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카타 토시로가 신센구미 말단 대원인 세계

 

(4)

 

그뒤로도 또 며칠, 히지카타가 생각하기에는 큰 별일이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갔어. 히지카타는 늘 그랬던 것처럼 1번대 대장을 따라 잡도둑을 잡으러 나가거나, 하라다와 함께 순찰을 돌거나, 어딘가에서 일어난 홍수로 무너진 제방을 마을사람을 도와 다시 쌓거나 하였지. 마지막 일은 정말로 큰일이었어. 히지카타는 단순 육체노동을 안해본지 굉장히 오래되었었거든. 한시간 넘게 삽질을 하자 온갖 근육이 다 아파왔고 히지카타는 삽에 기대어 간신히 담배한대를 피워대며 숨을 돌렸고, 그럴때면 일반대원들 사이에 낀 채 각자 삽을 들고 자기들도 막노동을 마다않고 일을 하는 간부들이 눈에 띠곤 했지. 대장, 오키타 소고. 부장, 야마자키 사가루. ...그리고 국장인 사카타 긴토키. 히지카타는 쓰게 웃었어. 저들이 왜 저렇게 착해졌을까. 이세계의 우물엔 무언가 이상한 약이 타있는 것이 분명하다... 저들이 저렇게 착해지다니. 성실해지고. 한동안 뒤로 시커먼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저들은 정말 소년점프의 주인공에 걸맞게(?!) 반짝거렸더랬지.

긴토키는 또 시시때때로, 히지카타에게 술마시러 가자고 권유했어.
히지카타는 굉장히 어색하게 "아 저기..."라고 말해버렸지.
슬슬 그의 권유를 한번쯤은 받아들여도 될만하지 않을까? 란 기분이 싹틀기도 했지만, 그래도 히지카타는 여전히 긴토키가 어색했어. 사카타 국장님도 어색하지만, 그와 미츠바가 함께 나란히 선 채 크게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들었던 그 이상한 기분을 아직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거든.
그래서 히지카타는 또 피했어.
긴토키는 굉장히 씁쓸한 얼굴로 히지카타를 보고 있었고,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그 표정에서도 또한 묘한 기분을 느꼈지.

평대원 히지카타 토시로에게도 완전히 익숙해져버리고... 히지카타는 또 돌아온 비번날, 혼자 강가에 앉아 담배를 피웠어. 하루종일. 신센구미 대원 히지카타 토시로에 익숙해지고, 이 평대원 제복에도 익숙해지고 무엇이든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가슴에는 구멍이 뻥 뚫려있는 것 같았지. 그 이유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느낌들때문에. 히지카타는 머리를 세차게 저었어. 아니야, 다른 이유때문이 아니야. 콘도씨때문이야. 콘도씨가 없어서그래. 히지카타는 다음 비번때부턴 이런 쓸데없는 농땡이는 그만피우고 이세계에서 콘도씨가 대체 어디로 갔는지를 찾아보기로 했지. 그렇게 결심하고나니 할일이 정확히 보이는 것 같고, 마음은 훨씬 편했어. 히지카타는 신센구미 처소로 돌아갔지.

돌아가는 길에, 히지카타는 길위에서 미츠바를 보았어. 미츠바는 어둠속에서 히지카타를 발견하고선 반가운 듯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덮고있던 천을 벗었지.

"히지카타님."
"....!"

히지카타는 미츠바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어. 심장이 뛰고 긴장감이 몰려와 히지카타는 꼴깍 침을 삼켰지. 설마 미츠바가 나같은 말단 대원의 이름을 알고있을줄이야. "...미츠바님." 히지카타도 꾸벅 미츠바에게 머리인사를 했어. 미츠바는 생긋 웃으며 히지카타를 올려다보았지.

