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히지/오리지널 ver

[긴히지] 점심시간입니다 13. 02. 04

복숭아세포군 2014. 5. 26. 20:10

점심시간입니다

 

  라면이다. 히지카타는 스스로의 생각에 스스로의 긍정의 표시로 크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골몰한 생각으로의 집중을 위해 부엌의 출입문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몸의 자세를 바로하고 부엌으로 큰 한걸음을 내딛었다. 결심하면 그 뒤는 간단한 일이었다, 라면 한봉지와 냄비 한 개와 젓가락 한쌍과 가스렌지의 충분한 화력만 있으면 되는 일이니까. 히지카타는 단지 그 재료들을 나열하기 직전에 봉지라면과 컵라면 사이에서 아주 조금 망설였지만, 곧 후, 하고 숨을 내쉬고 봉지라면을 꺼내들었다. 끓이는 라면이다. 오늘은 역시 끓이는 라면쪽으로 기분이 쏠리는 느낌이야. 그렇게 다시 한 번 자기자신에게 상기시키니 히지카타는 목구멍이 마르는 것처럼 느껴질정도로 애가타게 끓이는 라면이 먹고싶어졌다. 그러니 봉지라면 쪽이 컵라면보다 한 90% 더 귀찮아도 참고 완성하기까지를 감수해야 했다. 히지카타는 냄비에 물 적당량을 맞추고 가스렌지에 올린 후 불을 켠후에, 곧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려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그래, 기왕 감수하는 90%의 귀찮음이다. 거기에 1%든 10%든 더 수고로움이 든다고 해서 딱히 변하는 것이 어디 있겠어. 그러니 라면에 속재료 몇가지를 넣자. 히지카타는 냉장고에서 끝이 조금씩 말라가고 있는 대파와 중심부를 터뜨리고 위로 싹을 틔우고 있는 양파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어, 계란은, 음. 좋아 계란도. 히지카타는 그것들을 전부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흐르는 물에 대강 씻었다. 그리고는 무의식적으로 젖은 손을 배언저리의 옷깃으로 가지고 가다가 곧 퍼뜩 정신을 차리고 두 어번 고개를 돌려 찾은 앞치마에다 손을 쓱쓱 닦았다. 그리고, 다음은? 아, 식칼이다. 필요한 도구에 식칼이 플러스되었다. 물론 도마도.

 

 " ...지금 뭐하는 겁니까? " 

 

 오키타의 목소리다. 히지카타는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고, 그래서 소리나는쪽으로 -물론 부엌의 출입구쪽이었다 - 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히지카타는 오키타의 말에 별다른 대답없이 단지 대파 한 줄을 전부 작은 크기로 썰었고 이미 껍질을 깐 상태인 양파도 토막토막하였다. 그와중에 냄비 위에 물이 끓어올랐다. 큰기포속으로 작은기포가 흡수되어 터지는 물의 표면장력을 지켜보다가 히지카타는 곧 미련없이 허리를 꺾어놓은 라면 한봉지의 내용물을 전부 끓는 물속으로 털어넣었다. 오키타는 비번이라는 증거인 평복을 입은 채 요리에 집중하고 있는 (물론 라면도 요리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히지카타가 때때로 소매를 다시 걷어붙이는 모양새를 쳐다보면서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꾸욱하고 눌렀다. 어딘가 좀 불편해 보이는 안색이었다. " 그거 혹시 라면? " 진심으로 급피곤해진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뒤따르는 긴 한숨소리. " 그렇다면 설마.... " 히지카타는 오키타가 눈치챘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신센구미대원들의 식단을 책임지는 식모가 장기휴가를 가는 여섯달에 한 번 있는 그 날이었던 것이었다. 

 

 " 아~ 히지카타씨가 라면을 끓이는 거 보니까 확실한갑네 아오 정말... " 

 

 " 그래. 이번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4박 5일의 휴가다. 아침에 이미 전철타고 고향으로 가셨어. " 

 

 전날이 비번이었고 그래서 그 전날부터 꼬박 이틀동안 얼굴 한번을 보이질 않으며 마구 놀러다니다 3일째인 오늘 오후에나 겨우 어슬렁어슬렁 신센구미의 둔영으로 돌아온 오키타였으니 그 사실을 몰랐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거다. 히지카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너의 외박이나 놀러다니는 것에 대해 참견할 마음은 없지만 근무시간은 지키고 다녀야 되지 않겠냐, 멍청아. 이 아랫것 본보기도 못되는 망할 4번대 대장같으니라고. 어디서 중역코스프레질이야. " 

 

 " 잔소리 하지 마요 머리울려. " 

 

 " 조절못하고 처마시고. " 

 

 " 아~~ 무박 3일로 달렸더니 속이 더부룩해서 식모아주머니한테 콩나물국 좀 끓여달라 할랬는데 다 텄잖아요. 망했어요. 꿈도 희망도 없어요. 그러니 히지카타 죽어버렷. " 

 

