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에 관한 짧은 이야기


 꽃은 하얀색이었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은 노인은 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다발묶음을 풀었다. 노인은 다리 한 쪽이 불편해 보는 사람이 더 불안해지는 걸음걸이로 묶음을 풀은 하얀색 꽃을 싱크대까지 들고 걸어왔다. 그리고 싱크대 가득히 수도로 물을 채우면서, 노인은 하얀 꽃 무더기 중 하나를 집어들고 가위를 꺼냈다. 노인이 사온 하얀색 꽃은 여러개의 줄기가 이어져있고, 그 줄기에 붙어있는 잎들의 크기에 비해 정작 꽃은 작았다. 꽃의 정확한 종류를 알고있으면 그 이름을 말하면 쉬울텐데, 솔직히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다. 데이지와도 비슷하다. 어쩌면 그 하얀꽃이 데이지일수도 있겠지. 아닐수도 있고. 모르겠다. 노인은 그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하얀 꽃의 줄기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는 손부분이 빨간색인 가위를 쥐고, 비로소 싱크대에 가득 채워진 물 위로 무더기의 꽃부분만을 잘라내어 떨구기 시작했다. 꽃을 손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로지 꽃의 부분만 남게끔. 노인은 나이가 아주 많아서, 눈도 잘 안보이고, 오른손도 계속 떨리고. 그래서 그 노인은 지독하게도 나이앞에서 정직해서, 노인은 너무나 당연하게끔 쉽게쉽게 꽃을 정리하지 못하였다. 꽃의 목을 잘라내려는데 헛가위질을 해서 허공을 자르기를 그렇게 몇 번, 떨리는 손이 제대로 꽃을 잡지 못해서 꽃줄기가 물속에 빠지기도 두 어번. 작은 싱크대에 하얀색 꽃이 물위를 우아하게 흐르는데, 그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하얀색 꽃위로 떨어지는 노인의 숨결은 왜 그렇게 무거웠을까.





 히지카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긴토키가 나중에 읽으라고 두고간 편지를 마지막 장의 마지막 줄까지 전부 다 읽고나면, 히지카타는 항상 한숨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쯤되면 이제 이건 나에게 주는 편지가 아니라 그냥 일기인 거 아닌가. 왼손에 그의 편지를 쥔 채 손을 떨구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정면을 바라본다. 밤이 되어 소등, 병실의 불이 꺼지고 나면, 히지카타는 최근들어 자신의 병실침대 머리맡까지 찾아오는 달빛에 기대어 긴토키의 편지를 읽곤했다. 언제나 저녁시간이 가까울때쯤 면회를 와서, 긴토키는 히지카타와 함께 요란하게 저녁을 먹곤 하는데, 매일같이 그가 싸오는 도시락 통의 디자인이 달라졌다. 히지카타는 이제 긴토키가 싸오는 도시락의 밥 한톨도 얻어먹을 수가 없지만-히지카타는 완전 무균상태의 히지카타 전용 죽을 먹어야한다. 이게 참 맛이없지, 담배나 한 대 피웠으면 좋겠다고 먹으면서 늘 생각하는데.- 그 도시락을 싸주는 사람이 매번 달라지는 것으로 병실에 찾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부를 알게되어서 좋았다. 긴토키도 그걸 위해서 매일 다른 사람에게서 도시락을 받아오는 거겠지. 그래서그런가 긴토키의 저녁밥은 매일 싸주는 사람에 따라 그 퀄리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누가 싸준건지 히지카타도 구분이 안 되서, 오직 새카맣게 탄 계란말이 차례때만 그 도시락을 싸준 사람을 눈치챌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일곱번은 맞출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두어시간 멍하니, 거의 아무 이야기도 하지않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만을 쳐다보다가, 때로 누군가가 할 말이 생기면 말하고 또 누군가는 상대가 하는 그 말을 듣다가, 문득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손을 잡고 그 위에 고개를 기댈때도 있고, 문득 히지카타가 긴토키에게서 키스를 요구할 때도 있는데, 하여간 그런식으로 두어시간은 산들바람처럼 두사람 사이를 쉬이 흘러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나면 의자에서 일어난 긴토키가 외투를 입고 자, 그럼 내일또, 이렇게 말하며 히지카타에게 제법 두꺼운 편지를 하나 건네주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밤이 긴데 혼자 외로우니까라는 핑계는, 확실히 히지카타에게 잘 먹혔다. 긴토키의 편지를 읽고있으면 시간이 잘가서 히지카타는 금세 졸려지기도 하였다. 언젠가 밤이 너무 길어서, 무거워서, 잠들수가 없어서, 안색이 나빠진 히지카타를 걱정하는 긴토키에게 그렇게 말했던 어느날을 기점으로 긴토키의 편지가 시작되었다. 히지카타는 오늘밤의 이 편지가 몇통째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의 편지의 대부분의 내용은, 솔직히 이미 잊었고, 그것들 중 상당수가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의 주변인에 대한 마음가짐이 담겨있는 책, 영화의 소소한 감상문이라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늘 죽음에 관련된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곧 죽게되는 히지카타에게 꼬박꼬박 감상을 전하는 긴토키의 마음이 어떤지 히지카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긴토키의 마음이 전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기뻤달까. 그래서 모든 게 좋았다. 너의 편지에 적혀있는 모든 것들이.