"오늘 하루종일 안보이신다했더니. 어디 먼데로 나가셨던가봐요?"
"아.. 저기.. 비번이라.. 그냥 바람 좀 쐬고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이상하게 꼭 그래요. 제가 만나러 갈 때마다 항상 자리를 비우시더라구요. 저 살짝 저때문인가 싶기도 했어요."
"아니 그런... 그런 게 아니고, 저는 미츠바님이 언제 신센구미에 들르시는지도 잘 모르는데요."
"그렇죠. 후후. 제가 오해를 참 제위주로 했네요."

"이제 이렇게 만났으니 괜찮아요." "......" 미츠바가 왜 나에게 이런 식의 말을 하지?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대원인 히지카타 토시로에게. 우린... 우리둘 사이에 있었던 모든.. 것들은... 이제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인데. 당신 기억속에 있던 내자리는 이제 야마자키가... 아니 어쩌면 사카타 긴토키... 그가 들어있을테고. 히지카타는 혼란스러웠어. 자신이 어떤 태도를 해야할 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우물쭈물 거렸지. 미츠바는 그런 히지카타의 어설픈 태도를 보면서, 결국 풋하고 웃고 말았어.

"제가 또 당신을 당황하게 하고 있군요 . 한 달 전의 거동이 수상해졌던 당신과 똑같아."
"...?"

한달전? 한달전에 우리둘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 히지카타는 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지.

"...그래, 당신은 한달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군요. 날 대하는 태도가... 서먹서먹하고, 거리를 느끼게 하고. 철저히 '아가씨'로써 나를 대하는 느낌..."

"어째설까요. 내가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당신은 조금도 웃어주질 않고." 미츠바는 그렇게 말하며 예쁘게 웃었지. 그 웃음은 아주 아름다웠지만, 굉장히 노력해서 만들어낸 느낌도 들었어.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였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 미츠바... 당신, 지금 무슨 소릴하는거야? 어째서 나에게... 나를 상대로 그런 말... 무슨... 무슨 오해를 할 것 같은. 마치 이세계의 당신이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그런 말을. 히지카타는 저도모르게 더욱 입매를 굳히며 머리를 쓸어올렸어. 당황이 심해지면 히지카타는 표정이 없어지는 사람이었지.

긴토키가 당신 옆에 있는 게 아니었어?
당신의 소중한 사람의 자리에 그자식이.
....사카타 긴토키가...

"사카타, ...사카타 국장님과의 약혼날짜를 잡는 날을 기다리고 있으신게...?"
"..!"

순간 미츠바의 눈동자속에서 불이 튀었지. 그녀는 곧 굉장히 화가 난 사람의 얼굴을 하고 히지카타에게 소리쳤어. "당신..!! 또 그런 말로 날 거절하다니...!"

"레파토리가 한달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다니 이 얼마나 성의없는... 대체 그렇게까지 무신경할수가 있나요 사람이?"
"어, 아니 저기..."
"긴토키와는 소꿉친구로, 그저 가족일뿐이라고 내가 얼마나... 내가 그런 이야기를 또다시 당신에게 되풀이해서... ...히지카타씨, 당신 정말 나한테 너무 심한처사..."

크게 화를 내는 것 같다가도, 미츠바는 도리어 분노보다 슬픔이 더 앞선듯이 보였어. 미츠바는 곧 그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었지. 흡, 하고 히지카타는 숨을 들이켰어. 미츠바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채 히지카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히지카타를 지나쳐 달려나갔지. 히지카타는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

 

 

