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30제

[은혼30제] #22 10. 07. 06

복숭아세포군 2014. 3. 21. 00:28

22 고마워 [긴->히지.]

 

 

 

 

 

 

 

 긴토키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긴토키라 해도 그 상황에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다는 것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데서 다 만나다니 긴상 깜짝놀랐어 오쿠지군~'같은 말로 운을 띄워 상대방이 질릴정도로 ─ 그렇다, 긴토키는 사실 히지카타가 긴토키의 매끄럽고 뻔뻔한 세치혀에 질려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질려하는 듯한 안색이 조금 재미있기도 하여 오히려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 있는 말 없는 말 하면서 히지카타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어 종국에는 빽하고 소리지르며 성질내게 (ㅋㅋ) 하려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긴토키의 뒤에서 어깨를 내려치는 행동에 고개를 돌린 히지카타의 얼굴은, 표정을 알아볼 수도 없을만큼의 피투성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긴토키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아니 다물었을 뿐만 아니라

 

 긴토키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놀랐다.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어깨를 내려친 그 오른손을 거둘 생각도 못한 채로 굳어 있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단기간에 목이 감기에 걸린 것처럼 잠겨버렸다. 생각보다 훨씬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온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놀랐기 때문에?

 

 " ...뭐야 그 꼴은? "

 

 " ...해결사냐. "

 

 히지카타가 칫, 하고 혀를 찼다.

 긴토키는 입을 다물었다.

 

 

 

 

 

 

 

 

 히지카타의 큰 손이 대부분의 이마를 감추고 있어 상처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봐서 그 시작점을 예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마 한복판쯔음일 것이었다. 히지카타는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으로 이마전체를 감싸 누르고 있었고 넘쳐나는 피는 시야의 대부분을 피색으로 채우고 있는듯 했다. 눈가로 떨어지는 피를 훔친 듯한 핏물자국이 눈가의 옆으로 이어져 있었고, 창백한 안색에 반하여, 피색이 더욱 짙어보였다. 히지카타는 들고있는 검을 몇 번 휘둘렀다. 핏물이 투둑하고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골목 벽에 처덕처덕 들러붙었다. 긴토키는 한쪽 눈살만을 찌푸리며 히지카타에게 다가갔다.

 

 " ─또 싸움인거냐? 제발 작작 좀 하셔, 니들 신센구미는 무장경찰이 아니라 싸움질하고 다니는 양아치패거리냐? "

 

 " ...그럼 넌 어떻고. 너도 그렇게 멀쩡해보이는 인간은 아니거든? 고양이 밥도 뺏어먹을 듯한 거지주제에 무슨, 읏, "

 

 " ...... "

 

 이마가 아픈듯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긴토키가 오른손을 뻗었다. 반무의식이었기 때문에 긴토키도 자신이 왜 오른손을 뻗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오른손의 목적지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고, 어디가 어떻게 됐길래 그렇게 피가 나는 거지 알고 싶다. 긴, 상처가 남은, 그의 이마를 제대로. 히지카타가 흠칫하며 옆으로 몸을 당기지만 않았어도 그대로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이마에서 그의 손을 빼내어 상처자국을 확인했으리라. 

 

 " ─쯧, 건들지 마라. "

 

 " ...... "

 

 무슨 길고양이도 아니고, 저 경계태세. 이를 세운 히지카타는 꼭 위협하는 짐승같았다. 긴토키는 한쪽 눈썹만을 치켜뜨며, 가만히 히지카타를 바라보고 있는 인상을 흐트렸다. 있는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경계하고 있는 짐승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가령 다소 울컥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서 같이 인상을 찌푸리거나 하면 절대 안 된다. 긴토키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었다, 전투중이었고, ─아마 일시휴전이거나 숨을 돌리기 위해 이 좁은 골목에까지 왔겠으나 아직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상처를 입고 더구나 시야까지 흐리다. 상처에서 부터 나오는 열기와 뛰는 심장때문에 더욱 주변의 감이 멀어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평소보다 배로 이를 세우고 배로 주변을 경계하는, 짐승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저런 때일수록.

 내가 아직 살아있는 가를 확인하고 싶어지니까.

 그래서 주변의 소리가 희미해지고 나의 심장소리가 더욱 커지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경계심이 더욱 커지는 거다.

 

 그 옛날 백야차때의 자신처럼.

