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kiss and Goodbye

 

참방.

 고요한 온탕의 한복판, 등을 보인 채 탕속에 몸을 담근 남자의 머리위로, 수증기가 차올라 벽에 부딪힌 물방울이 한방울, 툭- 하고, 떨어졌다. 탕속에 숨어있던 양손이 등을 기대고 있던 온탕의 벽쪽으로 따뜻한 물을 가르며 움직였다. 넓은 등의 날개죽지가 잠깐 보이다가, 벽에 막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 간수 얻는 방법 혹시 알아?

 

 - .....

 

 큰 목소리도 아닌데, 소리가 울렸다. 후지산이 그려있는 벽쪽을 바라보는 남자의 목소리는, 그래서인지 벽에 한 번 부딪혀 튀어오르는 것 같았다.

 

 - 소금포대를 말이야 어디 습기찬 데 같은 눅눅한 곳에 두는 거야, 밑에 대야를 받친 채로. 꼭 눅눅한데가 아니더라도 소금은 원래 수분이 많으니까 상관없겠지만, 눅눅하면 금방 더 잘되거든? 어쨌거나. 그렇게 장시간 마치 잊은 척 관심없는 척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소금포대를 들어보면, 어마니아 심봤다! 싶을정도로 대야에 간수가 잔뜩 고여있다는 얘기지.

 

 - ......

 

 - 간수는 그렇게 얻는거야. 긴토키 아저씨의 ' 그닥 알필요 없는 삼십초 정보☆ ' 지.

 

 - ......

 

 - 마요네즈의 주성분 혹시 알아?

 

 - ...닥쳐.

 

 - ......

 

 뜨거운 김이 올라, 숨이막힌다.

 

 무표정한 얼굴의 미간 가운데에 줄이 하나 그어져, 히지카타는 답답해진 숨을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탕의 젖은 천장에서 계속 물방울이 떨어져 머리 위로 톡톡, 떨어졌다. 젖은 바닥에 구두를 신은 채라 한발 내딛을 때마다 끝이 조금씩 미끌렸다. 쓸데없이, 넓은 탕. 히지카타는 등을 바라보고 있던 눈을 내리깔아, 자신의 젖은 구두의 발끝을 바라보았다. 눅눅한 공기가 뜨거워 코끝이 저리다. 히지카타는 눈을 감아버렸다. 미간의 긴 줄이, 눈썹끝과 만나 미세하게 떨렸다.

 

 - ....닥치라구.

 

 - ......

 

 마치 우는 것처럼, 떨리는 그 목소리.

 탕안이기 때문에?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 ...하하.

 

 긴토키는 웃었다.

 사실은 너의 목소리가 떨리는 이유따윈 뻔하게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꾸, 떨리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니 자꾸, 가슴에서부터 무언가가 밀고 올라와 목구멍을 꽉 채워서 말이야. 그래서 자꾸, 웃음이 나고.

 

 - ......

 

 - ......

 

 긴토키는 등을 기대고 있던 자세그대로 몸을 틀어,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남자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오른쪽 팔은 걸터두었던 장소에서 떨어져 탕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왼손은 더욱 탕밖으로 비져나왔다. 젖은 손가락이 탕아래를 훔치듯 스쳐, 물방울이 길게 길을 이었다.

 

 - 히지카타.

 

 - ......

 

 - ...토시로?

 

 후후, 미소짓는 얼굴을 외면하고, 히지카타는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손가락이 미간에 닿아,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 .......

 

 그렇게 두 사람의 눈동자가 순간, 마주쳤다.

 

 

 

 

 

 

 

 

 

 

 

 

 

 

 

 

 

 

 

 

 

 

 ___________________ 너를 죽이거나, 내가 죽어버리거나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 토시로군.

 

 죽여버리겠어 .

 

 

 

 

 

 

 

 

 

 

 

 

 

 

 

 

 

 

 

 

 

 

 

 

 

 

 

 

 

 

 

 

 

 

 

 

 -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지 마. 내가 널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 ....

 

 - 실제로 니가 지금 날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몸은 좀 나아가는 상태였던가?

 

 - .....