(5)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잠은 오더군. 히지카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안으며 아침에 일어났어. 아침햇살이 너무 좋아 괜히 머리가 더 아팠지. 습관처럼 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히지카타는 영 개운치가 못했어. 미츠바를 울리고 말았으니 더욱 기분이 별로였지. 히지카타는 눈을 뜨자마자, 지난밤 미츠바가 나눴던 대화들을 떠올렸어. 히지카타는 바보가 아니었지, 여자관계에 서툰 사람도 아니었어. 그건 전부 미츠바의 자신을 향한 고백의 조각들임에 분명했지. 히지카타는 머리를 긁적였어. 미츠바가 나를 좋아해... 가슴이 뛰었지. 하지만 히지카타는 본의아니게 그녀를 거절한 게 되어버린 거야, 그것도 (미츠바의 말에 의하면) 한달전에도 똑같은 말로 그녀를 거절했었던 거고. 히지카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어. 미츠바가 나를 좋아해. 이세계의 그녀는 어떻게 하다 히지카타 토시로를 좋아하게 된걸까. ...나는 그녀가 좋아하던 그 히지카타 토시로인 게 맞는걸까. 대체 어떻게 해야지만 좋은걸까.

히지카타의 방-신센구미내 기숙사라 8인용인-문은 또 아무 예고도 없이 열렸지. 히지카타는 또 야마자키인건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이번에는 지각이 아니었지. 주변에 다른 대원들은 아직도 다 자고 있었거든. 하지만 뜻밖에도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평상복을 입은 오키타였고, 오키타는 히지카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지. 히지카타는 고개를 숙였어. "안녕히주무셨습니까. 부장님." "쉬이," 오키타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고는 조용히 웃었지. 그리고 히지카타에게 나오란 손짓을 했어. 히지카타는 대장의 명령에 따라 조용히 방밖으로 나왔어.

"일찍 일어났군. 히지카타."
"아 저도 모르게 눈이 떠져서..."
"저도모르게, 눈이 떠졌다. 확실히 그 말도 맞겠지만, 난 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이유가 설사 없어도 일부러라도 좀 만들어줬으면 싶은데." 오키타가 무슨 말을 하는걸까. 히지카타는 얼굴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동요했지. 오키타는 다소 화가 난 것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 "히지카타, 그정도로 난봉꾼이야? 어젯밤 울린 여인의 얼굴도 벌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키타가 그렇게 비꼬듯 말을하자, 히지카타는 그제야 오키타의 용건이 무엇인지 알 듯한 기분이 들었어. 슬픈 얼굴로 돌아간 미츠바, 오키타는 우연히 신센구미 처소가 아닌 미츠바가 머무는 집에 있었을 것이고, ...미츠바의 얼굴을 보고 만 거겠지. 그리고 그녀에게 내가 울렸다는 소리라도 들은 것인가. 히지카타는 괜히 웃음이 났어. 눈앞의 오키타 소고는 히지카타가 알고있던 오키타와는 좀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그래도 자신의 누님을 끔찍히 생각하는 그 마음만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지. 히지카타는 그것을 알게된 것이 어쩔수도 없을만큼 기뻤던 거야.

히지카타가 피식하고 웃자 오키타의 눈썹이 꿈틀대었고, 그의 얼굴이 순간 싸늘하게 변했지. 히지카타는 가만히 기다렸어. 혹시 오키타가 멱살을 잡을까? 얼굴에 주먹질을 할까? 히지카타는 늘 오키타 앞에서 검을 휘두르며 할복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자신을 떠올리며 오키타가 내지르는 주먹질에 자기가 가만히 맞아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어. 자신이 무슨짓을 할지는 오키타에게 무슨 일이 당하고 나서야 알게 되겠지. 히지카타는 담담하게 오키타를 바라보았지.

