 눈동자를 향해, 이제부터 무엇을 말할까 생각했다. 여전히 웃으면서. 아니 무언가를 말할 시간이 남아있을까. 지금은 대체 몇시지, 히지카타 토시로는 앞으로 몇 분 뒤에 나타날까.. 긴파치는 웃음지은 입술사이로 가느다랗게 호흡했다. 대체, 이남자에게, 나는 무슨 말이 하고싶은 걸까.

 


 그때, 사카타의 어깨를 움켜잡은 손가락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는 것을, 사카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히지카타 토시로는 뻣뻣한 머리칼을 사카타의 목가까이에 스치며 그의 어깨를 움켜잡은 그대로 어깨를 밀착시켰다. -히지.. 성조차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남자 A는 그대로 굳어버린 듯했다. 어라, 뭔가 아닌 것 같은데. 사카타가 그렇게 당황하며 눈동자를 굴려 히지카타를 보았을 때, 히지카타는 움직임을 멈춘 눈동자를 하고,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기다리셨습니까?

 

 목소리도 굳었구나. 딱딱하긴. 사카타는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당황했는지 아 저기- 라고 말을 더듬으며 어색하게 안경을 쓸어올렸다. 히지카타는 피식, 하고 목구멍으로 웃으며 더욱 사카타의 움켜쥔 어깨를 꽈악, 쥐었다. 옷을 너머 피부에 자국이 남을 정도의 힘이었으나, 사카타는 굳이 그것을 저지하지는 않았다.

 


 오늘, 그쪽이 할얘기가 있다고 해서 나오긴 했습니다만. 역시 좀 바빠서 안 되겠습니다.

 

 ..어, 바쁘다니? 무슨...

 

 그거야, 가뜩이나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더 지체하면 이사람에게 미안하니까.

 

 그리고 히지카타의 오른팔이 사카타의 왼팔을 붙잡아, 그대로 잡아당겼다. 사카타의 몸은 저항없이 반바퀴를 돌아 히지카타가 끌고가는대로 딸려갔다. 사카타는 인상을 찌푸린 채 굳은 얼굴로 걸음을 재촉하는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깨문 아랫입술이 시뻘겋게 변하고 있었다. 아아, 이바보. 이바보는 대체 무슨생각으로 이러는걸까. 히지카타는 그대로, 남자가 기다리고 있던 x'D-c에서도 아주 잘보이는 가까운 러브호텔의 윗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다가갔다. 사카타는 히지카타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깨달았고, 깨달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고, 씁쓸하게 웃으며 단지 히지카타의 뒷통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아무 망설임없이 사카타를 데리고 러브호텔에 들어갔다. 사카타는 잠깐 고개를 돌려 x'D-c쪽을 바라보았고, 어느새 머플러를 벗어 한 손에 들고있던 남자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았다.

 

 

 

 


-

 

 

 

 

 아무 말없이 겉옷을 벗은 후 셔츠의 단추를 여는 히지카타를 보면서, 사카타는 의자에 앉은 채 눈살을 지푸렸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남자에게 상처를 주기 위하여 히지카타가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을 사카타는 알았다. 그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지카타의 벗은 어깨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말해주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말도 하지못하고, 사카타는 자리에서 일어난 그대로 호텔방을 나가려고 했다. -어디가는거야? 긴장했는지 신경질적이 됐는지 툭하고 내뱉지 못하고 목소리가 반쯤 갈라진 채 히지카타의 마른 목구멍 밖으로 나온다. 사카타는 인상을 찌푸린 그대로 고개를 돌려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상기된 얼굴에 오기처럼 화가 나있다. 사카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으로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그 남자는 돌아갔겠지, 돌아갔을 거다. 그리고 너와 난 단 둘이 러브호텔에 들어왔고, 그럼 네가 이루고싶었던 목적은 달성한 것이 돼잖아? 난 이만 돌아가겠어. 히지카타는 침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똑바로 선 히지카타의 벗은 상체가 추위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때문인지- 약간씩 떨리고 있었다. 하얀 어깨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기가 힘들어서, 사카타는 눈을 내리깔며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허리가 약간 구부러졌다.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나빠, 최악이야. 이런 불쾌한 일에 이용당하는 것은 태어나서 한 번이면 족하겠다.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에 올려두었던 겉옷을 짚어들면서, 그 말을 끝으로 사카타 긴파치는 정말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히지카타 토시로가 달려와서 사카타는 그자리의 바닥에 붙은듯이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고, 벗은 상체를 흔드렴 달려온 히지카타는 그대로 사카타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 입술에 키스했다.