 

 저도 모르게, 깨물은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려서, 히지카타는 자신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긴토키에게 감추지 못한 것이 아주 잠깐, 분했다. 수증기 때문에 긴토키의 얼굴이 흐릿함에도 불구하고 그 입가가 분명하게 자신을 향한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이 보여서, 더욱. 하지만 화가 나면 머리가 아프고, 몸에 힘이 들어가면 상처가 지독하게 아려와서- 히지카타는 간신히 신음을 뱉는 것만을 목구멍 아래로 밀어넣은 채, 더 이상 화나지 않은 척 하며 몸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히지카타는 금방이라도 앞으로 달려나갈 것 같은 오른발에 힘을 꽈악 주며, 몸을 한바퀴 도는 더운 피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복부의 약간 왼쪽 칼에 깊게 찔린 상처를 중심으로 후끈후끈 열이 피어올라 그 열이 온몸으로 퍼져있었고, 그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전신 타박상으로 부상을 입고있는 히지카타는, 이미 서 있는 것조차가 힘든 상태였다.

 

 그러니까 흥분해서 달려나가, 벗은 채 욕탕안에 앉아 태연히 반신욕이나 하고 있는 저 남자를 향해 주먹을 쥐어 본들, 멱살을 잡아본들- 결국 제몸의 상처와 열에 지쳐 탕안으로 쓰러져 기절하는 것은 오히려 내쪽. 히지카타는 뿌득, 이를 갈았다. 킥킥하는 웃음소리가 탕쪽에서 들려온다. 움켜쥔 주먹끝으로, 피가 몰렸다.

 

 - 아, 미안. 괜찮을리가 없을라나, 그치? 하여간에 우리애들은 너무 난폭하다니까. 내가 파르페 하나 다 먹을 동안만이라고 했는데, 설마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나 날뛰었을거라곤, 아무리 나라도 예상못하지 않았겠어?

 

 - ......

 

 개새끼. 시끄러워, 닥쳐.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밀고올라오는 것을 히지카타는 간신히 눌렀다. 주먹이 더욱 단단해진다. 손톱끝이 굳은살 안으로 파고들어와서, 점점. 그리고, 첨벙, 첨벙. 손가락 두개로 물표면을 튕기는 소리가, 남자의 말소리에 섞여 계속해서 끊임없이.

 

 - 하긴, 뭐. 넌 곤도파 ' 신센구미 ' 의 귀신, 히지카타 토시로지. 너에 대한 원한이라면 네손에 죽어간 녀석들 몫까지 합쳐서- 나 사카타 파 ' 요로즈야 ' 패밀리들에겐 강산을 전부 메우고도 철철 흐를 정도로 고여있을테지.

 

 - ......

 

 - 그러니 이건 뭐, 오히려 그만하길 다행으로 여겨야겠군? 칼에 찔리고, 그렇게 맞고, 겨우 일주일동안 기절해있었던 것 뿐이니까.

 

 - .....

 

 그 일주일.

 

 - .......

 

 머릿속의 신경이 굵은 줄로 되어있다고 치면, 방금 히지카타의 머릿속에 있는 그 굵은줄은, 짧고 단단한 소리를 내며 툭, 끊어진 것만 같았다.

 

 그 일주일이다.

 운명을 처음부터 다시 짜맞추는 것 같은, 세상의 모든 주마등같은, 절망위에 절망을 쌓아올린 것 같은, 세상천지가 개벽한

 

 세상에 지옥이라는 게 있다면 그 일주일이야말로 히지카타를 위해 준비된 지옥.

 

 - ...죽여버리겠다.

 

 - ......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히지카타는 뿌득 갈리는 입술속의 분노와, 눈으로 긴토키를 죽여버릴 것 같은 살기를 더 이상 감추지 않은 채, 더 이상 본인의 제어에도 멈추지 않는 오른손의 이미 반쯤 풀린 주먹을 들었다. 어느새 탕안에서 완전히 몸을 틀어 히지카타쪽을 향하고 있던 긴토키는 그저 웃는 얼굴로, 백으로 밀어넘긴 머리칼을 다시 한 번 길게 훔쳐낼 뿐이었다. 물방울이 흥건한 손가락위로, 미끄러지는 긴토키의 은발을 바라보며- 히지카타는 자켓의 안쪽에 이미 들어있던 권총을 잡아, 꺼냈다. 찰칵, 하며 차가운 금속이 뜨거운 히지카타의 손안에 잡히는 소리가 탕을 사정없이 울렸다.

 

 - 죽인다.

 

 - 그 말은 아까했어.