오키타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여는 그 순간에, 그러나 히지카타가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이 나타났고, 결국 히지카타는 아무 액션도 취하지 못했어. 오키타 뒤에서 나타난 사카타 긴토키는 천천히 오키타를 달래듯 그의 어깨를 두드렸지. 오키타는 슬쩍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어. "자자, 소고. 진정해."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상냥한 목소리와 말투로 오키타를 달랬지. "신센구미내의 사적인 싸움은 내가 용납못해. 소고, 나머지는 내가 말할테니까 나한테 맡겨두지 않겠어?" 긴토키는 그렇게 말하고 히지카타에게 눈으로 지시를 했지. 뒤따라 오라고. 히지카타는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어. 긴토키는 신센구미 제복을 입고는 있었지만 자켓이 없었고, 머플러도 없었지. 아마 옷을 입는 도중에 오키타와 히지카타의 말소리를 듣고 빠르게 찾아온 것이 분명한데... 히지카타는 또 괜시리 웃음이 났어. 아직 새벽이슬이 마르기도 전인데,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사카타 긴토키라니. 이렇게 부지런한 사카타 긴토키라니. 오키타를 소고라고 부르며 상냥하게 위로하고, 자기를 눈짓으로 뒤따라오게 만드는 사카타 긴토키라니. 히지카타는 사카타 국장님 뒤를 따르며 오키타에게 목례를 하고, 다시 사카타 긴토키의 등을 바라보았어.

아아 그등은
아무리 봐도
히지카타가 알고지냈던 그사람의 등은 아니었지.

그건 사카타 긴토키의 등이 아니었어.

하지만 눈앞의 긴토키가 역시 그 긴토키인거겠지... 히지카타는 뒤를 바라보았고 약간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는 오키타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다시 긴토키의 등을 바라보았어. 히지카타는 오른손을 희미하게 떨었지. 왠지 도망치고 싶은 기운과 필사적으로 싸우면서, 히지카타는 간신히 가슴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짓눌렀어.

깨닫고싶지 않았는데.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결국 깨닫고 말았어. 히지카타는. 자기가 사카타 긴토키를 그동안 어떻게 생각해왔었는지 말이야.



국장의 방에 도착하고 긴토키가 앉는 것을 지켜보면서, 히지카타는 그를 따라 앉지 않았지.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올려다보며 흐릿하게 웃었어. "왜 앉지않지? 토시로." 그만해. 토시로라고 부르지 마. 네까짓게 부를 수 있을만한 이름이 아니란 말이야. 히지카타는 속으로 흐느꼈어. "...이게 편합니다." 히지카타는 그러나 덤덤하게 그렇게 말했지. 긴토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어. "...아~ 토시로, 너 정말 이상해졌어."

"도리어 서로 거의 모르고지냈던 그때가 난 오히려 더 좋았어. 국정에 한번씩 나갈때마다 우연히 스쳐지났던 그때, 넌 오히려 지금보다 더 스스럼없이 나랑 놀아주곤 했는데. 요새 얼마나 데면데면하게 구는 지 알아? 너의 그 태도에 내가 또 얼마나 상처받는지도."

내가 어떻게 알아 그때의 그건 내가 아닌데. 젠장. 히지카타는 필사적으로 표정관리를 했지. "그때와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당신은 지금 내 최고상사인데 허물없게 대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목에 그렇게 힘넣고 딱딱하게 구는 타입 아니었잖아. 토시로."
"그런 타입맞습니다. 저."
"웃기고 있네. ...미츠바때문이지?"
"......"

히지카타는 입을 다물었어.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말갛게 쳐다보았지. 그러다가 곧 후 하고 긴 한숨을 내쉬면서, 지친 듯 눈을 내리깔고 머리칼을 쓸어올리고서는. "것 봐."

"어제 미츠바가 찾아와서 또 나때문에 거절당했다면서 울더라고... 소고도 완전 화가 나서 난리도 아니었어."
"......"
"대체, 나와 미츠바는 결코 서로를 결혼상대로 생각하고 있질않은데, 왜 부정을 해도해도 약혼소문이 자꾸 도는건지... 애초에 우리는 서로가 이성으로 느껴지지도 않거니와, 아 우리같이 사이좋은 오누이도 달리 없을거라고 내가 분명히 토시로에게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런데 또 여자를 찰 핑계로 날 갖다대면 어떡해."
"......"
"거기다, 응 우리 미츠바가 얼마나 이쁜데? 대체 그렇게 예쁜 애가 또 어딨다고 그 앨 차? 찰 데가 어딨다고? 토시로, 당신 워낙 미남이고 잘나가고, 나도 알지만 미츠바가 그렇게 뒤떨어지는 애는 또 아니잖아? 저기, 다시 한 번 생각해봐주면 어때? 우리 미츠바에 대해서."

