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인기는 시즌제가 아닌지라

 

(회사원 au. 이 글은 4천자 커미션으로 쓴 글입니다. 커미션 신청해주신 분께서 웹공개를 허락해주셔서 이렇게 티스토리에 업뎃합니다 ^0^/

커미션 신청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구, 웹공개도 허락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히지카타 토시로가 크게 휘청이다 "...미안, 안되겠다."라는 소리를 남기고 그대로 소파위로 허물어졌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사카타 긴토키는 들고있던 서류를 던지다시피하고 B팀 사무실로 달려갔다. 히지카타는 소파위에서 기절한 채였음에도 때때로 후들후들 몸을 떨었고 상사와 동기, 그리고 부하들이 그를 빙 둘러싸고 구급차를 부르거나 차게 한 수건을 만들기 위해 화장실에 달려가거나 하고 있었다. 그 불길한 긴박감과 히지카타를 향한 걱정의 소란, 그 안을 헤집으며 긴토키는 간신히 히지카타의 뺨 위에 자신의 손을 갖다대었다. 히지카타의 얼굴은 지나치게 창백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아서, 긴토키는 많은 이들 앞에서 울음을 참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아랫입술을 깨물었으며, "어 사카타 부장님," "이 뒤에 회의..." 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전부 무시하면서 기어코 히지카타를 태우로 온 구급차에 자기도 같이 몸을 실었다. 물론 회사사람들 중 그것을 의아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기는 하였지만) 사카타 긴토키와 히지카타 토시로는 매일 같이 싸우는 앙숙임과 동시에,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친구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기절한 히지카타 토시로의 손을 꼬옥 붙잡은 채로, 하얗게 질린 아랫입술을 있는힘껏 깨물고 있는 사카타 긴토키의 절박함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긴토키가 기절한 히지카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

 

 코너만 돌면 탕비실이었다. 그러나 긴토키는 코너를 도는 모퉁이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우뚝 선 채로 굳어버렸고 더 나아가 마치 자기가 그곳에 있는 것이 들킬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벽에 등을 바싹 갖다 대고 붙여 탕비실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에게 자신을 완전히 숨기는 것이었다. 그들이란 사카타 긴토키가 부장으로 있는 A팀과 히지카타 토시로가 부장으로 있는 B팀 양쪽을 서포트하는 사무원들 (남녀혼합)이었다. 긴토키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빈 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방황하듯 흔들면서 탕비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대화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긴토키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몸을 숨기면서도 필사적으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마치 그들이 다름 아닌 사카타 긴토키 부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라도 하는 듯한 태도로 말이다.

 

 사실 그들의 탕비실 수다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사카타 긴토키가 아니라, 히지카타 토시로였다. 과로+감기몸살로 쓰러져 구급차로 실려간 후 쌓여있던 유급휴가를 한꺼번에 써 쉬고 있는 중인 그 회사 최고의 인기남말이다.

 

 "벌써 3일째였던가? 아, 그리워라. 회사 최고 미남 얼굴을 못 보니 회사다닐 맛이 안나."

 "난 부장님 쓰러지시고 이틀째 날에 병문안 가서 뵜는데 안색 진짜 안 좋으시더라. 그래도 여전히 미남이긴 했지만. 근데 뭐야, 00씨 히지카타 부장님 병문안 안 갔었어?"

 "히지카타 부장님 진즉 퇴원하시고 자택에서 휴식중이시람서. 일부러 문병객 좀 줄어들 때 쯔음 나타나 내 존재를 강렬히 어필하려던 계획이 다 틀어진 거지 뭐." 

 "아, 안 그래도 병원 쪽에선 좀 더 입원하라고 했다던 거 같던데. 그래도, 뭐. 집이 편하시겠지."

 "한동안은 간병인이 있는 쪽이 나을 텐데 말이야."

 "에이 뭔 걱정이야. 간병이야 아무나 부르면 그만이지. 설마 히지카타 부장님이나 되시는 분이 집으로 부를 사람 한 명 없을까."

 "아! 그 아무나가 나라면! 간병부터 집안일까지 싹 다 해치울 텐데! 기꺼이, 기쁘게!"

 "웃기네. 넌 부장님 개인 전화번호도 모르잖아."

 "그리고 부장님은 너의 개인 전화번호에는 아무 관심이 없지."

 "야! 나도 아니까 팩트폭력들 좀 그만해라!"