 


 메마른 입술이 피멍이 든 채로, 떨리고 있다. 감은 속눈썹도. 정말이지 최악이로군. 사카타는 거칠게 오른손을 들어 히지카타의 어깨를 잡아 떼내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 아래로 사라지고 대신에 거친 호흡만이 나지막하게 흩어졌다. 사카타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뭐하는 짓이야.

 

 호빵답례다.

 

 -뭐?

 

 비스듬히 웃고있어, 오른쪽눈보다 왼쪽눈이 더 작아진 채로 사카타를 바라보고 있는 히지카타는, 이제 질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될대로 되라, 뭐 그런거냐? 사카타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킥킥, 하고 웃으며 어깨를 가볍게 흔들다가 머리를 두어차례 흔들며, 다시 고개를 든 히지카타 토시로는 또 조금 무표정했다. 아니, 약간 미소를 띠고 있는 것도 같았다. 살풋, 슬픈 눈동자는 언젠가의 밤하늘과도 닮아있었다.

 


 요즘 세상에 남자와 남자가 손잡고 러브호텔에 들어오는 게 이슈도 뭐도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남자는 놀랐겠지? 요즘 십대의 엇나가는 방향의 일면이라고 생각해주지 않을까?

 

 ...히지카타 토시로.

 

 일말이라도 괴로워해준다면, 그렇다면 성공이다. 귀찮고 멍청한, 짓이었지만.

 

 ...정말.

 

 ......

 

 정말, 최악이군 너.. 정말 최악이야.

 

 -몇번이나 말하지 않아도, 최악인지는 잘 알고있다.

 

 ......

 

 사카타는 입술을 깨물었다. 화에 짓눌린 입술위로 피맛이 났다. 눈동자의 높이가 비슷한 눈앞의 학생이 가만히, 충혈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바보. 바보밖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더 이상 아무말도 못하고, 사카타는 양손으로 그의 양 어깨를 움켜쥐어 자신쪽으로 잡아당기며 그 입술에 키스했다. 히지카타는 놀란 듯 목구멍을 울리는 소리를 냈다. 바스러질 것처럼 입술을 짓누른 후에야 그 입술이 열려, 파고들어간 사카타의 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히지카타의 호흡을 괴롭혔다. 신음을 혀아래로 누르며, 히지카타는 간신히 사카타를 쫓았다. 엉켜들어오는 혀를 목숨처럼 필사적으로 답습하느라, 입술아래로 쏟아지는 타액을 훑어오르는 움직임에 겨우 사카타의 입술이 자신에게서 떨어져있다는 것을 간신히 눈치챘다. 떨리는 다리가 무너질 것 같아 필사적으로 허리를 곧추세웠다. 다시 입술을 닫았다. 머리가 멍해졌지만-

 


 그래도 눈에 힘을 주었다. 푸르게 빛나는 사카타 긴파치의 눈동자가 보였다.

 

 괴로워 할거다. 괴로워하겠지. 어쩌면 날 죽이려 들지도 모르겠군.

 

 .....

 

 -난 너를 좋아한다.

 

 .....