 

 - ......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똑바로, 앞을 겨냥한 총구의 끝에는, 남자의 이마를 넘어- 벽면에 커다랗게 그려져있는 후지산이 있다.

  

 남자는 그 날처럼, 눈을 내리깔고 있다.

 

 죽여버린다.

 죽여버리겠어.

 

 

 

 

 

 

 

 남자는, 그 날 처럼 눈을 내리깔고 있다. 오른손에 든 권총의 총구로 머리카락 한 올이 달라붙어있는 이마를 겨냥하며,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아니 어딘가 조금 무료해보일만큼 따분해보였던 그 얼굴은, 일순 히지카타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것 같았다. 양팔의 자유를 잃은 채로, 반항할 수 있을만큼 반항하고 난 후였기 때문에 히지카타는 이미, 다른 조직의 사람에게 잡힌 양팔을 빼낼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히지카타는 덜덜 떨리는 자신의 다리가 곧 꺾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꺾이고 싶지 않았다. 지겨워보이는 눈동자를 깜박이고 있는 상대조직의 우두머리의 앞에서, 분노하는 눈을 감추고 싶지 않았다.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벌써 눈앞의 남자를 백번 천번은 죽이고 찢어발겼을텐데. 그리고, 남자의 웃는 얼굴이 일순, 흩어진다고 생각할 무렵, 히지카타는 날카로운 것이 자신의 복부안에 잠시의 멈춤도 없이 깊게 들어와, 따끔함을 느끼기도 전에 빠져나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 또 어디선가 , 먼 곳에서 , 혹은 가까운 곳에서 , 누군가를 향해 , 타앙 - 

 

 

 

 

 - 어...

 

 피가 눈앞으로 튀어오르는 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영화속 주인공이 상대방의 칼을 맞고 쓰러지는 것처럼. 차가운 금속이 모든 것을 끊고 지나간 자리는 단지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듯한 열뿐, 아픔은 없었다. 이상했다. 양팔을 여전히 붙잡힌 채로, 무너진 히지카타는 어느샌가 눈앞에 나타난 바닥이, 조금 이상했다. 웃음이 난다는 것은 아마 이상한 것일 거다. 시큼한 피냄새가 목구멍을 역류하여 내부에서부터 퍼지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열은 히지카타를 폭파시킬 것처럼 점점 이상할만큼 심하게 퍼져서, 히지카타는 더 이상 사고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끊어진 테이프줄처럼, 같은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됐다.

 

 눈앞의, 남자가, 총을 쐈다.

 사카타 긴토키가, 총을 쐈어.

 

 왼손으로 나의 배를 칼로 찌르고, 오른손으로 빌어먹을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나의, 두목을 향해.

 

 

 

 

 

 

 

 

 

 

 - 어라..

 

 물방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긴토키는 고개를 갸웃, 했다. 이마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그 반동에 옆으로 미끄러져 뺨아래로 떨어졌다. 아까부터 쉴새없이 떨어지던 천장위에서의 물방울, 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물방울이 아닌 그 물방울은, 히지카타 토시로의 왼쪽 편 얼굴의 뺨을 아주 끝부분으로 흘러, 턱아래로 방울져 떨어지는, 눈물이었다.

 

 숨이 지친다. 공기가 더워서, 목구멍이 마르니까. 긴토키는 자신을 시작으로 물결을 이루어내는 선위로 계속 물살을 튕겨내던 손을 들어 얼굴을 닦아냈다. 축축하게 식은 얼굴이 닦이듯 물방울이 전부 쓸려나갔다. 길게 쏟아내는 숨이, 마치 누군가의 뒷목을 잡아채는 한숨처럼 이어졌다.

 

 - 우는구나. 

 

 - ......

 

 - -토시로군?

 

 - 죽였어. 

 

 - ......

 

 - 곤도씨를, 죽였어.

 

 자신의 이마에 겨누어진, 그 총끝이 가느다랗게 떨려, 명사수라도 저렇게 팔을 흔들면 아무리 이정도의 거리일지라도 한방에는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고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몸을 크게 움직여 뒤로 물러나, 긴토키는 몸을 완전히 틀어 히지카타를 바라보고 탕안쪽에서 다리를 접어 정자세로 앉았다. 물이 여전히 따뜻해, 데운 술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후지산이 그려진 벽면을 뒤로 한 채, 부드럽게 웃으며 남자는, 오른손을 들었다.