 

 그들의 대화가 비교적 선명하게 들리는 거보니 아마 그 사무원들은 탕비실의 문을 연 채로 수다에 빠져버린 것이리라. 말을 내뱉을 때마다 히지카타를 향한 진심과 미련이 흘러나오는 00씨의 목소리가 귀에 유독 정확하게 꽃혀와서 긴토키는 쓰게 웃었다. 농담처럼 얼버무리는 와중에도 채 감추지 못하는 히지카타 토시로를 향한 진심. 눈앞에 그만한 미남이 스캔들 하나 없이 지내고 있으면 마음이 가는 게 어찌보면 당연할테니. 긴토키는 휘적휘적 코를 후볐다. 흔히들 살면서 인기가 있는 시기는 딱 한 번 온다고 하는데, 히지카타 토시로한테는 정말이지 그 말이 맞지 않다. 그는 오히려 인기가 없었던 때를 꼽기가 힘드니까 말이다. 히지카타가 과로로 쓰러져 회사를 쉬는 동안 회사에 화사함이 사라진 것 같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긴토키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B팀이 맡고 있는 일들이 그렇게 바쁜 게 많았던가? 그 일 분담에 철저하신 히지카타 부장님께서 과로로 쓰러지시다니 말이야. 너 뭐 아는 거 없어?"

 "B팀이야 언제나 바쁘지. 이 회사 최고 실적의 프로젝트팀이잖아. 히지카타 부장님이야 외모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바쁜 건 일상이잖아. 그런데 새삼 컨디션 조절을 실패하고 병원신세까지 지시다니."

 "히지카타 부장님도 인간이란 거겠지."

 "아~ 근데 난 들은 게 있다. 통상업무만으로도 정신없는 히지카타 부장님에게 마구마구 스트레스가 쌓이게 만드는 원인 몇 가지에 대해서 말이야."

 "헐~? 뭔데?"

 "근데 이런데서 막 떠들어도 될지..."

 "새삼스러운 말 하고 있네! 얼른 말 해, 궁금하잖아!"

 "아! 나 뭐 말하는 지 알 거 같애. 이번에 B팀에 들어온 낙하산 얘기인 거 아냐?"

 

 딩동댕, 하고 가장 먼저 말을 꺼냈던 남자 회사원이 목소리를 높혀 실로폰을 두드리는 소리를 흉내 냈다. 긴토키는 눈살을 찌푸리며 비어있는 잔의 속을 바라보았다. 찌푸린 미간 사이로 불쾌감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긴토키는 '역시 그 녀석이 원인인가...'하고 생각했다. 긴토키도 그 낙하산에 대한 소문이라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가장 큰 거래처의 이사가 막무가내로 (잘 나가는) B팀에 밀어 넣은 아들녀석은 명목상으로라도 신입사원다운 태도를 일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목에 힘을 주고 다녔는데, 단 일주일만에 회사 구석구석에 퍼질만큼의 온갖 악행들을 다 저지르고 다녔다. 물론 가장 큰 거래처의 중요간부 아들이기 때문에 아무도 건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히지카타가 그를 참아낸 이 주 동안, 낙하산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선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고, 히지카타 부장님은 그 낙하산이 회사를 다니고 정확히 삼 주째 되는 아침부터 더 이상 그 낙하산을 참아주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했다. 긴토키는 외근중이었기 때문에 오후가 되서야 그 날 아침에 B팀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는데, 긴토키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 낙하산은 이미 회사를 박차고 나가 자기 아버지의 회사로 택시를 타고 향해버린 뒤였다. 히지카타에게 주먹으로 맞아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감싼 채로 말이다. ("아버지에게조차 맞아 본 적 없는데!" 그 장면을 처음부터 쭉 보고 있었던 A팀 부하가 긴토키 앞에서 실감나게 낙하산이 맞는 연기를 열연하였고 긴토키는 "그거 건담 드립 맞지? 요새 젊은이들은 그 드립 못 알아들을걸?"하고 대답해주었다.)

 

 물론 그 낙하산의 뺨을 때린 것이 히지카타가 아닌 다른 말단사원이었다면 사직서도 막 돌아다닐만한 일이었지만, 다른 이도 아닌 히지카타 토시로가 직접 총대를 맨 것이었기 때문에 일은 하나도 커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회사에서나 거래처에서나 일 잘하는 히지카타 토시로의 존재는 퍽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 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더욱 그랬다. 거래처 이사는 당장 달려와 짐짓 화난 척을 하며 자기 아들의 뺨을 때린 히지카타를 데리고 오라고 하고서는, 아들의 뺨을 때린 것을 보상하라는 핑계로 그에게 자기 회사로 이직하라는 요구를 은근슬쩍 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이사 본인도 포기한 아들 녀석을 왜 회사에 들이밀었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게 된 과장이 (긴토키와 히지카타의 상사인) 이번에 더는 못참겠다며 어디서 우리 보물을 빼갈 몹쓸궁리냐 길길이 날뛰었고, 그 일을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중간에 계속 끼어있던 히지카타의 신경은 말도 안 되게 타들어갔을 것이었다.

 

 "진짜 웃기는 촌극이 따로 없었지. 히지카타 부장님이 아무리 둘 없는 인재라지만 말이야 그런 치졸한 방법을 써서."

