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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신파치는 해결사 사무실로 오지 않았다. 카구라가 슬슬 신파치가 오지 않는 것을 걱정하며 긴토키에게 슬쩍 말을 건네보았다. 긴쨩. 네가 한 번 찾아가봐라 해. 긴토키는 얼굴에 덮고 있던 점프를 슬쩍 손으로 내리며 한쪽눈을 흘겨 카구라를 바라보았다. 카구라는 소파에 앉아 다시마초절임을 씹으며 정오의 예능프로를 무료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정오의 TV는 이럴 수 있나 싶을만큼 재미가 없었다. 긴토키는 긴 하품을 하며 마른 자신의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몇 번 두드렸다. 겨우 삼일짼데 뭐. 신파치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거야 요녀석아. 이런저런 사정이 뭔데? 해. 이런저런 사정이 이런저런 사정이지. 카구라는 거의 눈조차 제대로 뜨지않고 대꾸하는 긴토키를 흘겨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출근해봤자 기다리는 게 저런 상사뿐이면 가끔 일도 째고싶어지는 게 당연하겠지 해... 긴토키는 미간을 찌푸리며 피식 웃었다. 통보없는 결근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월급에서 까겠지만 말야. 카구라는 긴토키의 웃음을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 월급깐단 소리는 체납한 월급이나 전부 주고 해라 해...


 카구라와의 말싸움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내심 긴토키도 삼일째 출근하지 않는 신파치가 살짝 걱정되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오후산책삼아 걸어 신파치의 도장에 들러 얼굴이라도 보고 오자싶었던 것이다. 첫날 긴토키는 출근하지 않은 신파치가 의아해 그의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은 신파치는 그냥 몸이 좀 안좋아서... 따위로 말을 얼버무리고서는 내일은 출근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평소 자신의 행각이 결코 좋지못하다는 걸 잘 알고있는 긴토키는 신파치의 무심한 태도에 순간 당황하며 내가 뭘 잘못했지? 나의 뭣때문에 얘가 뿔이 났지? 이건가 저건가 아니아니 요건가? 그치만 그건에 대해선 전번에 화낸걸로 퉁친 거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버리고야 말았다. 그러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아냐 신파치가 뿔이 난 게 전부 내탓이라고만 볼 수 없어... 신파치는 사춘기니까... 누나의 간섭, 일탈을 향한 동경, 안경에 대한 미의식 추구, 아이돌을 따르는 갱단의 새끼조 창립... 등등 분명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거겠지. 하고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오늘 하루는 신파치가 원하는대로 휴가를 주기로 하였다. 하루 쉬면 괜찮아지겠지. 그러나 신파치는 긴토키의 기대를 무참히 배신하고 다음날에는 심지어 전화조차 받지않았다. 신파치대신 전화를 받은 오타에는 슬픈 목소리로 그 아이 방에서조차 나오질 않고 있어서... 정말이지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저는 그저 십대청소년들의 비행이 극에 달아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는 무서운 뉴스가 자꾸 떠올라서... 으흑흑. 했다. 긴토키는 속으로는 신파치가 아무리 어긋나도 너를 상대로 가정폭력을 시도할만큼의 바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뱉지않고, 그저 그래 그럼 오늘도 휴가인걸로... 라고 대충 말하고 전화를 끊어버렸고.


 그것도 3일째가 되니 지켜봐줄수가 없었던 것이다. 별 일이 아니면 신파치의 본체와도 같은 그 미려한 안경을 산산조각 내주리라. 긴토키는 바이크를 타고 시무라가의 낡은 도장에 도착했다. 정문부터 신파치의 방에 들어가는 복도까지, 긴토키는 시무라가의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신파치가 긴토키의 사무실 겸 집인 낡은 아파트에 익숙해진 것처럼 말이다. 타에는 동생이 걱정된 나머지 출근 준비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해 하고 있었다. 긴토키는 이쯤에서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내뱉었다. 이런 건 남자 대 남자로써 이야기하는 수 밖에 없어. 나한테 맡겨 오타에. 타에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만히 무릎꿇은 채 신파치의 방으로 들어가는 긴토키를 배웅했다.


