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혼 30제

[은혼30제] #16 09. 05. 01

복숭아세포군 2014. 3. 21. 00:26

16. 네가 다시 낚아주기에 나는 몇 번이라도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신센구미 all)     

 

 

 

 

 

 

 

 

 어째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은 이렇게 슬픈걸까. 히지카타는 피어있는 벚꽃아래에서 아련히 이어지는 슬픈 감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용히, 계속. 가만히 심장의 어느 언저리에, 가슴과 배꼽 사이의 어느 부분이 계속 묵직하게 내장을 누르는 듯이, 무게를 더하며 점차 깊은 우물속으로 가라앉는 돌덩어리처럼... 그 아련한 슬픔은 금방이라도 눈물로 차올라 흐를 것 같으면서도 다시금 잠잠해지는 것이다. 방울이 되어 뺨을 타고 흐르면 슬픔은 큰 파도가 지나간 바다 위 처럼 잠잠해질것도 같았는데, 그런 기미도 없이.

 

 올해 마지막 벚꽃이다. 그것은 이미 여름의 강렬한 초록색으로 무장한 수많은 여름색의 나무들 사이에서 혼자만 연한 핑크빛에 젖어 있었다. 수양벚나무는 그 이름을 닮아 가지끝까지는 힘이 도달하지 않은 것처럼 아래로 늘어져 있어, 벚꽃이 매다려있는 얇은 가지끝은 조금만 바람이 스쳐도 휘청였다. 부드러운것이 구부러지지않지. 히지카타는 방금 바람을 타고 제머리채를 친 벚꽃무리의 꽃잎이 흐트러져 머리칼 사이를 춤추며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연한 분홍에 절여놓은 듯, 술잔위로 운치가 퍼졌다. 히지카타는 아련한 슬픔이 달콤함이 되어 입술에 퍼질때의 감각을 전신으로 느끼며, 머리 위의 벚꽃잎을 집어들어 술병위에 얹었다. 

 

 " 곤도씨, 한 잔 하지요. "

 

 " 아아 "

 

 마지막 벚나무를 직권남용으로 독차지 한 것에는 미안한 감이 있었지만, 곤도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그런 부차적인 건 다 차치하고 단지 그 아름다운 벚꽃의 춤에 넋이 나가 있었다. 히지카타의 말에 겨우 눈을 깜박이며 자기 앞에 놓인 잔을 들 수 있었다. 히지카타의 어딘가 짓궃은 웃음도 끝자락만을 간신히 보고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제잔에 넘실대는 술을 보고 있으니 겨우 그 웃음이 이해가 돼었다. 곤도는 수줍은 듯이 하하하, 웃었다. 히지카타가 주워 술병위에 올려두었던 꽃잎은, 히지카타가 따르는 술길을 따라 그대로 춤을 추고 곤도의 작은 술잔위에 몸을 뉘였다. 술기운인지 꽃기운인지, 얼굴이 붉어진 곤도는 가만히 술잔에 시선을 떨구었다.

 

 " 아름답군. "

 

 " 그렇군요. "

 

 " 이거야.. 술잔에 따라마시는지 꽃잔에 따라마시는 지 모를 지경이야. 하하하. "

 

 " 오늘은 아가씨들이 없으니 아쉽게나마 마지막 봄이라도 즐기고 가면 되는거죠. "

 

 " 응, 정말로 그래. 토시는 멋을 참 잘 안단 말이야. "

 

 그리고 그대로 꿀꺽- 움직이는 곤도의 목전아래로 약간의 텁텁함을 남기는채로, 술에 절어 향기마저 아련해진 한장의 꽃잎이 사라졌다. 별다른 변화도 느끼지 못한 채, 곤도는 단지 입술위에 흐른 술을 닦아냈다. 자작하는 히지카타를 말리며 술병을 빼앗듯 잡아들어, 곤도는 히지카타의 비어있는 잔 위에 한 잔 따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히지카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웃음끼섞인. 그리고 잔을 찬찬히, 곤도에게 내밀었다. 쪼르륵.. 술길을 타고 공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 그것참, 공기마저 그려놓은 듯한 모습이군요. "

 

 " 오, 소우고. 너도 일루와서 한 잔 받지. "

 

 " 곤도씨 취했어요, 바닥 좀 조심하쇼. "

 

