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검으로는 벨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다.

 

 

 숨이 거칠어진 남자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좀 더 여유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적이었기 때문에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날 좀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그 굳은 얼굴과는 다르게 몸이 허물어져 가고 있어서 눈앞의 남자도 더 이상은 나의 재미가 되어주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은 어깨가 뻣뻣하게 안쪽으로 접혀져 있어,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검끝이 무거운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검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면 무사의 인생은 거기에서 끝이지. 좀 더 옆구리를 넓히고 팔꿈치를 높게 든다면 너는 그래도 아직 무사의 부스러기 쯤은 되겠지만, 지금처럼 힘겹게 간신히 검자루를 움켜쥔 채로, 그 손가락끝이 새파랗게 질려 떨리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기속에 녹아가는 내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지친 너에겐, 이제 별로 소용없는 이야기이겠지만.

 

 그래도 그 눈이 살아있어서, 그렇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싶어하는 가가 궁금해졌다. 떨어지는 핏줄기 사이로 너의 호흡이 스러지고 있어서, 도중에 내가 잘라낸 너의 숨결에 담배의 향기가 뿜어져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눈동자속으로, 일렁이는 담배의 연기가 흩어지고 있었다. 너의 여유를 가장하듯, 담배의 불꽃은 꺼질 듯 꺼지지않고 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 네가 좀 더, 좀 더 나와 싸워서 더욱, 더욱 강해져서 바로 지금, 지금의 나를 사로잡으려고 하고 있는 듯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고,

 의외로 너처럼 삶에 목적이 없는 인생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지만,

 

 네가 보기엔 오히려 내가 삶의 이유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겠지. 팔랑대는 나비처럼 흩날리는 기모노너머로 나의 존재마저 없애버려라- 라고 그랬던가? 네가 그렇게 외치며, 나에게로 달려오는 듯한 환상속에서, 나는 부딪히는 나의 의기와 부딪히는 너의 숨소리를 느낀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너의 존재의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나의 존재의 의미를 모르듯.

 

 어쩌면 너는 아름다운 생물일지도 모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임으로, 나는 너의 아름다움을 갈라베어내야하지.

 네가 나의 존재따윈 신경쓰지 않고, 그 무거운 몸을 애써 추스리며 다시, 나에게 검을 들이대듯.

 우리는 적이지.

 

 멍하니, 지친 너를 바라보노라니, 자신이 만들어낸 피 웅덩이 속에 잠겨있던 네가, 기어코 그곳에서 한발을 빼내더니, 그 끝이 떨리는 검을 다시 바로잡고 나를 향해 날카로운 검 끝을 들이대 찔러온다. 그 속도와 그 힘은, 이미 너의 육체나 정신같은 이야기와는 아주 멀어지고 말아서, 다시금 그 검을 바로잡고 달려오는 파워에는 무언가 이론같은 것따위를 논하는 것이 아주 의미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달려오는 너를 바라보며, 나도 다시금 검을 빼들었지만.

 너의 산산이 흩어지는 핏줄기와, 그뒤를 따르는 새하얀 담배의 연기를 바라보며,

 

 또 언젠가의 잔상처럼,

 나는 너를 벨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짧은 호흡과 함께, 그 담배의 연기만을 두동강 낼뿐.

 

 

 

 

 

 

 

 

 

5. 사람의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돌아가는 것과 같노라.

 

 

 

 

 '찰칵'

 

 - 제대로 잘 찍었나해?

 

 - 어어어, 다가오지 마 카구라. 그냥 계속 찍히기나 하라구.

 

 물으며 다가오는 카구라를 향해 왼손을 뻗으며, 긴토키는 오른손에 든 카메라를 하늘로 들어댔다. 카구라가 결코 기계치라는 말은 아니었지만 이 카메라는 이웃에게 빌려온 것이기 때문에 꼭 멀쩡하게 돌려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어서, 왠지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카메라를 맡기는 것에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하자 뒤에서 방금까지 카구라와 사다하루의 옆에서 사진기를 향해 브이싸인을 했던 신파치가 피식하고 웃으며 안경을 쓸어올렸다.

 

 - 그렇게 말하는 긴토키씨에말로 오히려 제일 불안을 안겨주는 사람인 걸 아셔야죠.

 

 - 어허? 얘가 막말을 하네. 너말이다, 여기의 긴토키씨는 세상에서 알아주는 포토프로그램라구? (- 그거 포토그래퍼아니에요?) 그래, 그거. 어쨌거나 무슨 사진이든 내손에 걸리면 완벽하단 말이야. 영 이상하게 나온다면 그건 절대로 피사의 사탑이 이상해서야 알아? (- 그거 피사체아니에요?) 그래, 그거. 아 거 되게 꼬치꼬치 따지는 건 여전하구만요 신이치군.

