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토키 긴토키
말씀이 너무 차가우세요...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겨우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거. 히지카타는 인제 충분히 질려버렸다는 뜻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노골적으로 야마자키를 무시했다. 야마자키는 눈물과 코피로 범벅이 된 코아래를 제복의 소매로 쓰윽 닦으면서 엉엉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엉엉 하면서 등을 보이지 않고 물러났다. 히지카타는 야마자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일말의 가치가 없는 새끼이다... 히지카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근무시간에 배드민턴을 하다가 타켓을 놓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타켓한테 역미행당한 인간이다. 가치를 논하는 것조차 가당치 않은 일이지 않은가, 저러고도 밀정이라고. 물론 역미행 당한 덕분에 잠복해있던 오키타 소우고가 타켓을 조림으로 저며놓을 수는 있었다하지만 덕분에 비엔나 소시지처럼 엮어넣으려던 다른 범인들과의 연결고리는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걸 새타켓을 찾는 맨처음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과로사하지 싶은 것이었다. 에이 스트레스쌓여. 히지카타는 거칠게 담배꽁초의 머리가 아예 짓눌려 속의 것이 터져나올정도로 담배끝을 재떨이에 비빈뒤에 앉은뱅이 책상위에 올려져 있던 담배갑에서 한가치를 더 꺼내어 바로 입에 물었다. 그래서 그 멍청한 밀정새끼의 코를 주먹 한 방에 주저앉게 해버리고, 그대로 코를 움켜쥔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야마자키의 동그란 가마에 대고 히지카타는 세상의 수많은 욕 중 히지카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욕 몇십개를 마구잡이로 쏟아부었던 것이었다. 코를 부여잡은 큰 손 사이사이로 흘러내리는 검붉은 핏줄기에 이어 복도의 바닥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고, 높이에 따라 혈흔은 동그랗게 넓어지거나 작아지거나 하였다. 야마자키는 혈흔위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자기의 바보스러움도 잘 알고 있는데다 그 위에 쏟아지는 부장님의 폭언까지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작은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바로, 이 순간일거야. 야마자키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그 한마디를 내뱉었다. 말씀이 너무 차가우세요... 그리고 내뱉고 후회했다. 닥치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는건데.
야마자키가 물러가고 난 후 얼마지나지 않아, 옆방에서 두사람의 일방적인 폭력을 숨죽이며 감상하고 있던 오키타가 닫아놓고 있던 미닫이문을 소리없이 열었다. 소다맛 쭈쭈바를 계속 물고있는 탓에 입술이 약간 질렸으며 손의 끝부분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히지카타는 오키타쪽으로 한 번 어깨를 움찔하지 조차 않고 그저 책상 위 서류 몇 장을 뒤적였다. 문닫아라. 오키타. 그리고 단지 그렇게만 말했다. 오키타는 건너편 방의 반쯤 열어둔 문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약간 돌려 히지카타의 굽은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꼿꼿하고, 반쯤 굽은, 검은색 자켓의 등. 보는 사람이 더 덥네 짜증나게. 오키타는 쭉쭉 소리를 내며 소다맛 국물을 빨았다.
아닌게 아니라 진짜 말투 하난 끝내주게 더러운 거 같아요, 히지카타씨는.
닥쳐.
이것봐.
보긴 뭘 봐. 그리고 얼빠진 짓을 하는 멍청한 놈한테 말이 어떻게 곱게 나오냐. 할복하라는 건 정말이지 가감없는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 차가와라. 아- 차가와라. 얼음보다 더 얼음장이야. 남극의 얼음보다 더 얼음이야. 죽어라 히지카타.
끝의 말은 필요없잖아!!
야마자키 울었습니다? 다커서 어린애처럼 목놓고 엉엉하고.
......
히지카타는 서류 위를 끄적이던 손을 멈추고 후, 하고 한숨을 내쉰 뒤 펜을 서류위에 내려놓았다. 펜은 히지카타의 손을 떠나 서류위에 몇바퀴 구른후에 겨우 제자리를 찾아 멈추었다. 오키타의 쭉쭉 소리의 뒤에, 물론 그녀석이 엄청 맹하게 굴긴 했어요 이번엔. 원래 그정도로 맹한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히지카타는 오른손을 들어 앞머리 속으로 밀어넣고 이마의 땀을 훔치었다. 오른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히지카타는 손으로 훔친 땀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손바닥을 성의없이 흔들었다. 오키타의 목소리는 꼭 자장가처럼 음의 높낮이가 없이 조곤조곤 낮았다. 그것이 히지카타의 신경에 콕콕하고 와박혔다. 히지카타는 찌푸린 미간위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날이 더워 기가 빠지니 그모양이지.
그렇다고 히지카타씨가 엄청 날이 서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데요? 얼도 빠지고 모양도 빠지고.
시비걸 생각밖에 없으면 그만 주둥아리 다물고 먹고있는 거에나 집중하시지.
히지카타씨는 한번에 한가지 일밖에 못하는 타입이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원래 나같은 천재타입은 한번에 여러가지 일 잘해요. 그래서 뭐 먹으면서 말하는 것도 잘하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아오 씨발.)
뭐, 맹하긴 맹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했죠.
......
히지카타씨 말은 정말 차가워요.
......