 "그러게 말야. 결국 원만하게 잘 해결됐으니 어쨌든 다행이지만. 원만하게 잘 수습한 것도 부장님 본인이지만 말야."

 "근데 난 좀 다른 소리도 들었어. 그 낙하산 말야, 여직원들한테 온갖 성희롱 비슷한 짓거리까지 벌인 것들은 다 연막이고, 사실은 부장님을 노렸다고 하더라구."

 "엑~?!!!"

 "양성애자라던가 어쨌다던가. 낙하산이 부장님 엉덩이 만지려고 하는 걸 몇 번이나 봤다고 B팀의 총무담당 애가 그러던걸? 막 일중에도 꼬시는 듯 한 문구를 느끼하게 던지면서 부장님 일 방해하고 어깨에 손 올리고 그러더래. 그때마다 부장님 표정 장난 아니었다더라. 그래서 부장님이 낙하산한테 한 방 날릴 때 "결국..!"라고 생각했고."

 "으엑..."

 "손찌검은 좀 과한 해결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사실이면 오히려 너무 약한 거 아닌가."

 "진짜 싫다~ 그 자식!! 우리 부장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그건 금시초문인데. 긴토키는 한마 터면 들고있던 머그컵을 떨어뜨릴 뻔하였다.

 

 "플러팅하니까 생각났는데, 또 다른 스트레스의 요인. 부장님한테 같은 여성과의 선자리가 거절해도 거절해도 계속 들어오고 있담서?"

 "아 그거 알아. Z상사쪽 사장님 따님이 히지카타 부장님한테 반해서 맹렬히 어택중이라는 거 말이지? 계속 선 자리 잡자고 하고 아예 회사로 직접 사진 보내고 막 그런다던데. Z상사 사장은 거의 협박처럼 선보라고 강요하고 그런다더라고."

 "다들 우리 부장님 귀한 건 알아가지고."

 

 그, 그것도 처음 들어... 에? 거래처 따님? 사진공세? 협, 협박?
 전부 처음 듣는 소리뿐이다. 소문조차 듣지 못한 게 의아할 정도의 내용이건만...? 긴토키는 거의 기절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히지카타 부장님이 거절해도 거절해도 계속 들이댄대. 나 같으면 거절하기 귀찮아서라도 차라리 한 번은 나갔을건데, 그 한 번도 허락해주지 않고 단호하게 끊는다더라. 부장님 역시 대단하시지."

 "한 번이라도 나갔다가 그걸로 괜한 덜미 잡힐까봐 처음부터 강경하게 끊어내시는 거겠지. 현명하시네."

 "맞아, 제대로 대처하고 있으신거야. 언제 한 번은 그 따님이 회사까지 찾아왔다더라고? 그런 타입한텐 정말 조그마한 빌미도 줘선 안 된다고봐."

 "뭐라고? 헐. 그건 처음 듣는다. 와 진짜 스트레스가 안 쌓일 수가 없겠네. 안 쓰러지는 게 이상할 지경이셨네, 우리 히지카타 부장님."

 "인기 있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니, 참 나."

 "부장님같은 경우는 그냥 인기가 아니고 너무 인기가 있는 거니까."

 

 그리고 사카타 긴토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벽에 등을 기댄 그대로 주르륵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물론 복도 바닥에 주저앉지는 못했고, 무릎만 접은 채였지만 말이다. "......."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져 긴토키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벅지 위로 깊게 누른 얼굴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낙하산이 성희롱? 거래처에서 압박하는 선자리? 처음 들어. 전부 다 처음 듣는 소리라구. 어쩜 그렇게 하나도 말을 안하냐 그래 그 나쁜자식은.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긴토키에게 말하지 않는 것 긴토키에게 이런 일련의 일들을 들키지 않는쪽이 히지카타가 생각한 배려일 게 틀림없었기에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원망할 수조차 없었다. 이만한 일이 긴토키의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 히지카타가 정말 필사적으로 소문이 되지않게끔 노력하고 주변의 입간수를 했다는 말일건데, 그건 다 긴토키 때문일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나한테 이런 말 저런 말 들어오지 않게 하기위해 노력한 거겠지? 내가 걱정할까봐, 신경쓸까봐. 어쩌면 질투로 질식해 죽을까봐.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니까, 그런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어쩌면 그 노력도 너의 과로의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던가. 그러니까 긴토키는 정말이지 히지카타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입단속을 했는지에 대해 다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말이지. "하아아..."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말이지. 나도 머리로는 다 알고 있지만 말이지. 그래도 역시 이 복잡한 심정을 당장은 어떻게도 수습할 길이 없었다. 긴토키는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전부 아는 편이 좋았어. 너에게 남자가 던지는 추파도 여자가 던지는 추파도, 전부 네 입으로 먼저 듣을 수 있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아. 내가 모르는 곳에서 네가 인기가 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 화가 나. 내가 지금 헛소리 하고 있다는 것 나도 알지만, 그래도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걸.