 

 - 맞아. 내가 죽였지.

 

 - ......

 

 - 총알 한 발로, 그 가슴을 꿰뚫었어.

 

 

 

 

 사실상의 곤도일파의 궤멸이다. 토시로군. 너희 일파가 다스리던 일대는 우리 요로즈야가 전부 집어삼키고, 너의 보스인 곤도 아사미의 시체는, 그대로 돌을 매달아 풍덩, 집어던졌지. 잔당들 처리가 가장 쉽고 그래서 지루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보스의 오른팔인 신센구미의 귀신을 우리가 잡아두었으니, 잔당들뿐만 아니라 너희조직에서 약간 권력이 있다는 간부들 처리도 아주, 쉬웠어.

 

 

 

 - 전부 다, 네가 죽은 듯이 기절한 채 우리쪽에서 치료를 받고있는 동안 일어난, 일이지.

 

 - ....

 

 - 토시로, 나는 하느님의 노고를 알 것 같았어.

 

 - ...우..

 

 어지럽다.

 그 일주일.  

 세상에 지옥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그 일주일이.

 

 

 

 

 

 

 

 

 떨리는 오른손의 근육을 팽팽하게 당기며, 히지카타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떨어지는 눈물속도보다 더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 웃는 얼굴을 똑바로 겨냥한 채, 한숨도 내뱉지 않고, 그저 너를 죽일 수 있다면. 배를 뚫린 무감각과 소중한 사람의 죽음, 피같은 악몽, 구타와 쏟아지는 밤, 그리고 일주일의 아침, 코끝이 매워지는 소독약의 향속에서, 히지카타는 떨어지는 눈물이 입술을 가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이름도 외치지 못했다.

 쏟아지는 핏덩이로 달려가는 것도, 무너지는 어깨를 안아주는 것도, 그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듣는 것도,

 

 정말로, 아무 것도.

 

 그리고 무표정하게 눈물을 쏟는 히지카타를 향해, 요로즈야의 패거리 중 하나는 검은색 양복을 막 크리닝 해왔는지 비닐을 벗겨내고 건네주었다. 링겔을 한 채 침대에 앉아 눈알만을 굴리고 있던 히지카타는, 시키는 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양복마이의 안쪽주머니에는 처음부터 작은 권총이 하나, 들어 있었다. 마이의 단추를 잠그자 달그락, 하면서 가슴에서 조금 움직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자신이 요로즈야 두목의 보디가드라는 것을 알린 남자는 딱딱한 태도로 히지카타의 비뚤어진 넥타이를 정리해주고, 다시 마이의 단추를 잠궈주었다. 그대로 차에 태워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복부의 상처에서 조금씩 피가 배어나와 흰 와이셔츠가 배언저리부터 분홍빛을 띠는 것도 상관치 않은 채, 히지카타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신의 고통과 조금씩 밀려오는 미열, 그리고 급정거하는 차 - 오늘 밤 두목이 전세를 냈다는 목욕탕 앞에 내리기를 강요하며, 남자는 히지카타의 굳은 어깨를 밀었다. 그리고는 목욕탕에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히지카타는 검은 구두를 신은 채로 그대로, 목욕탕에 들어갔다. 젖은 바닥에 구두가 미끌리고, 습한 공기에 양복이 무겁게 느껴지고, 더운 수증기에 코끝이 메마르고, 올바르게 꽈악 매진 넥타이가 목을 조이고, 그리고,

 

 은색 머리칼을 전부 쓸어넘긴 채, 수증기가 오르는 온탕안에서 양손으로 물장난을 하면서, 넓은 등의 날개죽지를 보였다 감췄다 하고 있는, 후지산 그림 아래의 사카타 긴토키는 -

 

 그렇게 무방비하게,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발자국소리는, 젖은 바닥에 먹히고. 사카타 긴토키는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히지카타 토시로를 향해, 뒷통수를 보이는 그대로, 간수를 얻는 방법과, 파르페의 주성분이라는 아무래도 좋은 정보를 가르쳐준다.

 

 

 

 

 

 

 

 당긴 방아쇠는 타앙- 이 아니라, 달칵, 하는 소리를 냈다. 탄창은 한 번 돌았지만,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총알이 장전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 ......

 

 - ......