 

 " ...... "

 

 이대로 상대의 사정거리를 무시하고 마구 다가가면 저녀석이니까 모르긴 몰라도 지독하게 할퀼 것이다. 아니, 아마 할퀴는 것 같은 귀여운 걸로는 끝나지 않겠지. 길고양이 취급했지만 사실은 호랑이급이니까, 팔한쪽이라도 잘라낼 기세로 들고있는 검을 휘두를걸. 긴토키는 그렇게 생각했고, 히지카타가 어느새 벽에 등을 기대고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어도 그에게 더 다가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히지카타는 힘든듯 어깨를 굽혔지만 쥐고있는 검끝은 긴토키를 향하고 있었다. 매섭게 날이 서있네. 긴토키는 검끝에서 떨어지는 핏물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태연하게 등뒤까지 다가와 어깨를 툭하고 쳤던 그 만남때의 방심을 후회하며 괜히 더 날세우는 것인지도 몰랐다. 저런 백수날건달한테 등을 내보이다니 멍청한 짓을, 따위를 속으로 중얼이고 있을지도. 하지만 긴토키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피가 흘러 턱을 타고, 히지카타의 발치에 검은 웅덩이가 생기고 있었다.

 그것외에, 대체 다른 것이 뭐가.

 

 " 그래서, 일은 끝난거냐? "

 

 " ...... "

 

 " 어─이, 듣고있습니까 귀신부장니임? 긴상이 묻고 있잖아. 상처땜에 열이 너무 올라서 말도 잘 안들릴 정도야? 긴상이 공주님안기로 병원까지 데려가주랴? "

 

 " ...칫, 너따위가 신경쓸 부분이 아니야. "

 

 " ...... "

 

 또 그렇게, 언제나의 히지카타처럼 냉정하게 말을 던지곤, 그는 홱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어딘가로 걸어가려 한다. 어디로 가려는거야? 그런 꼴을 하고. 정말 미치겠군. 긴토키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좀 낯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저런 상처에도 여전히 태연하게 돌아서는 히지카타에게 더 화가났다. 상처입은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보니 평소처럼 빈정대고 싶은 맘도 사라지고,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 뛰어가서 팔을 움켜잡고 그대로 들쳐업어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어 죽겠는데. 하지만 긴토키는 단지 멀찍이 서서 " 거기서, " 라고 한 마디했다.

 

 " ...... "

 

 그리고 정말 거기서주는 히지카타에게,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돌아서는 히지카타의 어깨 너머의 창백한 얼굴이, 골목길 침침한 전등불빛 아래로 깊게 이어져있는 그림자 속에 가려져, 희미하게 흐려져가는 것을 보며 조금 입술을 깨물었다. 안심할 때가 아니지, 저야 모르고 있겠지만 점점 창백해지는 안색을 보니 더 안절부절을 못하겠다. 이마를 누르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핏줄기가 어느새 두갈래로 갈라져 있다. 아아, 정말이지. 미치겠구나.

 

 긴토키는 히지카타의 발걸음 점점이, 이어져가는 핏방울들을, 발로 훑듯이 꾹꾹 누르며, 히지카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 급하지 않다면, ─아니 급하더래도, 그 상처는 치료하고 가는 게 낫잖아. 얼굴은 살갗이 찢어지면 상처의 크기보다 피가 많이 나니까 그대로 두면 더 많이 흘러댈거다. "

 

 " ...... "

 

 " 뭐야 그 표정은. 긴상 의심해? "

 

 " ...더 이상 다가오지 마. "

 

 " 다친 사람 코앞에 두고 걱정도 안할만큼 매정한 사람 아니야, 긴상은. 그게 아무리 오쿠지군, 너래도 마찬가지야. "

 

 " ...아무 목적없는 친절은 불편해. "

 

 " ...그게 왜 불편해. "

 

 " ...... "

 

 그리고 히지카타는 정말로 불편하다는 듯이 찌푸린 인상을 펴지 않았다. 긴토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불편해해라. 네가 불편해하든 말든, 널 치료하겠다는 생각은 멈추지 않을 거야. 그리고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길거다. 긴토키는 히지카타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그림자를 먼저 떨구는 긴토키의 인기척에 어깨를 흠칫했지만, 히지카타는 더 이상 아무말이 없었다. 등을 기댄 채 고개까지 숙여,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있지만 무언가 복잡한 듯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 사실은, 사실은 너