 예상대로, 신파치는 너무나 멀쩡했다. 긴토키는 멀쩡한 신파치를 보고 배신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신파치는 단지 과자를 많이 먹어 소화불량에 걸린 것 같은 표정이었고 잠을 안잤는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을 뿐 변함없는 평소의 반짝반짝한 안경이었던 것이다. 아, 아니다. 평소와 좀 다른 게 있었다. 이쯤되면 아 안경 아니라고!! 라고 신파치가 소리칠만도 한데 신파치는 단지 눈을 깜빡일 뿐 어서오세요 긴씨, 란 말조차 하질 않았으니까. 그거야 뭐 잠을 못자서 지쳐버려서 그런거겠지 뭐. 긴토키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긴토키도 자신을 바라보는 신파치에게 어떤 인삿말도 건네지 않고 단지 엎드린 채 만화책이나 보고 있던 신파치의 옆에 바른다리를 하고 앉아 그래, 뭐가 문제인건데?? 하고 물었다. 엎드려누워있는 신파치의 옆에 앉기 위해 긴토키가 신파치 양옆에 잔뜩 쌓여져 있던 만화책의 산 하나를 손으로 쳐서 무너뜨렸고 덕분에 긴토키의 옆으로 만화책이 와르르 쏟아지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힐끗 본 쏟아진 만화책들은 대부분이 점프이거나 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것들은 순정로맨스만화였다.


 아무일도 없는데요. 그냥 좀 귀찮아서 출근 안한거예요. 내일부턴 제대로 갈게요. 그렇게 대충 말하며 슬금슬금 긴토키의 시선을 피하는 시무라 신파치, 그러나 긴토키는 소년이 방금까지 줄창 읽고있던 이 시무라 타에의 소장품일게 뻔한 순정만화의 산을 보고 대충 신파치가 어떤 상태에 빠져있는지를 눈치채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추측은 점점 확신을 띄어갔다. 일찍이 사춘기 소년 특유의 에피소드들로 주변 어른들을 사정없이 휘둘렀던 경력이 몇 번이나 있는 시무라 신파치가 아닌가. 눈앞의 신파치가 교환일기때와, 또한 야한책을 숨기려고 할 때의 그와 거의 다름없다 싶었던 긴토키는 또한 그때들과 마찬가지로 냉정하고 단호하게 신파치를 향해 현실을 내뱉어주었다. 사랑에 빠졌구만?


 가여운 시무라 신파치의 양볼이 화상을 입은 듯 한꺼번에 새빨갛게 물들어 오르는 것을 보며 긴토키는 쯧쯧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시, 신경쓰지 마세요! 긴씨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이번에야말로 긴씨가 할 수 있는 일따윈 아무것도 없을 걸요! 신파치는 사랑에 빠진 자 특유의 이기심으로 신랄해진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었고 그러나 긴토키는 그것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단지 코나 후비며 그래서 누군데?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신파치는 거의 악을 썼다. 말 안해요 안한다고요! 그의 악을 지르는 소리는 밖에서 몰래 서성이고 있던 타에를 더욱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긴토키가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훨씬 시시한 일이었다. 사랑에 빠져 허덕이는 소년만큼 결과가 뻔한 것도 없는데. 긴토키는 사실 거의 의욕을 잃은 채 이런 시시한 일때문에 여기까지 산책을 나올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지루한 정오의 예능을 견딘 후 단비처럼 쏟아지는 게츠노아나의 십분 예보나 볼 것을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으로는 앵무새처럼 꼭 그래서 누군데? 그래서 누군데? 만을 반복했다. 마치 누군지만 알면 사랑에 빠진 가여운 소년을 도와줄 수 있다는 태도였다. 물론 상당히 성의없어 보이는 태도였지만, 그래도 긴토키의 그 태도에 사랑에 눈이 멀어있는 소년 신파치는 쉽게도 흔들렸다. 말안한다고 말 안한다고 방금까지 소리친 것도 잊어버리고 어느새 신파치는 코끝을 붉게 물들인 채 훌쩍대고 있었다. 들어도 안믿으실 거예요... 저도 제가 왜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이제 그사람 앞에선 제대로 웃을 수조차 없게 되버렸고...


 그래서 누군데?