제기랄. 그래서 어쩌라고. 그렇게 내뱉는 대신에, 히지카타는 그렇게 내뱉는 것보다 더 적절한 효과를 담은 짧은 한숨을 다시 한 번 흘렸다. 오키타는 말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약간 자세가 달라진 히지카타의 등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진득하게. 오키타는 그동안 눈 한번을 깜박이지를 않았다. 히지카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약간, 천장을 향해서.
형씨한테도 그렇게 차가워요?
너 꺼져!
더 못참고 휙, 고개를 빠르게 돌리면서 히지카타가 불같이 타오르는 눈길로 오키타를 쏘아보았다. 펜을 던지듯 내려놓은 히지카타의 빈 오른손이 가운데 손가락을 어느새 들고 있었다. 오키타는 킥킥, 혀아래로 웃음소리를 낮추며 쭈쭈바를 더욱 쭉쭉 빨았다. 오키타는 천재타입이라 웃으면서 쭈쭈바를 빠는 일도 할 수 있었다. 귓불언저리가 새빨개진 히지카타를 보니 오키타는 묘한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야마자키, 야마자키야. 묘하게 너의 복수를 하게 된 것처럼 되어버렸어. 그럴 생각인 건 아니었는데 말야. 오키타는 어깨를 으쓱한 후에 두 손으로 번갈아가며 쭈쭈바의 아랫부분을 꾹꾹 눌렀다.
히지카타씨. 제가 좋은 거 알려드릴게요.
필요없거든?!
손가락 좀 겸손하게 낮추세요 그거참. 말투가 사납고 차가운 히지카타씨에게 좋은 약을 알려줄 사람한테 그 손가락은 좀 아니지않습니까.
그러니까 필요없다 하고 있잖아!!
형씨를 부를때, 이렇게 말해보세요.
그리고 치켜뜬 오키타의 손가락 끝이 히지카타의 눈앞에서 좌우로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닌가. 오키타의 손끝이 빨갛고 약간 불어 있었는데, 그것이 더욱 히지카타의 두 눈을 집중하게 만들었고, 히지카타는 미간을 있는대로 찌푸리기는 하였으나 어딘가 약간 멍한 시선으로 오키타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오키타의 씨익, 하는 입매가 어제 잘라낸 왼손의 손톱파편처럼 가늘어졌다.
" 긴토키 긴토키. "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문득, 창밖의 바람소리가 나무의 잎새를 파사사사 흐트러뜨리는 그 시간의 흐름 사이에, 히지카타는 약간 입을 벌리고 소리가 가느다랗게 새어나간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작게, 아주 작게, 그렇게 중얼거려보았다. 그렇게 문득 중얼이고보니,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히지카타의 얼굴이 새빨개져버렸다. "...젠장." 영락없이 오키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듯한 기분이 들기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번도 제대로 불러본적 없는 그자식을 부르는 방법 그 자체가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제기랄. 제기랄. 내뱉은 '긴토키 긴토키'란 단어를 그렇게하면 없어지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히지카타는 성급하게 욕을 연거푸 내뱉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기 귓가에 자기 목소리의 '긴토키 긴토키'가 없어지질 않는 것이었다. 그 어느때보다, 그 무슨 단어보다. 이걸 그자식 앞에서 해보라고? 그자식 면전에다 대고 '긴토키 긴토키'라고? 다름아닌 내가? ─차라리 죽여라. 차라리 남극의 얼음장 하고 말지! 히지카타는 이미 내뱉은 말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방법으로 방금 내뱉은 말을 주워담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빨개진 얼굴이 원상태로 잘 돌아오지 않아, 히지카타는 정신없이 담배에 매달렸다. 그리고 턱을 괸 채 새빨개져 화끈거리는 얼굴위로 숨을 내뱉었다.
" ─바보같아. "
긴토키 긴토키라고 불러보라고.
중간에 ','라는 느낌없이 연달아, 긴토키 긴토키라고.
덜 차갑게, 덜 사납게. 분명 그렇게 들릴거라고 말하는, 오키타의 그 가느다란 입매.
아무래도 제대로 놀아났어... 그렇게 생각하고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먼 천장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점차 뜨거워졌던 얼굴의 열기도 잠잠해지고 평소대로의 히지카타의 안색이 돌아왔다. 히지카타는 한손으로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짧게 후, 숨을 내뱉고는 들고있던 담배의 끝을 재떨이위에 비볐다. 이번에는 그렇게 사납게 하지 않고, 약하게 꽁초가 약간 구부러질 정도만. 그리고 허리를 다시금 반듯하게 세우고, 오른쪽의 소매를 왼손으로 약간 걷은 후 다시 펜을 집어들었다.
" 어차피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내가 가진 말들은 너무 차갑지. "
그렇게 중얼여보고, 히지카타는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가 한 말이 웃겨서 피식, 하고 웃었다. 그리고 눈을 내리깔아, 다시금 서류에 집중을. 그리고 서류에 집중하기 전에 아주 잠깐, 히지카타는 귓끝이 가려운 것을 느꼈다. 기분탓이야. 아까 그 말이 아직 좀 머물러 있어서. 제길. 히지카타는 다시 한 번 욕을 내뱉었다.
- done
+ 긴토키 안나오는 긴히지... 0ㅁ0...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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