 

 히지카타의 눈동자가 커짐을 보았는지, 못보았는지, 아니면 아랑곳하지 않는 것인지. 사카타는 어깨를 움켜쥔 채로 소리쳤다. 너에겐 한낱 싫어하는 사람 괴롭히는 수단으로 밖에는 안 되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지금이란 둘도 없는 찬스고, 덕분에 심장이 무너져내릴 것처럼 아프다. 귓가에 쏟아지는 사카타 긴파치의 목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럴싸한 말따윈 나오지도 않을만큼 정신이 없어서, 심장이 뛰다못해 터질 것 같다- 라고 말해도, 넌 알아주지도 않겠지?

 


 아...

 

 -히지카타 토시로, 히지카타 토시로야..

 

 그녀석에게 뭘 어떻게 하려는 거냐는 건가, 뭘 이렇게 그녀석의 혼란에 크게 반응하며 당황하여 그녀석을 도와주려고 하는건지, 왜 그러는 건지 스스로 잘 알고있는 있냐는, 거.

 

 그런 것따윈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아무래도 좋아.

 

 사카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잔인한, 히지카타 토시로야. 널 꿈에서 만나면, 난 울어버리고 싶어질 정도야.

 

 새하얗게 흩어지는 꿈속에서, 언제나의 너의 검은 머리칼이 멀리서부터 찰랑이다가, 그 손을 쫓아 따라가 너를 잡으면, 너는 또 가볍게 흩어지고-

 

손에 없어. 손에 없지. 씁쓸함만이 감도는 가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며, 굴러떨어지는 것은 나.

 

 ...선...

 

 눈물을 떨구는 사카타의 얼굴을 바라보며, 히지카타는 결국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사카타의 입술이 자신의 가슴에 닿아, 자신의 몸이 침대쪽으로 쓰러질 때 쯤에야 겨우- 자신이 후회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

 

 

 

 

 

 얼굴을 뒤로 돌린 채 안면을 베개에 묻고있어, 사카타는 숨이 막히지나 않을까 염려했지만 간혹흔들리는 뒷통수는 절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다. 사카타는 그의 흩어져있는 머리칼에 가려진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등너머의 앞으로 밀어 넣은 양손에 힘을 주었다. 히지카타의 허리가 깜짝놀라 허공으로 튀어올라 사카타의 다리사이에 부딪혀왔다. 그의 깨물린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카타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 좀 더 히지카타와 밀착했다. 이어진 부분이 안에서 감싸여진 채 그대로 좀 더 깊은 곳까지 쑤욱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사카타도 입술을 깨물었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한 번씩 튀어 오를때마다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윽... 하고, 나지막한 신음을 흔들리는 히지카타의 등위로 쏟아내면서 사카타는 다시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끝으로 점차 많아지는 양의 액체가 길게 이어져 침대 위 시트로 떨어졌다. 가느다랗게 싫어,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잘 들리지 않아, 좀 더 크게 말해봐. 대답해주고, 곧추세워진 날개죽지를 깨물었다. 안쪽에 닿는 느낌이 미끌미끌해서 사카타는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빌어먹을 러브호텔이지만 역시 준비되어있는 건 사용하는 게 좋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피식, 웃었다. 차가웠던 액체가 히지카타의 몸속에 들어가자 미지근해졌고, 사카타가 파고들자 뜨거워지면서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마찰에 동조하며 점차 열기를 더해갔다. 붉어진 목덜미와 어깨를 더욱 움츠리며, 베개에 짓눌린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그만, 이라고 말한다. 싫어, 그만두기 싫어. 대체 몇년만에, 상대에게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달라붙어 그만두기 싫다, 라고 지껄여본걸까. 아 정말,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거야. 사카타는 반쯤 뜬 눈으로, 새하얀 등위에 미끄러지는 땀을 훑었다. 열이 올라 뜨거워진 눈동자에서 눈물이 한방울 동그랗게 히지카타의 등에 떨어졌다. 아 젠장, 아까부터. 미친 눈물샘이 자꾸 넘친다. 눈을 깜박이며, 더욱 히지카타의 가슴을 껴안고.