 몇번째인가 더 이상 세울 수조차 없이 몰아치는 사카타 긴토키의 마지막 공격.

 그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신파치가 안경렌즈를 뿌옇게 만들었다. 여전히 새빨갛게 찌푸려져 있는 소년의 코끝.


 소년은 어느새 무릎을 꿇은 채 주먹 쥔 두 손을 자신의 허벅지에 올리고 아래를 보고 있었다.


 어, 뭐라고? 그리고 긴토키는 순간 자신이 잘못들었음을 확신하고 신파치로 하여금 말을 되풀이하게 하였다. 신파치는 의심없이 방금 한 말을 되풀이했다. 아, 그리고 긴토키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시무라 신파치는 분명히 그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히지카타 토시로씨요...


 .......


 쟤가 지금 뭐라는거지.

 그리고 이번에는 사카타 긴토키가 얼빠진 표정을 지을 차례가 되었다.







 못믿으실 줄 알았어요. 저도 못믿겠어서 삼일째 방황하고 있는 거니까요. 신파치는 눈아래에 고인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그렇게 말했다. 긴토키는 이미 한차례 신파치와의 얼빠진 대화를 하고 난 후였다. 누구? 히지카타씨요. 누구? 신센구미의 귀신부장님이요. 어... 그러니까... 누구라고?? ...히지카타 토시로씨 말입니다... 긴토키는 여전히 얼이 빠진 얼굴로 신파치를 바라보고 있었고 신파치는 긴토키의 얼이 빠진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났다. 그래서 신파치는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못믿으실 줄 알았어요. 저도 못믿겠어서 삼일째 방황하고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신파치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긴토키가 지금 얼이 빠진 상태가 된 것은 결코 신파치의 진심이 어이가 없어서, 못믿겠어서가 아니라 단지 히지카타 토시로는 사카타 긴토키의 비밀연인이기 때문이었다. 비밀이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알리지않았고 산전수전 다 겪어 포커페이스가 뛰어난 둘이기에 정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있었는데, 둘의 연애는 사실 원작 단행본으로 치면 한 25권쯔음엔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이제 사귀기 전보다 사귀고 난 후의 단행본이 훨씬 많아진 두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긴토키의 얼이빠진 표정은 신파치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겠지만 사실은 이런 말을 담고 있었다. '하필' '그녀석은 내껀데' '걘 내꺼야'


 '걘 내 거란 말이야'


 그러나 신파치는 긴토키의 얼이 빠진 침묵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이해못해주고 있는 거겠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 신파치는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랜시간 알고 지낸 사카타 긴토키씨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경멸하거나 혐오하는 그런 못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신파치가 갑자기 동성을 사랑하게 된 것에 신경이 쓰이는 것보다, 그 상대가 평소 긴토키와 앙숙이였던 히지카타라는 것에 더 저렇게 얼이 빠지게 된 것일 거다. 그러니까 긴토키씨는 이제 곧 왜 하필 그남자냐고, 어쩌다 그런 니코칭칭따위한테 그런 감정을 갖게 됐냐고, 그러겠지. 신파치는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그런거 내가 알고싶은데. 왜 하필 그사람인지 나야말로 궁금한데. 신파치는 숙인 고개탓인가 더욱 코끝에 고여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콧물을 훌쩍이며 손을 들어 또 눈가를 닦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이것봐. 난 지금 히지카타씨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걸 어떻게 컨트롤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삼일이나 집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머릿속에서 어떻게든 계속 떠오르는 그사람 얼굴을 몰아내보려고 안달복달,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이렇게 순정만화나 읽고있단 말이야. 신파치는 희미하게 웃었다. 신파치의 웃음짓는 입술이 미소를 머금은 채 일그러져 흔들렸다.


