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텐구로 어느 요괴잔칫날 있었던 이야기 

 

1

 

구미긴과 텐구히지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양 요괴가족들 사이에서 금이야옥이야 자란 귀한 아이들로 컸어. 요괴집단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건 드문일이라 양 요괴가족들은 마치 금과 은을 한꺼번에 소유한 것처럼 기뻐했고 같은 시기에 태어난 두 아이를 매년 서로에게 보여주며 기쁨을 두배로 늘리기 위해 원래는 없었던 기념일같은 걸 만들기에 이르렀지. 원래 양 요괴가족들 사이에는 이렇다할 교류도 딱히 없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아이가 두 가족의 사이를 화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할 수 있겠네. 가을단풍이 떨어지는 어느시기의 한날을 매년 재회하는 날로삼아 양요괴가족들은 그 날 단풍구경을 하면서 아이를 축복하는 기념잔치를 벌렸지. 그건 구미긴과 텐구히지가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0살 때 처음 시작해 그들이 50살이 넘어가는 시점까지 일년도 빠지지않고 꾸준히 개최되었어. 둘은 어릴 때부터 성질이 비슷하게 사납고 필연적으로 앙숙이 되었지. 눈을 먼저 뜬 건 아기 구미긴쪽이었지만, 먼저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난 건 텐구히지 쪽이었어. 구미긴이 아직 꼬리가 네 개밖에 없었을 때에 텐구히지는 숲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의 꼭대기까지 날아올라갔지. 그때의 의기양양한 텐구히지의 표정에 구미긴이 너무나 빡쳤던 건 당연한 거였고. 그뒤 이를 간 구미긴은 다음해에 텐구히지는 부릴 수 없는 요술을 부리는데에 성공했고 연못을 반으로 가른 구미긴의 파워에 텐구히지는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더랬지. 이렇게 매년 둘은 재회할 때마다 라이벌 의식을 활활 불태우며 자신이 더 강해졌다는 것을 서로에게 뽐내며 자신이 상대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려고 애썼어. 하지만 전해에 구미긴이 더 강하면 다음해엔 텐구히지가 더 강해졌고, 그 다음해에는 또 호각. 이렇게 그들은 늘 엎치락뒤치락하며 성장해갔더랬지. 누군가가 더 세고 더 약하고를 확실히 결정하지 못한 채, 늘 다음해는 두고보자 다음해는 내가 이길거야, 이렇게 중얼이며 서로를 외면하는 두 사람이었어.

두사람의 날이 선 팽팽한 다툼은 결과적으로는 일년에 한 번 있는 두 요괴가족의 잔칫날에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가 되어 있었어. 어른들은 젊은-아직 어린-두 요괴 소년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술안주로 삼으며 신나게 놀았지. 그것은 별로 양가의 자존심싸움으로 번지고 있거나 하는 건 아니었어, 그들은 단지 두 요괴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랐고 그들이 다툴때마다 그래그래 신나게 싸우고 쑥쑥 잘커라~ 이런 마음이었거든. 그들의 싸움아닌 싸움에 걸려있는 건 말하자면 구미긴, 텐구히지 그 둘의 자존심뿐이지 다른 건 일체 없었단 얘기야.

하여간 시간이 흐르고, 50년. 그리고 드디어 51년째의 그 날이 왔어. 구미긴 가족과 텐구히지 가족들은 일치감치 단풍구경의 장소로 모였지. 장소는 51년 째 변함이 없는 깊은 숲속의 커다란 단풍나무가 아름답게 겹겹이 서 있는 곳이었는데, 그들 중 누구도 그 장소를 바꾸고싶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지. 그만큼 그곳의 단풍은 아름다웠거든. 양가는 일년만에 만나 서로를 반가워하며 악수를 하고 어깨를 두드렸어. 이렇게 또 만나네요~. 일년만이네, 너무 반갑다. 건강들 하셨어요? 어어 머리가 벗겨졌잖아~ 하하하. 뭐 이런 평온하고 고요한 안부인사들이었지.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구미긴과 텐구히지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어.

어린 요괴인 두 사람이기에 하루가 다르게 겉모습이 바뀌고 쑥쑥 성장하는 둘은, 볼때마다 변화한 서로의 모습에 내심 놀라고 있었지만 그것을 티를 내면 자기가 지는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둘은 단지 서로를 보며 노려보고 비웃는 표정을 유지할 뿐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절대로 말하지 않았어. 텐구히지는 구미긴의 아름다운 은발과 풍성해진 아홉개의 꼬리를 보고 조금 기가 죽었어. 꼬리는 전과는 달리 아홉개 균등하게 커다랬고 털결도 좋아보였지. 그건 구미호요괴로써 또한 더욱 강해졌다는 걸 의미했거든. 텐구히지는 구미긴이 부리는 술법의 매서움을 알고 있었고 때때로 거기에 이기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지. 그건 뭐 구미긴도 마찬가지였어. 구미긴은, 텐구히지가 너무나 아름다워진 것에 내심 심장이 다 떨렸어. 텐구히지는 하얀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새까만 머리칼을 하고 긴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고선 무표정하게 서 있었지. 그 커다란 날개를 양옆으로 활짝 펼치고 나무에 기대고 있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하늘로 훌쩍 뛰어오를 것 같았어. 어째서 매년 만날때마다 저렇게 예뻐지는 거지? 긴토키는 사실 누구보다 히지카타의 요괴로써의 위력을 알고 있었어. 그를 상대로 방심하거나 대충하거나 경계를 늦추거나 하면, 영락없이 지는 것은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하지만 긴토키는 이미 오래전부터 히지카타를 생각할때마다 그의 요괴로써의 힘이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것들을 떠올리고 있었지. 긴토키는 진작부터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있었어.

그래, 맞아. 긴토키는 이미 몇십년 전부터 히지카타를 좋아하고 있었어. 그에게 이 매년 있는 배틀은 이제는 거의 그와 마주설 수 있는 핑계에 불과했지. 그의 힘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그것보다 볼때마다 아름다워지는 히지카타에게 넋이 빠져나가 정신이 없어지는 것을 정말 어쩔 수도 없는 것이었지. 긴토키는 자신의 가족들과 희미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히지카타를 눈으로 쫓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어. 어째서 저렇게 예쁠까. 일년동안 뭘 먹었기에 볼때마다 점점 더 이뻐져? 아 화난다. 아 걱정된다. 아, 가둬두고 묶어두고 새장에 넣어서 나만 보고 싶다. 기분탓인가 저녀석 주위에서 엄청 좋은 냄새 나는 것 같고 그렇다고... 긴토키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눈을 깜빡였지.