그때, 히지카타는
정말이지 긴토키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어.
왜 그렇게도 긴토키의 말을 듣고싶지가 않았을까. 이렇게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게, 이상하게도 마음이 술렁이고 꼭
울 것만 같고.

히지카타는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어. 닥쳐. 긴토키. 네가 말 안해도 알아. 미츠바가 얼마나 예쁜 사람인지 나도 다 안다고. 그 사람만큼 예쁜 사람이 달리 없다는 것도, 그사람만큼 상냥한 사람도 아름다운 사람도, 훌륭한 사람도, 소중한 사람도, 달리 없다는 것도. 나도 다 아는데.

하지만 히지카타는, 더 이상 걷잡을 수가 없어서, 긴토키의 입을 틀어막고 싶어서
그의 입에서 어서 미츠바와 사귀어보라는 말을 더 이상 듣고싶지 않아서

결국 히지카타는 생각도 하기전에 먼저, 말을 내뱉어버리고야 말았어.


"사카타 부장님. 저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다."
"...응?"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거절한 겁니다. ...미츠바님을요."


그래서, 결국, 히지카타는, 생각도 하기전에 먼저, 말을 내뱉어버리고야 말았지.
결코 깨닫지 않으려했던 자신의 본심을, 결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기자신에게조차도 필사적으로 거짓말하려 노력했던, 자신의 본심을.




- 아 드디어 긴히지인가..!! 히지카타 짝사랑 뙇!

 

 

 

 

 

(6)

 


결국 말했다. 그리고 히지카타는 더 이상 말하지않고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어. 그러다가 긴토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히지카타는 긴토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버렸지. 젠장. 뭐 이런 게 다 있지. 히지카타는 자기자신을 참을 수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며 신센구미 처소를 박차고 나왔어. 뭐 이런 게 다 있어... 히지카타 토시로, 너 어떡하다 이렇게 됐냐. 미츠바가 있는데, 내 모든 후회와 그리움을 뭉쳐논 것 같은 사람이. 그런데 그 사람의 사랑을, 나는 결국 안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에. 사카타 긴토키. 이런 빌어먹을.

사카타 긴토키, 나는 너를 좋아하게 돼버렸어.

그리고 그건 다 니탓이야. 망할. 다 니탓이라구. 그래서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멋대로 끼어들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 말도 안 되는 남탓을 하면서, 히지카타는 무작정 가부키쵸를 달렸지. 이 너무나 익숙한 거리를, 그러나 이제 그 어떤 곳도 익숙하지 않은 모든 곳을. 정신없이 달려대고 있으려니, 히지카타는 자연스럽게 해결사사무실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어. 그러고보니 이곳으로 넘어와서, 이곳은 한 번도 와 본적이 없었는데. 왠지 그자리에 해결사사무실이 없을 것 같으면, 히지카타는 너무나 쇼크를 받을 것 같았거든. 하지만 해결사사무실은 마찬가지로 2층에 존재했어. 히지카타는 숨을 몰아쉬었어. 저곳에 사카타 긴토키는 이제 없을텐데, 그럼 저곳에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지? 그 어린애 두 명이서 해결사 사무실을 해나가고 있을까...?

정신을 차리고보니, 히지카타는 어느새 이층에 올라가 있었고, 히지카타의 오른손은 사무실의 부저를 누르고 있었지. 히지카타는 가슴이 뛰었어. 문이 천천히 열렸고, 그 문을 연 사람이 다름아닌 콘도 이사오라는 것을 보았을 때, 히지카타는 정말로 가슴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지.

"어라...? 경찰나리 아니쇼? 우리 누추한 해결사집에 웬일로?" (히지카타의 입고있는 옷을 보고 알았다.)
"...콘도씨..."