 

 이제.. 놔줘, ...아, 제발.. 가게해줘.

 

 안 돼. 싫어. 고개를 저으며, 사카타는 등에 얼굴을 묻었다. 히지카타 토시로의 살냄새가 난다. 이왕 끈질긴거 아주 그냥 끝장을 보자. 피식, 웃으며, 사카타는 잡고있던 히지카타것을 아래에서부터 뿌리끝까지 훑어올렸다. 놀라며 히지카타의 몸이 또 한 번 튀어올랐다. 척추가 꿈틀하며 곡선을 이루다 다시 곧게 뻗어져, 미끄러지는 땀방울이 사카타의 다리사이로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입구를 틀어막은 사카타의 손가락 사이로, 히지카타의 오른손이 파고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조금씩 흐르는 액체위에 그의 손가락이 닿았을 때, 사카타는 그의 초조함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싫어. 아 제기랄, 이제 어떻게 해야돼지. 사카타는 얼굴을 들고, 다시 한 번 히지카타의 몸을 앞으로 밀어내는 듯이 움직였다. 깊게, 더 깊게.

 


 높은 신음을 내다가, 히지카타의 어깨가 털썩, 하는 소리를 냈다. 사카타는 하아, 하고 절정이 섞인 목소리로 한숨을 뱉어내며, 손을 떼내었다. 손을 침대시트위에 미끄러뜨리듯 움직여 액체를 살짝 닦아내고, 그 손으로 기절한 듯이 눈을 감은 히지카타 토시로의 땀에 절은 머리카락을 쓸어보았다. 눈물에 젖어 엉망이 된 얼굴. 빨개져서 짓물린 눈가 주위로 또 한방울, 속눈썹에 맺혀있던 눈물이 구른다. 사카타는 웃었다. 이래도 저래도, 예쁜 얼굴이로군. 넌 아마, 앞으로도 많은 이들을 울리겠지? 지금 내가- 너때문에 우는 것처럼.

 


 이제 미움받는 일밖에는 남은 게 없군. -나는 결국 아무것도 너를 도와줄 수 없었던걸까?

 

 그 눈가에 키스하며, 사카타는 그렇게 중얼였다. 손끝에 닿은 체온을 소중히 갈무리하며.

 

 

 

 

 

 

# And, so much for my happy ending

 

 아, 눈. 나지막하게 중얼이며, 사카타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오른손을 빼내어 허공으로 손을 펼쳤다. 눈은 먼지처럼 가느다랗게 떨어지다가 조금씩 굵어졌다. 그래봤자 사카타의 손에 닿자마자 녹아 물이 되곤 했지만. 어쨌거나 눈이 내리는 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서, 사카타는 고개를 들었다. 딱히 눈이 좋은 게 아니었다,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얼굴에 와닿는 눈이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사카타는 피식,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눈이 내리는 모습은 아름답고, 눈이 쌓여있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아마 눈이 오는 것에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건 역시, 다른 이유일 것이다.

 

 딱히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눈을 보면 그리워질까.

 

 사카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좀 더 빨리 걸었다. 고개를 들 때 바라본 자신의 아파트의, 수많은 방중에서도 자신의 방이, 환했다. 불이 켜져있었던 것이다. 왼손 팔에 걸려있는 편의점의 봉투가, 서두르는 사카타의 몸에 반동하여 좌우로 흔들렸다.

 

 

 

 

-

 

 

 

 여어, 몸은? 문을열자마자 그렇게 말했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침대에 이불에 돌돌 말린 채 다리를 접고 앉아있는 히지카타는 흠칫, 빠르게 고개를 돌려 사카타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사카타는 그 시선에 피식, 웃으며 문을 잠그고 신발을 벗고, 겉옷을 벗으며 다시 물었다. 몸은? 한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히지카타는 슬픈 눈동자로 겨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뜻인건가? 하루 푹쉬었으니 뭐. 그렇게 중얼이며 겉옷을 벽에 걸고 사카타는 침대로 다가갔다. 침대위의 히지카타는 이불로 몸을 감싸고, 아침에 사카타가 입혀진 셔츠를 입고 있었고, 아래는 여전히 벗고 있었다. 유혹하는 거냐, 생각했지만 말로하지는 않고 사카타는 이불을 움켜쥐며 한숨을 쉬었다. 히지카타와 시선이 마주쳤다.