사실 슬슬, 긴토키는 이 의미없는 배틀에 질려하고 있었어. 서로를 의식하는 라이벌따위 사실 긴토키가 바라는 두사람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거든. 긴토키는 이 매년있는 연례행사를 어떻게든 끝내고 앞으로는 좀 다른 모습으로 히지카타와 지내고 싶었지. 입만 열면 싸우고 다퉈서 거의 제대로된 대화도 해본적 없는 두사람은, 다른 가족들과는 다르게 진짜 일년에 딱 한 번 밖에 만나지 않았고 그것이 긴토키로써는 정말로 불만이었어. 히지카타는 일년에 한 번 보는 거 외에 긴토키를 너를 만날 이유가 어딨냐는 한결같은 태도였거든... 분해서 긴토키도 같은 태도로 히지카타를 상대하긴 하지만 긴토키는 사실 그 분해서 척하는 것에도 이미 벌써 질려버리고 말았던 거야.

그래서 긴토키는 오십 한 번째의 오늘의 잔치를 이용하기로 했어. 매년 벌어지는 메인이벤트, 두사람의 배틀을 이용하기로 한 거야. 



2

 

어느 해인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둘이 성장함에 따라 둘의 배틀에는 약간의 외부의 영향이 가미되지 않을 수 없었어. 왜냐면 성장할수록 둘의 특기분야가 달라졌기 때문에 자신이 더 자신있는 분야로 싸움을 걸면 상대방은 도저히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어른들이 둘의 배틀에 끼어들었고 최소한의 룰만을 정해주기로 했지. 그 룰이란 이런 거였어. 여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어떤 일을 해내라는 미션을 주고, 그 미션을 상대가 해내면 상대가 승리라는 거였지. 그리고 다음해에 만나면 이번엔 반대로. 그러니까 총 2년에 걸쳐 승부가 나는거였어. 예를 들어 히지카타가 긴토키보고 연못위를 달려 열바퀴돌때까지 물 한방울 젖지않기란 미션을 주었고, 긴토키는 히지카타가 말하는 대로 성공해냈어. 그해에는 일단 긴토키의 승리이지. 그리고 다음해엔 긴토키가 히지카타보고 날개를 쓰지말고 가장 커다란 나무의 가장 꼭대기에 매달려있는 과일을 따오라고 해. 그걸 히지카타가 해내면, 그 해에는 또한 히지카타의 승리가 되는 거야. 이건 상대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는만큼 둘의 의욕에 더욱 불을 붙였어. 저녀석이 내뱉는 말을 내가 못해낼리가 없잖아~!! 하는 라이벌심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절호의 룰이었지. 그리고 올해는, 긴토키가 히지카타에게 미션을 줄 차례. 긴토키는 이것을 찬스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드디어 시간이 되었어. 요괴잔치의 메인이벤트가 시작될 시간. 양요괴가족들은 늘 그랬듯이 빨간 단풍이 소복히 쌓여있는 낙엽위에 자리잡고 앉아 선 채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긴토키와 히지카타를 지켜보았지. 히지카타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배틀을 시작하기 전에 일부러 신발끈을 고쳐 매었어. 더 단단히 발목같은 데를 죄이고 매듭을 꼼꼼히 하면서 결의를 다졌지. 긴토키도 또한 귀나 파면서 히지카타가 그렇게 매무새를 고치는 걸 하품하며 지켜보았고. 히지카타는 하품소리를 내는 긴토키를 노려보았지. "오늘이야말로 그 불필요한 주둥이를 완전히 박살내주마." 시비조의 히지카타에게 긴토키도 대응했어. "불필요한 주둥이는 새쪽이 가지고 있잖아?" 두사람이 배틀을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서로에게 시비를 거는 대화는 늘상 있는 일이었어. 요괴들은 둘을 둘러앉아 둘이 입으로 티격태격 하는 소리를 들으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는구만~ 슬슬 시작됐나 그래 더해라 더해~ 아따 술맛좋다. 이런 소리로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히지카타쪽 어른이 콘도씨가 입을 열었어. "그래, 올해는 긴토키쪽이 우리토시에게 뭘 하나 시켜야 할 해이지? 올해는 얼마나 어려운 걸 생각해왔을까 기대되네." 히지카타는 눈썹을 찌푸리며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어. "어려운 거는 무슨. 저녀석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야 뭐 뻔할뻔자지." 히지카타의 말에 긴토키는 팔짱을 낀 손을 풀며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어. "그래, 내가 생각하는 수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지금부터 잘봐둬라. 히지카타야. 올해야말로 널 엉엉 울린 예정이거든." 정말이지 히익히익 우는 소리내게 만들고싶다 이거지. 물론 내품에서. 두고봐라. 긴토키는 웃으며 양팔을 위로 들었어. 긴토키의 아홉개의 꼬리가 살랑이며 긴토키의 등뒤에서 나풀거렸지.

"지금부터 내 요술로, 널 작게 만들거야."
"? 내 몸을 작게 줄일거란 얘기냐?"
"아냐. 뭐 그것도 재밌긴 하겠다만. 널 어리게 만들거란 얘기야."

그리고 긴토키는 오른손을 휘둘렀어. 히지카타를 향해 쭉 뻗은 긴토키가 쏘은 요술이 히지카타의 이마에 가닿았고 히지카타의 이마위에 검은색의 글씨가 떠오르는가 싶더니 곧 히지카타의 몸이 작아졌지. 히지카타 토시로가 어린애가 된 거였어. "이게뭐야!?" 자신의 단풍크기만큼 작아진 두 손바닥을 바라보며 히지카타가 소리쳤어. 열개의 손가락을 있는 힘껏 벌려도 엄청나게 작은 두 손을 번갈아보며 소리치는 히지카타의 목소리는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하고 있었지. 지금 히지카타는 인간으로치면 열둘, 열셋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약 이십년 삼십년 전의 히지카타 토시로 요괴소년의 성장기 도중의 모습이었지. 히지카타의 요괴가족들은 모두 히지카타의 어린이가 된 모습에 환호하며 잔을 높이 들었어. "어머, 너무 그립다!!" "꺄~ 토시로 작아진 것 좀 봐 진짜 귀여워~ 엄청 오랜만이야 저모습!" "아! 저때가 귀엽고 좋았는데!" "올해 사카타의 긴토키가 제대로 한몫하는걸!"