 

 방아쇠를 당긴 히지카타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정도는. 마이 안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권총은 여섯발이 전부 장전되어있는 총보다 훨씬, 가볍다. 긴토키는 웃는 얼굴 그대로 히지카타를 바라보았고, 히지카타는 더 이상 울고있지는 않았지만, 뺨을 가른 눈물자국이 그대로 말라, 뺨에 선명하게 흔적이 남았다.

 

 - 죽인다.

 

 - 그 말은 세번째야,

 

 - 너를 죽이거나, 내가 죽거나. 두가지다.

 

 -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 토시로군.

 

 - 널 죽여버리겠다.

 

 - 그러지 말고.

 

 - 닥쳐.

 

 - 그러지 말고, 우리 조직에 들어와.

 

 - ...닥쳐.

 

 - 응? 토시로군.

 

 웃는 낯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언제나처럼 반쯤 구부린 눈썹아래, 전부 뜬 것같지 않은 눈을 가느다랗게 구기며, 양쪽으로 입술을 당기고 웃고 있는 저 얼굴을.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시선만으로 너를 죽일 수 있다면. 히지카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오른손에 힘을 주어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달칵, 탄창이 한바퀴 더 돌았다. 남자는 몸을 앞으로 빼내어 방금까지 등을 기대어 있던 곳에 이번에는 왼손을 올려 턱을 괴고 있다. 머리카락에서 미끄러지는 물길을 바라보며, 히지카타는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달칵, 또 한 번 의미없는 소리가 탕안에 울려퍼졌다. 수증기만이 그 압력에 흩어지듯 넘실거렸다.

 

 - 너도 알다시피 그 총의 탄환은 하나뿐이야.

 

 - ......

 

 - 앞으로 세발남았어. 그러니, 우리 조직에 들어와 토시로군.

 

 - ......

 

 그러니라니, 문법에 전혀 맞지않아. 천장의 물방울이 떨어져 총구와 긴토키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뒤를 쫓듯 또 한방울이 떨어졌다. 물방울이 바닥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히지카타는 또 한 번, 방아쇠를 당겨보았지만, 달칵이라는 소리가 또 히지카타의 심장에 내려앉았다. 긴토키의 웃음소리가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 응, 거봐. 그러니, 우리 조직으로 와라.

 

 - ......

 

 - 우리 조직에 들어와.

 

 - ..닥쳐.

 

 

 그리고 또, 한 번, 달칵 -

 총탄이 핑그르르, 돌았다.

 

 

 

 휴우, 길게 한숨을 내쉬며, 긴토키가 탕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 걸쳐두었던 수건을 들어 허리를 감싸며, 탕안에서 발을 빼내었다. 히지카타는 오른손에 들려있는, 권총을 바라보았다. 한 발이다. 한 발 남았어. 철벅, 하고 물에 젖은 오른발로 바닥을 디디자, 물이 튀는 소리가 났다.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바라보았다. 긴토키는 탕에서 전부 몸을 빼내더니 천천히 허리를 들어, 몸을 똑바로 폈다. 옆으로 넓게 펼쳐진 팔꿈치에서 물이 떨어졌다. 긴토키는 양손으로 은색의 머리칼을 동시에 쓸어넘겼다. 젖은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로 붙으면서, 쓸리는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조금씩, 히지카타에게로 다가갔다.

 

 - 응? 토시로.

 

 - 닥쳐.

 

 - 우리 조직으로 들어와라.

 

 - 닥쳐. - 시끄러, 닥쳐.

 

 피식 웃으며 오른손을 든 긴토키의 벗은 어깨가, 벗은 어깨위의 총상이, 총상 아래로 길게 이어진 검상이, 검상에서부터 주륵 미끄러져 긴토키의 배를 스치는 물방울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처럼 눈앞이, 답답해진다. 히지카타는 눈꺼풀을 움츠렸다.

 

 긴토키의 손이 히지카타의 앞머리칼에 살짝, 닿았다.

 젖은 오른손이 눅눅한 히지카타의 머리카락 끝을 잡아 위로 들어올려, 순간 놓는다. 팔랑, 하고 날리는 검은 머리칼이, 다시 시선위를 방해하는 장소로 돌아왔을 때, 히지카타는 남자의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을 본다.

 

 숨결이 닿을만큼, 떨어지는 물방울이 총구위로 안착할만큼, 가까워졌다.

 

 - 토시로.