 긴씨. 전 어떻게 해야할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 긴토키는 머리를 커다란 해머로 한 대 맞은 것처럼 계속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짝사랑에 시달리고 있는 소년에게 정말로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던져 말할 수가 없어 긴토키는 긴 한숨과 함께 토해내고 싶은 답답함을 꿀꺽 삼켰다. 울려고 하지 마. 눈물 글썽이지 마. 안경 뿌옇게 만들지 말란 말야, 요녀석아. 그 녀석을 상대로. 그 녀석을 떠올리지 마. 그 녀석을 너의 그 작은 머릿속에서 굴리지 말란 말야. 긴토키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 누구도 상상속에서라도 그녀석을 떠올리는 사람은, 절대로 없길 바라고 있었던 긴토키였다. 그 녀석을 문득 생각하며 웃음짓는 사람은 이지구에서 오직 나뿐이길 바라고 있었다고. 젠장. 긴토키의 욕은 의미없는 것이 되어 흩어져갔고, 신파치는 어느새 오른팔을 뻗어 자신의 생명줄을 잡듯 긴토키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긴씨, 제발요. 괜찮다면, 지금 저와 함께 가주지 않으실래요? 긴토키는 어디에? 라고 묻지않았다. 묻지않아도 뻔했다. 그녀석이 있는 곳으로? 긴토키가 그렇게 묻자, 신파치는 볼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시울이 붉은 신파치의 얼굴에서 긴토키는 익숙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래, 신파치의 그 얼굴은, 히지카타를 그리워하며 그를 떠올릴 때의 거울 속 사카타 긴토키의 표정과 똑같았다. 보고싶어요. 신파치가 꿈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바라보며, 긴토키는 저도모르게 나도 그래, 라고 말할 뻔 했고.


 




 어째서 그녀석이야? 긴토키의 의미없는 질문에 신파치도 의미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알 리가 없지. 왜 그녀석인지 알 리가 없지. 긴토키도 누군가가 왜 그녀석이야? 라고 자기에게 묻는다면 결국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을거라고 생각했다. 대체 언제부터야? 계기가 뭐야? 어느순간부터야? 긴토키의 질문에 신파치는 멍하고 새까만 눈동자로 어딘가를 더듬듯 먼 곳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아... 그게 언제였지... 신파치의 입술은 그렇게 움직였고, 곧 다물렸다. 긴토키는 신파치의 다음말을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긴토키는 신파치에게서 눈을 뗐다. 긴토키는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있었다. 소년을 말리고싶다. 하지만 말릴 명분이 없고, 뭐라하며 그를 말려야 할 지도 긴토키는 알 수 없었다. 그를 포기하라고, 그는 너와 안어울린다고, 다른 더 좋은 남자 찾아보라고, 긴토키는 그렇게 말하고싶었다. 긴토키는 사실은 그는 내남자라고, 그는 나와 어울린다고, 그보다 더 좋은 남자는 찾기 어렵겠지만 하여간 그는 내꺼니까 단념하라고 신파치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소리치고 싶기도 하였다. 하지만 긴토키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내내, 신파치는 꿈 속을 걷는 것처럼 몽롱해보였다. 소년의 목덜미가 홍조로 물들어 있었다. 소년은 기쁜 것이다. 히지카타 토시로를 만나러 가는 길 조차 기쁜 것이다. 긴토키는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긴토키의 너무나 초조해보이는 눈동자를 그러나 신파치는 눈치채지 못했다. 단지 신파치는 화끈거리는 두 볼을 감싸며 자기 마음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계속 더듬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가느다란 눈동자의 꼬리가 아래로 내려와, 그 얼굴이 꼭 웃음을 머금은 것처럼 보였던 그 날. 얼굴은 하얗고 코는 오똑하고 입술은 얇아서, 히지카타의 주름 하나하나에 지어지는 그림자는 모두 반짝이는 별의 색을 하고 있었더랬다. 그 날의 공기는 무슨 색이었더라. 그 날의 계절은 무슨 바람을 타고 있었나. 신파치는 촉감이 거의 기억이 나지않는 그 날이 꼭 그림같은 기분이었다. 히지카타씨의 그 새까만 머리칼. 흩어지던.