긴토키는 작아진 히지카타를 바라보며 후후 웃었어. "덧붙여 옷까지 같이 작아지게 해줬으니까 고맙게 여겨라." 히지카타는 여전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기 몸 여기저기를 보고 있었어. 어린이의 몸을 하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긴토키도 내심 너무 그리워서, 웃음이 자꾸 나왔지. 귀엽네. 어른이 되기전에 히지카타 머리칼이 저렇게 보슬보슬거리고, 눈동자도 흘러내릴 것처럼 엄청 크고 그랬나. 날개도 작아서 엄청 귀여운데다가. 그립네. 그러고보니 저렇게 동글동글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린애로 만드는 술법을 똥줄빠질만큼 연습하길 진짜 잘했어. 나. 히지카타의 높아진 목소리가 화가 난 듯 억눌린 목소리로 흘러나왔어. "...사람을 이렇게 만들고 그래서 뭘 시킬 작정인데 네녀석은?!" 긴토키는 눈썹을 구부리며 웃었어. 제대로 화가났네. 하긴 기껏 컸는데 도로 작아진 어린애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즐거울 리가 없겠지. 난 너의 오랜만의 그런 모습을 봐서 기분이 좋지만.

자꾸 웃음이 나네. 긴토키는 있는힘껏 헛기침을 한 뒤에 다시 말을 내뱉었어. "그모습을 하고 우리마을에 갔다가, 다시 이 연회장으로 돌아오는 게 내가 주는 미션이야. 그건 당연히 하룻밤만에 끝내야하는 거고. 작은 몸을 하고 있으니 왕복이 결코 쉽진않겠지?" 하지만 난 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을 담은 눈동자로 히지카타를 바라보면서 긴토키는 웃었어.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향해 소리쳤지. "그따위건 껌인 게 당연하잖아, 멍청아!" 도로 어린애가 된 것은 여전히 화가 났지만, 지금은 풀릴 길이 없는 분노로 바들바들 떨고 있을 시간이 없었어. 히지카타는 우선 미션을 제대로 수행해 긴토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는 것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 어린애로 만든 것에 대한 복수는 미션을 끝낸뒤에 또다르게 할 수 있는 거잖아. 히지카타는 이를 뿌득 갈고 있는힘껏 자신의 현재의 작은 날개를 양옆으로 펼쳤어. 망할자식. 은발곱슬자식. 망할 구미호자식. 별 시덥잖은 걸 미션이라고 떠올려서는..! 히지카타는 주먹을 꽉 쥐고 하늘로 펄쩍 뛰어올랐지. 한시간만에 갔다와주겠어. 히지카타는 입으로 중얼였어. "파이팅 토시로!" "우리 토시로 잘한다!" "긴토키 파이팅!" "긴토키 이번엔 진짜 제대로 된 걸 떠올렸는걸! 아주 이길 각오야!" 등등의 온갖 환호성을 뒤로한 채, 히지카타는 숲의 하늘로 솟구쳐올랐어. 긴토키도 웃으며 천천히 히지카타의 뒤를 따랐지.

 

3

 

히지카타는 작아진 날개를 열심히 파닥이면서 그대로 쭈욱 하늘을 향해 날아 숲을 빠져나왔어. 바람을 가르는 내내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향한 깊은 빡침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 이새끼 날 물먹이려고 아주 제대로 준비를 해갖고 왔고만...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공부했을까. 나 물먹일거라고. 히지카타는 이를 갈았어. 작년의 긴토키는 자신의 몸을 변화시키는 요술은 쉽게 써댔지만 타인의 몸을 변화시키는 요술은 아직 쓰지 못하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자기 몸이 완벽하게 어린애로 돌아간 것만으로도, 긴토키는 이미 모인 요괴들에게 자신이 더욱 강해졌다는 걸 보여준거나 다름이 없었어.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정말로 머리를 잘썼다고 생각했지. 또 일년동안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해 놀랐고. 왠지 노력과는 거리가 먼 듯한 헬렐레한 표정에 만사귀찮아하는 느긋한 태도의 긴토키였기 때문에... 히지카타는 귓가에서 자신의 작아진 날개가 파닥이는 연약한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어. 성장한 자신이라면 이정도의 숲따위 단숨에 벗어났을터지만, 어린애가 된 작아진 몸으로는 몇 번을 날개짓해야 할 지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웠어. 이대로라면 작은 날개는 금방 지칠 것이고 자신은 버티지 못하게 될 터였지. 어제까지만 해도 큰소릴 내며 과감하게 공기를 가르던 자신의 날개가 내는 작은 소리에 히지카타는 또 한 번 한숨이 났어. 긴토키. 이번 건 정말 장난이 아니잖아. 대단해. 순순히 감탄해주지. 넌 이미 모두에게 너의 강함을 제대로 선보였어 훌륭하게도. 나의 승패여부와는 상관없이 널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거야. 히지카타는 이를 뿌득 갈았어. 이런 분위기에 더더군다나 자기가 이 승부를 이기지 못하게까지 된다면. 히지카타 토시로는 완전히 쪽이 팔려 내년부터는 도저히 또 승부하자고 말도 꺼내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마는 게 아닐까. 절대 그렇겐 될 수 없어. 무슨일이 있어도 이 보잘 것없는 몸뚱이를 끌고 그녀석 마을에까지 갔다가 돌아오겠어. 일몰이 내리기전까지! 히지카타는 오기와 다름없는 악을 썼지.

"그런 속도로 그렇게 내달았다간 우리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칠거야."