 

 그렇게 멍하니, 긴토키는 차라리 히지카타 토시로의 인기가 한 순간에 전부 다 사라지길 바랐다. 정말로 진심으로 바랐다. 넌 나한테만 인기 있으면 되는 거잖아. 그렇게 불쑥 튀어나온 자신의 감정이 무척이나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긴토키는 정말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까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히지카타 토시로에게는 물론 간병인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은 히지카타가 문자로 부르는 '아무나'가 아니었고 말이다.
 회사에 공표를 하지 않았을 뿐, 사실 히지카타에게는 사귀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물론 그 상대는 긴토키고 말이다. 사카타 긴토키와 히지카타 토시로가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중에 그들과 같은 회사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건 둘 사이에서도 정확히 합의한 이야기였다. 가능하면 회사에는 동거사실을 들키지 말자. 굳이 회사에는 알릴 필요가 없지. 둘 중 누가 먼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둘은 거의 같은 생각을 하며 그런 말들을 주고 받았고, 그 말들속에는 무엇보다 서로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드디어 하나가 되어 동거를 결심하였지만, 그 사실을 회사에 들켜 네가 불이익을 당하면 어떡하나, 둘은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였고, 그리고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마음을 히지카타는 또한 긴토키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에 둘은 서로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서로의 마음이 낯간지러워 크게 웃고야 말았더랬다. 둘이 함께 살 집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히지카타는 자신의 전에 살던 집의 전세를 완전히 빼와 계약에 보탰고 긴토키는 이전보다 더 작고 낡은 원룸 하나를 빌렸다. 그리하여 회사사람들은 이 커다란 아파트에 히지카타가 살고 있다고 그리고 전철로 몇 정거장 떨어져 있는 작은 원룸에 긴토키가 살고 있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긴토키 명의의 작은 원룸은 처음에는 둘의 잘 쓰지 않는 짐을 옮겨놓는 창고 비슷한 걸로 사용했다가, 이윽고 다른 사람에게 세를 받고 빌려주게 되었다.) 둘이 함께 고른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긴토키는 그런 생각들을 멍하니 했다. 오늘은, 왠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물론 긴토키는 자기가 왜 이런 혼란스러움을 느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최근 히지카타의 스트레스가 되었던 일들을 이제 전부 다 알게 되었으니까. 긴토키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히지카타가 자신에게 숨기려고 했던 많은 일들을 우연이지만 어쨌든 전부 다 알게 되었고, 이제 긴토키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히지카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비밀로 한다. 히지카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말해버린다. 어느 쪽이 히지카타가 더 바라는 일일까? 물론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계속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를 가장 바랐을테지만.

 

 "...뭐, 일단 전부 네가 건강해지고 난 뒤에 생각할 일이지." 긴토키는 조그맣게 중얼거린 후 아파트 일층 현관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래. 히지카타에게 말하든 말든 히지카타에게 무슨 말을 듣든 말든, 그건 전부 히지카타가 완치가 되고 난 뒤의 일이다. 긴토키는 복도를 걸으면서 쓰러진 직후의 새파란 안색으로 질려있던 히지카타를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어쨌든 긴토키는 두 번 다시 히지카타의 그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창백한 얼굴, 새하얗게 질려버린 입술, 힘없이 털썩 주저앉아버린 얇고 긴 몸. 긴토키의 심장도 그때 꼭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은 정말이지, 두 번은 사양이니까.

 

 구급차 안에서 기절한 히지카타의 손을 꼬옥 잡은 채로, 안 돼. 나를 두고 가지 마. 먼저 가면 용서 안 할거야, ...그런 생각을 반복할 때마다 점점 심장이 차가워지는 그런 경험.

 정말이지 두 번다시 하고 싶지 않으니까.

 

 "뭐, 뭐하는 거야?"

 "아, 왔어?"

 