히지카타의 감격어린 목소리에 콘도가 깜짝놀라 "어라? 우리 어디서 만난적 있었던가?"하며 의아해했고 히지카타는 앞뒤 가리지않고 콘도의 목을 끌어안았어. 히지카타는 곤도가 참 반가웠고, 그를 못보는 며칠동안 얼마나 그를 그리워했는지를 깨달았지. 이 히지카타 토시로에게만이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그는 정말 히지카타의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었고.



"그거 놀랍네요." 히지카타의 그동안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있던 콘도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말했어. 히지카타는 피식하고 웃으며 훌쩍댔지. 왠지 그동안 숨겨왔던 설움이 ㅠ0 밀려와서 히지카타는 코끝이 새빨개져선 연신 코를 풀어댔어. 해결사 콘도 이사오는 히지카타가 알던 그대로의 콘도씨라서, 히지카타의 말을 거의 그대로 믿는 듯 했고 그 말들을 미친놈 취급않고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히지카타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어. "그러니까 타임슬립... 평행이론? 패러럴세계? 뭐 그런거죠? 큰일났네. 돌아가는 방법은 압니까?" 히지카타는 피식하고 웃었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데 돌아가는 방법은 무슨..."

"하지만 이곳에 있는 당신의 지인들은, 진짜 당신의 지인들이 아닌거잖아요?"
"거의 같아요. 크게 틀리지않아요. 모든 게 다 흡사해."
"거의 같고, 크게 틀리지 않고, 모든 게 다 흡사할 뿐 진짜는 아니잖아요. 당신에겐."
"...그건 그렇지만."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죠. 우리."

"난 해결사이고 일은 가리지 않고 다 받으니까." 히지카타는 또 훌쩍이며 웃었어. "콘도씨가 감당못할정도의 레벨이라니까. 당신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날 어떻게 돌려보내."

"난 괜찮아.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 단지.. 조금 마음이 흔들렸어. 그걸 참을 수가 없어서 폭주했고...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 나니 진정이 됐어."
"히지카타씨."
"앞으로도 종종 만나러 와도 될까요? 당신이 친구로 대해주면 기쁠거야. 기왕 다음부턴 토시라고 불러줘요. 반말이면 더 좋고."

그렇게 말하고 히지카타는 다시 정신을 추스렸지. 멋대로 위치를 벗어나다니 신센구미 대원으로써 할 짓이 아니야... 히지카타는 그렇게 말하며 또 씨익 웃었어. 콘도는 히지카타의 그 웃음이 참 안쓰러웠지. 콘도는 히지카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어.

"하지만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해야 해. 토시."

콘도는 금세 히지카타의 말을 받아주었어. 히지카타는 콘도를 보며 웃었지. "응."

"말을 하지않고 품고있으면 아무것도 안 돼. 아파 쓰러지는 데에도 아무도 이해를 못해줘, 왜 아픈지 평소에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건 본인탓이기도 한 거야. 당신은 그걸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 걱정돼."
"콘도씨."
"누군가에게 할 말이 있다면 그 말을 꼭 해야해요. 누군가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건, 그 누군가에게도 그 말을 들을필요가 있다는 거나 마찬거지인거예요."

콘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그러나 평소처럼 그냥 되는대로 아무말이나 하는 듯한.. 하여간 그 위로가 되는 말에 히지카타는 뺨을 붉히며 눈을 잠시 감았어. 콘도는 눈을 감고있는 히지카타의 머리를 아프지않게 쓰다듬어주었지. 히지카타는 웃으며 기쁘게 콘도의 해결사 사무실을 나섰어.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지. 계단을 내려올 쯔음엔 웃음이 나오기까지 해서, 해결사옷을 입고있는 콘도씨 모습이 웃겨서. 어쩜 저렇게 안어울릴까, 하얀 기모노가. 그건 그녀석이 참 잘어울렸지. 하지만 뭐하러 그런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다닐까, 늘 의아해했었는데. 대체 그 은발에 그 흰기모노를 고집하는 이유가 뭐가 있어.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에게 잘 어울렸다. 그 기모노가.