뒤쫓아온 긴토키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히지카타는 사납게 눈을 치켜뜨며 긴토키를 노려보았지. 긴토키는 자기의 푹신한 꼬리 몇 개를 동그랗게 말고 그 위에 올라탄 채 둥둥 떠 있었어. 히지카타는 어린애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빨랐고 (물론 성인 히지카타였을 때보다야 느렸지만) 긴토키는 비행술은 살짝 서툴러서 히지카타의 뒤만을 간신히 쫓고 있었지. 히지카타는 있는힘껏 노려보고 있었지만 긴토키는 얼굴이 전체적으로 작아지고 선이 동글동글해지고 눈같은 게 커다랗게 된 히지카타가 노려봤자 별로 무섭지도 않았어. 단지 귀여울 뿐. 하지만 생각만 그렇게 했을 뿐이고 입을 열어서는 "오오, 무서워. 무서워. 노려보기 없기." 그렇게 말했지. 히지카타는 흥, 하고 긴토키를 잽싸게 외면하고선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어. 이윽고 울창하고 깊은 숲밖으로 나온 히지카타는 그대로 긴토키의 마을이 있는 쪽을 향해 날기 시작해지. 공기위에 둥둥 뜬 채 히지카타는 빠르게 날았고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어. 긴토키도 뒤를 쫓았지.

"그러니까, 초반부터 그렇게 너무 내달리다간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친다니까 요녀석아! 적당히 페이스 조절하라고 이 히지카타야!"

시끄러워 꺼져. (아니 꺼질 수는 없잖아, 긴토키가 뒤를 쫓아야 히지카타가 미션을 제대로 수행했는가 안했는가 확인할 수 있으니까.) 누가 몰라. 이렇게 작은 날개로 이정도 속도로 날아다니면 그거야 금방 지치겠지. 나도 안다고. 하지만 가지고 있는 오기를 이럴 때 부리지 않으면 대체 언제 부리란 말이야,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져서는 안 된다고. 여기서 속도를 줄이면 일몰이 오기 전에 숲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어렵잖아. 히지카타는 긴토키 말에 대꾸도 없이 날개를 더욱 펼쳐 횅하고 날았어. 긴토키는 혀를 찼어. 히지카타가 오기를 부리기 시작했다는 걸 긴토키도 눈치채고 있었어. 사이가 나쁜 앙숙일망정 둘은 서로에 관해 모르는 게 거의 없을 정도로 자주 만났으니까 말야, 긴토키도 히지카타의 지기싫어하는 성격이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거지. 하지만 자기 몸 정도는 잘 챙기면서 하란 말야 승부에 목숨걸지말고... 긴토키는 칫하고 소리를 내며 히지카타의 뒤를 더욱 바싹 쫓았어. 자기가 건 싸움이지만, 금방 힘들어 할 히지카타를 보는 건 별로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지.

히지카타는 그리고 서서히 지쳐갔어. 같은 페이스로 한시간 정도 계속 날고 있었을 때쯔음이었어. 히지카타는 작은 얼굴에 비오듯 땀을 쏟기 시작했고 손가락을 덜덜 떨었지. 계속 빠른속도로 날고 있어서 날개를 혹사시키는 만큼 몸 여기저기가 감당하지 못하고 삐걱이기 시작한 거야. 히지카타는 그래도 오기로 아랫입술을 단호히 깨물며 더욱 날개에 힘을 주었지. 날개는 크게 휘청이면서도 히지카타는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날았어. 뒤에서 긴토키가 "히지카타! 좀 쉬어가면서 가!" 라고 외쳐도 소용없었지. 히지카타는 도리어 긴토키를 돌아보며 "귀찮게 하지말고 꺼져! 말 좀 시키지말라고!" 했더랬어. 지가 시켜놓고 왜 이제와 걱정하는 척이야. 그리고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멋대로.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꾸욱 쥐었지. 힘들어. 쉬고 싶다. 날개죽지가 엄청 뻐근해. 하지만 속도를 죽이고 싶진 않아. 차라리 바짝 날았다가 마을에 도착하면 그때 바짝 쉬고, 그런 페이스를 유지할 거야. 내일 날개근육통으로 일어나지 못한다해도 오늘은 절대로 안쉬어...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날고 있었어.

그리고 그건 긴토키의 예상을 빗나가는 거였지. 아 분명 긴토키가 생각했을 때 히지카타가 이쯤되면 쉴 게 분명하다... 싶은 포인트가 있었거든. 그리고 그 언저리에는 긴토키가 장치해놓은 어떤 것이 있었고 그것들은 꼭 히지카타가 봐주었으면 하는 거였는데... 젠장! 저녀석은 왜 저렇게도 지기싫어하는 놈인거야! 설마 저렇게 작은 몸을 하고 우리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한순간도 쉬지않는 길을 택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해놓은 모든 작전이... 이제와 변경은 되지않는데... 젠장, 젠장.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는데. 이번 기회를 놓칠 순 없어. 긴토키는 이를 뿌득 갈면서 갑자기 속도를 내어 몸을 앞으로 뻗었지. 그리고 날고 있는 히지카타를 뒤에서 확 낚아챘어.

"?!!! 야 뭐하는 거야 이거 못놔?!! 너 지금 방해하는 거냐?!!"

"반칙패 당하고 싶어??!!" 히지카타는 버둥대며 소리쳤어. 미션중에는 당연히 상대방의 행동을 방해하거나 하면 반칙패를 당하게 되어있었고, 둘 중 누구도 그동안 반칙스러운 행동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어. 그러니까 히지카타는 자기가 나는 동안 설마 긴토키가 뒤에서 안아올거라곤 생각도 못해 더욱 당황했지. 긴토키가 뒤에서 껴안자 어린애가 된 히지카타의 몸이 그야말로 폭하고 히지카타의 품안에 안겨들어왔어. 진짜 히지카타가 어렸을 땐 긴토키도 어렸으니까 둘 다 몸이 작은 게 당연해서 몰랐던 거였는데, 아 그때 히지카타는 정말로 작았던거구나.. 내 품에 폭 안겨올 정도로... 긴토키는 새삼 뺨을 붉히며 자기가 낚아챈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지. 히지카타의 작은 날개가 긴토키의 가슴에서 접혀져 있었고 히지카타는 작아진 손가락 다섯개를 펼쳐 긴토키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리며 긴토키를 떼어놓으려 하고 있었어. "야!! 이거 안 놔!!??" 귀여워... 품안에서 버둥대봤자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한팔에 몸이 꽈악 잡혀선 날아가거나 그에게서 떨어지거나 할 수가 없었어. 다른 긴토키의 팔이 히지카타의 두 다리를 꽈악 붙들어서 어느새 버둥대는 것조차 무리가 되어버렸지. "워, 워. 진정. 진정하라고. 아직 시간은 많잖아. 좀 쉬엄쉬엄 하란 말야."