 히지카타가 아직 자고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긴토키는 비번을 누르고 나서 아주 천천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끔 조심하며 문을 열었던 참이었다. 신발도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고 벗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들였다. 그러나 그런 긴토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히지카타는 일어나 있었다. 그냥 일어나 있는 것이 아니고, 무려 집안일의 도중이었고 말이다. 가디건을 팔을 궤지않고 어깨에만 걸쳐 놓은 채 히지카타는 거실의 한쪽 끝에 달려있는 부엌의 싱크대 위에 쌓여있던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환자가 설거지라니?! 양 손에 고무장갑을 낀 히지카타의 손 위로 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서, 긴토키는 자기도 모르게 성난 표정을 지은 채 걸었다. 화가 났기 때문인가 걸음 또한 어느때보다도 빨랐다. 그리고 재빨리 수도꼭지의 물을 잠구는데, 화가 치밀어서인가 언성마저 높아졌다.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거의 노려보다시피 하였다. "이 멍청이가! 환자가 침대에 누워있지는 못할망정 설거지는 왜 하고 있어? 낫고싶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거야." 히지카타에게 화를 내고는 있었지만, 물론 긴토키는 히지카타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걱정이 지나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치게 되버린 것이었고, 히지카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자신을 노려보는 긴토키한테 별로 화가 나지도 않았고, 히지카타는 그저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 보일 따름이었다. "아냐, 그게 아니고. 방금까지 자고 있었는데, 너무 자서그런가 인제 더 잠도 안 오고 그래서..." "그래도 누워있어야지! 젠장. 잠이 안와도 일어나지 말고 누워있으라구. 빨리 당장 침대로 안 돌아가면 네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거 해버릴테니까." 긴토키는 또 한 번 소리를 지르고 가디건을 걸치고 있는 히지카타의 어깨를 성급하게 밀쳤다. 밀쳐지긴 했지만 히지카타는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긴토키는 "젠장, 회사 지각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침에 다 해치우고 출근하는건데..." 라고 중얼거리며 성급하게 양복자켓을 벗어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길게 늘어진 넥타이를 어깨 뒤로 돌리고는 소매를 걷는다. 아마 히지카타가 하던 도중의 설거지를 마저 하려나 보다. 히지카타는 엉거주춤 뒤로 물러나며 그런 긴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등을 보는 히지카타의 눈매가 부드러워져, 그를 향한 미안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긴토키가 아침에 설거지를 미처 하지 못한 것은 히지카타 탓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픈 히지카타를 돌보느라 긴토키 또한 밤새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다.

 

 심한 기침이 멈추지 않아 긴토키마저도 자지 못하게 괴롭힌 것이 바로 지난 밤의 히지카타 토시로였다. 이불속에서 아무리 몸을 웅크려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고 긴토키는 같은 침대에 누워 계속 기침을 하는 히지카타의 등을 쉼 없이 문질러주고 있었다. 다른방에 가서 자겠다고 히지카타가 말하는 것을 단칼에 자른 긴토키는 밤새 그렇게 히지카타의 기침이 잦아들 때까지 그의 등을 문지르거나 어깨를 주무르거나 혹은 젖은 수건을 갈아주거나 하였다. 그러고 아침을 맞이하자마자 바로 출근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긴토키가 제대로 설거지를 할 시간조차 없이 바삐 출근한 건 새벽녘까지 계속 그를 괴롭힌 히지카타때문이었고, 히지카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탓을 하긴 커녕 제대로 설거지를 해놓지 않은 자기 자신을 탓하는 긴토키에게 한없이 미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의 자지않고 출근해야했던 긴토키와는 다르게, 하루종일 자고 이제 막 일어난 히지카타는 새벽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졌다. 약먹고 푹 잔 것이 좋은 효과를 본 것이다. 그래서 샤워하고 나와 보니 설거지가 눈에 띄였고, 그래서 마악 그것을 해치울 참이었는데. 히지카타는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며 씻기전에 설거지부터 하면 좋았을걸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내뱉으면 긴토키는 또 화를 내겠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뭔데?" 빨리 침대로 안가면 또 긴토키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아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쉽사리 긴토키에게서 떨어지지 못한 채로 히지카타는 그렇게 물었다. 물소리와 함께 접시들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긴토키의 목소리는 그 사이에서 스미듯 흘러나왔다. "공주님안기잖아." 하하. 히지카타는 마른 웃음을 흘렸다.

 

 히지카타는 일단 침대로 돌아왔다. 방문을 닫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으니 긴토키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전부 들려왔다. 그렇게 한동안 기다리고 있으니, 곧 물줄기가 흐르던 소리가 멈추었다. 히지카타는 가디건을 내려놓고 다시 방에서 나왔다. 긴토키는 설거지를 끝낸 그릇을 뒤집어 차곡차곡 쌓은 후에 주변의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 싱크대 옆에 달아놓은 수건으로 양손의 물기를 닦아냈다. 그의 어깨 위로 넥타이 끝자락이 팔랑거렸다. 히지카타는 천천히 다가가 긴토키의 등 뒤에 달라붙었다. "?!" 긴토키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히지카타는 눈을 가느다랗게 하고서 긴토키의 등에 매달렸다. "야, 누워있으라니까." 긴토키가 혀를 차며 그렇게 말하자, 히지카타는 키득대며 숨을 들이마셨다. 긴토키에게서는 바깥의 흙과 먼지가 뒤섞인 공기냄새와 함께, 그가 흘린 땀 냄새가 배여나왔다. 히지카타는 좀 더 깊이 긴토키의 셔츠의 주름 사이로 코를 묻었다. "침대에 갔다가, 다시 온거야."