 

 - 벌써 몇년짼데 아직도 내이름을 못외웠니?! 이렇게 사람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니까 당신은 안되는겁니다! 몇살을 먹어도 곱슬머리인 겁니다! 됐으니까, 그 카메라나 이리주세요. 다음엔 긴토키씨가 피사의 사탑이 되시죠, 제가 포토프로그램 할테니까요.

 

 - 네, 네! 카구라는 오후의 홍차파입니다 해!

 

 - 아니야! 포토프로그램은 포트에 물을 데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구! 설마 피사의 사탑이 홍차나 끓여주는 카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홍차에 우유는 넣어주겠지 해?

 

 - 집어쳐! 집어쳐, 당신들은 전부 근본부터 글러먹었어, 안되는 인간들이야 당신들은!

 

 - 야, 신파치, 그 안되는 인간에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까지 포함시키는 거 그만둬 주지 않을래? 난 절대로 되는 포트의 홍차라구. 자자, 이제 그만 입들 다물고 얌전히 포즈들 취하라구. 봐라, 사다하루가 제일 멋지잖아.

 

 그렇게 말하며 긴토키는 들고있던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왼쪽눈가에 갔다댔다. 긴토키의 손가락이 금방이라도 카메라의 머리부분의 셔터를 꾸욱 누를 것처럼 움직이기에, 카구라는 서둘러 입을 다물고 사다하루의 왼쪽 앞발속으로 폭하고 몸을 집어넣었다. 신파치도 어색하게 차렷자세를 한 후 왼손을 반쯤 들어 다시 브이싸인을 만들었다.

 

 조용히 포즈를 취하는 두사람을 카메라의 렌즈로 보면서, 긴토키는 저도모르게 풋하고 웃었다. 최선을 다해 자연스러움을 뽐내려 하고 있으나 그래도 둘은, 어색하게 굳어있었고,  여전히 사다하루가 제일 멋져보였다. 긴토키의 엷은 미소를 피사체들은 눈치채지 못했고, 단지 지금의 자신이 어색한가 자연스러운가는 둘째치고 긴토키가 어서 셔터를 눌러주기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긴토키는 카메라의 렌즈속에서 작아진,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금 줌으로 두사람을 땡기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웃어봐, 너희들. 시키는대로 입꼬리를 당기는 모습이 더욱 어색해보였지만, 의외로 그런 어색한 모습이 괜찮아 보이는 것은 왜일까.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긴토키는 피식, 하고 웃었다. 

 이정도로, 이렇게나 쉽게 감상적이 되다니.

 

 어깨에 짊어진 짐들이, 이렇게나 사랑스럽게 느껴지다니.

 

 '찰칵'

 

 셔터가 아주 짧게 소리를 내고, 조금 파랗게 어두워진 하늘을 밝히는 플래쉬가 터지다, 금방 사라졌다. 

 

 - 이거야 원,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걸까..

 

 긴토키의 중얼거림이, 피사체들에게는 닿지않고, 어두워지는 밤하늘로 사라졌다. 

 

 

 

 

 

 

6. 난 죽으면 우주장으로 해 달라고 할까봐. 그럼 별이 될 것만 같아. (銀 × 土)

 

 

 

 

 

 

 어, 형씨. 언제왔습니까? 아니, 왜왔습니까? 어떻게왔습니까? 누구허락맡고 들어옵니까? 침입자는 끽소리 못하게 목줄기를 따는 게 관례인데요. 속살포로 말을 던지는 금갈빛 머리칼의 애송이를 무시하고, 긴토키는 야마자키의 뒷꽁무니를 입을 다문 채 따라왔다. 노곤한 표정에서 잠을 자다가 끌려온 것 같은 귀찮음이 녹아있었다. 반쯤 감긴 눈꺼풀이 희미하게 눈동자의 빛을 감추자 그에 따른 연쇄작용처럼 긴토키는 하품을 했다. 부장님의 부름입니다, 대장님. 하품하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두어번 내리치는 긴토키를 대신해서 야마자키가 오키타의 수많은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했다. 히지카타씨가? 왜? 그 질문이 당연히 따라올거라 생각해서, 야마자키는 전번의 그 사건의 중요참고인인 긴토키를 데려왔다고 말해주었다. 아아, 그거. 서류작성에 싸인을 필요하다고 하니깐 여기까지 행차해주신거라구? 출장비는 있는 거겠지. 하품의 여운이 섞인 노곤한 목소리가 밤의 잠을 끊어 올릴 듯 들려왔다. 오키타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머리에 하고 있던 안대를 목까지 내렸다. 거참 귀찮은 일에 부름을 다 받고, 의외로 한가하네요 형씨. 긴토키가 야마자키의 뒤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아니래냐... 휴우.