 다른 돗자리위에서 어느새 다가와 두사람이 차지하고 있던 돗자리위로 맨발로 척척 걸어오며, 오키타는 적당히 취기가 오른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곤도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듯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들고있는 술병을 휘둘렀고, 갑작스런 움직임에 취기가 올랐는지 쥐고있던 병을 놓쳤다. 다행히 술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던 상태였어서 쏟아진 건 얼마돼지 않았지만, 히지카타의 당황한 목소리가 술냄새에 녹아들기에는 충분했다. 곤도는 돗자리 위에 쏟아진 술웅덩이를 헛디뎌 밟아버렸고 적당히 취한 오키타는 배를 움켜쥐며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고, 데굴데굴 구르다가 돗자리를 벗어나 바닥에 심어있는 돌에 머리를 부딪혀 반대방향으로 데굴데굴 굴러서 평상복을 더럽혔고 히지카타는 소리를 빽 지르며 곤도씨를 옆으로 치우고 돗자리 위를 대충 닦은 후 오키타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종용했다. 수양벚나무 자락의 끝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젊거나 늙은 신센구미 대원들은 상부사람들의 망가지는 모습을 자신들의 안주거리로 삼고 즐겼다. 그래, 그또한 꽃구경 아래에서나 볼 수 있는 일. 웃음소리가 끊어질 이유가 없지. 그리고 또, 술잔 출렁이는 소리, 목으로 술넘어가는 소리. 빼놓아서는 안 되는 것은 야마자키의 배트민턴이 공기를 가르며 훗훗하는 소리.

 

 " 아~ 곤도씨, 내 술잔은 이거예요. 이거. "

 

 " 호오~ 과연 그렇군. 우리 소우고는 누굴 닮아 이렇게 멋을 잘알까. "

 

 " 멋을 참 잘아는 히지카타씨 닮았잖아요. "

 

 " ....농담이래도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

 

 하하하, 곤도의 술기운이 늘어지는 웃음소리 사이로 오키타의 비실대는 웃음소리가 섞였다. 곤도의 흔들리는 몸 너머로 오키타는 두손을 다소곳이 앞으로 하고 곤도가 주는 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양손 바닥 위에는 수양벚나무의 벚꽃들이 뭉쳐진 가지가 하나 들려있었다.  오키타의 검자국이 남아있는 손바닥 두개를 붙인 것안에 다 잠길만한 송이의 크기. 작은 꽃들이 모여 큰 꽃이 된 것이, 꼭 수국같은 느낌이었다. 히지카타는 피식 하고 웃으며 술이 아주 조금 남은 술병 하나를 들어 곤도에게 쥐어주었고, 곤도는 히지카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 몸이 술기운에 크게 흔들려 히지카타는 곤도의 어깨를 잡아주었고, 곤도는 히지카타의 도움으로 간신히, 오키타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는 것이었다.

 

 거의 비워버린 술잔은 도르륵, 단지 술이었을 거라고 짐작되는 물방울들을 몇개 떨어뜨렸고, 그것들은 분홍빛, 안으로 들어갈수록 짙어지고 밖으로 나올수록 연해지는 분홍빛의 꽃들위에 이슬처럼 맺혔다.

 

 굴러가는 길을 따라 가만히 바라보다가, 오키타는 잔을 제 머리보다 높이 들어 뒤집었고, 같이 따라간 고개의 크게 벌린 입 아래로 술이었을 것이 분명한 것들이 굴러떨어졌다.

 

 오키타의 힘이 빠진 손에서 벗어나, 잔은 결국 마지막에는 흐트러져 오키타의 얼굴위로 한들한들.

 

 젖은 꽃잎들이 그의 입술에 묻었다.

 

 

 " ...... "

 

 

 곤도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오키타의 연한, 물기섞은 웃음도. 아련한 신센구미들의 왁자한 목소리마저, 어딘가 뭉클해져서. 아까느낀 아련한 슬픔이 이것인가, 생각하다가. 히지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픔과 닮아있는 이것은 어쩌면, 어쩌면 그러한 이름이 붙여져 있는 감정인 것일까. 히지카타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꽈악, 움켜쥐었다.

 

 

 

 

 " ..................................당신들이 있기때문에, 난 아마 조금 더, .........해나갈 수 있는거겠지. "

 

 

 

 

 팔랑팔랑, 흩어지는 오키타의 꽃잔처럼, 히지카타의 중얼이는 말소리도 팔랑팔랑 흩어져, 아무도 그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아니, 히지카타는 애초부터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아니, 그전에 자기가 중얼이고 있었는지조차 몰랐을지도. 단지 히지카타의 웃음소리도 곧, 곤도와 오키타의 웃음소리와 뒤섞여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키타의 입술에서, 떨어지는, 벚꽃잎이 팔랑팔랑, 춤추며, 공기마저 그려놓은 듯한 모습위에, 새겨지듯이 흩날리고. 히지카타는 가만히, 눈을 깜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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