 

 "긴토키, 너한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거 하게 해주려고."

 "...!"

 

 긴토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히지카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히지카타는 여전히 눈을 가느다랗게 한 채 두 손으로 긴토키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 눈끝이 열에 달아올라 있어 어느때보다도 부드럽게 보였다. "데려다줘. 긴토키." "......" 콧잔등을 찌푸리지 않으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를 것 같았다. 긴토키가 뭐라 말을 내뱉으려다 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미간을 찌푸린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쩔 줄 몰라서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험하게 만든 것이다. 긴토키의 머리속에서는 요란하게 이 선수, 이 망할 미남, 젠장 역시 잘나가는 남자는 다르네! 그치만 귀여워! 젠장 귀여워 치사해 귀여워! 같은 단어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그저 키득거렸다. 곧 긴토키가 두 손을 뻗어 조심히 히지카타의 허리와 다리를 감싸고 그대로 안아들었다. 히지카타는 두 다리를 포갠 채 좀 더 바짝 긴토키의 몸에 밀착하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히지카타의 전신이 긴토키에게 꼬옥 달라붙었고,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의 몸을 더욱 단단히 부여잡았다. 히지카타의 몸은 아직도 좀 뜨거웠다. "...무거워."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사실은 그간 제대로 먹지도 못한 히지카타의 몸은 어딘가 비실하여 묘하게 가볍게 느껴졌다. 속상해. 긴토키의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그거 다행이네." 그런 긴토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히지카타는 그저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고, 히지카타의 아직도 좀 하얗게 창백한 얼굴 위로 그의 긴 속눈썹이 드리워졌다. 긴토키는 견디지 못하고 히지카타의 눈꺼풀 위에 살짝 키스를 했다. 마치 솜털이 가닿는 듯한 가벼운 키스. 히지카타는 목 안쪽을 울리며 희미하게 웃었고, 긴토키는 한 번 더 그의 눈꺼풀 위에 키스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긴토키는 그대로 히지카타를 안은 채 방으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쏜살같아서, 긴토키는 혼자 고요히 이 순간이 영원하길 문득 바랐다.
 그리고 자기가 그런 걸 바라고 있다는 것을 히지카타가 영원히 눈치채지 못하길 또한 빌었다.

 

 "...하아아아아아..." 침대 위에 히지카타를 조심히 내려놓고, 침대가 가볍게 출렁이는 것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다리 위로 이불을 끌어올려주고 나서 긴토키는 마치 허물어지듯 그렇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침대 옆 바닥에 주저앉아 히지카타의 다리가 있는 이불 위 어딘가에 이마를 댄 체 그렇게 깊게 한숨을 토해내는 긴토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였다. "왜 그래?" "으으으으으..." 히지카타의 말에 마치 대답처럼 신음을 흘리며 긴토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긴토키의 고개가 움직일 때마다 이불위에는 요란한 주름이 졌다. 히지카타는 자신의 다리를 부드럽게 누르는 긴토키의 무게를 느끼며 눈을 깜빡였다. "오늘 좀 이상하다 너." 히지카타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뻗은 손으로 긴토키의 은색의 곱슬거리는 머리칼 속 깊숙이로 밀어넣고 한 쪽 방향으로 쓰다듬었다. 히지카타의 부드러운 손길에 긴토키는 마치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눈가가 붉게 달아오른다. 이불에 얼굴을 박은 채 긴토키는 또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아니, 내가 위로를 받으면 어쩌잔 말이야. 내가 위로를 해줘도 모자를 판에. 이 멍청한 사카타 긴토키야... 긴토키는 머리위에서 사락사락거리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얼굴을 붉혔다.

 아 젠장. 정말이지 다 틀렸다. 히지카타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자신이 긴토키는 너무나 꼴불견으로 느껴졌다. 그에게는 늘 한없이 지켜지고 있는 듯 한 기분이었다, 한없이 그를 지키고 싶은 건 다름 아닌 나이건만.

 

 "...긴씨는 너가 나한테 어리광 피우게 하고 싶은 건데." 

 

 어딘가 볼멘소리로 내뱉는 긴토키의 말에 히지카타는 또 키득이며 그의 이마가 드러날 만큼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그래서 어리광 피웠잖아. 덕분에 방까지 편하게 왔어."

 "아니잖아!"

 

 그 말에 긴토키가 벌떡 고개를 들고서는 히지카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 녹아있는 희미한 원망과 희미한 간절함, 그리고 강렬한 삐침.

 

 "그건 아니었잖아, 니가 나한테 어리광 피우는 게 아니잖아! 넌 내가 네가 나한테 어리광 피워줬으면 하니까 일부러 그렇게 한 거잖아!"

 "아..."