"미션도 제대로 수행해내기전에 쓰러지는 널 보고싶지 않으니까 오히려 지금 난 널 도와주고 있는거라고? 지금 너 엄청 지쳤잖아. 쉬면서 하란말야."
"아 쓸데없는 참견 그만두라고!! 

 

4

 

"미션도 제대로 수행해내기전에 쓰러지는 널 보고싶지 않으니까 오히려 지금 난 널 도와주고 있는거라고? 지금 너 엄청 지쳤잖아. 쉬면서 하란말야."
"아 쓸데없는 참견 그만두라고!! 니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내 페이스는 내가 조절할테니 이거 놓으라고!"
"싫-다네. 아무리 몸이 작아졌대도 이렇게까지 뿌리치지 못할만큼 지쳐놓곤."

"일단 저기 저 아래 냇가에서 좀 쉬어. 날개에 땀도 좀 씻어내고. 그럼 간다." 그리고 긴토키는 막무가내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어. "이씨..." 히지카타는 이를 바드득 갈면 자기 몸을 잡고있는 긴토키의 손등을 깨물었지. "악-!!" 손등에 히지카타의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을만큼 히지카타는 있는힘껏 긴토키를 깨물었고 긴토키는 너무 아파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히지카타를 잡고있는 손을 놓거나 하지는 않았어. 긴토키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자기 손등을 물고늘어진 히지카타의 입을 벌려 자신의 손등을 빼내었어. 히지카타는 그래도 분이 안풀리는지 긴토키를 노려보았고. "...이런이런." 긴토키는 한숨을 내쉬며 자기 손등에 남은 히지카타의 잇자국을 바라보았어.

"...날 방해한 것에 대해선 나중에 모두의 앞에서 보고하겠어."

결국 강제로 냇가에 내려오게 된 히지카타는 냇가에 도착하자마자 팔힘을 느슨하게 한 긴토키의 품에서 화악 떨어져나오자마자 그렇게 중얼였어. 긴토키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래 그래, 알았으니 니맘대로 하셔." 라고 말했지.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노려보았지만 곧 냇가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그리고 깊은 숨을 몰아쉬었지. 사실 쉬지않고 날아 몸은 지쳐있는 상태가 맞았고, 땅에 내려오자마자 발끝이 욱씬대는 것이 이쯤에서 쉬어야하는 타이밍인 것은 맞았었지만... 그래도 히지카타는 순순히 긴토키가 하는 것에 따를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거든. 저거 대체 왜저러는거야? 히지카타는 단지 그 생각을 반복하며 냇가 앞에 앉아 얼굴을 씻었어. 물이 차가워서 기분좋았지. 히지카타는 품에서 수건을 하나 꺼내 물에 적시고는 꼭 짜서 날개깃털들 하나하나 닦기 시작했어. 날개가 서늘한 것에 닿아 촤르르 기운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어. 뜨겁게 화끈거리는 날개죽지부분도 손을 돌려 꾹꾹 누르면서 히지카타는 숨을 내쉬었어. 젠장. 딱 오분만 쉬고 바로 다시 날 거야. 

그나저나 저자식의 의중은 대체 뭘까... 아까 떠올린 생각을 다시 떠올리며 히지카타는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엔 긴토키가 없었어. 뭐야 어딨는 거야. 순간 히지카타는 잠시 주춤했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냇가로 고개를 돌렸어. 아니, 없어지든 말든 내가 알게뭐야. 그딴 자식. 어디가버렸다고 해서 뭐. 그때 히지카타 눈앞의 수면이 크게 흔들리더니 큰 잉어의 그림자가 둥실 떠올랐어. 히지카타는 순간 눈을 크게 떴지. 잉어는 곧 히지카타의 앞에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꼬리를 흔들어 물방울을 튀어오르게 하며 히지카타에게 인사를 했어. "안녕하세요?" "...안녕." 히지카타는 아주 조금 당황했지만 곧 잉어의 인사에 마주 인사를 했지.

"좋은날이군요. 조금 쌀쌀하지만요. 건강 괜찮으세요?"
"걱정해줘서 고마워. 내 건강은 물론 괜찮아. ...어, 넌 괜찮아?"
"저도 물론 괜찮아요 하하."
"음... 넌 누구니?"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전 이 연못의 주인으로, 사카타 긴토키씨를 은인으로 모시고 있는 잉어랍니다. 한 이분이면 되니까 잠깐 제 이야기 좀 듣고 가시지 않겠어요?"
"??? ????"

그리고 정말 짧게 이야기를 끝내는 잉어의 말은 이랬어. 얼마전 큰 홍수가 나서 연못이 완전히 잠길뻔한 걸 사카타 긴토키씨가 나타나 요술로 벽을 세우고 홍수가 일어나는 내내 연못을 지켜주었다는 거야. 그 뒤 잉어는 사카타 긴토키씨를 은인으로 모시기로 했다는 듯. 히지카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열심히 뻐끔대는 잉어의 말을 듣다가 문득 "...사카타 긴토키라면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라고 말하며 자기 뒤를 돌아보았어. 물론 그곳에 긴토키는 없었지. 잉어는 웃었어. "자기가 시켜놓고 면전에 대고 자기 말하는 거 듣는 건 부끄러우니 숨었나보네요." "? 뭐라고?" 히지카타는 의아해하며 잉어에게 다시 물었지. 하지만 잉어는 대답해주지 않았어. 단지 "이쪽의 하얀길을 따라가는게 숨겨진 사카타 긴토키씨의 마을로 가는 지름길이에요. 그쪽길로 제발 가주지않겠어요? 부탁드려요." 라고 사정하는데, 히지카타는 정말로 의아했지. 어떻게 내가 지금 그녀석 마을로 가고자하는지를 알고 있는거며, 잉어는 왜 저렇게 또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제발 지름길을 따라 가라고 사정을 하는거지? "난 그분의 은혜를 갚아야해요. 제발 제가 말하는대로 한 번만 따라주세요." 진짜 이해가 안 돼.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 히지카타는 작아진 손으로 물을 첨벙이며 잉어의 얼굴을 향해 몇 방울의 물을 튕겼어. "대체 뭐야? 뭘 꾸미고 있는건데 그녀석은?" 잉어는 대답하지 않고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았어.