 

 여기가 부장님 개인서재예요. 문을 가리키며 야마자키가 옆으로 빠졌다. 어라, 같이 안들어가? 부장님 개인서재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간부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그렇게 대답하며, 야마자키는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얼라라, 그럼 더욱 나같은 외부인이 범접해서는 안 되는 공간아니니? 야마자키가 웃으며 긴토키의 몸을 문안으로 밀어넣었다. 형씨같은 일반인은 무슨 서류를 보든 무슨소리 하는 건지 오히려 더욱 모를 거 아닙니까. 부장님 전용서류는 온통 암호 투성이거든요. 긴토키가 순순히 야마자키에게 밀리며, 피식 웃었다. 아아 과연, 어색하게 아는 쪽이 더 괴롭다는 그거야? 야마자키의 웃음소리가 그의 문닫는 소리에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문을 닫으면서, 먼산을 바라보는 듯 시선을 돌린 야마자키는 결국 보지 못했으나. 문안쪽에 서서, 방의 어느구석에 앉아 자신을 노려보거나 혹은 무관심한 척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예상했던 긴토키의 연한 빛의 눈동자 안쪽으로, 졸고있는 남자의 모습이 파고들어왔다. 어라, 저거 졸고있네. 조금 놀라고 당황한 긴토키의 감정에 반동하여, 어슴프레했던 눈이 크게 떠지면서 더욱 선명하게 남자의 꾸벅꾸벅 졸고있는 정경이 눈동자의 표면에 맺혔다. 어어, 저거 진짜 졸고있는거임? 진짜 진짜인 거임? 저거 졸고 있는 거 맞음? 졸고 있는 게 바로 졸고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졸고 있는거지? 당황한 속마음이 표면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단지 삐죽삐죽 솟아나는 당황한 감정이 긴토키의 걸음거리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남자는 서류를 잔뜩 올려둔 책상앞에 바른다리를 하고 앉아서는, 책상위에 올려진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아주 천천히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고개가 가끔씩 끄덕끄덕 하는 모습이, 절대로 '서류를 보다가 저도모르게 여름의 노곤한 바람에 휩싸여 자연스럽게 무거워진 눈꺼풀을 감아버리고 수마에 몸을 맡긴 것 같다'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니, 어라 이거 작문?! 긴토키를 머리를 긁적이며, 살짝, 아주 살짝 - 졸고있는 남자의 책상 앞에 앉았다. 당황해 붉어진 얼굴위로, 땀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 ......

 

 바람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함속에서.

 

 잠깐 조는 것이 이내 숙면이 된 건지, 단조로운 숨소리가 고르게 퍼지고 있다.

 

 턱을 괸 손가락 위로 파라락, 남자의 검은색 머리칼이 부딪히듯 흩어지기에, 남자의 감은 눈, 속눈썹위로 내리앉는 이마의 그림자, 그리고 얇은 문지방 안쪽을 서슴없이 침범하는 새하얀 햇살속에서 선명해진 서류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긴토키는 저도모르게, 오른손을 뻗어 남자의 머리칼 끝을, 조심스럽게 쓸어넘겼다. 손끝으로, 타인의 물기어린 머리카락의 촉감이 아주 조금, 느껴졌다. 

 

 아주 가느다랗게, 아주 연하게. 느껴지는 남자의 머리칼 끝자락의, 느낌.

 

 저도모르게, 바른다리위로 허리를 조금숙인 채, 턱을 괴고야 만 긴토키는,

 눈을 감고 고르게 숨을 쉬는 남자를 앞에두고, 만지던 머리칼을 허공에 흩날리며, 손을 거두었다.

 

 - ...너 깨면 날 죽이겠군.

 

 짧게, 흩어지는 한숨이 감은 눈끝에 닿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죽으면 우주장으로 해 달라고 할까봐. 그럼 별이 될 것만 같아. 

 

 별이 되는 것도 좋지. 언제나 이런 너를 볼 수 있다면 말이야.

 

 창문너머로, 파라락- 무언가가 날아가는 것을 시선으로 귀로 쫓으며, 긴토키는 가만히, 그렇게 오랜시간을 앉아 있었다. 남자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온다.

 

 

 

 

 

 

 

 

 

 

 

 

 -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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