 " 니 꿈과 희망이 없어졌는데 내가 왜죽냐. " 

 

 " 그럼 콩나물국 끓여줘 엄마. " 

 

 " 니 엄마할바에 죽겠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 " 

 

 " 그럼 죽어. " 

 

 오키타는 후우, 하고 술내음이 아직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스르륵, 벽을 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히지카타는 그런 오키타의 변변치못한 뒷통수 언저리나 흐트러진 갈색의 머리카락들을 바라보다가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면이 퍼지고 있는 라면위에 미리 썰어둔 파와 양파를 반정도 쏟아넣고 가스렌지의 불을 조금 낮춘 후 냉장고에서 작은 생수 한 통을 꺼내어 그대로 오키타의 머리를 겨냥하여 가볍게 허공위로 띄워보냈다. 큰 포물선을 그리며 생수병을 날았고,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한 손만을 뻗어 오키타는 그대로 생수병을 잡았다. 오키타의 손안에서 생수병의 플라스틱 허리가 조금 구부러졌다. 

 

 " 당분간 밥은 언제나 그랬듯 알아서 직접 해결하기다. 전번처럼 괜히 비번인 녀석들 돌아가면서 시키다가 사단나면 안 되니까. " 비번인 녀석들 돌아가며 시키다가 단체식중독을 일으켰던 악몽은 지금도 가끔 몸서리쳐질정도로 끔찍한 기억이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먹은 밥은 콘도씨가 만든거였지만 그딴 기억은 영원히 보... 봉인이다. 봉인하지않으면. 오키타는 후우, 마른 숨을 내쉬며 생수 한 통을 순식간에 다 비웠다. " 안그래도 다시 나갈라던 참입니다. 늘 그렇듯이 외식이나 해야죠 뭐. 시원하게 콩나물국 끓여주는 밥집 하나를 설마 못찾겠어 내가. " 비척비척 어깨를 흔들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오키타를 바라보다가 곧 그에게서 눈을 떼며 히지카타는 눈을 가늘게 흘겼다. 라면이 다 익은 듯 하다. 

 

 " 아니면 니 라면도 하나 끓여주랴? " 

 

 " 단체식중독 싫다고 당신 입으로 방금 그랬잖아. 그러면 당신은 죽어도 난 살아남아야지. " 

 

 " ...그 말은 내가 끓인 라면을 먹는 사람은 죽음에 이른다는 뜻이냐? 너 진짜 무례한 거 혹시 아냐? " 

 

 " 나 무례한 거 아는데 댁 실력이 더 무례한 건 아쇼? 아니, 그건 무례를 넘어 경멸... 혹은 쓰레기라고나 할까. " 

 

 히지카타는 가스렌지의 불을 끈 후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가운데 손가락을 손가락이 부러질듯한 엄청난 기세로 높게 치켜들어 오키타를 가리켰고 오키타는 부엌을 나서면서 왼쪽 눈을 찌푸리면서 엄지손가락을 둘째와 셋째손가락 사이로 찢어질듯이 엄청난 기세로 힘차게 밀어넣어 히지카타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겹치는 사운드의, '흥'. 오키타는 부엌을 등지고 천천히 부엌에서 떨어져나와 신센구미 처소의 처마를 따른 긴 복도를 걸었다. 바닥이 아직 차가웠다. 잠이 이뤄지지 않아 깨어있으나 여전히 반 잠겨있는 뇌가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오키타는 졸린 눈을 깜박이며 슬쩍 부엌을 향해 반쯤 고개를 돌렸다. ...흥, 라면냄새가 좋기는 좋은데. 목덜미를 자꾸 잡아채는 히지카타가 방금 만든 라면냄새는, 파와 양파가 아주 많이 들어가 시원하게 매울 것 같은 냄새였다. 하지만 오키타는 히지카타가 라면을 끓일 때에는 일부러 스프를 조금 적게 넣어 끝맛을 가볍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보기만큼 매운맛이 강조되는 라면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맛있기는 할 것인데. 

 

 하지만.

 

 목을 시리게 하는 바람의 한줄기에, 목을 움츠리며, 오키타는 눈을 찬바람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하지만 히지카타가 꺼낸 음식의 재료들중에, 마요네즈도 없었고.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정도는 잘 안다구. 평소라면 기운차게 방해하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대포들고 부엌을 죄다 때려부셔버리는 정도의 훼방을 기어코 하고야 말 오키타였겠지만, 오늘은 몇일동안의 밤샘으로 기운이 달린다. 달려도 너무달려. 괴롭힘도 내 컨디션부터 먼저 되찾고나서. 오키타는 큰하품을 내지르며 복도를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일단 잠부터 좀 자야겠다 생각했다. 

 

 

 

 

- 

 

 

 

 

 

 히지카타는 냄비를 들어 큰 대접에 라면을 전부 쏟아부었다. 그리고 재빨리 계란을 하나 깨서 그 위에 흘렸다. 노른자는 흐트러질듯하면서 흐트러지지않고 동그랗게 모여있었다. 조금 왼쪽으로 기운 듯한 동그라미였다. 나쁘지 않군. 히지카타는 대접을 들어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리고 냄비를 씻어내고, 다시 냄비에 물을 담은 뒤, 가스렌지에 불을 붙였다. 