 

 사실 그 말이 맞았다. 긴토키는 아랫입술을 쭈욱 내밀며 있는대로 삐친 얼굴을 했다. "그건 그럼 니가 내 어리광을 들어준 게 되는 거잖아. 그게 아니라고. 아플 때 정도는 나한테 기대면 좋잖아!" "아니, 충분히 기대고 있는데." 눈썹을 구부리며 히지카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며칠째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는 것만으로 이미 실컷 민폐 끼쳤다. 약도 꼬박꼬박 챙겨주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죽을 매끼마다 다시 만들어서 먹여주기까지 하고. 몸도 닦아주고. 심지어 밤에는 나때문에 잠도 못자고. 대체 얼마나 민폐를 끼쳤는데? "그러니까, 그런 당연한 거 말고. 그건 당연히 내가 해야할 일이잖아. 아니 나 말고 누구한테 그런 일 하게 할건데? 긴씨 질투로 죽이고 싶은거냐 요녀석아?" 긴토키가 눈을 이글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히지카타는 또 어쩔 수도 없이 웃고 말았다. 긴토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겠지만, 히지카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에게 어리광을 피워줘야 그가 만족할 듯 싶은데 히지카타는 당장 떠오르는 게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하하. 야한 거 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히지카타는 힘없이 웃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좀 빨아줘, 며칠 안 했더니 제법 쌓여서. 그렇게 말하면 불과 같이 화를 낼 긴토키가 히지카타는 대번에 상상이 됐다. 야!!! 너 죽을래 진짜!!! 그런 건 건강할 때나 말하라고!! 아니 제발 다 나으면 다시 한 번 말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 진짜!!

 

 아이구야. 히지카타는 자신의 상상을 향해 킥킥 웃으며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알았어. 그럼, 머리 좀 더 쓰다듬게 다시 한 번 숙여줘라." "......" 긴토키의 얼굴이 여전히 좀 불만이 남은 듯 불퉁거렸다. "그러니까 그건, 나한테 좋은 거잖아... 젠장." 그렇게 중얼거리며 긴토키는 한 번 더 히지카타의 다리 위로 머리를 뉘였다. 아무래도 여전히 자신의 어리광을 히지카타가 받아주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가 보다. 그거 아닌데. 니 머리 쓰다듬는 거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혹시 너 아직도 모르고 있었어? 그러니까 이건 정말이지 내가 너한테 어리광을 피우는 거라고. 넌 나때문에 그렇게 하고싶은 스트레이트 펌도 못하고 있잖아, 내가 너 곱슬머리 만지는 거 좋아하니까. 알면서.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대로 긴토키의 머리에 손가락들을 밀어 넣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끝에 닿는 몽실몽실한 감촉. 엉키듯 하지만 사실은 조금도 엉키지 않고 그저 손가락을 부드럽게 감싸온다. 히지카타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졌다.

 

 히지카타는 슬쩍 양손으로 긴토키의 귓바퀴에 가까운 머리칼을 매만졌다. 히지카타의 손가락 끝이 귓불 어딘가를 살짝 스치자 간지러운지 긴토키가 조금 목을 움츠렸다. 후후. 히지카타는 속삭이듯 미소지었다.

 

 "제대로 잠도 못 자게 만들고. 미안하다. 어서 빨리 다 나을게."

 

 머리칼을 매만지는 통에 한 쪽 눈을 움찔거리다 (그것은 마치 히지카타를 향해 윙크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그래. 제발 빨리 좀 나아라."

 "응."

 "다 나으면 나한테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히지카타 너."

 "? 응?"

 

 긴토키의 얼굴이 다시금 불퉁해졌다. 고요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히지카타를 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킬 수가 없어서. 긴토키는 불쑥 튀어나오는 말과 동시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질투 또한 함께 흘려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불게 할 거니까. 낯선놈이 엉덩이를 잡으려고 했을 때의 너의 대처에 대해서나, 아니면 육탄사진공세같은 거의 회피방법같은거나."

 "...과연."

 

 어이고, 이런. 히지카타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긴토키 상태가 아까부터 왜 이렇게 좀 이상했는지 이제야 다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숨겨왔던 것이 다 들킨 것이다. 자기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만큼 긴토키에게도 아무 의미가 없는 일들이지만 그래도 그의 기분을 괜히 상하게 할까봐 나름 회사사이에서도 말이 안퍼지도록 하며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역시 발없는 소문이 천리를 달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는지.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따뜻한 두피를 더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 이제 다 아나보네." "그래. 이제 다 안다. 진작 다 알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긴토키의 목소리가 한층 더 퉁명스러워졌다. 아, 화내지 마. 화내지 마. 히지카타는 약간 초조해졌다. "그럼 그것들이 되게 별일들 아니라는 것도 잘 알겠네?" 히지카타가 조심스레 그렇게 말하자, 긴토키가 이번에는 고개만을 살짝 들어 히지카타를 올려다보았다. 히지카타는 턱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위에 댄 채 눈동자만을 위로 올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긴토키를 향해 조금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은 여전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지만.