신센구미의 제복보다 훨씬 더.


히지카타는 해결사 사무실을 내려오고 길을 가는데, 깜짝놀랐어. 인파속에서 사카타 긴토키를 보았기 때문이었어. 그는 달려온 듯 땀투성이였고 다급해보였는데,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찾고있었지. 그러다가 히지카타를 발견하자 너무나 기쁜듯이 눈을 반짝이며 "토시로!"라고 외치고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어. 히지카타는 저도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어. 시끄러, 이름으로 부르지 마. 네가 멋대로 부를만한 이름이 아니란 말이야. 또 그런식으로 생각하면서, 히지카타는 사카타 긴토키를 바라보았어. 그는 사카타 긴토키였지만, 히지카타가 알고있는 사카타 긴토키가 아니었지. ...히지카타는 코끝이 찌리릿아려왔어. 아까 콘도가 자기에게 해주었던 말들이 전부 다시 떠올랐지. 긴토키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자기에게로 손을 뻗고 있었어. 왜 여기있어? 날 찾아다닌건가? 내가 그렇게 멋대로 방을 뛰쳐나와서 당황한거야? 하지만 넌 사카타 긴토키가 아니잖아.

나의 사카타 긴토키가 아니야.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손을 뿌리치고 소리쳤어.

"내가 할 말이 있는 사카타 긴토키는 네가 아니라고!"

눈을 꽈악 감고 그렇게 소리쳤지.
순간, 히지카타는 엄청난 어지러움을 느꼈어. 꼭 땅이 아래로 꺼져 자기를 발끝에서부터 삼키는 것 같은 엄청난 중력이 머리위에서부터 느껴졌지.
그리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무릎이 감당치 못하는 엄청난 어지러움.

거기에서 히지카타의 의식이 끊겼어.




"아, 일어나셨습니까. 부장님." 히지카타는 그리고 눈을 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이마에서 차가운 물수건이 떨어졌어. "아아, 아직 열이 안떨어졌는데. 의사선생님이 심한 독감이라고 푹쉬라고 하셨어요. 더 누워있으세요 부장님." 야마자키가 필사적으로 그렇게 말하며 히지카타의 옆에 와 무릎을 꿇었지.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이며 야마자키를 바라보았어. "야마.. 자키?" 그리고 갑자기 머리가 핑도는데, 온몸이 뜨겁고 콧속에 열이차올라 호흡하기가 힘들어졌지. "네, 부장님. 사가루입니다."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였어.

"히지카타씨가 여름감기라니 진짜 드문일이네요. 컨디션이 이렇게 좋지못한 히지카타씨라니, 드디어 죽을때가 된건가?" "소고 그런 말 함부로 하지말랬잖아!" "와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히지카타는 문밖에서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콘도와 오키타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곧 머리가 빙글빙글 돔을 느끼면서 다시 제자리에 누웠어. 눈을 감아도 여전히 세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어. "토시 열은 좀 어때? 뭣하면 의사선생님 한 번 더 불러올까?" "슬슬 괜찮을 거 같은데요. 하여튼 부장님 더 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우린 이쯤에서 나가도록 하죠." "그래요 몸조리 잘해요 히지카타씨. 몸조리 잘하고 내 칼에 죽어요 알았죠?"

히지카타는 피식하고 웃었어. 히지카타의 웃음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지.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어. 히지카타는 하여간 계속 웃음이 나는 걸 멈출 수가 없었지... 아아,

아아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히지카타는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들었어. 너무나 유쾌한 기분속에서,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기분은 너무나 좋았고, 잠이 들면 엄청나게 좋은 꿈을 꿀 것 같았지. 히지카타는 가슴이 쿵쾅쿵쾅거렸어.