 긴토키는 항상 맨 마지막에, 어쨌거나 저쨌거나 참 많이

 슬프다

 고

 그렇게 적는다.

 

 그래, 맞아. 어쨌거나 저쨌거나, 참 많이 슬픈거다. 결국은 이런거지.


 늘 같은 시각에 맞춰 오늘도 어김없이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병실의 문을 열었다. 어제와는 조금 다른 복장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작업복 차림에 운동화도 다소 더럽다. 늦을까봐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왔는데, 세균투성이라 병실에 들어가기가 겁난다고 문간에 여전히 서서 그렇게 말했다. 히지카타는 그럼 적어도 신발이라도 벗고 들어와라고 말했다. 긴토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운동화를 벗고, 더러운 양말도 벗었다. 그리고 맨발로 히지카타의 병실안으로 들어왔다. 대리석의 병실바닥은 지독하게 차가웠고, 그래서 긴토키의 맨발의 발등위로 닭살이 돋았는데, 긴토키는 그런 발톱끝이 얼얼해지는 감각에도 별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히지카타는 맨발로 척척 안으로 걸어와 자신의 의자에 앉는 긴토키의 발가락 끝이 점점 붉어져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동상이라도 걸리는 거 아닌가 내심 생각했다. 자기가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고 한 탓에 발가락에 동상이 걸리고, 조만간 그래서 발가락이라도 하나 잘라내야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킥킥 웃었다. 그렇게 웃다가 참 대단한 생각을 하면서 웃는구나 자조하면서, 긴토키에게 방금 자기가 한 생각을 가감없이 이야기했다. 내가 발가락을 잘라내는 게 근데 왜 웃긴건데? 도시락통을 풀면서 긴토키가 물었다. 네발가락의 긴토키가 그럼 안웃겨? 히지카타가 대꾸했다. 긴토키는 잘 이해가 안됐고.


 긴토키가 스스로 싸온 도시락 내용물은 항상 수수했다. 밥위에 대충 짜온 낫토, 그리고 그위에 노른자가 깨지지 않은 달걀프라이 하나. 긴토키가 구워오는 달걀프라이는 항상 귀퉁이가 새카맣게 타 있었다. 언젠가 물어본 바로는, 노른자의 반숙을 위해서 프라이팬에서 달걀을 깨서는 뒤집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뒤집지않고 흰자를 다 익히려면 결국 한쪽면을 태울 수 밖에 없다고. 계란프라이 반숙을 좋아하는거야? 히지카타의 물음에 긴토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었다.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라고 대꾸하던 그 날의 긴토키.