 신센구미 처소의 문앞에 서있던 두 명의 신센구미 대원 중 한 명에게 히지카타 토시로가 안에 있는지를 묻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신센구미 내부의 일은 비밀이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긴토키는 하아... 하고 긴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일잘하네, 신센구미 형씨들. 그래 그렇게 신파치가 히지카타를 보지않고 넘어갈 수 있기를... 긴토키의 입김엔 어느새 밤공기의 차가운 가을이 흩어지고 있었다. 신파치는 긴토키의 뒤에서 높게 이어진 신센구미의 담 너머에 있을 그사람을 바라보는 듯 하고 있었다. 긴토키는 어깨너머로 신파치의 절실한 시선을 바라보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혼자보기 아깝다. 완전 순애네, 순애야. 저거보다 더 애절한 사랑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그때 마침 처소 문가를 지나던 야마자키가 긴토키를 알아보고 밖으로 나와 긴토키를 아는 체하였고, 마침 나타난 야마자키가 꼭 구세주라도 되는 양 환하게 웃으며 신파치는 히지카타씨 안에 있나요? 하고 야마자키에게 물었다. 야마자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토키는 속으로 야마자키를 향해 온갖 욕을 다 쏟아부었다. 이대로 야마자키보고 꺼지라고 해버릴까 아예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너만 안나왔으면 어떻게든 히지카타를 못만나고 그냥 돌아갈 수 있는건데...!! 하지만 긴토키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야마자키는 히지카타씨 좀 제발 불러달라는 신파치의 절박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 다시 신센구미의 처소로 들어갔다.


 히지카타 토시로는 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얼굴은 하얗고 코는 오똑하고 입술은 얇아서, 주름 하나하나에 지어지는 그림자는 모두 반짝이는 별의 색을 하고 있는. 히지카타는 평소에 있는 검은색 유카타 차림으로 걸어나와선 담배끝에 불을 붙이고 "여어. 왠일들이냐?"라고 둘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평소와 다름없이 아름다운 미남의 얼굴을 바라보며 저도모르게 또 긴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저렇게 한결같이 잘생긴건데... 왜 언제나 늘 변함없이 아름다워서 청소년을 홀리기나 하냔 말야. 나쁜 자식. 히지카타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왜 사람 얼굴 보자마자 한숨을 쉬고 난리야. 기분나쁘게." "아니, 저기... 우리 파치가 뭐 할 말이 있나보더라고." 긴토키는 기운이 빠진 것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뒤에 서 있던 신파치를 가리켰다. "응?" 히지카타는 눈을 깜빡이며 신파치를 바라보았다. 신파치는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긴장한 듯 딱딱하게 굳어 있다가 곧 큰 결심을 한 사나이의 표정을 하고 고개를 번쩍 들고는 성큼성큼 히지카타에게로 다가왔다. "저, 저기 히지카타씨!" "오, 너구나. 무슨일이이야? 심각한 얼굴하고." 히지카타는 담배를 쥐고 있던 손을 바꾸고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들어 신파치의 머리 위를 꾹꾹 눌렀다. 긴토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 뭐야 왜 그렇게 친근해?? 언제부터 그렇게까지 친근했어 둘이?! 히지카타는 옆에 서 있는 긴토키의 기겁한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단지 신파치의 머리를 익숙하게 쓰다듬었다. 신파치의 까만 머리칼이 히지카타의 손위에서 파사삭 소리를 내며 흩어졌고 신파치의 뺨이 점점 진하게 물들었다.


 신파치의 안경위로 다시 뿌연 호흡이 차올랐다. 신파치는 머리를 꾹꾹 눌러대며 쓰다듬어주는 히지카타의 큰 손의 감각에 거의 호흡이 멈출 것 같았다.


 "...히지카타씨. 저기, 당신이 저한테 잘해주는 이유가 혹시 누나때문인가요?"


 그리고 신파치는 참지 못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던 의문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어?" "저에게 잘해주는 게 콘도씨가 타에누나를 좋아하기 때문인가요?" "! 아니, 저기" 그리고 히지카타는 허를 찔렸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리고 히지카타가 순간 신파치의 머리위에서 자신의 손바닥을 거두고 당황해하는 것을, 신파치는 정면에서 보고야 말았다. "...! ...역시 그랬군요." 역시 그랬어. 어느순간 상냥했던 시선과 표정. 친한 동생을 상대하는 것처럼 가까웠던 거리와 서슴없던 스킨쉽. 전부 콘도씨와 누나때문에... 내가 시무라 타에의 동생이기 때문에... 그리고 상처받은 신파치가 부와악 눈물을 흘리자 히지카타는 정말이지 유례가 없을만큼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어?!" 왜냐면 히지카타는 정말 영문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 그렇게 눈물 흘릴 일인가? 뭐 그렇게 상처받을 일이라고 그렇게 원망가득한 눈동자로 날 바라보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필요가 있는거지?!! "흑... 너무해..." 그리고 신파치가 그렇게 말하고서 히지카타에게서 홱 돌아 달려나가버리고 마는데, 히지카타는 그야말로 벙쪄서 그자리에 굳어버리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뭐, 뭐야아아-?!"