"...진짜 뭔데?"

짜증나게. 히지카타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잉어는 갔고 냇가는 잠잠해졌지. 히지카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날개를 파닥거렸어. 잠시 쉬었으니 날개도 조금쯤 쌩쌩해졌을 터인데... 역시 아까와 같은 페이스로 날아올라 빠르게 날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히지카타는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히지카타는 곧 날개를 완전히 접고 말았어. 그래. 기왕 쉰 것 좀 더 쉬게하자. 날개가 많이 지쳤으니까. 히지카타는 일단 잉어가 부탁한 대로 그가 가리킨 하얀길을 도보로 걷기 시작했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어린애 걸음이었지. 얼마쯤 걸었을까, 문득 뒤를 보니. 어느새 긴토키가 아홉개의 꼬리를 살랑이며 히지카타의 뒤를 따르고 있었어. 히지카타의 작은 보폭을 생각해주는 더욱 느린 걸음으로 히지카타를 쫓고 있었지. 뭔데? 어디갔다 온건데? 아까 잉어는 다 뭐고, 너 대체 이번 미션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궁금한 건 많았지만, 히지카타는 아무것도 묻지않았어. 긴토키는 약간 곤란한 듯 쑥쓰러운 듯, 히지카타가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애써 피하며 때로 한 번씩 여우귀를 좌우로 흔들었지. "......" 히지카타는 굳이 긴토키에게 말을 걸지않고 다시 외면했어. 의아한 건 많았어, 궁금한 것도 많았고. 이 길을 걷다보면 궁금한 게 해소되려나? 대체 뭔일을 벌이고 있는건지 저녀석은... 히지카타는 한숨을 내쉬었어. 

하얀길은 비교적 짧았어. 걷기도 편했지. 그리고 길의 끝에는 하얀색 꽃들이 피어 있었어. 그리고 꽃들 중 가장 큰 꽃이 꽃잎을 흔들며 히지카타를 불렀지. "히지카타님, 히지카타님. 잠깐만 저 좀 보고가세요." "...? 뭐야." 히지카타는 꽃을 향해 고개를 숙였어. 

"안녕하세요 히지카타님. 저는 꽃에 달라붙어 사는 요괴인데요. 평소엔 꽃에 동화돼서 별로 말을 안하는데, 지금은 잠깐 힘을 써서 히지카타님한테 말을 거는거예요. 길게 안걸릴거니까 잠깐 짬 좀 내서 제 말 좀 듣고가시겠어요?"
"...무슨말인데?"

약간 짐작가는 게 있었는데, 히지카타는 일단 그냥 무슨 얘기냐고 물었어. 꽃의 얘기도 간단했어. 자긴 길바닥에서 다 죽어가는 요괴였는데 마침 지나가던 사카타 긴토키님이 자길 구해주었다는 거야. 그리고 요력이 바닥난 자기를 위해 자신의 요력을 나눠주고 이렇게 꽃에도 안착시켜주었다고 말야. "그래서 말예요, 제가 아직 살아있는 건 다 사카타 긴토키님 덕분이구요. 꽃이 붙어사니 마음도 온화해지고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래." 히지카타는 삐죽삐죽 대답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어. 긴토키는 굉장히 멀찍이 떨어져 있었어. 거의 실루엣만 구분될 정도로 멀찍이. 그리고 히지카타의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뺨이 붉어져 있는 것이 왠지 쑥쓰러워하는 거 같고 말이야. "...??" 히지카타는 의아해하며 머리를 긁적였지. 꽃은 또 말했어. 지금부터는 이쪽길을 이용하면 가깝다고. ...어 그래 고마워. 히지카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어. 


5

 

그 뒤로도 비슷한 게 반복됐어. 가는길마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요괴를 만나고 그 요괴들은 전부 사카타 긴토키씨를 은인으로 모신다며 그와 있었던 훈훈한 사연을 히지카타에게 말해주었지. 히지카타는 점점 긴토키가 뭘하려는지 알 것 같았지. 하지만 뭘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대체 그걸 왜 하고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 히지카타는 어느새 긴토키의 마을이 보이는 곳까지 왔고 그의 마을에 가려면 이천개의 계단을 올라야했는데, 그 계단에 오르기 전 계단아래를 지키는 석상 두명이 히지카타에게 말을 건네왔지. "어서오십시오. 히지카타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계단만 오르면 사카타 긴토키님의 마을인데, 근데 그전에 잠깐이면 되니까," 히지카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석상들의 말을 끊었어. "잠깐이면 되니까 사카타 긴토키에 관한 좋은 얘기 하나 듣고가라고?" "...그말대롭니다." 석상들은 히지카타를 바라보며 허허 웃었지. 히지카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뒤를 돌아보았어. "너네들 아니래도 이미 많이 듣고왔거든..." 뒤엔 긴토키가 없었지. 먼저 마을로 훌쩍 올라가버린 게 분명했어. 히지카타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럼 묻겠는데, 내가 지금까지 듣고온 사카타 긴토키에 관한 것들 중에 어떤 거짓말이 있거나 조작이 있거나 해?"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않습니다."
"좋아. 그럼 그 좋은 일들을 사카타 긴토키는 어떤 의식을 가지고 하고 있는건데? 무의식인가? 평소에도 그랬나? 아님 갑자기 그런거냐 무슨 목적을 가지고?"
"아닙니다. 사카타 긴토키님은 원래 착한 분이십니다. 무슨 좋은일을 하고 생색낸 적이 한 번도 없으세요."

"그럼 지금은 나한테 왜이러는건데?" "그.. 건 직접 사카타님한테 물어보심이..." "그렇네." 그리고 히지카타는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어. 충분히 날개를 쉬면서 천천히 걸어왔기 때문에 날개는 다시 튼튼해져 있었어. 해는 아직 반쯤정도밖에 기울어지지 않아 마을에 올라갔다가 다시 숲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면 일몰전에 히지카타가 미션을 수행해내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거였지. 히지카타는 날개를 펼치고 계단을 훌쩍 날아올랐어. 그리고 계단에 바짝 붙어 빠른 속도로 이천개의 계단위를 날았지. 계단의 꼭대기에는 거대한 토리이가 서 있었고 그 토리이 아래에 사카타 긴토키가 꼬리를 나풀대며 날아오는 작은 히지카타를 기다리고 있었어.