 

 머릿속이 욱씬거린다. 마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탕을 울리는 것처럼, 머릿속에 계속 울려서.

 

 - ......

 

 

 

 자신을 향한 총구에 키스하면서, 긴토키는 눈을 감았다. 속눈썹위의 물방울이 미끄러졌다.

 

 

 

 

 - 히지카타 토시로. 내 것이 돼라.

 

 - .......

 

 

 

 

 

 

 머리가, 아프다.

 그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몸을 휘감는 이 열이, 너를 죽이는 불이 될 수 있다면.

 내 손에 들려있는 이 총이, 널 찌를 한자루 칼이었다면.

 

 널 죽여버리겠다.

 

 

 

 

 

 - 닥쳐.

 

 

 

 

 

 죽여버리겠어.

 

 

 

 

 

 

 

 총구가 입술에서 떨어져도, 차가운 감각이 입술끝에 남았다. 긴토키는 눈을 떴다. 눈앞의 히지카타 토시로는, 긴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도, 감추지 않는 분노에, 살기에, 긴토키는 웃었다. 널 살려둔 이유는 널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야. 널 치명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복부, 그것도 살짝 옆을 찔렀지. 기절할 정도로 널 패게 만든 것은 네가 기절해 제정신이 아닌 시간동안, 다른 기타 귀찮은 일들을 전부 이 기회에 정리할까 싶어서.                 

 

 아니야. 난 니가 내 조직에 굳이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지.

 내 것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거다.

 

 

 히지카타 토시로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쥐고 있는 총의 끝을 자신의 머리에 갖다대는 것을 보았을 때, 긴토키는 방금까지 키스하던 총부리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히지카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동그란 눈동자 안에 비치는 자신을, 그렇다면 아마 히지카타도 내 눈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겠지. 물고기의 비늘처럼 투명한 막이 생긴 것 같은 눈동자는, 아까 울어서 그런건가, 아니면 앞으로 조금 더 울고싶다는 뜻인건가. 긴토키는 웃었다. 히지카타는 자신이 든 총을 자신을 향해 겨냥하는 것도 모자라 좀 더 안으로 검은 머리칼을 헤집어, 머리통을 누른다. 마치 그렇게 하면, 사정거리가 훨씬 좁혀질거라는 생각이라도 하는 듯이. 더 이상의 사정거리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긴토키는 후, 하고 웃었다.

 

 그리고 아무 망설임없는 히지카타의 손가락이, 아주 쉽게 방아쇠를 당겼을 때에도 후후, 웃었다. 타앙,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피가 흐르는 일도 누군가의 머리가 터지는 일도, 없었다. 단지 타앙하는 큰 소리가 귀를 찢을 듯 탕안을 울려서 깜짝놀란 긴토키가 파하하, 웃고, 히지카타는 그자리에 굳어버렸다. 히지카타의 동그란 눈이 더욱 동그랗게 뜨여, 검은자가 작게 축소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타인의 눈의 검은자가 제대로 동그란 형태를 띄는 것은 거의 처음본다. 긴토키는 다시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눅눅해진 히지카타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길어서, 뺨에 아무렇게나 달라붙은 그의 머리칼을.

 

 

 

 

 - 자, 그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자.

 

 - ......

 

 - 히지카타 토시로. - 내 것이, 되라. 지금 당장, 어서 빨리.

 

 

 

 

 

 귀를 멍멍하게 하는 공포탄이 터진 충격으로, 머릿속이 일순 새하얗게 텅, 비어버렸고, 진심으로 죽음을 각오했던 심장이 그대로 터져버린 것만 같아서, 히지카타는 지금 꼭 죽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죽지못했고, 히지카타 토시로는 여전히 살아있다.

 