 저기, 긴토키. 응? 나도 먹고싶다. 뭘? 너의 계란프라이. 어, 안 되는데. 괜찮잖아. 가끔은. 아니 안 돼. 안될 것 같아. 전번에 의사선생님이 이제 너한테 뭐 주지말라고 나한테 단호하게 주의를 줬거든. 그래서 안주겠다고? 그러니까 갑자기 상태나빠져서 내가 너한테 프라이줬다고 의사선생한테 들킬만한 짓을 했다간 니가 싫어하는 귓불깨물기형이다. 와, 진짜 심하다. 긴토키는 젓가락으로 계란노른자의 한가운데를 푹하고 찔렀다. 반숙의 노른자는 겉을 조금 찢었더니 바로 하나도 익지않은 액체의 노른자가 흘러넘쳤다. 긴토키는 젓가락 위에 흘러내린 노른자를 떠서 히지카타의 입에 갖다대었다. 아. 긴토키의 입이 동그래지면서 '아'의 음역을 내뱉는다. 히지카타도 긴토키를 따라하기 위해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는 '아'의 음역을 내뱉었다. 긴토키의 젓가락이 히지카타의 색이 죽은 혀위에 살짝 닿았다가 곧 떨어졌다. 히지카타의 혀가 너무 오랫만에 느낀 자극이 센 맛에 깜짝놀라 파르르 떨었다. 맛있다. 히지카타가 희미하게 웃었다.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부운 입술에 살짝 키스하였고.


 자 그럼, 오늘거.


 응. 고마워.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편지를 받아들였다.


 손안에 버석이는 잘 봉인되어있는 긴토키의 두툼한 편지를 양손으로 만지작대며, 히지카타가 문득 이야기했다.


 그런데, 긴토키. 이때까지 것들... 어제것도 그랬지만. 모든 이야기의 감상문에, 왜 항상 이야기의 결말을 적어주지 않아?


 이건 그동안 수없이 많이, 히지카타의 목밖으로 나올 듯 목에 계속 걸려있는 채로, 항상 언제나 간당간당하게 흔들렸으나, 결국 단 한 번도 내뱉어본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그 질문이 입밖으로 매끄럽게 잘 나왔다. 뭐 하나 걸리는 거 없이.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동안 긴토키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고 그것에 대한 줄거리와 감상을 편지로 써서 히지카타에게 매일밤 읽으라고 주었으면서, 그 수많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의 결말은 단 한번도 적은 적이 없었다.


 긴토키는 다시 눈을 깜빡였다. 긴토키의 눈이 깜빡이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음역에 도달해 있었다.


 이야기들의 결말이 궁금했어?


 이야기들의 결말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히지카타도 모르는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그것들의 결말을 알려주는 날이 오지는 않을 건데. 영원히.


 그래. 왜 그런지 알 것 같아. 긴토키.


 너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뺨에 키스하는 순간, 저도모르게 감은 히지카타의 속눈썹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뺨에닿은 긴토키의 입술은 퍼석하고 다소 차가웠다. 자, 그럼 내일 또, 그렇게 말하는 긴토키의 안색이 창백했다. 그 말에 무슨 소망을 담았는지 잘 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절실한지도. 그래. 내일 봐. 그래서 히지카타는 그렇게 대꾸했다. 그래. 내일 보자고. 긴토키가 병실의 문을 닫고 조용히 나갔다. 그리고 평소보다 오래 히지카타의 병실 앞에 서 있었다. 신발을 다시 신어야하기 때문이겠지.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오늘도 눈을 감으면, 또 내일을 기도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지는 내일을. 삶은 짧구나. 그런데 삶은 왜 이렇게 긴걸까. 긴토키. 내일도 너를 보고싶다는 이 마음만이 내일아침의 햇살을 기도하게 한다. 히지카타는 다시 눈을 뜨고 긴토키의 편지를 들었다. 오늘도 어느때처럼 두툼했다. 점점 글자 읽기가 힘들어지니까, 보나마나 이 편지를 다 읽기위해 자기 전의 모든 시간을 전부 다 써야하리라. 히지카타는 양손으로 긴토키의 편지를 뜯었다.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피어났다. 너의 러브레터. 네가 주는 꽃. 이렇게 행복한데, 이렇게 참 많이 슬프다. 그래, 긴토키. 결국은 이런거지. 이런거구나. 너도 나도.


 


 


 


 





- done

 

트위터 은혼전력 60분에 참가한 글. 주제는 꽃. 약 46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본 영화에 너무 센티멘탈해져있어서 결국 센티멘탈한 글이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죠...근데 주제랑 너무 상관없는 거 아니냐... (머쓱

 

첫문단, 긴토키가 히지카타에게 건네준 러브레터 속 영화는 '아무르'. 너무 아름다운 영화이고 너무 슬픈 영화인데, 스포가 될 것 같아 노인이 꽃을 정리하는 부분만 적어봤습니다. 기회되시면 꼭 한 번 보시길 :> 두시간 살짝 넘는 프랑스 영화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