계단 몇개를 남겨놓고, 히지카타는 계단에 내려와 우뚝 선 채 긴토키를 바라보았지. 긴토키는 어딘지모르게 여전히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있는 상태였어. 히지카타는 피식 웃음이 났어. 그래, 지가 생각하기에도 영 쪽팔리는 일을 한 거 같은가보지? 곳곳에 자기 심복 심어놓고 나한테 자기 활약담을 얘기하라고 명령한 거 같은데 그게 안쪽팔리면 그게 어디 어른인가... 중2병이지... 히지카타는 어딘가 불편한 듯 머리를 긁는 긴토키에게 낭랑하게 외쳤어. "그래서?"

"그래서, 날 작게 만든 이유는 뭔데?"

긴토키는 얼굴을 붉힌 채 히지카타를 바라보았어. 

"어른인 몸 그대로라면 중간에 쉬고 할 것도 없이 바로 날아갔다가 날아돌아왔다가 할테니까. 너의 강한 날개는 누구보다 잘아는 나라고? 약간의 시간벌이가 되준다면 좋겠다했어. 물론 너의..." 너의 어린모습도 오랜만에 보고싶었고. 어린 너는 미친듯이 귀엽고, 난 네가 그렇게 작을 때부터 너를 좋아했었으니까. 물론 긴토키는 뒷말은 굳이 내뱉지 않았어. 쑥쓰러웠거든... 긴토키가 뺨을 붉힌 채 계속 머리를 긁적긁적 하는 모습을 보고있으려니 괜히 히지카타도 쑥쓰러워서 슬쩍 뺨을 붉혔어. 뭐야 쟤 왜저렇게 답지않게 쑥쓰러워하고 난리야...? 괜히 이상한 기분이 옮잖아; 히지카타는 하아, 한숨을 내쉬며 날개를 펄럭였어.

"오늘 하루 미션을 빙자해서 나한테 어필한 건 그럼 뭔데?"
"음, 어필이랄지..."
"어필 맞잖아. 나 좋은 녀석이다 어필. 근데 대체 나한테 너 사실은 좋은놈이라고 어필해서 뭘 어쩌려고 그런건데?"
"그, 그치만 히지카타 너 전번에 이상형이 착한 사람이라고 그랬잖아."
"???"

"뭔헛소리냐, 너랑 이상형 어쩌구 하는 대화는 나눠본 기억이 없다만." 오십년간 알고지냈지만 그런 사적대화를 나눌만큼 가깝게 지냈던 적 한 번도 없잖아. 히지카타가 그런 야유가 섞인 말을 하자 긴토키는 콧잔등을 붉히며 연신 귀를 쫑긋거렸어. "...물론 나한테 그런 게 아니고 우리집안 어른한테 한 말이지만..." 말하자면, 긴토키가 훔쳐들은 거였어. 요괴어른과 히지카타의 잡담아닌 잡담을 뒤에서 몰래 듣고 있었던 거지. 자신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는 히지카타의 시중을 받으면서 어른은 "그래, 슬슬 히지카타는 결혼같은 거 생각 안하나? 이상형은 따로 있고?"같은 질문을 했고 히지카타는 웃으며 아직 결혼생각은 없지만 "글쎄요, 이상형이랄 게 따로 있나... 아, 착한 사람이요. 착하고 좋은 사람이 괜찮겠네요."라고 대답했던 일년전의 잡담을 긴토키는 기억하고 있던 거였어. 랄까, 사실 오늘의 미션은 그날의 히지카타의 대답이 계기가 된 거나 다름없었지.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입에서 결혼이야기가 나온 것에 초조해지기 시작한 거였어 이대로 자기가 행동도 하지않고 가만 있다가 덜컥 히지카타가 누군가와 결혼이라도 해버리면 안되겠다 싶었던 거거든. 그리고 이상형도 들었으니 자신이 히지카타의 이상형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또한 당연했고.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봤자 그걸 히지카타가 몰라준다면 또한 아무 소용없는 거 아니냐 싶었어, 긴토키는. 그래서 오늘 그동안의 노력을 히지카타가 알아줬음 좋겠다싶어 이런 작전을 생각해낸 거였고.

히지카타는 잠깐 벙찐 표정을 한 채 긴토키를 바라보았지.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자 더욱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어. 긴토키가 당황했는지 꼬리가 쉴새없이 살랑거리는 것을 보며, 히지카타는 곧 피식 웃고야 말았어. 이게 뭐야. 이게 다 뭔소리야. 그러니까 저녀석이,

"그러니까 결국, 내 이상형에 네가 부합하다고 나한테 어필했다 이거지?"
"...그래."
"나한테 잘보이고 싶었다 이거지?"
"그, 그래!"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까 좀 잘봐달라 네가 말한 이상형이 바로 여기있다... 그러니까 이거란 말이지?"
"그렇다니까!! 젠장 대체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려는 건데 요녀석아!"
"왜그랬는데?"
"당연히 니가 좋으니까지!!"

"널 차지하려는 노력이잖아!!" 기세좋게 외치고, 긴토키는 귀까지 새빨개져선 곧 입을 다물었어. 오... 긴토키의 그런 표정은 정말이지 처음보는 거였지. 덩달아 히지카타도 얼굴을 붉히며 손사레를 쳤어. "아니... 저기, 미안. 널 놀리려고 그런 게 아니야. 나도 어렴풋이 그런 게 아닐까 싶긴 했는데말야..." 진짜 정말로 그런걸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그만. 그도 그럴게, 우리 오십년 동안 한 번도 너 그런 낌새 보인적 없었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바, 반.. ...그랬다고는 말이야. 그런쪽 화제는 한 번도 꺼낸적 없고 아니 거의 별대화도 없이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고 싸우고 한 게 다인데 언제 그런쪽으로 마음이 동했대, 네녀석. 나한테 바, 반. .....그런쪽으로 말이야. "좀 당황해서 말이야." 히지카타는 그렇게 떠듬떠듬 말했고 긴토키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이마의 땀을 연신 훔쳐냈어. "아니, 뭐. 응. 그게 그럴거라 생각했어. 내가 갑작스럽긴 했으니. 네가 당황할만도 하지."