 

 옷빨아뒀는데 왜 꺼내 입지 않고.

 

 ......

 

 아무거나 입었으면 됐을텐데.

 

 .....

 

 아무말도 하지않고, 고개를 숙인다. 이런이런. 오른손을 들어 그 엉망진창으로 삐친 검은머리칼을 쓸어올려준다. 그리고는 머리칼을 크게 흔들고 나서,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식탁에 다가갔다. 편의점 봉투는 부시럭 소리를 냈고, 그안에서 사카타는 흰우유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팩을 열어,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팩의 내용물을 주전자의 몸통 안에 부어넣고, 주전자의 뚜껑을 닫으며 팩을 내려놓고, 주전자를 가스렌지 위에 올리며 가스렌지의 불을 켰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바라본 히지카타 토시로는, 충혈된 눈동자에 일렁인 눈물을 기어코 떨구고 있었다. 한방울 미끄러진 눈물이 그대로 눈물선을 이루어 턱까지 흘러넘치는 것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그자세 그대로 벙쪄 굳은 사카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떠듬떠듬 걸으며 히지카타에게 다가갔다. 뭐, 뭐야 왜우냐? 행동그대로 말도 떨리며 나와서 사카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하는 수밖에 없었고, 두다리에 두손을 올려 거기에 고개를 올린, 머리끝까지 푹 이불속에 파묻힌 히지카타 토시로는, 눈물에 얼룩진 눈동자를 눈꺼풀로 삼켰다가 다시 드러냈다. 눈물로 눈동자의 표면이 빛났다.

 


 ..잘못했어.

 

 .....

 

 잘못했어. 선생. ..잘못했어.

 

 -이런, 뭐야 대체. 이제 어린애도 아니잖아.

 

 .....

 

 이제 어지간히, 사람 심장 떨리게 하는 건 그만 좀 하라구..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이불 그대로 히지카타 토시로를 감싸안은 사카타의 팔안에 갇힌 채, 히지카타는 사카타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이불은 두꺼웠지만 전부 사카타의 팔안에 담겨졌다. 사카타에게 닿은 이불의 표면은 약간 차갑고 버석버석했지만, 그래도 히지카타가 닿아있는 이불의 부분은 따뜻하겠지. 사카타는 후우, 하고 웃음이 스며든 숨을 내뱉었다.

 


 히지카타야.

 

 .....

 

 어젯밤에 오키타에게, A의 남자가 찾아와서는, B의 빨간 머플러를 돌려주더란다.

 

 .....

 

 오년전에 너에게 받고, 오년동안 그것을 보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이를 악 물고는 했대. 그러면서 이제, 충분하니까, 원래주인인 너에게로 돌려주길 바란다고.

 

 .....

 

 그리고 오키타는 그걸 나에게 줬어. 지금 내 가방안에 있는데, 나중에 돌아갈 때 가져가도록 해.

 

 ..사카타..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성품 그대로 살아가는 듯한 얼굴의 남자인, 너의 아버지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래도 정말, 멋진 사람인 것은 잘 알겠다. 그런 아버지라면, 내가 너라고 해도, 누구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어깨를 감싼 양손에 힘을 더 넣어, 좀 더 히지카타를 가득히 안으며, 사카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틀림없이 남자 A도, B가 살려준 목숨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필사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윽...