 오른손에 들려있던, 처음부터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탄환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던, 빈 권총이, 그대로 손가락에서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권총은 큰 소리를 내며 젖은 바닥을 슬라이딩해 어디론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히지카타는 그대로 무너져 젖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한꺼번에 쏟아져내린 중력이 그 어깨에 전부 쏟아지듯, 주저앉았다. 검은양복바지가 사정없이 젖어, 미끄러지듯 떨어진 머리카락위로, 마치 내리는 비처럼 물방울이 흩어졌다. 주저앉은 채 허리를 숙이고, 감추듯 거의 바닥에 닿은 얼굴아래로,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흩어졌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오른손 끝의 손가락이 붉게 질린 채, 바닥을 움켜쥐듯 긁어내렸다. 잡히는 건 물뿐이었고, 그나마도 갈라져 손가락 사이로 벗어났다. 깊게 바닥을 긁어내는 것처럼 손가락이 움직여, 힘줄이 튀어나온 오른손톱 끝으로 핏방울이 조금씩, 목욕탕 바닥의 물길속에 섞여들었다. 긴토키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오른손으로 히지카타의 오른손목을 잡았다. 움켜쥐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려서, 마치 뼈를 움켜쥐는 소리같았다. 아랫입술을 떨면서, 히지카타의 호흡이, 흔들렸다. 죽여줘. 다시 한 번 말해봐. 나른한 목소리위로, 지친 히지카타의 목소리가 겹쳤다. 죽여줘. 으으응, 아니야. 듣고싶은 말은 그게 아니야. 자, 다시 한 번. 긴토키의 재촉에, 히지카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죽여줘.

 

 너를 죽이거나, 내가 죽거나, 인거냐. 긴토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그게 아냐, 아니라고, 토시로. 듣고싶은 건 그게 아냐. 주저앉아 곡선으로 구부러진 허리를 바라보며,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앞에 한쪽 무뤂을 꿇고 앉았다. 쥐고 있는 손을 놓아주지 않고, 대신에 숙인 턱을 잡아 위로 올렸다. 쏟아진 머리카락이 눅눅하게 달라붙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 창백한 히지카타의 얼굴은 머리카락으로 엉망이었다. 피식, 웃으며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얼굴을 가르며 떨어지는 물방울을 핥았다. 목욕탕의 물방울인지, 히지카타의 눈물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히지카타의 속눈썹은 엉망으로 젖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있었다. 웃는 긴토키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히지카타의 아랫입술로 떨어지고, 긴토키는 그대로 히지카타에게 키스했다. 아주, 짧은 키스. 입술이 겨우 스치는 정도의 키스였다. 자, 다시 한 번 말해봐. 히지카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긴토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턱을 잡고있던 왼손의 손가락을 뻗어, 히지카타의 입술사이로 밀어넣었다. 잡고있던 히지카타의 오른쪽 손목의 맥박이 두근, 뛰었다. 좀 더 세게, 으스러뜨릴 듯 손목을 부여잡으며, 그 입술사이로 밀어넣은 손가락을 세워, 혀를 잡아 꾸욱 누르고, 입천장을 간지럽혔다.

 

 토시로.

 

 ......

 

 붉게, 번지는 눈동자의 흰자위위를 혀로 할짝이며, 긴토키는 손가락으로 입을 벌렸다. 함께 히지카타의 혀가 밖으로 나와, 자신의 입술을 훑었다. 혀아래로 떨어지는 타액을 손가락으로 누르다가 핥고,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잡고있던 손목을 놓아주었다. 대신에 그 오른손으로, 히지카타의 마이안쪽을 더듬었다. 바지의 버클이 금방 닿아서, 긴토키는 젖고 식은 손가락을 그안으로 밀어넣어, 상처에 피가 배어 분홍빛이 돌고있는 와이셔츠를 집어들었다. 맨살위에 닿은 손가락이 차가워, 떨리는 어깨를 바라보며, 긴토키는 다시 한 번 그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죽이지 않을거야.

 

 ....

 

 안죽여.

 

 ......

 

 안죽여줄거야. 긴토키의 오른손이, 붕대를 지나 위로 올라가면서 단추가 잠긴 와이셔츠를 같이 잡아당겼다. 그 손끝에 유두가 스치자 히지카타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생긋 웃는 긴토키의 웃음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의 머리칼에서 흐르던 물방울이 눈가까이에 떨어져, 히지카타는 눈을 깜박였다. 유두를 잡고 비트는 손끝이 젖어있어서, 히지카타는 바들바들 떨었다.

 

 간수말이야. 고여있는 모습, 보여줄게. 나 다섯개 사놨거든, 소금포대.

 

 ...읏...

 

 

 

 

 

 

 혀를 당기던 손가락을 빼내고, 그 위에 키스하기 전에, 긴토키는 그렇게 말했다. 긴, 키스. 이번에는 숨이 멎을만큼 긴, 키스였다.

 

 

 

 

 

 

 

 - done

 

+ 소재가 아깝네 더 잘 쓸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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