 

 입에 담배를 물고있지 않다는 사실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 불쾌하다는 듯 실갱이 하는사람을 앞에 두고도 소리치지 않을 정도로

 

 힘이 들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 이런 때만은 솔직해져도 괜찮잖아. "

 

 " .... "

 

 긴토키가 손을 뻗어 히지카타의 손을 떼어냈다. 그의 손바닥이 핏물에 젖어 원래의 피부색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상처는 얇았지만 옆으로 길었다. 긴토키는 쯧, 하고 혀를 찼다. 히지카타가 그에 놀라 어깨를 조금 떠는 듯 했고,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의 어깨를 바라보다가, 그냥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얇고 긴 상처에 넘치듯 떨어지는 핏줄기가 달라붙어 이마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마를 베일 때 상당부분 같이 잘려나간 듯, 히지카타의 이마를 덮고있던 앞머리가 울퉁불퉁하게 잘려나간 채 이마에 아무렇게나 붙어있었다. 긴토키는 손을 뻗어 그 짧아진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피에 엉겨붙어 있었고 게다가 짧아져 긴토키가 원하는 만큼 머리칼이 제대로 쓸어올려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상처에 자꾸 머리칼이 닿이면 좋지않으니까. 긴토키는 하얀 제 기모노의 소매 끝을 잡아 히지카타의 이마를 꾸욱 눌렀다. 얇은 옷깃너머로 히지카타의 이마에서 뜨거운 열이 느껴졌다.

 

 그리고 소매에는 금새 피가 스며들어

 퍼지는 모양새가 꼭

 꽃잎이 흐트러지듯.

 

 " ...많이 아파? "

 

 " ...... "

 

 깊어지는 상처의 흔적이 옷의 실사이사이로 점점이 퍼질 때마다 꼭

 가슴에도 깊은 무언가가 새겨져 점점이 퍼지는 듯 

 죄어온다.

 

 긴토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가까이에 있는 히지카타의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히지카타는 전투에 익숙한 사람다웠다. 전투가 있을 때마다 대원들에게 당연히 나눠주는 비상의료품들을 저도 하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사람들 눈을 피해 직접 치료하려고 이런 골목 구석에까지 왔었던 것이겠지. 긴토키는 제가 들고있던 깨끗한 물로 히지카타의 얼굴을 씻겨주었다. 히지카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않았고, 단지 얌전했다. 긴토키가 페트병의 물을 얼굴에 끼얹으려고 하자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긴토키는 생수가 머리칼을 훑고 지나는 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칼 사이로 손을 밀어넣고 히지카타의 얼굴을 씻겼다. 비어버린 병을 던지고 제가 입고있던 기모노를 벗어 얼굴전체와 머리칼을 쓸어올려 닦아주고는 말끔해진 이마에 휴대용 약을 바르고 그 위에 반창고를 붙였다. 붕대까진 감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해주지 않았다. 벗은 기모노는 물에 젖고 피에 젖었지만 그래도 히지카타의 어깨에 얹어주었다. 상처에 열이 더욱 오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히지카타는 그때까지도, 그저 얌전했다. 긴토키가 기모노를 더욱 여며줄때도 가만히 있었다. 어느새 놓아버린 검에 그리자가 떨구어져 있었다. 긴토키는 가만히 히지카타의 머리칼을 쓸었다. 짧아진 앞머리가 원래 제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려는 듯 히지카타의 이마에서 헝클어져 있었다. 길고 짤은 것이 순서없이 흐트러져 제멋대로였다. 들쭉날쭉한 앞머리를 바라보며, 긴토키는 저도모르게 피식 웃었다. 앞머리 정리 좀 해야겠는데. 히지카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 ...고마워. "

 

 " ...... "

 

 

 가슴이 뛴다.

 이게 대체 뭘까.

 긴토키는 호흡했다.

 

 가슴이 너무 뛰어, 심장이 아프다.

 ─라는 말이, 처음으로 이해됐다.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긴토키는 엉망이 된 히지카타의 앞머리를 다시 쓸어올렸다. 히지카타는 다행히도 계속 얌전했다. 이 기회에 몇 번 본 적 없었던 그의 이마나 실컷 봐둬야지, 긴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 d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