 

 빨간 머플러를 사카타의 손에 쥐어주면서, 오키타는 그렇게 말했다.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C처럼, A도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게 분명해요. 오년전의 교통사고, 술마시고 미쳐선 차를 운전하는 소형 자동차의 바퀴아래 짓눌릴 뻔 한 찰나의 소년은, 그대로 듬직한 남자의 팔안에 갇혔고- 그대로 차는 남자의 목에서 펄럭이던 붉은 머플러와, 그의 몸의 절반을 부수며 길밖으로 탈선했다. 남자는 몸의 반이 부서진 채 그자리에서 죽어버렸고, 흐물흐물해진 팔과 가슴안에서 가벼운 철과상외에는 멀쩡했던 소년은 남자의 체온이 싸늘해질때까지 남자의 부서진 가슴안에서 그대로 남자의 가슴을 껴안고 있었다. 손안으로 스며드는 색이 남자의 피인지 남자의 머플러의 색인지 혼란이 올 무렵, 남자는 완전히 싸늘해졌다. 머플러를 오키타의 손에 쥐어주면서, 남자는 조금도 울지않고, 그날도 실은 조금도 울지 못해서, 심장이 멈춘 것 같아서, 그래서 이때까지 울지 않으면서 살아왔다고. 그리고 A는 웃었어요, 근데 방금은 진짜 울뻔했다고, 눈앞에서 히지카타 토시로가 채간 그 은발의 남자의 얼굴이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선명하다고. 마치.. ..마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남자의 체온이 그렇게, 계속 선명하고- 틀림없이 앞으로도 계속 선명할 것과 다름없이 선명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차가워진 겨울의 밤거리 사이를 가로질러 사라졌죠...

 

 그렇게 말하고, 차가워진 겨울의 밤거리 사이를 가로질러 사라지는 A의 뒷모습처럼, 오키타 소우고도 불이 꺼진 학교의 복도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사카타는 가만히,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 그 뒷모습이 보일때까지 오키타를 바라보았다. 발자국 소리조차 희미한 소년은 녹듯이 존재가 사라져갔다. 사카타는 벽에 기대어 한참을, 불이 켜져있는 교무실의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해줄까 말까, 히지카타를 품에 안은 채 고민하고 있더라니, 어느샌가 히지카타가 울음에 젖어있는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싫어.

 

 -나는 아버지가 싫다.

 

 히지카타.

 

 난 아버지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나에겐.. 최악인, 사람이야.


 

 -그래. 그것도 괜찮을지도 몰라. ..아마, 괜찮을거다.

 

 그런데 선생, ..나..

 

 떨어지는 눈물이 사카타의 어깨를 적실 때, 사카타는 히지카타에게서 기분 좋은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런데 선생, 나-라고 시작한, 그 말. 울먹이는 목소리에 섞여, 무슨 생각을 하며 그 말을 내뱉었을까. 어쨌든지간에 기뻐서, 사카타는 웃었다. 품안에 있는 생물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 곧 삐이- 하고, 주전자가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리인 것 같군, 삐이소리를 삐이소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카타의 마음가짐이 그렇게 중얼였다. 눈을 보면 그리워지는 것처럼, 품에 안고 있어도 그리워서, 사카타는 그 입술에 키스했다. 눈물맛이 났다. 입술이 떨어지자 사카타는 나지막하게 그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밀크티를 만들려면 밀크를 데워서, 뭘 넣으면 되는거냐? 설탕? 조용히 웃으며, 히지카타가 말했다. 마요네즈. ..아니, 그건,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두번이나, 사카타는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그건, 절대, 거짓말이라고.

 

 

 

 

 

 

 

 

 

 

지난 밤- 꿈에서,
선생,
당신을 - ... 봤어

 

 

 

 

 

 

 

 

 

 

 

 

 

 

 

 

- done

 

 

+ 이것도 겁나 옛날에 쓴... 슈발..;;;;;;;;

+ 이거 아마 주제 있었을건데... 음.. 호빵, 밀크티, 겨울? 이었나? 아 모르겠다. 어리광부리는 히지카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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