"나는 그냥 일단 슬슬 니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싶었던거니까 말야."
"아아, 음. 응 그래? 응;;"
"응. 그리고 대답을 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고말야."
"아아, 대답. 대답말이지..."

히지카타는 얼굴이 새빨간 긴토키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어. 지금은 히지카타보다 긴토키의 키가 훨씬 커서 히지카타가 긴토키를 올려다봐야하는데, 올려다보는 긴토키는 긴장한 듯 딱딱하게 입매가 굳어 있었고 얼굴은 온통 새빨개져서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어. 그리고 주먹을 꽈악쥐고 있는데, 긴토키의 주먹이 오히려 히지카타의 눈높이와 딱 맞아서 그의 주먹이 긴장에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제대로 보였지. 뭐야... 귀엽기는; 히지카타는 웃음이 비져나오려하는 걸 간신히 참았어. 히지카타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카타 긴토키를 보고 귀엽네...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곧 침착한 표정을 되찾은 히지카타는 긴토키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지.

"대답은 일단 오늘 미션이 끝나고 난 후로 미루지, 난 당장 해야할일이 있으니까."
"어?! 지, 지금 당장 말해주는 게 아니고!??"
"멍청하긴. 지금은 무엇보다 승부가 제일 중요한 때잖아!"

멍청이! 그리고 히지카타는 다시 한 번 긴토키를 노려보고는 훌쩍 날아올랐어. 작은 몸을 한 히지카타의 작은 날개는 다시금 파닥이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지. 히지카타는 이제 날아서 단숨에 숲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었어. 중간에 한 번도 쉬지않고 단숨에 숲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 긴토키는 멀어져가는 히지카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땀을 뻘뻘 흘렸어. 뭐... 뭐야. 그러니까 내 고백보다 당장의 승부가 더 중요하다 이말인데... 저 저 망할 지기싫어하는 성격...!! 온갖 용기 다 쥐어짜서 오늘 간신히 고백할만한 작전을 짜내 그대로 실행하기까지 내가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데, 그건 다 뒷전이고 그놈의 망할 승부가 제일 중요하다니..!!

열받은 긴토키도 훌쩍 뛰어올랐어. 그리고 긴토키는 빠르게 날아가 파닥대며 날아가고 있던 히지카타를 다시 한 번 뒤에서 꽈악 잡았지. 더는 긴토키가 방해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었던 히지카타는 깜짝놀라고 말았어. "뭐, 뭐야!? 왜 잡아?!" 뒤에서부터 히지카타를 꼬옥 껴안은 긴토키는 얼굴에 빠직마크를 하고 양팔에 힘을 주었지. 진짜진짜 간신히 한 고백이란 말야. 물위에 흘려보내듯 하다니 용서 못해.... 긴토키는 그대로 힘을 주고 히지카타를 자기 품에 가두고선 "좋아. 그럼 내가 잽싸게 숲으로 돌아가는 데 협력해줄테니 그뒤에 제대로 고백에 대한 답을 들려줘. 알았지?" 그렇게 말하고 훌쩍 날아가기 시작했어. 히지카타가 파닥대며 날아가는 것보다 두 배로 빠른 속도를 내며 긴토키를 허공을 날았고, 그것은 또한 긴토키의 오기가 어려 생긴 불가사의한 힘이었지. 히지카타는 당황하며 어버버버했고 "아니, 이러면 승부가 안되잖아 너 진짜 죽는다?!!!" 곧 정신이 들어 이렇게 외쳤지만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놓아주지 않았지. "넌 어떤지 몰라도 난 이미 승부따위 아무래도 좋단말이다!!! 잽싸게 숲으로 돌아가서 그 뒤를 계속하자고 엉?!" 긴토키는 더욱 힘을 주고 히지카타를 안은 채 날아가기 시작했고 히지카타는 양팔을 다 버둥댔지만 긴토키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었어. "으, 이 나쁜새끼, 이 망할 사카타 긴토키놈아~!!" 히지카타의 외침이 허공에 울려퍼졌어.

그 해의 승부는 당연히 사카타 긴토키의 반칙패로, 히지카타 토시로 승. 그러나 진정하게 겨뤄서 어느쪽이 더 강하다하는 우월을 정식으로 겨룬 게 아니었음으로 내년에는 제대로 된 배틀을 가져보자고 하면서 내년의 연회에도 둘은 이벤트로 싸움박질을 할 것을 또한 약속했어. 내년부터는 아무 제약도 걸지말고 차라리 어느쪽 한쪽이 쓰러질때까지 치고박아보자 제대로된 격투를 하는거야! 식으로 여론이 조성되었고 그래서 내년부터는 아예 격투대회를 열기로 했지. 긴토키와 토시로도 그 의견에 찬성했어.

밤이 깊었고, 빨간 단풍위로 파르스름한 밤의 어둠이 내릴때까지 잔치는 끝나지 않았지. 모두가 술에취해 흥겹게 노래부르고 춤추고 수다를 떨고, 아무리 밤이 깊어도 누구 하나 조용해지는 일 없이 숲속은 온통 시끌벅적 흥청망청했어. 그런 와중에, 어떤 요괴가 본 것은, 그 소란스러운 숲 가운데에 어느 조용한 곳에 서 있는, 사카타 긴토키와 히지카타 토시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히지카타를 바라보는 긴토키의 조심스러운 시선과, 히지카타의 약간 쑥쓰러운 듯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 눈. 둘은 조용조용히 대화를 하고 있었고, 둘의 대화내용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둘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요괴는 둘을 방해하지 말자 싶어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어. 연회의 밤은 깊어만 갔지. 숲을 환하게 밝히는 달은, 그 어느날보다 커다랗고, 또한 아주 밝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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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입니당...ㅋㅋㅋㅋ 이건 처음부터 긴토키가 귀여우면 다른 건 다 필요없어..ㅋㅋㅋ 하는 썰이었슴당 ㅋ "히지카타 널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어!"를 어필하는 긴토키를 보며 히지카타가 어 쫌 귀엽넹ㅋ하는 게 보고싶었어요 ㅋㅋㅋㅋㅋ이제 둘이는 사귀는 사이가 됐겠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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