"여~ 귀신부장나리~ 왠지 오랜만이네."

순찰을 돌다 긴토키와 만난 히지카타. 히지카타는 왠지 움찔 어깨를 떨며 뒷걸음질을 쳤지.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수상한 거동에 '?'란 표정으로 히지카타를 쳐다보았어. 히지카타는 움찔움찔하며 땀을 삐질 흘렸지. "어.. 여름감기에 걸렸어서..."

"헐. 진짜?"
"그래, 아- 진짜 큰일이었어. 제법 지독하게 걸려버려서. 넌 좋겠다. 바보라 감기도 안걸릴테고,"
"뭐래. 개도 안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려놓고 뭘 잘났다는듯이 말하는건지. 순찰이고 나발이고 걍 집에 돌아가서 얌전이 없는 체력비축이나 하시지 그러세요?"
"...응. 알았다. 그럼 돌아갈게."
"그래 잘생각했다 그럼, ....어?"

그리고 히지카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긴토키에게서 몸을 돌리고는 어색하게 걸어갔어. 긴토키는 순간 당황했지. 평소처럼 시비거는 말에 똑같이 시비거는 말을 던졌는데 왜이렇게 평소와는 반응이 다른거냐 히지카타 토시로????;;; 어 신종수법인가???? 신종수법이야??//;;;; 히지카는 히지카타대로, 마음을 인정하고 나서 긴토키를 처음 만나는 거라 일단은 평소처럼 시비를 걸어보려고 했는데, 말을 길게 섞으면 섞을수록 가슴이 쿵쾅거려서 얼굴이 새빨개지고 거동이 수상해져서 더는 긴토키랑 말을 못하겠어서 걍 잽싸게 외면해버리고 말았던 거고... 하여간 히지카타는 서둘러 긴토키에게서 일단 멀어져야겠단 생각에 걸음을 빨리하며 나아갔지. 그리고 그런 히지카타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순간 긴토키는 저도모르게 히지카타를 잡아버리고 말았어.

"야? 어디가!?"
"어어, 뭐?"
"왜 평소랑 반응이 달라? 내가 꼭 나쁜놈이 된 거 같잖아! 내가 널 허약한 놈 취급을 요래조래 비꼬면서 했으면 너도 이래저래 화내면서 나한테 발끈하고 당뇨병걸린놈이 누구보고 비실이래? 이런식으로 쏘아붙여야지 안그래? ...어 야, 너 왜 얼굴이 빨개?"
"......"
"야 너... 어;;;; 진짜 혹시 아직 다 안나았냐?;;"

"...됐고, 놔라." 히지카타는 어깨를 붙잡은 긴토키의 손을 뿌리치고 빠른걸음으로 인파속으로 사라졌어. "어... 야;;;;;;" 긴토키만 길한복판에 남아 황망하게 히지카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지. 달려나가면서 히지카타는 저쪽세계의 콘도씨가 해주었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고 있었는데... 아 대체 뭘 어떻게 말하라고;; 저자식한테;;;;; 히지카타는 새빨개진 얼굴로 무작정 달리기만 했어. 뭐 어쩌라고. 뭘 어떻게 말하라고. 아 나보고 뭐 어쩌라고!!! 기껏 원래세계로 돌아왔는데, 왜 히지카타는 또 다시 다른세계로 가버리고 싶어지는 건지.

'내 사카타 긴토키'라니,
이세계라고 그런 게 있을리가 없잖아!

"으아아악~~!!!! 짜증나아아아아아~~!!!!" 히지카타는 달려나가면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또 치고... 하여간 현실도피를 반복했지.





- 끝 ㅠ0 아 너무 길어져서 끝에는 대충함... ...아니 난 누누이 말하지만 걍 신센구미 평대원복장한 히지카타가 보고싶었을 뿐 ㅠ0 하여간 히지카타의 짝사랑은 다음에 이어주는걸로 ㅠㅠㅠ 흑흑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