 

 긴토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지만." 알지만 그래도 기분은 상한다는 건가? 끙. 히지카타는 얌전히 긴토키의 뒷말을 기다렸다. 긴토키는 질렸다는 듯이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젠장. 히지카타. 네녀석의 인기시즌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아니, 그렇게 말해도. 대답하기가 곤란하여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더니, 긴토키가 또 중얼이며 불만을 토로했다. "적어도 시즌제면 끝나는 날이 오기라도 할 텐데, 이건 뭐 끝나기는 커녕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하니. 대체 긴토키씨보고 어쩌란 말이야? 자꾸 이러면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거든? 어? 이 얇고 하얀 손가락에 완전 멀리에서도 엄청 잘 보일만큼 반짝이는 거 하나 확 끼어넣어버릴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긴토키는 어느새 히지카타의 손을 꼬옥 잡고 그의 손가락들을 매만지고 있었다. 히지카타는 자신의 손바닥에 포개어진 긴토키의 손바닥을,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감싸는 그의 손가락들을 바라보다, 다시 긴토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완전 비싼 걸로. 월급 3개월치로는 부족하겠지? 아예 적금 하나를 깨가지고 여기에 끼워버릴라니까." 그리고 히지카타는 왠지 몸이 다시 뜨거워졌다. 설마 열이 도로 올라버린 것일까. 히지카타는 오늘밤도 그치지 않는 기침으로 그를 괴롭혀버릴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지금 히지카타의 체온이 갑작스레 높아진 것은 그의 건강과는 별개의 이유 때문이었고, 히지카타 토시로는 내일 찾아간 병원에서 거의 다 회복되었으니 이제 출근하셔도 되겠지만 무리는 금물 방심은 안 됨 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나가 제일 먼저 낙하산의 애비를 거래처로 둔 프로젝트를 A팀 혹은 C팀에게 떠넘겨 버릴 것이었고, (안 되면 부하에게라도. 어쨌든 히지카타는 그 일에는 손을 뗄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상사가 또 자기를 방으로 불러 Z상사 사장님의 딸 사진을 들이밀면 이젠 아예 상사의 눈앞에서 그 사진을 박박 찢어버리는 퍼포먼스라도 할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 일련의 일들이 끝난다면야 기꺼이 말이다.

 

 하여간 그리하여, 건강상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어진 히지카타는 달아오른 얼굴을 수습할 수가 없어 저도 모르게 그저 미간을 찌푸렸고, 새빨갛게 달아오른 귓불을 감추고 싶다는 듯 있는힘껏 목을 움츠리다가 그대로 긴토키의 드러난 목덜미 위로 무너지고야 말았다. "?! 히지카타, 너 좀 뜨겁다? 뭐야, 열 다시 오른 거 아냐? 누울래? 아니, 누워. 제대로 누워 요녀석아!" 그리고 긴토키도 멍청하게 그런 소리나 내뱉는 와중에, 긴토키의 목덜미에 자신의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 얼굴을 비비적대는 히지카타는 이를 뿌득 갈며 '망할 긴토키놈아, 자각 없이 프러포즈같은 거 하는 거 아니라고...'라고 속으로나마 겨우 중얼여댔다.

 

 하지만 네가 그렇다면 나도 각오하는 수 밖에. 긴토키.
 긴토키.

 

 "히지카타? 야, 토시로!"

 "...그..."

 

 그, 나도, 준비할테니까. 3개월치 월급으로 모자르면 적금 하나를 깨서라도.
 

 그리고 물론 히지카타는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 알았다고!" 히지카타는 그렇게 소리치고 잽싸게 이불을 당겨 얼굴 위로까지 올리고서는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긴토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한 그의 행동은 그 어느때보다 민첩하고 빨랐으며, 그래서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왜 이불을 얼굴 위까지 당기는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아이고 그렇게 이불을 코위까지 올리면 숨이 막힌다고... 하는 무슨 엄마라도 된 심정으로 히지카타의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기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 done

 

오랜만에 커미션 재개를 했는데 이렇게 커미션 신청을 해주셔서 넘 기쁠 따름이었다 ^0^/

헤헤 커미션 하면서 여러 기쁨이 있었지만 역시 재밌었다고 기다리는 보람이 있다고 해주시는 게 제일 ㅠㅠ 즐거워 ㅠㅠㅠ 희희희 ㅠㅠ

 

커미션 받아서 쓴 글입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기쁠거예요~ 그나저나 이 글의 긴히지는 너무 제취향 범벅이넴욬ㅋㅋㅋㅋ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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