 

 히지카타는 라면은 무조건 1인분씩 끓이는 버릇이 있었다. 

 

 한꺼번에 두 명이상의 분량을 해내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나씩 끓일때가 그러니까, 맛면에서 안전했다. 그래서 히지카타는, 귀찮았지만 늘 그렇게 했다. 귀찮아봤자 1%든 10%든 귀찮음이 좀 는다고 해서 딱히 변하는 것은 없으니까. 

 

 " 아- 역시. " 

 

 " ...... " 

 

 그리고 코아래를 긁적이면서, 긴토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느긋하게 말을 내뱉으며 부엌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바깥의 찬공기를 떨구듯 머리를 두 어번 쓸어낸 후에 부엌의 문을 닫았다. 히지카타는 식탁의 의자에 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고 있는 중이었다. 긴토키는 그런 히지카타의 맞은편 자리에 놓여있는 라면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체하지 않고 그 자리의 의자를 빼내어 그곳에 앉았다. 

  

 " 그러니까 내가 끓인다니까. 긴상의 라면솜씨를 못믿는거니? 이래뵈도 자취경력이 홀아비경력과 이콜이라고? 라면 2인분 한꺼번에 끓이는 것 정도야, 아 말로 하기 입아프다 정말. 그정돈 정말이지 요 왼발로도 끓일 수 있건만.  " 

 

 " 너가 발로 끓이는 라면을 미쳤다고 먹냐 내가. " 

 

 " 지금 말의 요점이 그게 아니잖아요? 히지카타군. 긴상은 2인분이든 20인분이든 한꺼번에 라면을 끓일 줄 안다는 좋은 얘기라구? 히지카타군. 그러니깐 담부턴 그냥 내가 끓일테니까. " 

 

 " 네가 만든 건 너네집에서 먹잖아. " 

 

 " ...그건 나한테 네요리를 먹게해주고 싶단 얘기야? " 

 

 " ...미친놈이 자의식과잉하긴. " 

 

 아닌데, 자의식과잉 아닌데. 이 말이 완전 맞는것 같은데. 긴토키는 굳이 한번 더 쯔쯔 불쌍한놈 미쳤네, 라고 말을 내뱉고는 스스로가 만든 어색함을 못견디고 고개를 돌리는 히지카타의 새빨개진 귓볼을 반찬삼아 자꾸 흘끔거리며,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 ...어쨌거나 담에 긴상이 2인분 동시에 끓이는 방법 가르쳐줄게. ...내일이라도 당장에. " 사실은 오늘이라도 당장에, 라고 해야겠지만 그건, 그건 안 되었다. 그건 역시 안 되겠어, 일단 오늘은 빨리 밥을 다먹고 어떻게든 저자식과 같이 목욕탕에라도 좀 들어가지 않으면...! 아 맞다 참 신센구미 둔영 목욕탕은 단체 입실 목욕탕이라서 안 돼(!)잖아...! 아오 역시 우리집에서 만나는 거였는데... 긴토키는 볼에 가까운 곳에 자꾸 닿이는 라면의 따뜻한 김을 만끽하며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귀엽게 되어있는 (?)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 ...아, 나. 너 안기다린다. 먼저먹는다. 난 불은라면 진짜 안좋아하거든. 그러니까 불기전에 먹을거니까. " 

 

 불기전에 네가 나 먹여주고 싶어하는 거 맛있게 잘 먹어야하니까. 히지카타는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할때에 늘 짓는 억지인상을 한층 더 진하게 찌푸리며 담배를 집는 척 서둘러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 먹을때마다 그소리야. 아 먼저 처먹어. " 

 

 그리고 긴토키의 시선을 못견디게 되었는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는 히지카타의 목덜미도 새빨개진 것이. 아.. 진짜 빨리 라면 맛있게 먹고 얼른 히지카타를 데리고... 등짝 좀 보자 요녀석아...!! 긴토키는 라면을 끊지 않고 길게, 한젓가락 집어들었다. 

 

 뒤에서 후르륵하는 면을 먹는 소리를 들으며, 히지카타는 화끈하는 볼위에 왼손을 갖다대면서 긴토키에게 들리지 않은 소리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냄비를 보니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재료를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했다. 양파와 파는 썰어둔 게 남았으니까 괜찮고, 라면 한봉지만 더 꺼내고, 차게 식혀둔 마요네즈도 슬슬 꺼내볼까. 히지카타는 몸을 냉장고쪽으로 틀었다.  

 

 

 

 

 

 

 

 

 

 

 

 

 

- done

 

+ 다시봐도 차게 식혀둔 마요네즈는 히지카타 토시로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멋진 문구가 아닐 수 없다. 뭐래 0ㅅ0