 어 어떻게 해야 되지 갑자기 왜저러는거지. 너무 놀래 당황한 나머지 물고있던 담배도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야 만 히지카타. 얼이 빠져 순간 대응이 늦어버리고 말았다. 신파치는 어느새 저멀리까지 뛰어가 으아아아하는 도플러효과만 남기고 거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얼빠져 서 있기만 하면 안되겠다 싶었던 히지카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릴 준비를 하였다. 달려서 갑자기 도망간 신파치를 일단 우선 쫓아야겠다 싶어서였다. 영문을 모르겠으니까 하여간 소년을 붙잡고 보자 싶어서.


 그리고 그런 히지카타 토시로가 바로 달려나가지 못한 이유는 사카타 긴토키에게 있었다. 어느새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오른팔 손목을 꽈악 잡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야 이거 놔!" 당황한 히지카타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졌다. 그에비해 긴토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훨씬 낮았다. "...어디가려고." "어디긴, 미친놈아 보고도 몰라. 애가 뜬금없이 갑자기 도망을 갔으니 일단은 쫓아야," "싫어. 쫓지 마." "?!" 뭐? 싫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야 싫다는 게?? 진짜 애놈이고 어른놈이고 다 뭘 잘못먹었나 오늘 왜이러는거야? 히지카타가 있는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긴토키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긴토키는 왠지 묘하게 표정이 없었다. 히지카타는 긴토키에게 잡힌 손목을 자기쪽으로 당겼지만 긴토키는 조금도 팔을 놔줄 기색이 없어보였다.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 파치... 우리 파치를 쫓긴 해야되는데," 그때였다. 표정이 없던 긴토키의 얼굴에서 서서히 당황한 기색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싫어'라고 말했어? 와 나 진짜..." 히지카타는 머리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가만히 긴토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점점 곤란해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하는 긴토키의 눈동자속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의 혼란함이 솟구치고 있었다. "아니, 하지만 넌, 그래도 역시 히지카타 넌 쫓아가지 않았으면, ...아니, 그래도 네가 우리 파치한테 가야되는데, 근데..." "지금 뭐라는거야?" 혼란을 참지 못하고 히지카타가 외쳤다.


 "세상에. 이걸 어떡해? 히지카타, 네가 가야 돼. 하지만 난 널 보내고 싶지 않아."

 "?!!"

 "내, 내가 어떻게 해야되지? 히지카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너네들 진짜 오늘 쌍으로 왜이러는건데?! 히지카타는 정말 황당한 나머지 지푸라기, 지푸라기라도 있으면 좀 잡고싶었다. 그런데 이럴경우 대체 히지카타의 지푸라기가 되어주는 사람은 누구인거지? 카구라? 그 차이나 소녀 카구라인가? 아니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지금 나를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에서 구해주지 않을래? 제발 누구든 좋으니 나 좀 도와줘요.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긴토키의 손을 마구 뿌리치려 노력하고 있었고,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손목을 꽈악 움켜잡은 채 이 갈 곳없는 질투의 출구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고, 그리고 신파치는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달려나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그런 신파치의 뒤를 늘 달이 쫓고 있었고.


 


 


 


 


 


  




 


- done

 

갑자기 파치히지가 너무 쓰고싶었다. 그래서 씀ㅋ

 

청소년의 짝사랑 가슴이 아프구마잉... 내남자를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이좁은 긴토키와< 하지만 그럼에도 신파치를 사랑하는 마음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안절부절하는 긴토키가 키포인트입니다. 파치히지 쓰고싶다고 했으면서 결국 긴토키이야기하는 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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